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교사-남학생 성범죄 사건은 바로 1996년에 일어난 메리 케이 르투어노(Mary Kay Letourneau) 사건일 것이다. 네 아이의 엄마였던 34세의 여교사가 12세에 불과한 제자와 성관계를 맺은 것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2급 아동 강간죄로 7년 6개월간 복역하는 동안 옥중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출소 후 제자와 결혼하게 된 일련의 과정이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2020년 58세의 나이로 르투어노가 세상을 떠난 뒤, 나탈리 포트만(Natalie Portman)은 “캐롤(Carol)”, “파 프롬 헤븐(Far From Heaven)”의 감독 토드 헤인즈(Todd Haynes)에게 한 편의 시나리오를 건넨다. 시나리오의 설정은 줄리안 무어(Julianne Moore)가 연기한 펫샵 직원 출신의 그레이시와 찰스 멜튼(Charles Melton)이 연기하면서 사모아계에서 아메리칸 원주민-한국계로 바뀐 조의 이야기로 바뀌었지만, 영화가 공개되자마자 관객들은 분명 르투어노 사건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렇게 토드 헤인즈의 열 번째 장편 영화 “메이 디셈버(May December)”는 공개 직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메이 디셈버”를 단순히 파격적인 사건의 궤적을 쫓는 영화로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 영화는 오히려 소재의 자극성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메이 디셈버”는 오히려 그레이시와 조의 자녀들은 장성해지고 두 부부가 오랜 시간 사랑을 다져온 시간인 사건 발생 15년 뒤를 배경으로 삼았다. 다만 나탈리 포트먼이 연기할 인기 배우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 사건을 영화화한다는 명분으로 두 부부의 삶을 휘젓기 시작하면서 세 사람 사이에는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차라리 “메이 디셈버”는 윤리나 도덕의 딜레마보다는 현실-영화-소설이라는 복잡한 층위 사이를 돌파하는 잉마르 베리만(Ingmar Bergman)의 “페르소나(Persona)”에 가까운 영화다. 나탈리 포트먼, 줄리엔 무어의 연기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찰스 멜튼의 연기는 서늘하다 못해 완벽의 경지에 올라섰다. 치밀한 토드 헤인즈의 손길은 세 배우의 열연에 힘입어 현실과 영화 사이의 경계를 가혹할 만큼 붕괴시키고 있다. 제76회 칸 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인 “메이 디셈버”는 3월 13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반드시 극장에서 이 영화를 온몸으로 견뎌보길 강력히 권한다.
이미지 출처 | 판씨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