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phen Reich – “Music for 18 Musicians”
고전주의 반골파였던 스티브 라이히 (Stephen Reich)가 새로운 자극과 영감을 얻기 위해 아프리카 가나에서 음악 공부를 마친 1974년부터 3년간 작곡하여 공개한 실내악. 1976년 4월, 뉴욕에서 초연 후 공개된 ECM 초판은 무려 1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달성, 필립 글래스 (Philip Glass)와 함께 미니멀리즘의 과도기를 화려하게 열어간 음악으로 알려졌다.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무디 블루스(Moody Blues), 킹 크림슨(King Crimson) 등의 위대한 선지자의 노력으로 수많은 음악적 요소가 록 음악에 흡수, 결합되던 1970년대. 새로운 사운드를 갈구하던 괴짜들은 미니멀리즘으로 눈을 돌렸고, 이내 미니멀리스트 필립 글래스와 스티브 라이히 등의 작곡에서 반복과 점층 되는 전개를 포착한다. 그렇게 미니멀리즘 기조의 명작과 괴이한 작품이 탄생하는 가운데, 미니멀리즘을 팝의 궤도로 올리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진 남자 7명으로 구성된 밴드 맨 점핑(Man Jumpiang)이 1983년 등장했다.
일정 구간을 반복으로 연주, 그 위에 또 다른 악기를 점층적으로 겹겹이 쌓아가, 더 깊은 농도의 하모니 앙상블을 의도한 맨 점핑. 사운드 샘플링, 재즈 훵크, 디스코 등의 댄스 뮤직 또한 접목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흥겹게 춤출 수 있는 음악을 빚어내고자 했다. 1984년, 빌 넬슨(Bill Nelson)의 레코드 레이블 콕토(Cocteau)와 계약을 맺고 앨범 [Jumpcut]을 공개, 이어 1987년에는 ‘에디션즈 EG(Editions EG)’에서 앨범 [World Service]을 공개했다. 이를 들은 엠비언트(Ambient)의 창시자 브라이언 이노(Brian Eno)는 맨 점핑을 두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밴드’라 극찬을 하기도.
그러나 밴드는 연일 부진한 판매를 기록, 여기 운까지 따라주지 않아 어느 페스티벌에서는 단 두 명의 관객만을 데리고 공연을 진행했다고 한다. 또 뉴욕까지 날아가 방문한 ‘게펜 레코드(Geffen records)’에서는 엄청난 수모를 경험한다. 게펜 레코드 A&R 담당자가 트랙 “In the Jungle” 도입부를 3초 듣고 “이런 종류의 음악을 싫어한다”라며 맨 점핑의 실험성을 면전에서 거부했단다. 그렇게 자금난과 불운에 시달리던 밴드는 1987년 해체 수순을 밟았고, 그들의 포부 또한 서서히 잊혀 가는 듯했다.
그러나 1999년 [Jumpcut]이 디지털 포맷으로 재탄생되며 이들의 포부를 음원과 CD를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이어 최근, 앨범 [Jumpcut]의 재발매를 다시 한번 성사한 레이블, 바로 레코드 광 스튜어트 리스(Stuart Leath)가 운영하는 리이슈 레이블 ‘이모셔널 레스큐(Emotional Rescue)’다. 지난 2019년 중순부터 각종 온라인 레코드 스토어에 재발매를 예고했는데, 2020년 1월 6일 마침내 바이닐로 재발매 된 것. 노란색 패키지 커버로 재탄생을 알린 앨범 [Jumpcut]은 오리지널 본연의 사운드와 1984년 녹음 당시의 생동감을 충실히 소개하는 데 의미가 있어 리마스터링을 거치지 않았다. 그리고 리믹스를 통해 이들이 남긴 발자취를 재해석하며, 2월이 다가오기 전까지 두 장의 리믹스 바이닐을 추가로 공개할 예정이라 밝혔다.
경쾌하게 움직이는 아르페지오 멜로디와 들썩이는 리듬 섹션이 겹겹이 쌓여 중반부에선 폭발적인 희열을 맛볼 수 있는 앨범 [Jumpcut]. 그 희열을 맛보기 위해서는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순환을 모두 확인해야 한다. 또한 맥놀이 혹은 음세기 변화 중심의 간결한 미니멀리즘에 익숙할 청자에겐 큰 신선함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직접 확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