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빈티지 음반을 직거래하는데 판매자가 교복을 입고 등장하여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거래하려던 음반이 워낙 희귀했고 또 발매된 지 40년이 지났던 터라 어린 학생이 판매자로 나올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그러나 당황한 기색을 감추고 침착하게 40년 세월에 낡을 대로 낡은 외형과 판의 무수한 기스를 손으로 짚었다. 그랬더니 판매자가 대뜸 이실직고 하길, 사실 삼촌이 소장하던 레코드를 시골집 다락에서 발견했고, 허락을 받아 용돈을 챙길 겸 판매하는 것이라고 ━ 보관 상태가 좋지 않아 최초 판매가에서 2만 원을 깎아주겠다고 했다 ━ .
아무튼 기회가 된다면 여러분도 부모님의 레코드 수납장을 살펴보길. 거기엔 의외로 귀한 음반이 숨어있는 경우도 다반사.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디제이이자 프로모터인 아담 로우(Adam Low) 또한 자신의 집 다락방에서 진귀한 레코드를 찾아내어 최근 앨범 [The Gayfield Enterprise – Demo Tapes From 1986]을 공개했다. 이는 타이틀 그대로 1986년, 에든버러의 게이필드 아파트에서 녹음된 데모 음반으로 아담 로우의 아버지인 케빈 로우(Kevin Low)가 자신의 침실에서 동료 피오나 칼린(Fiona Carlin)과 녹음한 데모 테잎 중 일부를 발췌, 이를 디지털화하여 세상에 공개한 음반이다.
사실 케빈과 피오나는 포스트 펑크 밴드인 와일드 인디언스(The Wild Indians)의 멤버였다. 디스콕스(Discogs)에 등록된 정보와 아담의 소개문에 따르면 와일드 인디언스는 1980년대 초중반에 걸쳐 음반 활동과 클럽 공연을 병행했던 스코틀랜드의 포스트 펑크 밴드며, 케빈은 밴드에서 기타리스트, 피오나는 보컬로 활약한 바 있다.
그러나 해당 데모에는 케빈의 기타 연주가 수록되지 않았는데, 이유인즉슨, 1986년 밴드 해체 뒤 케빈과 피오나는 기타 앰프와 색소폰, 소중하게 모아온 음반 등을 모조리 판매했기 때문. 대신 야마하(Yamaha)의 드럼머신 RX-5와 시퀀서 QX7, 신시사이저DX-100를 구매하여 해당 데모 녹음에 활용했다.
신시사이저와 마이크 한 대를 놓고 소소하게 펼쳐진 두 뮤지션의 홈레코딩 [The Gayfield Enterprise – Demo Tapes From 1986]에는 포스트 펑크, 뉴웨이브 물결이 일던 시기의 DIY 홈레코딩에 관한 진귀한 탐구가 수록되어 있다. 또 녹음이 진행된 방의 크기와 두 뮤지션이 어떤 표정으로 녹음에 임했는지 알 순 없지만, 그들의 담백한 연주에 즐거운 표정이 떠오르고, 여기 왠지 모를 화사한 필터까지 겹쳐져 행복한 녹음 당시를 상상하게 한다. 덕분에 덩달아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기도.
앨범은 아담의 유튜브 채널 ‘Pigeon Steve’를 통해 일부 확인할 수 있고, 피지컬 포맷으론 테이프가 발매되어 시티드 레코드(Seated Records) 밴드캠프 계정에서 판매되었다. 현재 밴드캠프는 품절로 온라인 레코드숍 ‘Deejay.de’에서 구매할 수 있다.
Seated Records 공식 밴드캠프 계정
Adam Low 인스타그램 계정
이미지 출처 | The Skin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