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lin, 정규 3집 앨범 [Akoma] 발매

자신만의 궤적을 그리는 혜성 같은 아티스트도 있지만, 자신의 궤적을 둘러싼 모든 것을 흡수하는 블랙홀 같은 아티스트도 있다. 듣는 이를 초대하지만, 듣는 이와 절대 타협하지 않는 블랙홀 같은 아름다움을 빚고 고집하는 이들. 제일린(Jlin)은 수년간 이런 블랙홀 같은 궤적을 그려왔다. 그리고 2집 앨범 [Black Origami]가 나온 지 7년이 지난 오늘, 그녀는 세 번째 앨범 [Akoma]를 공개해 그 블랙홀 같은 궤적이 아직도 얼마나 매섭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다시 보여줬다.

제일린은 종종 인디애나 게리(Gary)에서 시카고 풋워크를 엎은 아티스트로 알려졌지만, [Akoma]에서는 재즈, 트랩, 현대 클래식, 미니멀 사운드가 가미되어 더 다양한 사운드를 조합한다. 무용단, 타악기 앙상블, 현대 클래식의 영향을 받고, 수학에 진심인 제일린만의 맥박을 따라 계산적이게 듣는 이를 괴롭힌다. 마치 스트라빈스키(Stravinsky)의 “봄의 제전(The Rite of Spring)” 리듬에 꽂힌 제이딜라처럼. [Akoma]는 이런 거친 포옹과 같은 안락감을 선사하며, 듣는 이를 제일린만의 블랙홀로 확 끌어당긴다.

[Akoma]에 울리는 리듬을 서술할 글은 그저 칭찬의 연쇄라는 것이 아쉽다. 신나게 열리는 첫 곡 “Borealis”를 내숭 떨듯 가로지르는 피리 멜로디는 드럼이 쉴 틈 없이 발을 굴러 가둔다. 빼곡하게 채워진 비트는 익숙해질 때쯤, 다른 각도서 새로운 박자가 튕겨 오며 드럼은 다시 새롭게 멜로디를 탄다. 이 사이를 찾아 왔다 갔다 빈틈 사이로 비요크(Björk)가 소곤거린다. 이런 혼란을 거만하지 않은 스타일로 엮은 제일린은 앨범 첫 곡부터 청자를 긴장하게 한다.

블랙홀과 같은 매력을 지녔지만, 이는 [Akoma]가 마냥 어두운 앨범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크로노스 콰르텟(Kronos Quartet)의 특유의 사악함이 밴 “Sodalite”과 후드에서 뱀을 잡는 듯한 트랩과 타악기 앙상블의 주술을 그린 “Challenges (To Be Continued II)”는 블랙홀보다 더 매섭게 울린다. 하지만 앨범으로서 [Akoma]의 매력은 이 한 색조에 머물지 않는다. 점점 밝은 사운드를 향해 솟아오르는 전체적인 선율의 명암 변화가 장관이다.

끝에서 두 번째 곡인 “Grannie’s Cherry Pie”는 앞서 나온 격렬한 느낌과 사뭇 다른 장난기 가득한 키보드 라인이 두드러다. 억새밭이 햇살 아래 물결치듯, 가늘게 튀는 풋워크 리듬이 밝은 멜로디와 함께 물결친다. 하지만 바스락거리는 하이햇 위로 통통 튀는 키보드는 지속과 반복을 향하지만, 언제나 예상치 못한 정지와 시작으로 무너진다. 이런 무질서한 사운드는 제일린이 지닌 리듬과 질감에 대한 탁월한 이해를 바탕으로 설계되어, 듣는 이로 하여금 익숙한 질감을 설계된 무질서 하에 새롭게 경험하게 한다.

필립 글래스(Philip Glass)의 피아노 아르페지오가 높게 피어오르는 막곡 “The Precision of Infinity”는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훌륭한 마침표처럼 들려온다. [Akoma]에 함께한 참여 아티스트 명단은 짧지만 굵다. 글래스와 비요크를 어울리게 이을 수 있는 프로듀서는 다양한 사운드를 서슴없이 융합하는 제일린이 아닌 다른 프로듀서였다면 도박에 가까웠을 것이다. 클래식과 전자음악, 그리고 그 사이로 흐르는 비요크 샘플. 제일린이 빚는 사운드는 겹겹이 포개졌기 때문에 듣는 이의 몰입과 관심을 요구한다. 이런 양파 같은 매력이 궁금하고, 전자음악의 한계를 재확인하고 싶은 독자라면 지금 바로 [Akoma]를 들어보자.

Jlin 인스타그램 계정


이미지 출처 | Planet 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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