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동의 더블베이시스트 송남현의 새 싱글 “예를 들어 푸른색의” / 라이너 노트

만동 멤버이자 작곡가, 더블베이시스트 송남현이 밴드 못과 나이트오프의 멤버인 뮤지션 이이언과 협업한 새 싱글 “예를 들어 푸른색의”를 발표했다. 싱글의 아트워크는 최경주 작가가, 뮤직비디오의 애니메이션 작업은 만동의 드러머 서경수가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마자 전자음으로 일군 다이내믹이 귀 앞을 마중한다. 마치 푸른 색빛이 일렁이는 것만 같은 전자음은 만동, 그리고 송남현의 이전 솔로작에서는 만나볼 수 없었던 새로운 감각이다. 이를 의식할 때 더욱 귀가 번뜩일 것. 곧이어 몽롱한 아르페지오와 이이언 특유의 음울한 보컬이 가세하여 푸른색의 곡에 더욱 짙은 색채를 더했다.

싱글을 발표하며 송남현은 라이너 노트를 작성하였고 이를 VISLA가 공개한다. 그가 겪은 번아웃과 그로 인한 마음의 동요, 그리고 싱글 “예를 들어 푸른색의”를 제작하며 극복하기까지를 담은 라이너 노트. 솔직하고 담담한 글을 통해 그를 둘러싸고 있던 주변의 공기 내음도 확인할 수 있으리라. 우선은 상단의 뮤직비디오를 확인한 후 하단의 라이너 노트를 확인하며 음악을 다시 곱씹자. 감동이 두 배다.


Liner Note

안녕하세요. 작곡가이자 더블 베이시스트 송남현입니다.

이번 “예를 들어 푸른색의(Feat.이이언)”의 싱글은 저에게 조금은 특별한 작업이었습니다.

작년 12월 올해를 마감하는 시점에 삶의 태도에 많은 영향을 미칠 만큼 ‘번-아웃’ 혹은 마음의 동요가 크게 왔습니다.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는 항상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나의 벗과 내 가족과 나의 동료들, 크게 묶어서 인간적인 관계에서 오는 막연한 불안감 등에 잠식되었던 어떤 시간이었던 것 같네요.

제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도 생각해 봐야겠네요. 꽤 많은 작업을 했지만, 그 수확은 미미하여 이 생활은 꽤 오래 했음에도 불구하고 앨범을 제작(솔로 앨범, 만동의 앨범 등..) 하고는 언제나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시기가 있는데 공교롭게도 두 가지 상황이 겹치기도 했고요.

방콕행을 결정했습니다. 간단한 이유고, 고민 없는 결정이었죠. 대신 일주일짜리 레지던스를 예약하고 옷 몇 벌과 슬리퍼, 노트북과 미니 건반만 챙겼네요. 인생의 첫 ‘송 캠프(Song Camp)’였습니다.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주도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주어진 시스템 안에 정해진 계획을 좇아 살았던 특’J’성향인 저에겐 꽤 큰 모험이었습니다. 술을 그리 즐기질 못하고, 더운 걸 질색하며, 시끄러운 공간을 피해 다니는 저에게 방콕은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던 것 같네요. 아니나 다를까… 방콕 도착하고 딱 하루가 지나고 다시 서울행 비행기를 끊을까? 고민했습니다.

하루만 딱 더 참아보자 생각하고 이미 예약해 버린 레지던스와 비행깃값에 분노가 치밀어 올라 레지던스 지하 체육관에서 2시간 동안 미친 듯이 육수를 뽑아냈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뻗어버렸죠. 해가 넘어갈 때쯤 기어 나와 근처 야외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 앉았습니다. 적당히 선선한 바람에 새벽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직은 각자의 생활에 빠져있던 방콕은 저에게 새로운 분위기를 던졌고 이것은 저에게 또 다른 기회였던 거죠.

그때부터 생활루틴을 맞춰가며 곡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항상 새로운 카페를 찾아다니며, 이국적인 풍경과 고립된 나 자신을 즐기며 10곡 정도의 레퍼런스를 가지고 돌아왔네요.

유라의 “Worm in the Apple” 작업 또한 방콕에서 이루어졌고, 당시 음원 가제가 “fynn asoke” 이었다.

방콕의 선셋에 맞춰 느린 템포의 비트와 음정이 일정치 않은 신스 등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예전의 저의 작업과는 많이 차이가 나는 곡들이더군요. 때마침 유라의 앨범을 샤라웃 해줬던 이이언님과 온-라인으로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도모하고 있던 시점 중, “예를 들어 푸른색의”의 작업을 같이하고 싶어 연락을 드렸고, 역시 ‘만남은 오프라인이지!!’라고 생각하고 처음 만난 카페에서 장장 2시간 가량을 재즈음악, 재즈로 대동 단결된 동료 친구들 근황, 판테라, 음악 장비, 에이블톤 개발자들이 탈주해서 만든 비트윅등 온갖 쓸데없는 이야기만 늘어놓다 대략적인 작업은 온라인으로 일주일 만에 끝난 것 같아요.

특이점이 있다면 저는 트랙킹(노래선율 혹은 멜로디, 가사를 제외한 반주)만을 만들어 놓고 탑 라인(노래선율 혹은 멜로디)은 이언님에게 맡겨버렸어요. 일종의 믿음 같은 거죠. 성덕이라 말하고요. 유라와의 작업도 비슷한 과정으로 진행하고 있었는데, 제가 트랙을 만들다 보면 정말 ‘Fit’한 탑 라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요하거나 들려주진 않았어요. 그 결과는 음악이 증명했던 것 같고요.

이언님 역시나 처음 결과물을 받아보곤 제 생각이 틀리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예전 ‘못’의 음악에서 풍겼던 텍스쳐들이 이번 음악에 꽤 담겼다고 생각해요. 특히 벌스 부분에서요. 그 부분이 가장 만족하는 부분입니다. 가사 역시 마찬가지고요. 제가 제목만 던져드리고, 제 작업기와 위에서 언급했던 저의 상황들을 경청해 주시고 나온 가사들이었어요. 이 가사가 특히 뮤직비디오에서 빛을 발했던 것 같아요. 작업은 성공적으로 잘 끝난 것 같고, 이언님 역시 만족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진심으로 저희의 창작물을 좋아해 주셨고요. 심지어 믹스까지 직접 하셨으니… 마지막으로는 좋은 음악 동료가 생긴 것 같아 너무 좋아요. 사실 이 곡 말고도 제가 한 15개 이상 막 보내면서 이거는 ‘빨간 머리 앤’ 이거는 ‘새송이 관자 볶음’이러면서 피드백 달라고 했어요. 확실한 건 이 작업이 끝이 아니라 분명 뒤에 무언가 있을 것 같은 행복회로가 돌아가네요.

뮤직비디오와 아트워크의 이야기를 하자면 제 모든 앨범의 아트워크를 작업해 주고 있는 ArtistProof = ‘AP’의 최경주 작가와 작업하였습니다. 저는 AP의 팬이기도 해서 러그와 가방, 컵 따위를 자주 사곤 한답니다. 그래서 언제나 경주의 작품을 눈여겨보는데 연초에 올린 작품들이 상당히 저를 설레게 했고, 바로 진행하자 이야기했죠. 뮤비는 경주의 작품을 만동의 드러머 서경수가 애니메이션 작업을 했고요. 이게 정말 정말 아이디어도 좋아야 하고 신경 쓸 게 많고 단순반복작업도 많아 진짜 힘든 걸로 알고 있는데, 결과물이 너무 예쁘게 나왔는데도 워낙에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라 막 티를 못 냈어요. 너무 좋은데 제 성격도 좀 원래 티를 잘 못 내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경수는 막 소리 지르고 좋아죽어!! 이런 분위기를 원했나 봐요. 하여튼 이 둘은 제 솔로 앨범 작업을 기점으로 ‘Light Reagrds’라는 아트디렉팅팀으로 활동 중입니다.

다음 트랙의 “기다리지 않으면”은 제가 작년에 발매한 더블베이스 솔로 앨범의 연장선에 있는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은 어쿠스틱하게 정말 베이스 한대로 진행되었구요. 제가 작업하고 혹은 혼자 노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그 사운드소스를 가지고 정말 이것저것 오만 것들을 다 붙여보는 거예요. 다행스럽게 “예를 들어 푸른색”에 가장 근접한 베이스 연주곡이 나온 것 같고, 추후 작업할 제 더블베이스 정규앨범의 여러 가지 요소 중 하나가 될 연습을 미리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결과적으로, 이 모든 작업의 가장 위에는 ‘저의 만족’이란 게 있는 것 같아요. 계속 생각을 고쳐먹고 버리고 싶은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 말인즉, 저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제 음악을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커요. 모든 음악인이 다 똑같은 마음이지만, 저는 좀 더 개인적으로 제 이야기를 할 기회도, 뭔가 진지하고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생각보다 너무 힘든 일이라서요. ‘기쁠 때도, 슬플 때도, 행복을 바라거나 절망을 말할 때도 그게 음악이 매개체가 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커요. 마치 ‘삼체’의 삼체인들이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은 하지 않고 텔레파시로 소통하는 것처럼…

기존의 ‘못’과 ‘나이트오프’를 좋아하던 분들과 유라의 음악, 그리고 만동의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 모두가 즐길 수 있을 만한 곡이었으면 좋겠어요. 아울러 수록곡 “기다리지 않으면” 같은 ‘연주적 측면’이 조금 더 부각된 곡 이런 저의 색깔도 하나의 취향과 기호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지금 같은 구성의 싱글 프로젝트를 이어나갈 예정이에요. 지금의 곡 구성과 비디오 및 아트웍들이 모이면 그 행위만으로도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제는 이것을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대중들의 심판을 이겨나가야 하겠죠? 여하튼 저는 그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습니다.


글ㅣ송남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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