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서울 하우스 파티 포스터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던 클로젯 이(Closet Yi)는 디제이 듀오 쎄끼(C’est Qui)의 한 축으로 이태원 하우스 클럽을 오가며 플레이하는 디제이이자 프로듀서로, 자신의 이름으로 세 개의 트랙을 발표한 바 있다. 최근에는 영국의 레코드 레이블 ‘노 베드 데이즈(No Bad Days)’를 통해 [Tam Tam Land]를 공개할뿐만 아니라 자신의 미공개 트랙을 1시간 믹스 셋으로 엮기도 했다.
서울의 하우스 신(Scene)을 지켜봤다면 분명 익숙할 이름. 나름 고인물이라면 고인물이지만, 하나의 주제와 타이틀 아래 여러 트랙을 엮어낸 앨범은 [Tam Tam Land]가 처음이며, 허니베저 레코드(Honey Badger Records)의 새 식구로 활약이 기대되는 바. 클로젯 이를 ‘Electric Youth’, 당당히 서울의 신예로 소개한다.
최근 첫 번째 롱 셋을 펼쳤다. 소감이 어땠나?
뭔가를 이루겠다는 야망은 없었다. 그냥 즐거운 훈련이라 생각했다. 6시간 30분 플레이했는데, 단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또한 내 체력에 감탄했다. 평소 트는 음악을 다시 플레이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피스틸(Pistil)은 워낙 익숙한 공간이다 보니 체력적으로 힘들거나 피로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아직 20대라 그런가?
그러나 6시간 30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플레이에 힘이 되는 요소를 꼽자면?
사람들. 특히 롱 셋에서 큰 힘이 됐다. 한 명 한 명 들어오는 게 다 보여서, 누군가 입장할 때마다 자신을 끌어올렸다. 또한 클럽 스태프가 친절하지 않을 때는 눈치 보이고 위축되는 편인데, 피스틸 분들은 플레이 직전에 내 플레이가 너무 기대된다고 응원해줘서 큰 힘이 된다. 관객에게서 느껴지는 에너지와는 또 다른 성질의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나를 언제나 응원하는 피스틸을 가장 아끼는 편이다.
유럽에서도 디제잉을 한 적 있는데. 어땠나?
유럽은 기본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가 깔려있어서 위축되지 않고 플레이를 즐겼다. 그리고 그들은 하우스 음악에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우스 플로우가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우스 테크노의 8마디 반복에 익숙한 관객의 춤은 마치 즐겁게 놀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들이 편안해 보이니 나 또한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플레이했다.
서울 하우스 신에 자주 보이다 보니, 은연중에 터줏대감이란 인식이 강력하게 박힌 것 같다. 디제잉을 시작한 지는 얼마나 됐나?
디제잉을 시작한 지 6년 됐다. 지금은 듀오 디제이 크루 홈워크(Homework)로 활동하고 있는 디제이 스펜서(Spencer)를 대학에서 만나면서부터다. 당시 스펜서는 디제잉 장비를 가지고 있었다. 친구들과 스펜서의 집에 놀러가서 장난감 다루듯 만지다 보니 어느새 시작하고 말았다. 또한 마침 스펜서는 당시 하우스를 주로 듣고 있었기에 그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하우스를 주로 틀게 된 것 같다.
당시 어떤 종류의 하우스를 즐겼나.
존 탈라봇(John Talabot), 텐스네이크(Tensnake) 같은 좀 더 베를린에 가까운 테크 하우스, 미니멀, 라운지 딥 하우스를 들었다. 그러다 피스틸이 생기며 나 또한 베뉴에서 조금씩 플레이를 이어갔다.
나원과 함께 ‘쎄끼’로 활동하고 있다. 어떻게 함께하게 됐나?
어느 날 콘트라에서 나원과 계획되지 않은 백투백을 펼칠 기회가 있었다. 즉흥적으로 플레이했는데, 관객의 피드백과 리액션이 너무 좋아서 아예 함께 활동하기로 했다.
여전히 즉흥적으로 플레이하는 편인가?
그렇다. 우린 플레이 전, 서로의 셀렉션에 관해 어떠한 이야기도 나누지 않는다. 사실은 이게 안 좋을 때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방식이 굳어져서 이제 굳이 바꿀 생각도 없다. 또한 서로의 음악을 공유한다고 지금 스타일이 바뀔 것 같지도 않다.
반면 최근 쎄끼의 활동은 조금 뜸해졌다.
나원은 암스테르담으로 떠났다. 각자의 방향을 서로 존중하는 편. 귀국 계획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가 서울에서 함께하자고 조를 수도 없는 게 아닌가. 나는 이 상황 자체를 즐기는 중이다. 곧 영국에서 만나 긱을 펼칠 예정이다.
프로듀서로 처음 제작한 트랙은 2년 전, 텍스쳐스(textures)의 컴필레이션에 수록된 “Passeggio”이었다. 어떻게 참여했나?
프로듀싱을 시작할 때 좋은 스피커가 갖춰진 작업실이 없었다. 트레이닝도 하지 않은 상태라 문이랑(Moon Yi Rang)에게 도와달라 했다. 그는 내 단점을 잘 보완해줄 것 같았다. 작업은 미리 만들어 놓은 데모를 듣고, 이를 중심으로 함께 만져가는 식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막상 클럽에서 플레이해보니 트랙의 베이스가 너무 강해서 아쉬웠다. 산뜻한 분위기를 주고 싶었는데.
이어 허니배저 레코드(Honey Badger Records)의 컴필레이션에 “murumuru palm tree”로 참여했다.
“murumuru palm tree”은 내 힘으로 완성한 트랙이라 애착이 많이 가는 편이다.
최근 공개된 세 번째 컴필레이션을 기점으로 허니배저의 식구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레이블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레이블 구성원은 식구인 동시에 친구다. 내가 즐겁고, 서로 친해야지 시너지가 발휘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허니배저에 새 식구로 합류했다. 또한 JNS에게 많이 배우기도 했다. 열심히 활동해서 레이블도 알리고, 내 이름도 알리고 서로 윈윈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디제이로 활동하다가 프로듀싱을 시작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Electric Youth’로 소개한 프로듀서 모두 디제잉을 시작하고 나서 프로듀서 또한 겸하게 됐다. 클로젯은 어떤 계기로 곡을 제작하게 됐나?
디제잉, 셀렉션을 더 파고들 수 있었으나 디제잉에 흥미가 떨어져서 지루함을 느끼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마침 허니배저 레코드의 수장 JNS와 친해지며 곡을 직접 만드는 방식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 사실 에이블톤(Ableton)은 원래 만질 줄 알았다. 다만 작곡을 병행하지 않았을 뿐이지.
JNS는 내 작곡 활동이 더 늦어지면 디제이로 음악을 만드는 게 힘들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셀렉의 역치라고 했나? 아무튼 이게 너무 높아지면 음악을 만들어도 공개할 수 없는 베드룸 프로듀서가 될 거라고 자극했다. 점점 더 조급해지기 시작했고, 그때 부랴부랴 음악을 만들게 된 것 같다. 근데 막상 시작해보니 신기했다. 일단 내가 몰랐던 나의 장점을 찾게 됐다. 소리를 만드는 게 새롭기도 하고.
장점이라면?
작업 속도가 느리지 않다는 것. 앉은 그 자리에서 바로 끝내는 프로세스를 즐기는 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생각보다 소처럼 우직하게 작업하는 스타일이다.
디제이로서의 라이브러리에서 영감을 얻진 않나?
사실 초반에는 발레아릭, 멜로디컬한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화성을 전공하지 않았고, 악기를 다룰 줄 모르니 구현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리듬에 조금 더 집중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나로서는 이 방식이 더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곡 작업할 때도 잘하는 것 위주로 풀어가려고 노력한다. 잘하는 걸 하는 게 재밌으니까. 또 못하는 걸 붙잡고 고민하긴 싫다. 디제이로 좋아하는 곡과 만들고 싶은 트랙이 각자 다른 방향성을 지닌 것 같다.
악기를 다룰 줄 모른다고 했는데, 과거 플루트를 잡은 경력이 있다.
아쉽지만 플루트는 큰 의미를 지닌 경력이 아니다. 어느 댄스 음악과 연결고리를 지을 만큼의 중요한 악기로 구성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또한 플루트는 오선보를 소리로 발현할 수 있는 수단에 그쳤다.
얼마 전 첫 번째 EP [Tam Tam Land]를 공개했다. 영국의 레이블 ‘노 배드 데이즈(No Bad Days)’를 통해 발표했는데, 레이블 소개를 직접 부탁한다.
노 배드 데이즈는 하우스뿐만 아니라 인디 댄스, 누디스코까지 포괄하는 레이블로, 공동 파운더인 제이크 홀릭(Jake Hollick), 가브리엘 스자탄(Gabriel Szatan)이 설립한 런던의 댄스 뮤직 레이블이다. 그들이 공개하는 음악은 무겁지 않고, 산뜻한 이미지, 웃는 얼굴처럼 긍정적인 에너지를 담고 있다. 제이크는 노 배드 데이즈와 ‘코스탈 헤이즈(Coastal Haze)’를 동시에 운영하는 디제이, 가브리엘은 음악 웹진 피치포크(Pitchfork)에 글을 기고하며, 보일러룸(Boiler Room)의 시작을 함께한 멤버로 유명하다. 다양한 활동한 이력을 보면 힘이 잔뜩 들어간 친구들로 오해할 수 있지만, 그들은 그냥 음악을 좋아하는 오타쿠다. 세계 어딘가 나처럼 혼자 음악을 만드는 사람을 찾아서 그들의 음악을 소개하고 있다.
노 배드 데이즈 릴리즈 EP [Tam Tam Land]의 타이틀은 리드미컬한 부분에서 드럼 세트의 ‘탐탐’을 표현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게 정답인가?
사실은 [Tam Tam Land]는 탐라를 향하고 있다. ‘탐’의 의미는 땅, 지면, 나라까지 포괄하는 단어다. 탐탐은 해외에서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지어냈다. 앨범은 제주에 관련된 신비하며, 자연적인 요소들, 돌과 바다, 바람 같은 움직임을 담고 싶었다. 그런데 드럼 세트의 탐탐이 틀린 건 아니다. 오히려 덕분에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 앨범이 됐다.
EP [Tam Tam Land]는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나?
“Honeymoon Junction”은 우리 어머니 세대의 신혼여행, 80년대 향수를 표현하고 싶었다. 비록 80년대를 살진 않았지만, 내가 상상하는 제주도의 환상과 여리여리한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했다.
“Circle Dance”는 트랙 구조적으로는 클럽 플레이에 더 친화적으로 짜여진 딥하우스다. 여기에 나의 감정과 상상이 더해져 완성된 곡이다. 숲향을 더해주는 새 소리와 출처를 밝힐 수 없는 한국 배우의 워딩 샘플로 탐라의 깊은 어딘가로 빠져드는 상상을 할 수 있을 것.
앨범의 타이틀 트랙 “Basalt (玄武岩)”는 앉아서 하루 만에 뚝딱 만든 트랙이다. 곡의 흐름이 묘하지만, 흐름에 포커스를 두지 않았다. 리듬을 구성하는 다양한 사운드를 빼놓지 않고, 또한 겹치지 않게 벨런스를 잡는데 큰 욕심이 생겼다. 소리 각각의 위치를 선정하는 데 신경을 쏟은 트랙이라 위치를 잡고난 후에는 빠르게 곡이 완성됐다.
바이닐 또한 공개된 것으로 알고있는데 한국에서 구매할 방법은 없나?
지금 해외 레코드숍과 노 배드 데이즈 밴드캠프 계정에서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있다. 국내 판매는 아직 정식 거래처가 없어서 가능하다면 내가 사입하는 방식으로 4월 첫 주에 로컬 레코드숍에서 이벤트를 진행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을 알려줄 수 있나?
먼저 5월에 허니베저를 통해 EP가 공개되고, 내년을 목표로 정규 앨범을 준비하려고 한다. 이들 또한 하우스, 테크노 바운더리 안에서 제작할 예정이다.
에디터 │ 황선웅
사진 │백윤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