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7일 베를린 미테(Mitte) 전역은 어느 무리의 소행으로 떠들썩했다. 특이한 스타일을 가진 몇 백명의 군중이 한데 모여 길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 마치 ‘힙스터(Hipster)와 히피(Hippie), 비트닉(Beatnik)과 그런지(Grunge)스타일에 빠진 아나키스트들의 시위’라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걷고, 이야기하고, 마시고, 노래하고, 수영하고, 먹고, 껴안고, 춤을 추면서 그들의 시끌벅적한 축제는 새벽이 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사실 이 축제는 블레스(BLESS)가 설립 25주년을 기념해 주관한 행사였다.
올해 블레스는 설립 25주년을 자축하기 위해 분기마다 전시회를 열었는데, 특히 이번 행사는 독일 KW 현대미술관(KW Institute for Contemporary Art)과 이탈리아 명품 하우스 펜디(Fendi)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활동이었다. ‘집단적인 도취(Collective Rausch)’라는 이름의 컬렉션으로 약 200여 명의 전·현직 블레스 직원이 모여 미테의 시내와 공원을 돌아다니면서 그것을 기록하는 행위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전시회를 기획한 이번 축제는 ‘블레스’ 다운 기발한 형태의 예술 활동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블레스 다운 것’은 무엇일까? 25년이라는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블레스의 정체성은 완벽하게 정립할 수 없는 신비한 형태로 남아있다. 한국에서 유명세를 치렀던 나이키(Nike)의 트레이닝 바지와 리바이스(Levi′s)의 청바지를 결합한 바지, 남녀 두 명이 누워있는 사진으로 프린트된 침대 시트 그리고 나무 모형을 선에 둘러싼 멀티 플러그만 봐도 한 브랜드에서 나온 제품이라고는 도무지 믿기 힘들 정도로 그들의 디자인 영역은 넓고 광범위하다.
블레스를 사회, 경제 관계에서 분석한 예빼 우겔비그(Jeppe Ugelvig)의 <패션위크 : 1993-2018, 25년의 패션 예술>에서는 그들을 ‘21세기 초반 패션 산업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브랜드 중 하나’로 소개하고 있고 그 이유를 ‘예술도 패션도 아닌 작업들을 자신만의 플랫폼을 찾아 작동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다룬다. 예술과 패션 사이의 혼성 공간을 이해하는 몇 안 되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또한 현재 패션 업계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패션 팝업(패션 기업이 전시를 통해 패션과 예술의 영역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을 최초로 고안한 선구자적인 브랜드로 밝히고 있다.
필자는 오랜 시간 독창적인 세계를 선보이며 패션 신(Scene)에 큰 족적을 남긴 블레스의 역사와 예술세계를 전반적으로 다뤄보는 시간을 통해 블레스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매 컬렉션에 넘버링(N°)을 붙여 어느덧 74번째에 다다른 그들의 방대한 아카이브를 들여다보며 ‘블레스다운 것’이 과연 무엇인지 재고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라며. 평소 블레스에 관심을 가졌던 이라면 더욱 만족스러운 시간이 될 것.
블레스의 태동과 탄생
오스트리아 출신의 데지레 하이스(Desiree Heiss)와 독일 출신의 이네스 카(Ines Kaag)는 1993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LVMH 프라이즈(LVMH Prize)의 전신인 ‘국제 청년 패션 창작자 콩쿠르(Concours International des Jeunes Créateurs de la Mode)’에서 처음 만난다. 경연을 위해 제출한 작품이 서로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는 심사위원의 평가를 받아 이를 계기로 친구가 된 두 사람은 비록 콩쿠르에서 수상하진 못했지만 대회 이후에도 그들은 펜팔을 주고받으면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패션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공유해나간다.
“우리는 여전히 하루에도 100개가 넘는 이메일을 작성하지만, 편지를 썼을 때가 젤 재밌었어요.”
그렇게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브랜드 설립에 관한 이야기를 꾸준히 이어나갔고 1995년, 마침내 ‘블레스(BLESS)’라는 이름의 비정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그들은 반투명한 거즈 조각으로 만든 여성용 상의 ‘썬 탑(The Sun top)’이라는 첫 작품을 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홍보 포스터를 비엔나와 베를린 길거리에 붙이는 방식으로 게릴라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러나 폰섹스 광고로 혼동된 이 포스터는 관심을 잃고, 첫 번째 작품 또한 실패작이 돼버리고 만다.
그러나 블레스 듀오는 실패에 크게 개의치 않았고 1년 뒤 1996년,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 경의 헤어스타일에서 모티브를 따서 모피 가발 ‘퍼 위그(Fur wig)’를 제작한다. 또한 블레스는 작업물을 알리기 위해 가지고 있던 돈을 모아 패션 매거진인 아이디 매거진(i-D magazine)에 광고를 게시한다.
“당시 우리 두 명은 일자리를 찾고 있어서 사람들이 광고를 보면 우리에게 전화를 해줄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고 있었어요. 매우 순진했죠”
해당 광고는 첫 번째 광고와는 다르게 기대에 부응하며 큰 호응을 얻었고, 이를 통해 블레스는 두 관계자의 연락을 받게 된다. 그 중 한 명이 프랑스 파리의 유명 패션 바이어였던 콜레트 루소(Colette Roussaux)였고, 다른 한 명은 메종 마르틴 마르지엘라(Maison Martin Margiela)의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패트릭 스칼론(Patrick Scallon)이었다.
콜레트 루소는 자신이 곧 오픈할 매장에 가발 입고를, 패트릭 스칼론은 메종 마르지엘라 97/98 가을 겨울 컬렉션의 액세서리로 40피스가량의 가발 제작을 요청한다. 이것이 블레스가 업계에 첫 발을 들인 역사적 순간이다. 여느 브랜드와는 다른 방식의 시작, 이를 통해 블레스는 프로젝트 브랜드에서 벗어나 정식 브랜드로 탈바꿈하게 된다.
브랜드 협업
블레스는 타 브랜드와의 협업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1998년 ‘N°06 Customizable Footwear’ 컬렉션에서 뉴발란스(New Balance)와 샤를 주르당(Charles Jourdan)의 도움을 받아 커스텀이 가능한 신발 키트를 만들었고, 2000년 ‘N°10 Scarf sponsored by’에서는 리바이스(Levi’s), 월터 반 베이렌동크(W<) 등에서 제공한 옷을 스카프로 재해석하기도 했다. 또한 같은 해인 2000년 ‘N°12 Teams-up’에서는 부커러(Bucherer)와 아디다스(Adidas)와 함께 제품을 선보인 바 있다. 이외에도 블레스는 여전히 많은 브랜드와 협업 관계를 맺으며 제품을 제작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설립 초창기의 블레스와 타 브랜드 간의 콜라보레이션은 ‘협업’이기보다는 ‘지원’이라는 단어가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 블레스는 독립적인 레이블을 전개하기에는 시스템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술 활동 후원을 원하는 브랜드의 지원을 받아 독창성에 초점을 두고 전개를 이어나간 것이다. 따라서 동등한 위치의 협업 관계라기보다 지원의 개념이 강했다. 하지만 블레스의 운영 방식은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 패션 산업의 양상과 맞물려 또 한 번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블레스가 보여준 패션 생산의 전위와 전복은 마침 전통적인 서구의 럭셔리 패션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개인화된 라이프스타일이 각광받는 시점과 맞물려있다. 이런 구매 패턴을 이끄는 이들은 수십 년간 유럽의 헤리티지 패션 브랜드를 지탱해오며 충성스러운 토탈 룩 고객이 되어 왔던 상류층 여성 부르주와들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 경제적 배경의 젊은 X세대 고객들이었다.····“창조 계층”, 흔히 “스니커-부르주아지”로 알려진 이 인구 집단 전통과는 다른 쿨한 차별화를 선호했다. 이는 패션을 향한 양식화된 반체제적 접근 방식에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예빼 우겔비그 <패션위크 : 1993-2018 25년의 패션 예술>
패션과 예술의 혼성 공간
블레스는 패션과 예술의 혼성 공간을 이해하는 몇 안 되는 브랜드였고, 그 지점은 결국 블레스만의 정체성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기조 아래 그들은 패션 산업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방식을 창조해 내기도 하고 기존의 관행을 무너뜨리는 전위적인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바로 패션 팝업과 프레젠테이션에서 말이다.
– 패션 팝업
1998년, 파리 편집숍 콜레트(Colette)에서 개최한 미니 회고전에서 패션 팝업의 개념이 처음 등장하는데, 블레스는 판매와 전시의 기능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하이브리드 경제 모델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후 라파예트 갤러리(Lafayette Gallery), 드로그 디자인(Droog Design), 아델레이드(Adelaide) 등과 함께 팝업을 열기도 했다. 추후 수많은 브랜드가 이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주류 리테일 산업으로 발전하게 된다.
판매와 전시라는 상반되는 형태를 동시에 효과적으로 차용하는 독창적인 해결 방안을 제안한 것이다. ····이를 통해 시각, 촉각, 욕망, 거래가 합쳐지는 쇼핑의 내재적인 사회성을 강조하였다. 반대로 전통적인 패션 부티크 경험을 영혼 없고 상투적인 도심 쇼핑가로부터 꺼내와서 이를 멋진 순수 미술의 전당에 가져다 놓음으로써 “쿨함”을 부여했다.
예빼 우겔비그 <패션위크 : 1993-2018 25년의 패션 예술>
– 프레젠테이션
블레스는 패션 산업의 그리드인 연 2회 방식(봄-여름, 가을-겨울)을 추구하지만, 전통적인 패션쇼의 방식으로 컬렉션을 발표하는 것은 꺼려 했다. 그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제품을 소개하고자 했고 정체성과 맞아떨어지면 어떤 방식이든지 꺼리지 않았다. 밑에서 소개할 ‘N°04 Alexanderplatz’, ‘N°09 Merchandising’, ‘N°32 Frustverderber’ 이 세 컬렉션의 프레젠테이션 영상을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1998년 KW현대미술관이 주최하는 제1회 베를린 비엔날레에 초대된 블레스가 제작한 N°04 컬렉션의 ‘알렉산더 광장(Alexanderplatz)’ 흑백 영상은 광장을 지나는 일반인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관람객들에게 그들이 블레스의 제품을 착용하고 있다는 것을 자막과 함께 알려줌으로써 한 편의 정교한 영상임을 밝힌다.
1999년 블레스는 최초의 의류 컬렉션인 ‘N°09 머천다이징(Merchandising)’을 제작하고 파리 시립 현대 미술관(Musé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의 초청을 받아 해당 컬렉션을 이용한 도전적인 활동을 기획한다. 파리 패션위크 마지막 날 요지 야마모토(Yohji Yamamoto), 입생로랑(Yves Saint Laurent), 이세이미야케(Issey Miyake),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등의 패션쇼에 블레스가 고용한 모델을 관람객으로 참여시켰다. 블레스의 옷을 입고 출입구부터 관람석 그리고 백스테이지까지 모든 공간을 누비면서 심지어 쇼가 끝난 런웨이를 모델처럼 걷기도 한다.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는 N °32 컬렉션 ‘좌절감을 없애다(Frustverderber)’의 프레젠테이션에서는 전문 모델이 아닌 가족과 지인들을 불러 모아 무대 위에서 블레스의 제품을 착용하고 축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블레스 커뮤니티의 조력자
블레스는 두 명의 디자이너에서 시작했지만 25년 동안 브랜드를 이끌 수 있었던 건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아티스트의 도움 덕분이다. 블레스는 이에 대해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인연을 지속해오고 있다. 이러한 자유로움이 하나 둘 모여 형성한 가치는 오늘날 블레스의 정체성을 대변하고 있다. 공동체를 대표하는 네 명의 인물을 만나보자.
하이스 바커(Gijs Bakker)
네덜란드 출신의 하이스 바커는 현대 장신구 관을 정립한 위대한 주얼리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그는 블레스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데 그 시작은 2000년 그의 프로젝트에 블레스가 객원 디자이너로 영입되어서부터다. 2003년엔 그가 설립한 드로그 디자인과 함께 팝업 스토어를 개최하기도 했으며, 2020년엔 주얼리 디자인 교육 기관인 마시에라드(MASieraad)에 블레스가 프로그램 디렉터로 영입되기도 했다. 이 기관 또한 하이스 바커가 설립했다.
수잔 치안치올로(Susan Cianciolo)
미국 출신의 수잔 치안치올로는 블레스가 멘토로 삼는 디자이너로서 그녀도 기존 패션 업계의 규칙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개척한 패션 디자이너로 알려져 있다. 블레스의 운영방식, 패션 비즈니스는 대부분 그녀의 브랜드에서 차용한 것이 많다. 수잔 치안치올로는 2001년 레이블 운영을 중단했고 현재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마크 보스윅(Mark Borthwick)
영국 출신의 마크 보스윅은 현재 신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가 중 한명이다. 그는 과거 21세기 초 퍼플 매거진(Purple Magazine)과 셀프서비스 매거진(Self Service Magazine) 등에서 포토그래퍼를 맡고 있었는데, 그 당시 프리랜스 스타일리스트로 활동을 겸하고 있던 데지레 하이스와 인연이 닿아 블레스의 룩 북에도 여러 차례 참여한 바 있다.
야스민 거스터(Yasmine Gauster)
야스민 거스터는 블레스 듀오처럼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인물이다. 예술 후원자 및 기업가로 소개되고 있는 그는 첫 블레스 매장인 블레스 베를린(Bless Berlin)과 두 번째 매장인 블레스 파리(Paris) 매장을 운영할 수 있게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이라고 한다.
블레스는 패션 브랜드로 시작했지만 패션이라는 한계에 그들을 가두지 않았고 패션과 예술의 다양한 접근을 통해 디자인과 비즈니스 방식의 새로움을 창조해냈다. 정교함과 즉흥성이 공존하는 그들의 예술 세계는 전위적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지극히 전통적이기도 하다. 예술가와 기업가 그리고 친구는 블레스를 부르는 단어다. 어떤 브랜드든 협업 관계가 될 수 있으며 어떤 디자이너든 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아방가르드 브랜드로 불리는 것을 꺼리는 그들은 상업성과 독립성의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여전히 작업실 한편에서는 난해한 디자인의 의류와 핸드메이드 스웨터가 동시에 만들어지고 있다. 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인터넷에 얼굴 하나 남겨있지 않을 정도로 미스터리한 블레스의 두 디자이너, 데지레 하이스와 이네스 칵에게 존경을 표하며 이 글을 마친다.
“블레스는 제품을 통해 이상적이고 예술적인 가치를 대중에게 제시하는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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