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마침내 돌아올 Phoebe Philo 이모저모

지난달 9일, 어느 인스타그램 계정에 짧은 글이 하나 게시된다. 흑색 배경에 두 문장으로 된 발표문이 고작해야 전부였지만, 업로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게시물에는 수많은 셀럽의 방문이 줄을 이었고 그들은 정성스레 댓글을 남겨가며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게다가 유수의 패션 웹 매거진에서는 이례적으로 브레이킹 뉴스라는 타이틀을 내세우며 발표문에 대해 앞다퉈 보도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이 계정은 9일 하루 동안 약 10만여 명의 팔로워가 증가하는 기록을 세운다(현재 게시물은 지워진 상태).

과연 누구의 어떤 계정이길래 단 하나의 게시물과 두 문장만으로 콧대 높은 셀럽과 패션계를 단숨에 매혹할 수 있었을까. 더욱이나 패션계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인물이 몇이나 될까. 일단 헬무트 랭(Helmut Lang), 마르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 라프 시몬스(Raf Simons)는 아니다. 그렇다면 정답은 하나. 주인공은 바로 현대적인 여성상을 대표하는 패션 아이콘이자 프랑스 명품 브랜드 끌로에(Chloé)와 셀린느(CELINE)의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그녀를 사랑하는 열성적인 팬들을 빗대어 ‘파일로-필즈(Philo-philes)’라는 단어가 생겨났을 정도로 패션계의 전례 없는 인기를 보유한 스타 디자이너. 그렇다, 바로 피비 파일로(Phoebe Philo)다.

2018년,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에게 셀린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넘겨준 이후 잠정적으로 패션계를 떠난 피비 파일로가 5년 만에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Phoebe Philo’로 복귀를 선언했다. 원래대로라면 작년 1월에 벌써 복귀해야 했지만 무기한 연기로 인해 많은 여성의 애간장을 태운 ‘Phoebe Philo’가 드디어 정체를 드러낸 것이다. 그녀는 공식 계정을 통해 “우리의 첫 컬렉션은 2023년 9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발매될 것이고 2023년 7월에는 신청을 위한 홈페이지 오픈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때 봐요.”라는 짧은 발표문을 게시하며 브랜드 전개를 예고했다.

피비 파일로의 업적은 ‘셀린느(Celine)’와 ‘-주의(-nism)’의 합성어, 일명 ‘셀리니즘(Celinism)’으로 대표된다. (물론 ‘셀린’이라는 단어가 포함돼 있지만, 이전 끌로에에서의 활동 역시 셀리니즘의 기조 아래 있다) 90년대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Central Saint Martins) 대학에서 예술 디자인을 전공하며 헬무트 랭과 질 샌더의 미니멀리즘에 영향을 받은 피비 파일로는 ‘내가 직접 입고 싶은 옷’을 만들고자 하는 신념 아래 화려함보다는 차분함, 거창함보다는 단순함을 추구하게 된다. 미니멀리즘의 형태와 기능, 실용성을 바탕으로 하되 자신과 같이 일과 가사를 동시에 수행하는 현대 여성을 위한 우아함과 세련미를 강조한 것이다. 이 방식은 기존의 많은 여성 디자이너들, 가령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나 디올(Dior)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Maria Grazia Chiuri) 등과 같이 자극적이고 계몽적인 방식으로 여성 해방 운동을 하지 않아도 여성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사회정치적 발언이나 급진적인 행동을 내세우지 않아도 순전히 옷을 통해 여성에게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었다. 짧은 미니스커트나 몸에 달라붙는 원피스를 통한 어필이 아니더라도 편안한 차림으로도 매력을 표출하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그녀의 ‘우아한 미니멀리즘’, ‘쿨 미니멀리즘’은 끌로에와 셀린느에서 대성공을 이뤄내면서 모델도 스타도 아닌 디자이너임에도 불구하고 명품을 대표하는 뮤즈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물론 피비 파일로를 대표하는 모먼트는 셀 수 없이 많다. 단적으로 끌로에에서 품귀현상까지 일어나며 인기를 구사했던 패딩턴 백(Paddington bag), 셀린느에서는 여전히 메인 제품으로 소개되는 클래식 박스(Classic box), 그리고 15 FW 시즌 미국의 여성 작가 조안 디디온(Joan Didion)과 함께한 프로모션 캠페인 등은 그녀를 소개할 때 빼놓지 않고 설명하는 아카이브다. 하지만 패션 아이콘으로서 수많은 여성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피비 파일로는 런웨이 피날레 룩을 통해 엄청난 진가를 발휘했다.

패션쇼가 끝나고 피비 파일로가 런웨이에 오를 때마다 그녀의 스타일은 숱한 화제를 뿌렸다. 대표적으로 2001년 스탤라 맥카트니의 뒤를 이어 끌로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그녀의 첫 데뷔 컬렉션은 2001년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코디네이션을 선보였다. 허리 춤에 착용하는 끈 벨트를 넥타이로 활용하는 재치와 헝클어진 머리와 팔에 찬 고무줄은 작업을 위해 언제라도 머리를 묶을 수 있는 커리어 우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간결하고 차분한 색상 활용 역시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셀린느 10 SS 시즌 선보인 살구색 셔츠와 검은색 테이퍼드 팬츠 그리고 플랫 슈즈는 아무런 액세서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팔꿈치까지 자연스럽게 걷어 올린 셔츠 자체로 우아한 모습을 자아냈다. 그야말로 내추럴한 매력의 교과서 같은 코디네이션이었다.

셀린느 11 FW 시즌 그녀의 룩은 ‘놈코어(Normcore)’ 유행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으로 유명하다. 특히 카키색 폴로넥 스웨터, 검은색 테일러드 팬츠와 함께 조합한 하얀색 아디다스 스탠 스미스(Stan Smith)는 당시 품절 사태까지 이르렀다고.

온라인상에선 이미 파일로-필즈가 정리한 자료를 통해 피비 파일로의 ‘신화’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측량사인 아버지와 그래픽 디자이너인 어머니의 직업부터 시작해서 4살 때부터 예쁜 옷을 고집한 이야기, 10대 때부터는 옷을 직접 만들어 입었던 이야기 등등은 이미 수차례 재가공되어 피비 파일로의 일대기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전설적인 일화다. 이에 더해 끌로에 부임 당시 끌로에를 약 3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지닌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시켰는 가하면, 브랜드로서의 수명이 다한 셀린느를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되살리고 매출을 4배 넘게 신장시킨 것 역시 피비 파일로를 대표하는 신화로, 오죽하면 셀린느가 70년이 넘는 역사를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에디 슬리먼을 ‘뉴 셀린(New Celine)’, 피비 파일로를 ‘올드 셀린(Old Celine)’이라고 부를 정도다.

게다가 소셜 미디어의 탄생 이후 피비 파일로를 흠모하는 추종자들은 ‘구절’에서 벗어나 ‘사진’을 통해 그녀를 신화화하려는 움직임을 이어나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그녀의 작품을 소개하는 인스타그램 팬 계정 올드 셀린(@oldceline)과 피비 파일로 다이어리(@Phoebephilodiary) 등은 각각 39만 명, 17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웬만한 인플루언서와 맘먹는 파급력을 지니고 있다. 또한 이로 인해 새로운 파일로 필즈의 유입 역시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상황으로, 아마도 브랜드 론칭 이후에는 이들의 수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듯 피비 파일로는 패션계와 셀럽뿐만 아니라 대중에게까지 사랑받고 있는 여성들의 워너비 중 워너비다. 27세의 젊은 나이로 끌로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행을 좇는 방법보다 새로운 유행을 선도했으며 본인의 유명세를 이용하지 않고 사생활조차 잘 드러내지 않았던 그녀의 모습은 현재 패션계의 흐름에 비추어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50대가 된 그녀의 스타일 역시 어쩌면 변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피비 파일로의 쿨함은 절대 바뀔 리 없다는 것을.


Phoebe Philo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이미지 출처 | Culted, Instagram, Anothermag, Vogue

RECOMMENDED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