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컬처를 대표하는 여러 문화가 존재하겠지만, 그중 빼놓을 수 없는 문화 중 하나가 바로 스케이트보드다. 자기 멋대로 옷을 입고, 보드를 들고 길거리부터 클럽까지 어디든 출몰하는 이들을 보며 누군가는 스케이터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가져봤을 터. 그렇지만 어디 그게 그리 쉬운 일이던가. 누구나 스케이터가 되기엔 그 장벽이 꽤나 높다.
여느 하위문화가 그렇듯, 스케이트보드 신(Scene)은 초심자에게 마냥 열린 공간은 아닌 데다가 때로는 냉대를 받을 수도 있다. 초심자가 스케이트보드 스팟에 나간다면 아무리 좋은 보드를 들고 있더라도 무시당하기 일쑤. 첫걸음부터 눈초리를 받다 보면 스케이터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기 마련이고, 자연스레 스케이트보드와 멀어지기 십상이다. 결국 그렇게 스케이트보드에 대한 연은 끊어질 수밖에. VISLA의 문화 초심자 가이드, ‘Get Ready Ep.2 한국에서 스케이터 되기’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필수 안내 사항을 준비했다. 스케이트보드 신 입문자에게는 이번 에피소드가 초기의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물론 어느정도는 유머와 해학의 요소로 받아들이길 바란다.
멋들어진 바지
스케이터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얼까. 이 물음에 ‘바지핏 VS 실력’이라는 희대의 논제가 있을 정도로, 스케이트보드 신에서 바지 핏은 매우 중요하다. 꼭 팬티가 다 보이는 힙합 바지일 필요는 없다.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 같은 5부 반바지든, 주머니가 많은 카고 바지든,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레깅스 마냥 누가 봐도 애매하게 보이지만 않으면 된다.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라 어렵다면, 슈프림(Supreme)의 프로 스케이터부터 아디다스(Adidas) 팀 라이더들의 아웃핏을 살펴보자. 바지뿐만 아니라 모든 아웃핏을, 그들의 옷을 따라 입기만 해도 당신은 스케이터로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이다(스케이터의 바지만을 모아놓은 인스타그램 계정 @whatpantsarethose 를 참고하면 유용할 것). 혹여 지금 당장 적당한 바지를 찾고 있다면, 스케이터 팬츠 전문 브랜드, 판게아 진(Pangea Jean)의 데님 팬츠가 퍽 괜찮으니 참고해 보자.
현재 ‘활발한’ 브랜드의 스케이트보드
스팟을 나가보면 누가 봐도 보드를 처음 타보는 것 같은 사람들의 열에 일곱은 무조건 제로(Zero), 플립(FLIP), 자트(JART) 등 과거의 영광을 껴안은 브랜드의 컴플릿을 타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다. 물론, 해당 브랜드가 구리단 말은 절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하지만 안타깝게도 언급한 브랜드의 보드는 제대로 된 스케이트보드 숍이 아닌 이마트나 중고나라의 매물을 구입한 것으로만 여겨진다(분명 한때 스케이트보드를 타던 꼬맹이가 어른이 되어 집 한 켠에 짐이 된 물건을 올렸을 것이다). 안 그래도 어설픈 실력에, 당신의 스케이트보드 또한 멋과 진정성이 없어 보인다면 그 누가 당신과 어울리고 싶겠는가? 서브컬처 신은 누가 뭐래도 폼생폼사의 세계다. 그들 중 더욱 이상한 이단자들이 모인 스케이트보드 컬처라는 콘크리트 정글 속은 당연히 더욱 혹독할 수밖에. 스케이트보드는 제대로 된 스케이트보드 숍에서 직접 추천받자. 그들이 추천해 주는 보드는 적어도 실패할 일은 없을 테니.
특이한 음악 취향
앞서 말했듯이 이단자들이 모인 이 세계에서 평범함은 허락되지 않는다. 이건 당신이 듣는 음악에도 해당된다. 만일 이어폰을 끼고 스팟에 간다면 음악 취향을 대중음악에서 좀 더 특별하게 바꿔 보자. 대체적으로 90년대의 록 또는 힙합, 그리고 좀 더 레이버의 냄새까지 풍길 수 있는 딥 테크노와 스피드 개러지 내지는 리퀴드 드럼 앤 베이스를 추천한다. 혹여 멜론 TOP100의 음악이 당신의 이어폰에서 흘러나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문제가 발생할 수도. 한 가지 알아둬야 할 점은 에이펙스 트윈 정도의 아티스트 역시 그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인 취향 범주에 속한다는 것. 그렇다면 십중팔구 힙스터인 ‘척’하는 사람으로 비치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러니 어디 독일 레코드숍 한편에 놓여있을 거 같은 음악을 들어라. 그럼 자연스레 “저 친구 멋있다”라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스케이터인 척 하지 말기
스팟에서 스케이터 같아 보이지 않은 사람들은 보통 다음 셋 중 하나에 속한다. 지나치게 어린 친구나, 연인을 따라온 관중 내지 보호자 그리고 처음 시작하는 뉴비 혹은 포져(Poser). 스케이터가 초심자를 싫어하는 이유는 이 ‘포져’라는 사람들 때문인데, 이에 대한 정의는 개인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스케이터도 아닌데 스케이터인 척하는 사람들’이라고 보편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스케이트보드가 멋있기 때문에 멋있어 보이려고 스케이터인 척하는 사람들이 포져인 것이다. 보드에 몇 번 발 올렸다고, 인스타그램과 프로필 사진에 “Skater“, ”SK8”이라 올리지 말자. 포져가 되지 말자. 스케이터인 ‘척’하지 말자. 스케이터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굶주림이나 다치는 것이 아닌 포져니까.
몰 그랩(Mall Grab) 금지
사실 뉴비 내지 포져를 구분하는 가장 흔한 기준이다. 만약 당신이 보드를 들고 걷는다면 어느 부분을 잡을 것 같은가? 데크의 윗면은 까슬까슬하니 ‘트럭(Truck : 데크와 바퀴를 연결하는 부품)’이라 하는 은색의 쇳덩이를 잡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이는 스케이터라면 아무도 하지 않는 초보적 실수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라인드(Grind)’라는 트릭을 하게 되면 해당 부분이 굉장히 날카로워지는데, 그걸 맨손으로 잡기엔 굉장히 위험하기 때문. 보드를 좀만 타보면 금세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멋과 당신의 소중한 손을 위하여, 몰 그랩 금지.
보드 미리 긁지 말기
어디부터 시작된 것인지 보드를 미리 긁어가는 게 멋있을 거라고 우스갯소리로 퍼져나가고 있다. 사실 이를 초보자가 알고 행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타는 모습을 조금만 관찰해도 그 사람의 기술이 파악되고, 보드의 어느 부분이 까지고 어떤 부분이 멀쩡한지 알 수 있다. 만일 알리(Ollie) 수준의 스케이터가 보드 중간이 긁혀있다? 이 경우 무조건적으로 있어 보이는 ‘척’하고 싶어 하는 ‘포져’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스케이터들은 뉴비는 항상 두 팔 벌려 즐겁게 환영한다. 하지만 포져에게는 무한한 혐오를 선사해 준다. 이 점을 가슴 깊이 새겨두자.
밝은 인사성
당신이 어리든 나이가 많든, 스팟에 있는 사람에게 항상 인사하자. 위에서 이야기했던 점을 모두 잘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스케이터 친구를 손쉽게 사귈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스케이터는 보기보다 여리다. 당신이 밝게 인사를 건넨 후, 모르는 점을 물어본다면 그들은 매우 친절히 설명해 줄 것이다. 물론 어딜 가나 그렇듯 ‘케바케’다. 하지만 당신이 ‘저 사람은 친절할 것 같은데?’라는 인상의 사람들은 높은 확률로 정말 친절하니 안심하고 목례부터 경례까지, 상황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인사를 건네자.
인스타그램 팔로잉
지금은 21세기, 이 시대의 명함은 누가 뭐래도 인스타그램이다. 스팟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인사를 하고 친해진 다음, 이내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교환하게 될 터. 그때 당신의 팔로잉 목록에 쭉쭉 빵빵 미녀들과 유머 페이지만 존재한다면 그 누가 당신을 스케이터로 보겠는가? 좋아하는 국내외 스케이트보드 브랜드, 스케이터들을 미리미리 팔로우하자. 당신의 알찬 계정을 본 사람이이라면, 당신을 진정 스케이트보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지하고 DM이 올 확률이 높아질 것.
죽어라 타기
모든 운동은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만 한다. 그 누구도 처음부터 박지성, 손흥민이 될 수 없다. 피나는 노력과 성장의 필연적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게 바로 운동이다. ‘스케이트보드가 예술인가 아니면 스포츠인가’라는 논의는 꾸준하지만, 필자는 사실 이 모두에 해당한다고 본다. 몸을 움직여서 무언가를 습득하는 활동인 만큼 보드는 운동으로서 기능을 톡톡히 한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시간 헬스한다고 단시간에 몸이 좋아질 수는 없지 않나. 보드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진짜 스케이터처럼 보이고, 그들처럼 되고 싶다면 스팟에 나가서 죽어라 타라. 기술이 잘 안된다면 주위 사람들에게 밝은 인사성을 지니고 물어보자. 시간이 남을 때마다 보드를 타고, 보드 영상을 보고, 좋아하는 스케이터를 찾자. 몸을 만들기 위해선 영양제부터 PT까지 넘치는 금액까지 사용해야 하지만, 스케이터가 되는 것은 비교적 간단할 거다. 10-20만 원 정도의 보드를 사고, 밝은 마음으로 나가서 보드를 죽어라 타라. 사실 그 마음가짐 하나면 당신이 이미 충분한 스케이터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Pangea Jeans/skate memes/skateeastgetcashmemes/VISLA FM/Redd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