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음악 장르 중에서도 재즈와 힙합은 특히나 관중과 함께 역동하는 음악 장르다. 재즈 보컬의 현란한 스캣(Scat)과 마칭 밴드의 즉흥 연주가 흐르는 뉴올리언스의 어느 술집, 턴테이블에서 스크래칭 사운드가 흘러나오고 디제이, 래퍼와 댄서가 둥그렇게 어우러진 뉴욕 브롱스의 어느 블록을 떠올리면 그 뜨거운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2023년의 서울, 광흥창 어느 건물의 지하에 살아숨쉬는 재즈와 힙합을 들으며 관중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숨어있다.
‘Inspired by J Dilla’라고 적힌 노란 간판이 빛나는 얀씨클럽(Yancey Club)의 입구는 여느 평범한 오피스텔과 다를 바 없어 더욱 궁금증을 유발한다. 매 주말 여는 것도 아니지만 공연이 있는 날에는 사람들이 북적이며 언제나 만석이라고. 고양이 두 마리가 살고 있는, ‘힙합이 연주되는 공간’ 얀씨클럽. 이곳의 디렉터 사모 키요타(Samo Khiyota)’와 나눈 이야기를 하단에서 확인해보자.
‘사모 키요타’라는 아티스트명이 독특하다. 언뜻 일본 디제이의 이름 같기도 한데.
일부러 국적을 알 수 없는 아티스트명을 만들고자 했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아티스트들에게서 레퍼런스를 따왔다. ‘사모’는 장 미셸 바스키아와 알 디아즈가 결성한 그룹 ‘Samo(Same old shit)’의 발음을 비틀어서, ‘키요타’는 오스트레일리아 밴드 ‘하이에이터스 카이요테이(Hiatus Kaiyote)’의 이름을 변형하여 ‘사모 키요타’가 되었다.
얀씨클럽을 이야기할 때 제이 딜라(J Dilla)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에게서 어떤 영감을 받았는가?
얀씨클럽의 이름은 힙합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전설적인 프로듀서, 제이 딜라의 본명인 제임스 드위트 얀시(James Dewitt Yancey)에서 따온 것이다. 아예 처음 입양할 고양이의 이름까지도 ‘얀씨’로 미리 정해놓을 정도였지. 제이 딜라는 힙합 프로듀서 중에 가장 위대하고 독창적인 샘플링 스킬을 활용하여 수많은 명곡을 남겼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투병 중에도 계속해서 작업을 멈추지 않았던 대단한 아티스트였다. 끝까지 음악을 놓지 않던 삶의 태도는 내게 큰 영감이 되었다.
나는 재즈힙합 밴드 쿠마파크(Kumapark)의 오랜 팬이기도 한데, 쿠마파크는 2012년에 제이 딜라의 유작 앨범 [Donuts]의 이름을 따서 제이 딜라 헌정곡 “Donut Shop”을 발표했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될 방식으로 한 명의 아티스트를 추모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조금 더 지속적인 추모의 방식을 고민하다가 제이 딜라의 정신을 이어받은 얀씨클럽을 만들게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내 개인 작업실이었다. 연주자들과 자주 합주하게 되면서 여기서 공연을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렇게 테이블과 의자도 놓고, 바도 만들고, 영업 신고도 하고, 점점 관객을 초대하는 공연장으로 변해갔지.
‘맥시멀리즘’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여러 가지 오브제와 물건으로 가득 차 있다. 여기에 2마리의 고양이까지, 이 모든 것은 얀씨클럽의 정체성을 어떻게 구성하는가?
얀씨클럽의 공간 자체가 거대한 아카이빙이다. 행사를 할 때마다 직접 포스터와 스티커를 디자인하여 관객에게 나눠준다. 공연이 끝난 뒤에 포스터는 액자에 넣어 벽면에 걸어두고, 남은 스티커는 나이키 신발 박스에 차곡차곡 쌓아두다 보니 어느 순간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 마치 타투를 하나하나씩 늘리듯 그렇게 공간이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집에서도 자신이 살아온 삶의 흔적이 묻어 나오지 않나. 5년 넘게 운영한 이곳 또한 나에게 제2의 집과도 같은 공간이다.
얀씨클럽에서 가장 강력한 티켓파워를 지닌 두 마리의 고양이는, 일단 상당히 귀엽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들은 단지 귀엽기 때문에라도 얀씨클럽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첫째 얀씨는 얀씨클럽에서 살고 있으며, 둘째 디디는 집과 클럽을 오가면서 지낸다. 디디는 소심한 편이라 주로 얌전히 있지만 얀씨는 이곳을 거대한 놀이터로 생각하는 것인지 매우 활발하게 쏘다닌다. 공연을 할 때에는 고양이들이 관객 사이를 돌아다니기도 하지만 관객이 많으면 서로의 안전을 위해 옆에 있는 작은 방에서 머무른다.
얀씨클럽의 프로그램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얀씨클럽의 파티는 크게 YC 위크 시리즈와 더 사운드 오브 얀씨클럽(The Sound of Yancey Club, 이하 SOYC) 시리즈로 나눌 수 있다. YC 위크 시리즈는 질베르토 위크(Gilberto Week), 자말 위크(Jamal Week), 에이어스 위크(Ayers Week) 등 주로 재즈 아티스트 한 명을 테마로 삼아 연주를 구성한다. 이를테면 최근에 진행한 질베르토 위크는 지난 6월에 세상을 떠난 보사노바 싱어, 아스트루드 질베르토(Astrud Gilberto)를 추모하기 위한 공연이다. 그녀의 곡을 선정해서 연주자들과 편곡하고, 그녀에게서 영향을 받은 음악과 얀씨클럽 오리지널 트랙을 연결하여 셋 리스트의 기승전결을 만들었다.
반면, SOYC 시리즈는 얀씨클럽 내부의 고유한 사운드를 연주하는 프로젝트다. 밴드의 형태지만 연주자마저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해서 멤버가 바뀌며 즉흥성과 유연성을 극대화한다. 얀씨클럽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만으로 셋을 짜며, 그것을 연주로 구현하면서 SOYC의 고유한 음악을 들려준다. 올해 4월 홍대 클럽 모데시(MODECi)의 모터 유닛(Motor Unit) 파티와 9월 영등포에서 열린 흑인음악 페스티벌 브라운 슈가 도넛(Brown Sugar Donut)에서 SOYC의 공연을 하기도 했다.
힙합과 라이브 재즈, 디제잉과 악기 연주의 합주라는 발상이 신선하다. 아이디어를 떠올린 계기가 있는지.
국내에서 재즈와 힙합을 가장 잘 융합한 팀을 꼽자면 단연 쿠마파크다. 멤버 중 DJ 노아(Noah)가 나의 스승님이다. 그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힙합을 좋아하는 재즈 연주자들을 모아 제2, 제3의 쿠마파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디제잉과 악기 연주의 합주’라고 했지만, 사실 디제잉도 악기를 연주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피아노 역시 ‘도레미파솔라시도’라는 음계가 샘플링된 샘플러라고 할 수 있지 않나. 같은 원리로 나는 샘플러나 CDJ에 심어놓은 다양한 악기 소리를 손끝 감각으로 세심하게 조절해가며 동료 연주자들과 즉흥적으로 호흡을 맞춘다. 그런 의미에서 디제잉 기기도 전통적인 의미의 악기가 아닐 뿐, 악기의 개념을 확장시킨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공연 멤버는 고정되지 않고 계속해서 바뀌는 것인가?
하나의 밴드임에도 함께 하는 연주자가 매번 바뀐다는 것이 조금 생소할 수도 있겠다. 우선, 나는 팀 내에서 원곡자 및 밴드마스터로서 매 공연마다 새로운 컨셉을 정하여 그 컨셉에 맞는 곡을 쓴다. 곡이 완성되면 연주자를 모아서 연주를 해보고 실제 공연에서 어떻게 연주할지 의논한다.
영화로 비유하자면 나는 각본가, 연출자이자 배우인 셈이지. 자기 영화에서 카메오나 주연으로 출연하는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나 류승완 감독처럼. 같은 감독의 작품이더라도 각본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배우는 작품마다 다를 수 있지 않나. 내 공연에서도 매번 컨셉에 맞는 연주자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합이 맞는 연주자를 찾기 위해서는 본인도 공연을 자주 다녀야 할 것 같은데.
얀씨클럽은 홍대의 클럽 에반스(Club Evans), 모데시(MODECi) 및 헨즈(Henz), 녹사평의 부기우기(Boogie Woogie), 이태원의 올댓 재즈(All That Jazz) 등 여러 재즈 및 힙합 베뉴와 가깝다는 이점이 있다. 이곳에서 연주자나 디제이로서 공연을 할 때도 있고, 흥미로운 공연은 꼭 챙겨보려고 한다. 얀씨클럽에 꼭 필요한 연주라는 생각이 든다면 공연이 끝나고 난 뒤 얀씨클럽을 소개하면서 연주를 같이 해볼 것을 제안하지.
정통 재즈 연주자와의 연주는 재미있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항상 로맨틱 코미디만 찍던 배우와 액션이나 스릴러 영화 작업을 하는 느낌이랄까. 나는 힙합 프로듀서로서 주로 샘플링 방식을 활용해 곡을 만들기 때문에 이론적 토대보다는 즉흥적인 감각에 의존하는 편이다. 연주자들은 그런 방식의 작업을 신선하게 느끼는 듯하다. 나 역시도 그들로부터 재즈 연주의 이론적 측면이나 재즈 연주자로서의 마인드 등을 많이 배우고 있다.
사모 키요타의 색깔을 가장 잘 나타내는 트랙을 소개해준다면.
가장 개인적이고 소중한 곡은 “봄이여, 오라!(Spring is Here!)”로, 어머니의 생신 때 바친 헌정곡이자 내가 태어난 계절인 봄에 관한 노래다. 어머니께서 통화 중에 해주신 말씀을 듣고 영감을 얻어 인트로와 메인 프레이즈로 삼았다. 얀씨클럽에서 공연할 때 피날레로 자주 연주하는 대표 오리지널 트랙 중 하나이기도 하다.
견고한 팬덤 층 덕에 언제나 공연은 솔드아웃이라고. 주로 어떤 사람들이 얀씨 클럽을 찾고 있나.
음악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디깅을 통해 방문하기도 하고, 음악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이 친구 및 연인과 함께 방문하곤 한다. 연주가 끝나면 편안하고 느슨한 분위기로 네트워킹 하는 애프터 파티를 이어나간다. 방금 연주를 마친 연주자와 관객이 어울리며 친구가 되기도 하고, 재미있는 작업 아이디어를 얻어가기도 한다.
내년부터는 얀씨클럽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가 자연스레 형성되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견고한 커뮤니티는 훌륭한 공연과 공간이 담보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지속적으로 찾아주시는 분들과 새롭게 방문하는 분들이 함께 만들어 나갈 커뮤니티를 위해서 공연 횟수를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언제나 높은 퀄리티의 공연을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 자리를 빌어, 그러한 노력을 알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 얀씨클럽이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가? 또한 얀씨클럽에서 준비하고 있는 재미난 기획이 있다면 알려달라.
재즈와 힙합뿐만 아니라 얀씨클럽에서 다루는 장르를 다양하게 확대해 나갈 생각이다. 질베르토 위크를 준비하면서 보사노바를 팠는데, 이번에는 하우스다. 힙합과 하우스를 믹싱하여 댄서들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를 만들고 있다.
또한 12월 15일에는 더 사운드 오브 얀씨클럽 Vol. 3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올해 나온 얀씨클럽의 오리지널 트랙 중에서도 가장 반응이 좋았던 곡들을 뽑아서 새롭게 믹스셋을 짜며 준비 중이다. 새로운 메뉴인 치킨 샌드위치와 얀씨클럽의 오리지널 칵테일도 출시되니 많은 분들이 따스한 분위기의 연말 파티를 즐겨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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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진영
Photographer | 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