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문화로부터 태어난 스트리트웨어 갱, ‘Retail Mafia’

애니띵(aNYthing)과 에이라이프(Alife), 제이머니(J. Money), 프랭크151(Frank151), 시추에이션노말(Situationnormal), SSUR까지, 상기한 위 브랜드의 공통점은 뭘까? 당장은 뉴욕에서 탄생한 브랜드, 20년도 더 전 한 시대를 풍미한 스트리트웨어 라벨이라는 것 정도가 떠오르겠다. 그러나 이들을 한 카테고리로 정리할 수 있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리테일 마피아(Retail Mafia)라는 이름이다. 이들 각자는 뉴욕(더욱 정확히는 로어 맨해튼)을 기반으로 그 거리에서 탄생한 문화와 지식, 영감을 공유한다는 목적 아래 리테일 마피아라는 그룹을 설립했고, 서로 긴밀한 정보를 공유하는 일종의 동맹을 맺었다.

지금에야 하루에도 수십 개의 브랜드가 캡슐 컬렉션을 공개하고, 서로 간의 협업을 발표하고 있지만, 그들이 처음 리테일 마피아로 뭉쳤을 때만 해도 스트리트웨어의 개념은 매우 얕았다. 당시의 스트리트웨어 브랜드라고 한다면, 스투시(Stüssy)와 슈프림(Supreme)과 같은 서핑, 스케이트보드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몇 가지의 브랜드가 있을 뿐이었고, 뉴욕 소호 스프링 스트리트에 자리했던 편집 스토어 유니온(Union)를 통해 소수의 패션 브랜드가 소개되고 있었다.

슈프림 스토어 문을 여는 아론 본다로프 / Photography by Sue Kwon

브랜드 전개 전 1990년대 에이라이프의 디렉터 롭 크리스토파로(Rob Christofaro)는 그래피티 라이터로서의 활동과 동시에 출판업계에서 몸담고 있었으며, 애니띵의 아론 본다로프(Aaron Bondaroff)와 제이머니의 제이미 스토리(Jamie Story)는 슈프림에서 일하고 있었다. 또한, 루슬란 카라블린(Ruslan Karablin)의 브랜드 SSUR, 시추에이션노말은 또한 아직 빛을 발하고 있지 못할 때였으며, 고향이었던 애틀랜타에서 프랭크151을 발간하던 프랭크 그린(Frank Green)은 과거를 회상하며, 정말 죽을 만큼 힘들었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2000년대 초반의 거리에는 아직 스트리트웨어라고 부를 만한 것이 그리 많지 않았고, 이는 곧 그만큼의 치열한 경쟁이 없는, 블루오션이라는 뜻이었다. 거리 문화의 예술과 디자인, 상품을 다루는 브랜드, 숍은 아무도 손대지 않은 시장이었던 것이다. 남들보다 앞선 독특한 취향과 디자인 능력, 그리고 티셔츠 제작에 대한 공정을 이해하고 있는 이라면, 누구나 ‘스트리트웨어’를 만들고, 판매해 시장을 선점할 기회가 있던 때였다.

위 인물 모두는 거리에서 많은 걸 배웠다. 15세에 고등학교를 자퇴, 슈프림에서 일하던 때의 아론 본다로프는 브랜드의 얼굴로 활동하면서 룩북 촬영과 함께 어떤 로컬 아티스트와 협업해야 하는지에 관해 다양한 의견을 냈고, 이는 추후 애니띵을 런칭하고, 운영하는 데 있어 적지 않은 자양분이 됐다. 1989년 이미 자신의 브랜드 SSUR를 탄생시킨 러스 역시 그의 고향인 우크라이나 오데사, 그리고 여러 인종의 이민자로 가득한 뉴욕 길거리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컬렉션, 그리고 리테일 마피아의 정신을 더욱 단단히 했다.

리테일 마피아의 전략은 간단했다. 서브컬처와 유스컬처의 근간이 되는 주류에 대한 반항심과 개성 넘치는 스타일, 독특한 취향을 큐레이션하고, 이를 상품으로 만든 뒤 이러한 문화를 즐기는 젊은이에게 ‘다시 판매’하는 것. 리테일 마피아가 판매하는 건 단순한 티셔츠가 아니라 주류문화에 반하는 상징물이었으며, 거리의 의식 있는 젊은이들이 그들의 의류를 사 입기 시작했다.

거리의 모두가 친구였기에 협업 또한 매우 수월하고 느슨하게 이루어졌는데, 예를 들어 아론의 머릿속에 ‘Cool Guys’라는 단어가 떠올랐을 때 베테랑 그래피티 아티스트인 푸추라(Futura)에게 전화를 걸어 이를 그의 방식대로 써달라는 요청만으로 티셔츠의 그래픽이 완성되는 식이었다. 리테일 마피아의 시작은 위 여섯 브랜드로 시작되었지만, 바로 앞에서 언급된 푸추라, 뉴욕의 그래피티 크루 IRAK NYC와 같은 아티스트가 합세하며, 그 움직임에 활력을 더했다.

리테일 마피아는 정신적인 공동체만이 아닌 오프라인을 통해서도 한데 뭉쳤는데, 2005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패션 박람회 매직쇼(Magic Show)에 참가, 뉴욕 코니아일랜드의 보드워크(Boardwalk)를 연상케 하는 합동 부스를 꾸며 그들의 강한 존재감을 전 세계 패션 마켓에 알렸다. 이후 2006년에는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락스타 게임즈(Rockstar Games)의 비디오게임 ‘워리어(The Warriors)’의 프로모션을 목적으로 한 협업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리테일 마피아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2005년 진행한 미국의 휴대전화 통신사 부스트 모바일(Boost Mobile)과의 협업이었다. SSUR과 애니띵, 에이라이프, 제이머니, 프랭크151, 시추에이션노말이 모토로라(Motorola)의 휴대폰 ‘i835’ 모델을 각자의 스타일로 커스텀, 휴대폰 본체와 확장 키보드, 티셔츠로 구성된 특별한 패키지로 선보였다. 모델별로 50개만 제작되었고, 이는 지정된 몇 곳의 스토어에서만 한정 판매됐다. 이와 동시에 모토로라 협업을 홍보하기 위해 리테일 마피아 멤버 개개인이 생각하는 뉴욕의 스트리트웨어 신(Scene)을 담은 인터뷰/다큐멘터리 필름을 공개했는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2000년대 초반의 뉴욕 하위문화의 한 장면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를 남겼다.

여담으로, 아론은 사실 부스트 모바일과의 협업 프로젝트를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고 한다. 거리의 ‘인플루언서’를 모아 진행한 협업이 부스트 모바일에게는 도움이 되었겠지만, 그에게는 큰 변화를 주지 못했고, 리테일 마피아가 더 이상 스트리트웨어와 서브컬처 속 하나의 ‘개념’으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리테일 마피아에 속한 여러 독립 브랜드가 결국 대기업의 파생물이 되었다는 것에 큰 반감을 느꼈다고. 2000년대 초반, 서로를 의지하고, 북돋우며 뉴욕의 스트리트웨어 신에 좋은 영향을 끼친 그룹 리테일 마피아는 서서히 와해하기 시작한다. 각자의 비즈니스가 바빠지면서 자신의 브랜드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가 왔고, 자연스레 역사의 한편으로 물러나게 된 것이다.

애니띵의 아론 본다로프는 이후 노우 웨이브(Know Wave)라는 커뮤니티 플랫폼을 전개하다가 2018년 성희롱과 언어폭력 혐의로 디렉터를 사임한 뒤 지금은 4WD(4 Worth Doing)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런칭했으며, 러스는 뉴욕을 떠나 로스앤젤레스와 우크라이나 오데사를 본거지로 SSUR를 운영 중이다. 에이라이프는 현재 공동 창립자인 트레이스 힐(Treis Hill)이 브랜드를 리브랜딩, 롭은 예술 단체 ‘Rab Arts‘를 설립해 뉴욕의 문화, 예술 발전에 힘쓰고 있다. 프랭크151은 지금까지도 웹매거진과 더불어 잡지를 간행 중으로 음악,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제이미 스토리의 제이머니도 브랜드를 이어가고 있지만, 그 시절의 영광을 되찾는 일은 소원해 보인다. 시추에이션노말은 일찍이 브랜드가 종료되어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긴 시간이 지나며 ‘리테일 마피아’의 이름 역시 빛이 바랬지만, 수십 년 전 스트리트웨어의 여명기를 열었다는 사실은 지금에도 변함이 없다. 아래, 그 당시 뉴욕 스트리트웨어의 움직임을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는 영상을 게시해두었으니 천천히 감상해보자.


때때로 사람들은 눈앞에 있는 걸 보지 못하고, 2년이 지난 뒤에야 ‘아, 내가 놓쳤구나’라고 생각하지만, 놓친 게 아닙니다. 보고도 이해하지 못했던 거죠.

SSUR – Ruslan Karablin

내가 처음 뉴욕에 왔을 때 리테일 마피아 멤버 대부분은 가장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들어가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들어간 뒤에는 공통된 유대감으로 무슨 일이든 쉽게 진행할 수 있었죠.

Frank151 – Frank Green

다른 그래픽에서 따온 것이든, 처음부터 새로 만든 것이든, 뭐라도 아이디어를 떠올려보세요. 제이머니는 내가 많은 일을 맡고, 그걸 열심히 했기에 탄생할 수 있었던 브랜드입니다.

J. Money – Jamie Story

리테일 마피아에 속한 브랜드는 단순한 티셔츠 하나라도 특정한 숍에서만 살 수 있는 옷임을 계속해 강조하려고 합니다. 일종의 독점 계약 같은 거죠.

Situationnormal – Greg “Bumpy” Johnsen

지금 당장의 핫한 이슈를 모으는 특정 집단을 따라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유행이 될지도, 안 될지도 모르는 걸 소개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냥 우리가 좋아하고, 재미있는 걸 하는 겁니다.

Alife – Rob Christofa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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