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에 대학교에 입학한 필자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대학 축제에 방문해 본 적이 없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 꼽을 수 있겠지만, 언더그라운드 문화와 신(scene)을 동경하는 이들과 대학 축제 내지, 대학 문화는 어쩌면 서로 대척점에 놓인 관계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결국 하위문화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신을 조명할 수 있는 허브로서 대학이 그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서울대학교 문화예술원에서 디렉팅한 창작 실험 공간, 파워플랜트에서 열린 모임별의 [우리개] 앨범 발매 공연이나 타이베이 언더그라운드 음악 신에 관한 연구 포럼 등의 행사부터, 최근에는 서울대학교 폐수영장에서 개최된 곤충 레이브 파티를 지켜보며 이런 완고한 생각에도 차츰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흥미로운 지점에 도달했는데, 바로 2012년에 서강대학교에서 열린 여름 축제 ‘우리는 살아있다 – 일단락 페스티벌’이다. 보편적인 대학 축제 양식에서 탈피하여 당시 홍대 인디 신을 견인하던, ‘내로라’하는 아티스트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유명 아이돌, 연예인의 공연이 대학 축제의 흥행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요소일 텐데, 락 페스티벌이라니. 2012년 여름의 서강대학교에는 과연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해당 축제의 아이러니는 기획 위원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 시부야계 밴드 휘시만즈(Fishmans) 팬 클럽에서 시작된 홍대 라이브 클럽 겸 공연 기획 콜렉티브 공중캠프(kuchu-camp)와 2012년 서강대학교 총학생회 ‘와락’이 공동으로 기획한 축제기 때문. 총학생회는 단순히 유명 연예인을 소비하는 일차원적인 축제에 도전장을 내밀어, 학생들이 모두 함께 어우러져 뛰어놀며 즐기는 장을 만들 방법으로 락 페스티벌을 택했다고 밝혔다.
2012년 5월 25일에 개최된 ‘일단 락 페스티벌’은 라인업만 보더라도 기성 락페스티벌에 버금갈 정도로 알찼다. 심지어 재학생과 더불어 외부인까지 무료 관람이었으니, 한국 인디 락에 빠져 있던 이라면 꼭 방문해야 할 축제가 아닐 수 없었다. 무대는 당시 혹은 현재까지도 인디 신을 대표하는 이랑, 쾅프로그램, 밤섬해적단,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얄개들, 단편선, 노컨트롤, 단편숏컷 등의 아티스트들과 서강대학교 밴드 동아리가 청년광장 스테이지와 곤자가 스테이지 총 두 곳을 채웠으며, 단편선 공연에서는 밀가루와 막걸리를 온몸에 뿌리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하며 무대를 뜨겁게 달궜다.
10여 년이 지난 페스티벌의 영상 기록을 따라가며, 당시 홍대 인디 밴드 신을 주름잡던 아티스트들의 에너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리더 김민홍과 사운드 엔지니어 강경덕으로 구성된, 노이즈를 기반으로 한 익스페리멘탈 밴드 단편숏컷부터 “사장님개새끼”라는 곡을 발매하며 반항적이고 시니컬한 이미지를 구축해 온 노이즈 펑크 밴드 노컨트롤까지. 뿐만 아니라 현재 쾅프로그램의 드러머이자 만동의 드러머로 활동하는 서경수가 아닌, 2013년까지 활동했던 전 드러머 김용훈이 연주한 “잘살아침” 영상도 찾아볼 수 있었다. 아쉽게도 밤섬해적단의 영상은 현재는 발견할 수 없지만, 그날의 서강대학교 캠퍼스에서 “서울불바다”를 외치는 이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러나 일단락 페스티벌은 씁쓸하게도, 성공리에 ‘일단락’되지 못했다. 서강대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즐기는 장이 아닌 인디 밴드 팬들이 서강대학교에 대거 출현하여 총관객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다소 진귀한 현상이 발생한 것.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는 학생들의 엄청난 원성이 빗발쳤고, 이는 곧 참여한 아티스트의 정치 성향과 관련된, 다소 엉뚱한 방향으로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여담으로, 서강대학교 내에서는 역대 축제 중에서 가장 ‘오점’으로 남는 행사로 평가되기도 한다.
물론 대학 축제는 대학생이 서로의 공통된 향유 가치를 중심으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기는 행사일 테지만, 인디 신의 에너지에 발을 맞춰 학생들이 뛰어노는 ‘장’으로 시도해 본 것도 또 하나의 파격적인 접근법일 테다. 그러한 새로운 시도를 현재 보여주는 서울대학교 파워플랜트를 중심으로 하위문화의 ‘불모지’로만 여겨졌던 대학이 하위문화적 가치를 조명함으로써, 전례 없는 문화적 허브로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 점차 열리고 있는 듯하다. 언더그라운드 신이 대학 문화와 강하게 공명하는 그 순간을 기다려보는 것도 좋겠다.
이미지 출처 | 공중캠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