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의 드레스코드 : 스킨헤드

스킨헤드 커버

언제 어디서 어떤 피부색의 사람을 만나던 놀랍지 않은 세상이지만, 인종차별은 여전히 세계의 뜨거운 화두다. 오히려 어디서나 쉽게 타국인을 만날 수 있는 지금의 환경이 이런 문제를 더욱 가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국에서 인종차별을 겪으면서도 자국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타국인을 보며 무분별하게 적대감을 드러내지는 않았는지. ‘스킨헤드(Skinhead)’라는 단어는 이런 인종 문제에 대한 극단적인 성향을 띠는 집단을 지칭하는 말이다. 하지만, 스킨헤드가 처음부터 인종차별을 위해 모인 집단은 아니었다.

스킨헤드는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앞서 소개한 훌리건, 차브 역시 영국의 복식인 것으로 미루어 봤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영국의 다양한 문화를 다각도에서 연구한 사례는 이제는 당연한 일처럼 느껴진다. 하위 문화에 연관된 대부분의 복식이 그러하듯 스킨헤드도 부자들의 옷차림은 아니었다. 그들 대부분은 노동자였으며, 그렇기에 지금 스킨헤드 패션 대부분의 아이템 중 값비싼 것을 찾기는 힘들다. 스킨헤드의 가장 큰 특징인 민머리는 제때 머리를 감지 못하고, 자주 머리를 손질할 수 없었던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에서 발생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헤어 스타일이었다. 지금의 스킨헤드라면 면도날도 정성껏 민 반짝반짝한 머리를 떠올릴 테지만, 1960년대의 스킨헤드는 머리를 완전히 밀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노동을 경멸하는 히피 문화에 대한 반감으로 짧은 머리를 고수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초기스킨헤드모습민머리를 하지 않은 초기 스킨헤드의 모습

지금의 스킨헤드가 민족주의적 이미지를 갖게 된 지도 상당히 오래되었지만, 본래의 목적은 꽤 순수했다. 그저 자신들의 정체성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싶었던 자존감에서 탄생한 문화였으니. 1960년 즈음 영국에서 시작된 스킨헤드는 그 고유의 정체성을 갖고 탄생했다기보다는 두 가지 문화가 섞인 짬뽕 문화에 가깝다. 자메이카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흑인 공동체 루드 보이(Rude Boy)와 영국의 노동자 집단이 주를 이루던 모드족(Mods)이 섞여 나타난 것이 스킨헤드로 발전한 것이다. 스킨헤드를 다룬 영화 “This is England” 속에는 자메이카 출신의 등장인물이 루드 보이의 복식을 차려입은 모습을 볼 수 있다.

루드보이맨 좌측 인물은 루드 보이 복식을 그대로 재현했다

1960년대 초반 스킨헤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노동자의, 노동자에 의한 스킨헤드는 앞서 말한 것처럼 하위계급의 표상으로 존재했다. 모드족이 정갈한 슈트로 자신을 꾸미는 데 힘을 쏟았다면, 스킨헤드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더러운 바지, 값싼 셔츠, 튼튼한 구두는 삭발한 머리 이외 스킨헤드임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다.

그렇다면 스킨헤드가 선호하는 ‘노동자 룩’이란 무엇일까. 기름때에 찌든, 찢어진 청바지는 스킨헤드의 상징과도 같다. 다만, 지금처럼 인위적으로 가공된 워싱이 아닌 고된 노동으로 인해 자연스레 생긴 데미지와 오염이 그대로 묻어나는 바지. 그 삶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생활의 일면을 그대로 간직해야 한다. 스킨헤드는 리(Lee)와 랭글러(Wrangler) 사(社)의 청바지를 즐겨 입었고, 동시에 시장에서 유통되는 군용 전투복을 입거나, 긴 바지를 직접 자른 반바지를 입기도 했다.

스킨헤드 바지강한 워싱의 청바지를 착용한 스킨헤드의 모습

스킨헤드가 선호하는 브랜드 중 벤 셔먼(Ben Sherman)이라는 브랜드가 있다. 스킨헤드 문화의 시작과 함께 1963년에 탄생한 브랜드로, 옥스퍼드 스타일의 버튼다운 셔츠를 처음으로 생산한 회사이기도 하다. 중저가의 가격대를 유지하며, 프레드 페리(Fred Perry)와 함께 오랜 시간 스킨헤드의 상의를 책임져온 벤 셔먼은 여전히 영국의 오랜 브랜드로 남아있다. 스킨헤드는 벤 셔먼의 체크셔츠와 프레드 페리의 피케 티셔츠를 주로 착용했으며, 흰색 무지 티셔츠 또한 즐겨 입었다. 날씨가 조금 더 추워지면 그 위에 오버코트, 동키 재킷을 걸쳤다. 동키 재킷은 영국의 워크재킷의 대명사로 당시 영국에서 많이 사용하던 증기 엔진 이름을 따온 재킷, 진짜 노동자의 옷이라고 할 수 있다.

벤셔먼스킨헤드스킨헤드를 전면에 내세운 벤 셔먼의 광고

동키재킷어깨 부분에 가죽을 덧댄 동키 재킷

스킨헤드는 남자답게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그에 따른 아이템이 바로 최근 유행하는 항공 재킷이다. 지금이야 항공 재킷이라고 하면 자연스레 알파인더스트리(Alpha Industries)의 MA-1을 떠올리겠지만, 스킨헤드가 선호하는 브랜드는 따로 존재했다. 바로 영국의 오래된 복싱 기어 브랜드 론즈데일(Lonsdale)의 항공 재킷으로 복싱 브랜드의 강한 이미지는 스킨헤드에게 안성맞춤이었다.

론스데일론즈데일의 의류를 착용한 스킨헤드

상의, 하의가 다양한 기호에 의해 선택되었다면, 스니커는 조금 더 확고한 취향을 가진다. 누구나 아는 부츠 브랜드 닥터 마틴(Dr. Marens) 부츠는 스킨헤드의 전유물이었다. 높은 목의 부츠에 흰색 끈을 넣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빨간색, 검은색 끈을 매고 다니기도 했다. 스킨헤드라서 닥터 마틴만을 착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닥터 마틴이 스킨헤드의 가장 대표적인 신발이었지만, 아디다스(Adidas)의 삼바 모델, 로퍼, 작업용 부츠로 유명한 몽키 부츠, 빈티지 볼링 신발도 즐겨 신었다고 하니 완전한 스테레오 타입은 아니었나 보다.

닥마스킨헤드바지의 밑단을 걷고 닥터 마틴을 착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삼바

지금에 이르러 스킨헤드 스니커의 한 축을 책임지게 된 아디다스의 삼바

아이러니하게도 스킨헤드의 맹점은 스킨헤드에 있었다. 겨울철 짧게 자른 머리는 확실히 추위를 막아내기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방한용 모자를 착용하기도 했는데, 챙이 좁은 중절모인 트릴비, 꼭지가 평평한 포크파이 햇, 플랫 캡이 스킨헤드의 취향이었다. 이런 모자의 착용은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A Clockwork Orange)를 통해 많은 스킨헤드에게 공유되었다. 또한 스킨헤드는 서스펜더를 착용함으로써 자신이 노동자라는 사실을 드러냈다. 서스펜더의 넓이는 그 나름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보통의 스킨헤드가 착용하는 서스펜더의 넓이는 1/2에서 1인치 사이로 1인치가 넘어가는 서스펜더를 착용한다면 자신이 백인우월주의자, 즉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뜻이다.

시계태엽스킨헤드가 즐겨 착용했던 다양한 모자, 서스펜더는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카운터 컬쳐에서 레이시즘까지, 스킨헤드의 이미지는 시대와 함께 변해왔다. 사회의 통념은 인종차별주의자를 스킨헤드라 명명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성향의 스킨헤드, 더 나아가 나치주의를 앞세우는 집단은 ‘본헤드’라 불린다. 앞서 언급한 영화 ‘This is England’는 이런 두 집단의 갈등 양상에 관해 이야기하며 스킨헤드의 본질과 변질한 스킨헤드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스킨헤드는 분명 흥미로운 문화지만, 문화의 발전과 변질에 대해서도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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