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수업: [미] (대학의) 기초 과정의, 입문의, 개론의; 초보의, 기본이 되는 수업 현대 사회에서 현명한 소비자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홍수처럼 넘쳐나는 사방의 광고와 유명인의 패션, 금세 바뀌어 버리는 트렌드의 유혹까지. 물론,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 의복생활이 더 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패스트 패션이나 유행에 의존해 소비한다면, 의복의 제대로 된 이해가 있다고 보기도 어려울뿐더러, 얼마 지나지 않아 질려버리기에 십상이다. 옷을 창작한 디자이너의 생각과 브랜드의 철학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특정한 제품을 구매한다면 당신의 옷장은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로 가득 찰 것. 이는 바로 이 수업의 목표이기도 하다. ‘101’이란 숫자는 새내기 대학생이 완전히 처음 접하는 과목의 옆에 붙는 숫자다. 말 그대로 기초 수업을 의미한다. ‘히스토리 101(History 101)’은 역사가 깊은 브랜드는 물론 특정한 제품과 인물을 아우르는 수업으로 더 이상 인스타그램 속 ‘OOTD’ 태그의 참고 없이 자신이 원하는 제품을 찾을 수 있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언더커버(Undercover)는 그 이름처럼 비밀스러운 구석이 있다.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컬렉션을 훑어보아도 어쩐지 더욱 모호해지는 기분만 든다. 다만, 확실한 것은 언더커버가 지난 25년간 독보적인 컬트와 문화를 지닌 브랜드로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명료하게 설명하자면, 언더커버는 펑크 정신을 기반으로 한 브랜드다. 이는 펑크를 바라보는 준 타카하시(Takahashi Jun)의 철학으로 또다시 대변된다. “내 생각에 ‘펑크’라는 건 정직하고 올바른 생각을 지닌 사람이 아니면 오히려 이해하기 힘들다. 펑크는 ‘아웃사이더’를 뜻하기도 하지만, 난 일반적 삶의 방식을 펑크로부터 배웠다. 아무래도 펑크라는 건 세간의 그릇된 시각에 저항하는 의견과 행동을 대변하는 거니까”.
디자이너 준 타카하시는 자신이 창조한 것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의류에 반영한다. 언더커버 첫 컬렉션의 의류가 최근까지 등장하는 사실은 그저 하나의 컬렉션에서 맥락이 끝나는 것이 아닌 연속 선상에 놓인 장기적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하이엔드와 스트리트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점도 언더커버의 업적. 모든 틀과 제약에서 벗어나는 언더커버의 본질은 무의식적 감정의 불협화음을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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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체제전복적인 브랜드 ‘언더커버’의 컬트 지휘관, 준 타카하시
언더커버라는 브랜드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디자이너 준 타카하시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1969년, 군마현 키류(Kiryu)시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은 만화와 음악 잡지로 가득했고, 많은 시간을 어머니의 옷과 액세서리를 뒤지며 보냈다. 무엇보다 타카하시의 유년기를 통과한 지난 1970년에서 1990년 사이의 일본은 격동의 시기로 사회 전반 큰 변화를 겪었다. 전쟁이 끝난 뒤 7년간의 미국 점령 시기를 지나면서, 서구의 문화가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왔고 80년대 중반까지는 메탈과 펑크 록이 도쿄를 뒤덮었다. 세계화의 물결은 일본을 통해 또 다른 영향력을 행사했다. 당시 준 타카하시는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 Westwood)와 기타무라 노부히코(Nobuhiko Kitamura)의 패션 레이블 히스테릭 글래머(Hysteric Glamour)가 패션을 매체로 문화와 음악을 아우르는 방식을 보며 새로운 세계에 관심을 보였다.
무수한 팬과 마니아에게 굉장한 지지를 받는 패션계의 록스타 준 타카하시, 그러나 그의 브랜드 ‘언더커버’라는 이름처럼 우리는 그를 잘 알지 못한다. 허나 그는 앞으로도 이어질 패션 역사 속 우상이자 국제적인 디자이너로 우뚝 선 인물이다. 그의 런웨이에서는 늘 뭔가 이상하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CHAPTER 2: 우라하라(Urahara) 그리고 언더커버의 시작
1988년 성인이 된 준 타카하시는 도쿄의 패션전문학교 문화복장학원에 입학한다.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영국의 펑크 록 밴드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로 ‘도쿄 섹스 피스톨즈’라는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다. 그는 학창 시절 친구가 끌고 들어간 꼼 데 가르송(Comme des Garçons)쇼를 보기 전까지는 앞으로 정확히 뭘 해야 할지 모르던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레이 가와쿠보(Kawakubo Rei)의 패션쇼 직후 큰 감명을 받고, 패션 디자인이야말로 완전히 자유로운 창조적인 표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후 1989, 혹은 1990년 즈음 ─ 그 스스로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 에 친구 히노리 이치노세(Ichinose Hinori)의 도움으로 언더커버를 설립했다. 언더커버의 초기 제품은 대부분 타카하시가 직접 리메이크한 빈티지 티셔츠와 각종 피스로 구성되어 있었다. 성공은 꽤 빨리 찾아왔고, 당시 유명한 하라주쿠 패션 숍 빌리(Billy)나 밀크보이(Milk Boy)의 행거가 언더커버로 채워졌다.
1993년은 그에게도 기념비적인 해인데, 하라주쿠의 전설적인 브랜드 베이프(A Bathing Ape)를 설립한 니고(NIGO)를 만나 ‘Nowhere’라는 자그마한 스토어를 오픈한다 ─ 이 숍은 철조망으로 가운데를 나누고, 한쪽에는 언더커버를, 반대편에는 니고가 큐레이팅한 상품을 진열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 . 그의 레이블이 점점 유명세를 탐과 동시에 준 타카하시 자신도 니고와 팝 컬처 잡지 타카라지마 매거진(Takarajima Magazine)에 칼럼을 기고하며 점차 자신의 이름을 알린다. 다양한 활동이 쌓이며 준 타카하시는 어느새 우라하라의 가장 중요한 인물 리스트에 오른다.
CHAPTER 3: 레이 가와쿠보,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 그리고 해체주의
1994년 언더커버의 첫 런웨이 쇼에서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2002년 파리에서 쇼를 열도록 격려해준 인물이 레이 카와쿠보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보수적이던 일본 패션계에 준 타카하시의 등장은 신선함 그 자체였다.
준 타카하시가 본격적인 패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레이 가와쿠보였지만, 그의 마음을 앗아간 디자이너는 바로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였다. 그는 시부야의 한 백화점에서 마르지엘라의 디자인을 처음 접하게 된다. 이후 그 시각을 더욱 가까이 옮기며, 자신의 비전을 확신한다. 타카하시는 우라하라에서 꾸준히 사업을 운영했지만, 이와 함께 우상의 방식을 빌려 자신의 옷을 실험하고자 했다.
본격적으로 무대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느낀 그는 1994년 4월 18일 자신이 좋아하던 뮤지션 유유 우치다(Uchida Yuyu)로부터 영감을 받은 컬렉션을 완성했다. 그리고 도쿄 패션 위크의 일환으로 다이칸야마 개러지(The Garage)에서 언더커버의 첫 패션쇼를 선보인다. 제목이 정해지지 않은 1995 A/W 여성 컬렉션은 준 다카하시의 커리어 내내 다시 돌아가서 찾아볼 만할 정도의 미적 원칙을 확립했다. 펑크 컬처의 요소와 스트리트 스타일을 결합한 하이패션, 언더커버는 20년 전부터 스트리트 스타일과 하이엔드 패션 경계의 미래를 제시했다.
CHAPTER 4: 매 시즌 다양한 스펙트럼의 아이코닉한 컬렉션
준 타카하시는 그저 모델의 워킹으로 끝나고 마는 단순한 패션쇼에는 관심 없다. 그는 쇼를 하나의 엔터테인먼트로 여기고 대중이 자신의 쇼에 감정적으로 빠져들기를 바란다. 타카하시는 매 시즌 변화무쌍한 세계관을 선보인다. 여러 브랜드의 패션쇼를 보면 브랜드 분위기가 전 시즌과 비교해 급변한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이는 종래 패션 하우스의 디렉터가 바뀌었을 때 보이는 현상으로 최근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의 발렌시아가(Balenciaga) 합류 후 이전 컬렉션과 180도 바뀐 분위기를 생각해본다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언더커버는 브랜드 설립부터 지금껏 준 타카하시가 언더커버의 모든 디렉팅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각각 다른 디자이너가 작업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라고 느껴질 정도로 다양하고 뚜렷한 컬렉션을 보여준다.
S/S 1996 “Under the Cover”
이 쇼를 위해 타카하시는 ‘엘름 스트리트(Elm Street)의 악몽’ 시리즈로 잘 알려진 특수 효과 아티스트 매드 조지(Mad George)의 도움을 구했다. ‘Under the Cover’라는 적절한 제목의 컬렉션은 괴상한 유령과 프레디 크루거(Freddy Krueger-esque) 괴물이 타이트한 코트와 디지털 스컬 패턴 밀리터리 재킷을 선보인다. 다른 디자이너가 사진으로 컬렉션을 기록하는 데 만족하는 동안, 준 타카하시는 자신의 공동 작업을 기록하기 위해 쇼의 비하인드 신이 담긴 VHS 테이프, 티셔츠 등으로 구성한 ‘블리스터 팩(Blister Pack)’이 담긴 아트북을 제작했다.
S/S 2003 “Scab”
언더커버의 2003 S/S 컬렉션 “Scab”은 그 방대한 아카이브 속 빼놓을 수 없는 전설적인 무대다. 파리 패션 위크의 하이라이트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패션 숍 바이어와 언론의 관심을 독차지했으며, 언더커버가 일본을 넘어 세계적인 컬트를 갖게 만든 계기가 된 컬렉션이다. 언뜻 보면 마구잡이로 찢고 붙인 넝마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본다면 옷 하나하나에 삽입한 에스닉 트라이브(Ethenic Tribe) 패턴과 손수 삽입한 터치에서 나오는 디테일에 경외감이 들 정도. 자세히 볼수록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리는 컬렉션이다.
S/S 2010 “Less But Better”
언더커버 역사상 유일무이한, 남성복으로만 구성된 런웨이 쇼 “Less But Better”. 언더커버가 파리에 데뷔한 이후 새로운 수준의 성공을 거두었고, 각국의 패션 스토어에 소매 공세를 시작했지만, 주 고객층은 여전히 일본에 국한되었다. 그러던 중 2010년 타카하시는 ‘피티 워모 이매진(Pitt Uomo Imagine)’의 게스트 대표로 초청받는다.
준 타카하시는 이를 계기로 피렌체에서 남성복에만 집중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얻는다. “Less But Better”는 간결하고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잘 알려진 산업 디자이너 디터 람스(Dieter Rams)를 레퍼런스로 반사적인 레인 재킷, 베이지 컬러의 코트, 회색 슬랙스 및 단순한 그래픽 티를 연이어 선보였는데, 이는 지금껏 그가 해온 컬렉션 중 가장 세련된 것으로 손꼽힌다. 이 쇼로 그는 남성복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역량을 지녔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2011 “Underman”
2011년의 “Underman” 컬렉션은 1996년 S/S 컬렉션 “Under the Cover”처럼 쇼를 포기하는 대신 복잡한 프레젠테이션을 개발한 결과물이다. 반 영웅적 성격의 언더맨과 그가 거주하는 공상 세계를 중심으로 한 이 컬렉션은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이 공상적으로 옷을 입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 콘셉트 자체로 담고 있는 의미가 풍부했던 “Underman”은 프랑스의 전자음악 듀오 다프트 펑크(Daft punk)를 연상시키는 헬멧 등 기발한 의류를 대거 준비했다. 준 타카하시는 옷뿐 아닌 메디콤(Medicom)과 공동으로 제작한 연재만화와 고해상 액션 룩북, 액션 피겨 시리즈를 제작했다. 제작기를 기록한 아래의 비하인드 영상만 봐도 하나의 룩북보다는 영화에 가까운 인상을 준다.
CHAPTER 5: 준 타카하시 영감의 원천이자 마인드 뱅크
준 타카하시는 자기 전에 독서한 뒤 책에서 얻은 생각을 정리한 뒤 잠자리에 드는 습관이 있다. 그는 패션쇼를 준비하기에 앞서 자신이 만족하는 아이디어가 나올 때까지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그에서 비롯된 상상력을 숨김없이 쇼에 드러낸다. 브랜드의 원천이자 타카하시의 삶이라고 할 수 있는 펑크는 언더커버의 아이덴티티로 자리 잡았고, 나아가 영화, 미술을 비롯한 광범위한 스펙트럼의 예술에서 양분을 얻는다.
A/W 2015
언더커버는 펑크 정신을 기반으로 한 브랜드인 만큼 펑크 록 밴드를 마르고 닳도록 오마주한다. 이 컬렉션은 텔레비전(Television) 밴드의 앨범 [MARQUE MOON]을 루즈한 핏의 ma-1 재킷과 코트에 언더커버 특유의 올오버 프린팅을 입혔다. 이 옷을 입고도 밴드 텔레비전이 뭔지 모른다고 한다면 꽤 창피할 터.
준 타카하시는 77년 스타워즈의 네 번째 에피소드 ‘새로운 희망’을 레퍼런스 삼은 1999-2000 A/W 컬렉션 이후 다시 한번 스탠리 큐브릭(Stanley’s Kubricks)의 대표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를 통해 우주와 공상과학을 이야기한다. 영화 주요 장면을 삽입한 올오버 프린팅 판초, 다운재킷이 인상적으로 각양각색의 다운재킷과 영화를 비교한 사진은 영화와 쇼의 구분을 모호하게 한다. 준 타카하시는 인터뷰를 통해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왠지 모르게 20분 이상 틀어놓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시즌을 준비하며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오르는 순간, 당시 ‘Order / Disorder’에 테마를 둔 컬렉션에 완벽히 부합한다고 느껴서 곧바로 작업에 돌입했다고.
S/S 2018 “JANUS”
제일 최근에 공개한 여성 컬렉션 2018 S/S 컬렉션 “JANUS”는 미국 포토그래퍼이자 필름 디렉터인 신디 셔먼(Cindy Sherman)과 영화 샤이닝(Shining)으로부터 탄생했다. 영화 샤이닝에 등장하는 그래디 트윈스(Grady Twins)는 하늘색 드레스와 하얀 양말을 곱게 차려입은 여자 쌍둥이다.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라는 테마 속 새로운 그래디 트윈스는 왠지 모를 섬뜩한 느낌을 준다.
CHAPTER 5: 쉽게 따라할 수 없는 독보적인 그래픽 디자인
준 타카하시가 브랜드를 시작할 당시에는 옷을 만드는 행위보다도 그래픽 제작에 더욱 흥미를 느꼈다. 언더커버의 남성 컬렉션 속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매 시즌 활용되는 다양한 스타일의 그래픽이다. 시즌별로 티셔츠에 프린팅한 ‘U’ 로고부터 다운재킷에서 스웨터까지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독보적인 그래픽 디자인은 언더커버만의 분명한 차별점이다. 언더커버의 시작점이 콜라주를 비롯한 실크 스크린 프린팅을 통해 시작되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준 타카하시는 패션 디자이너인 동시에 뛰어난 그래픽 디자이너이다. 동료와 아파트 욕조에서 만들어냈다는 언더커버의 그래픽 티셔츠는 현재까지 사랑받는 아이템이다.
CHAPTER 6: 굳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의 다양한 레이블과 태그
UNDERCOVER, UNDAKOVRIT, UNDAKOVRIST, UNDAKOVR ONE-OFF, JOHN/SUE UNDERCOVER…….
최소 몇 시즌 이상 언더커버를 봐온 사람이라면 알 테지만, 언더커버에는 많은 레이블과 태그가 존재한다. 의류와 사이즈 별로 시즌마다 4, 5개의 태그가 있으니 언더커버의 모든 레이블과 태그 종류를 알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마틴 마르지엘라 또한 브랜드 속 10개가 넘는 레이블을 보유하고 있다. 아마 마르지엘라와 준 타카하시 모두 레이블이라는 규격과 상상력의 제한을 탈피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 언더커버에 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준 타카하시 자체가 언더커버다. 그는 컬렉션을 만들 때 그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아낌없이 발산하고 대중은 그에 매혹된다.
CHAPTER 7: 언더커버의 협업 컬렉션
언더커버가 하는 모든 협업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헬로키티(Hello Kitty)든 슈프림(Supreme)이든 언더커버는 브랜드 자체만으로는 할 수 없는 부분을 협업을 통해 충실히 보완한다. ‘유니클로(UNIQLO)와 진행한 UU 컬렉션’을 예로 들어보자. 타카하시는 자신의 딸을 위한 옷을 디자인하는 것이 오랜 바람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런 협업을 통해 기존에 시도하지 않았던 아동복을 제작했고 이는 더욱 광범위한 고객층에게 언더커버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전략을 달성한다.
바로 이 점이 언더커버의 협업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는 이유다. 타카하시와 작업하는 브랜드는 그가 단지 한 명의 디자이너를 넘어, 그 자신이 창조한 세계를 완벽히 이해하고 끊임없이 예술적 시도를 반복하는 과정을 목격한다. 타카하시는 언더커버 초반부터 오토바이 라이트를 부착한 사과를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디스토피안 괴물을 만들기 위해 빈티지 오토바이 조명으로 눈을 만들어 사용한 프로젝트인 ‘그레이스(Grace)’가 그렇다. 그레이스는 소품 그 이상으로 언더커버의 세계에서 되풀이되는 캐릭터인데, 이는 아이들이 그린 만화와 생물의 진화에 초점을 맞춘 일련의 예술 이미지로 이루어진다.
(좌: 언더커버의 94년 티셔츠 디자인 / 우: 슈프림과 언더커버의 협업, S/S 2015 ‘Street’ 트렌치코트 )
슈프림과의 최초 협업, S/S 2015 ‘Street’는 기존 언더커버의 메인 라인보다 조금 더 합리적인 가격대의 컬렉션이다. 가죽 재킷과 그래픽 티셔츠에 ‘ANARCHY IS THE KEY’ 그래픽을 새겨 어쩌면 준 타카하시의 지난 NOWHERE 시절을 회상한다. 언더커버의 미약한 시작을 생각해본다면, 슈프림과의 협업은 준 타카하시에게 새삼 우라하라 시절에 대한 향수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글로벌 스포츠웨어 브랜드 나이키(Nike)와 준 타카하시의 끈끈한 관계의 산물로 시작한 ‘갸쿠소우(Gyakusou)’는 러닝에 대한 준 타카하시의 애정으로부터 비롯됐다. ‘역주행(Running in Reverse)’을 일본어로 옮긴 액티브웨어 컬렉션 갸쿠소우는 정해진 흐름에 역행하고 러너(Runner)가 선택한 경로에 의문을 제기하는 디자인으로 러너가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한 기능적이고 기술적인 조건을 제공한다. 갸쿠소우는 나이키의 기술력과 준 타카하시의 창의성을 결합해 러닝웨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준 타카하시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러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러닝은 내 창의력의 큰 원천이다. 내가 일정한 시간을 할애하는 러닝을 위해 어패럴 및 풋웨어를 만든다는 말도 일리 있다. 정확한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나는 항상 나의 감성을 의류를 통해 표출하기를 강하게 열망해왔다”고 말하며 러닝에 강한 애착을 밝힌 바 있다.
CHAPTER 8: “WE MAKE NOISE, NOT CLOTHES”
언더커버의 설립부터 지금까지 25년이 지난 지금, 국제적인 명성과 컬트적 지위를 얻은 준 타카하시. ‘존(JOHN)’과 ‘슈언더커버(SUEundercover)’라는 새로운 라인까지 확장하며, 새로운 지평을 열었지만, 언더커버의 고유한 성질을 여전히 간직한다. 항상 그래왔듯이, 언더커버는 펑크로 이어진다. 펑크에서 뻗어 나오는 공격적인 요소가 표면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 모두가 언더커버 디자인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준 타카하시의 재능은 그를 지켜보는 이로부터 질문을 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가 추구하는 펑크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에 질문을 던지는 것은 그의 옷을 입는다는 행위와 맞닿아있다. 펑크는 단순히 음악이나 패션 스타일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다. 이는 바로 ‘옷을 입는다’는 개념을 부수거나, 새로운 것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정신인 셈이다. 준 타카하시에게 옷을 만드는 행위는 사회에 만연한 고정관념과 편견에 도전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남과 다르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그는 이에 완전히 반하고자 한다. 어떤 흐름 속에서도 개인의 ‘개별성’을 획득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조금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언더커버를 입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답게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일지 모른다. 이러한 사유 속에서 앞으로 패션은 어떤 방향을 향해야 할지, 더 나아가서 개인의 삶에 실존적 고민을 던지는 언더커버의 철학은 더욱 가치 있게 다가온다.
“우리는 옷이 아니라 소음을 만든다(WE MAKE NOISE, NOT CLOTHES)”. 이것은 바로 언더커버의 모토다. 타카하시와 그의 브랜드는 90년대 초부터 소음을 내고 있으며 그 소음이 점점 커지고 있다.
글 │ 김나영
제작 │ VISLA, MUSINSA
- 해당 기사는 무신사(MUSINSA)를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