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101: 레플리카, 그 본연의 의미

현대 사회에서 현명한 소비자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홍수처럼 넘쳐나는 사방의 광고와 유명인이 입고 있는 옷들, 그리고 금세 바뀌어버리는 트렌드에 현혹되기 쉽다. 물론 그대로 받아들이면 더 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패스트 패션이나 트렌드에 의존해서 소비한다면, 옷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있다고 보기도 어려울뿐더러, 얼마 지나지 않아 질려버리기에 십상이다. 상품을 만든 디자이너의 생각과 브랜드의 철학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특정한 제품을 구매한다면 당신의 옷장은 좀 더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이는 바로 이 수업의 목표이기도 하다. ‘101’이란 숫자는 새내기 대학생이 완전히 처음 접하는 과목을 시작할 때 과목 옆에 붙는 숫자다. 말 그대로 생초보를 위한 수업을 의미한다. ‘히스토리 101(History 101)’은 역사가 깊은 브랜드는 물론 특정한 제품, 인물이 기초를 알려주는 수업으로 더는 인스타그래머 속‘OOTD’ 태그를 10분마다 확인하지 않아도 자신이 원하는 제품을 찾을 수 있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레플리카(Replica)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복제품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레플리카는 ‘짝퉁’이라는 단어를 좀 더 순화한 표현으로 여겨지지만, 이는 엄연히 본연의 의미와는 다른 것. 본래 레플리카의 뜻은 ‘레트로’에 가깝다. 레플리카는 단종된 제품을 구현하거나 작업복 혹은 운동복으로 사용된 의류를 트렌디하게 재탄생시킨 것을 말한다.

인터넷을 뒤지다 보면 쉬이 볼 수 있는 ‘레플리카’의 의미는 지금 판매 중인 제품의 디자인 혹은 명품 브랜드의 디자인을 카피하거나 타 브랜드의 로고를 무단으로 사용한 것을 일컫는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레플리카라고 부를 수 없다. 일반 소비자가 레플리카의 의미를 잘 모른다는 사실을 상인들이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 그게 곧 지금 레플리카라는 단어의 이미지에 영향을 준 것이다.

레플리카의 출발지는 일본. 아메리칸 패션을 동경하는 일본인이 대량으로 생산되는 데님(Denim)에 불만을 느끼고 직접 빈티지 데님을 구현한 게 그 시작이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 말부터 사라진 미국 브랜드를 복각해왔다. 레플리카로 불리는 이 패션 문화는 1970년대 이전에 나온 몇몇 청바지를 완벽하게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작업복, 아웃도어, 밀리터리 의류 등으로 확장해서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 패션은 지난 시간 동안 남성복 산업에서 흥미로운 지점을 보여줬고, 그중 한 맥락으로 90년대 초반 도쿄의 스트리트 패션과 오사카의 레플리카 패션은 중요하다. 아주 많은 움직임이 그곳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스트리트 패션, 아방가르드, 워크웨어, 이전 아이비리그 패션으로 설명할 수 있는 ‘아메리카지’의 흐름으로 연결되는 일본 패션에 영향을 미쳤다.

 

레플리카 패션을 말하려면 우선 청바지를 언급해야 한다

리바이스(Levi’s)의 501 데님. 일본 청바지 마니아들에게 사랑받은 라인이다. 그들은 갑자기 이 데님의 원단을 비롯한 여러 요소가 비용 절감 차원에서 변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데님의 디테일 하나까지 중요히 여기던 이들은 결국 예전의 셔틀 방직기를 직접 가져와 데님을 생산한다. 이는 곧 원래의 청바지를 복각한 일명 ‘레플리카 청바지’가 된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20세기 초반 미국의 의류 제작 방식을 재현하면서 단지 데님뿐만 아니라 다른 의류에도 손을 뻗친다. 일본이 복각하는 옷의 스펙트럼을 넓힌 것이다. 빈티지 스타일을 기반으로 한 아메카지(아메리카+캐주얼)이 시대의 한 흐름이 되면서 일본은 직접 미국에서 상표를 사들여 복각하기에 이른다.

 

데님계의 아이돌, OSAKA FIVE

일본의 데님을 대표하는 도시 오사카. 이에는 오사카에서 생겨난 5개의 복각 데님 브랜드, 일명 오사카 파이브(Osaka Five)를 빼놓을 수 없다. 오사카 파이브의 기원은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Studio D’Artisan’, ‘Denime’, ‘Evisu’, ‘Full Count’ 그리고 ‘Warehouse’. 이 다섯 개의 브랜드는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복각 데님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알다시피 청바지의 본고장은 미국이다. 고품질의 섬유로 정평이 난 국가는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유럽이다. 그리고 고급 브랜드의 상품 설명을 잘 살펴보면 일본에서 생산된 데님을 사용했다는 문구를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1980년대 말, 미국이 청바지를 대량 생산 체제로 바꾸며 공급이 중단된 구형 청바지를 복원하는 브랜드가 오사카에서 우후죽순 등장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왜 하필 오사카였냐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오사카에는 미국산 빈티지가 성황리에 거래되는 곳이기도 하다. 게다가 오사카 주변 지역에는 의류 공장이 많아서 청바지를 제작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레플리카의 시작은 단순히 외관을 복원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생산자들은 점점 디테일을 파고든다. 눈에 보이는 데님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것을 제작하는 생산 체제까지 따라 했다. 미국 브랜드들이 중단한 미국 내 제품을 생산 방식까지 함께 지켜온 셈. 일본산 복각은 시작한 지 30년이 지나고 나서 세계적 흐름으로 자리 잡는다.

 

아메카지(아메리카+캐주얼)

고로즈의 액세서리와 리얼맥코이 A-2 자켓, LEE의 데님 셔츠 등 하드 아메카지 스타일과 아이템이 게재된 매거진

‘아메카지’는 아메리카와 캐주얼의 합성어다. 1960~70년대 작업복, 프레피 룩, 헌팅 룩, 마운틴 웨어 등을 모방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미국에 존재하던 스타일을 그대로 복원해서 아카이브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이 미국 브랜드의 브랜드 상표 사용권을 사서 원래 브랜드 이름으로 다시 복각했다는 것이다. 즉 사라진 원본을 새롭게 다시 그대로 만들어냈다.

아메리카 스타일, 이를테면 밀리터리 재킷이나 노스페이스(The North Face) 파카는 한때 일본에서만 구매할 수 있었다. 리바이스의 빈티지 라인은 미국보다 일본에서 2년 먼저 시작했다.

 

아메카지의 주역

시미즈 게이조(Keizo Shimizu). 현재 아메카지 스타일을 세계에 알린 주역. 그가 1989년 도쿄 아오야마에서 시작한 편집숍 네펜데스(Nepenthes)는 엔지니어드 가먼츠(Engineered garments)를 비롯해 니들스(Needles), 사우스2웨스트8(S2W8)를 전개했다. 그가 처음 브랜드를 전개할 당시에는 일본에서 시부야 캐주얼을 뜻하는 ‘시부카지’ 스타일이 유행이었다. 시부카지 스타일이라고 한다면 랄프 로렌 셔츠를 입고 치노 팬츠에 하이 엔드 브랜드의 가방을 메는 식. 시미즈 게이조의 네펜데스는 당시에 유행하던 스타일이 아닌 미국의 70년대 워크웨어, 일본의 장인 정신에 영향을 받아 본인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구축했다.

 

1980~90년대에는 하드 아메카지의 아이콘 에구치 요스케(Ryosuke Eguchi)와 같은 패션 아이콘이 등장한다. 80년대 말부터 시작되어 90년대 초까지 이어지던 시부카지 위주의 일본 패션은 하드 아메카지가 인기를 얻으면서 더욱더 다양해진다. 시부카지 붐 이후 1994년 기무라 타쿠야가 입고 나온 에어로 레더의 하이웨이 맨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빈티지 붐이 일었다. 따라서 1950년대 영국의 로커들의 스타일을 표방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시부카지를 시작으로 우라하라계 브랜드가 속속 출연하면서 이는 곧 우라하라계에 이르는 주류적인 흐름이 된다.

 

특유의 깔끔한 스타일로 큰 인기를 얻은 시부카지 스타일은 90년대에 이르러 좀 더 거칠고 하드한 스타일로 변화한다. 이는 앞서 말했듯, 하드 아메카지(Hard Amekazi) 붐으로 이어진다. 스타일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스타일로 개성을 확립하기 시작한 것. 1991년 미국 영화 “할리와 말보로맨(Harley Davidson And The Marlboro Man)” 스타일에 등장한 바이크 패션과 웨스턴 스타일이 떠오른다. 벤슨(Vanson)의 라이더 재킷, 리바이스 646이나 리 102 부츠컷 데님, 부츠는 토니 라마의 웨스턴 부츠와 레드윙 엔지니어 부츠, 값이 꽤 나가는 고로스(goro,s) 액세서리에 이르기까지.

 

복각이 탄생시킨 새로운 것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디테일의 차이를 알고서야 비로소 옷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잘 만든 옷을 구매해 그 옷이 닳고 색이 바랠 때까지 입으며 자신의 옷으로 체화하는 일련의 과정 또한 옷을 입는 재미가 아닐까. 처음에는 일본이 미국을 카피했고 그러면서 대량의 미국 의류들이 일본에 들어갔다. 비즈빔(Visvim), 엔지니어드 가먼츠(Engineered Garments) 같은 브랜드들이 이런 흐름을 잘 잡고 레퍼런스를 잘 활용해서 더욱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 예다.

중요한 건 결국, 외국의 문화를 자기 걸로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이는 일본인의 국민성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디테일을 중시한 결과, 자신의 것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재밌게도 지금은 반대로 아메카지에 영향을 받은 미국 브랜드도 생겨났다. 이렇게 패션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흐름을 형성한다.

글 │ 김나영
제작 │ VISLA, MUSINSA

RECOMMENDED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