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CE BY ME – COOLRAIN

한국의 아트 토이 신(Scene)을 이야기할 때 쿨레인(COOLRAIN)이라는 이름을 빼놓을 수 있을까.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정도로 치부되었던 토이가 아트 토이라는 이름으로 예술을 덧입기까지, 쿨레인은 한국 아트 토이의 산 증인으로서 묵묵히 길을 걸어왔다. 쿨레인이 제작하는 아트 토이의 특징이라면, 피겨 하나하나가 지닌 개성이다. 손바닥만 한 피겨가 지금은 구하려야 구할 수도 없는 고가의 한정판 스니커를 신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독특하지만, 새끼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구현해낸 그 디테일은 놀라울 정도.

이번 나이키 배틀 포스에서도 그의 역할이 눈에 띈다. 나이키의 아이코닉한 스니커 에어 포스 1을 프라모델로 제작한 에어 포스 1 피겨 키트(Air Force 1 Figure Kit)는 많은 이에게 잠재된 창의력을 무한하게 발산할 수 있는 매개체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개개인의 상상력과 함께 조립된 에어 포스 1은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컬러와 패턴으로 새로운 옷을 입기도 하고, 스니커가 아닌 또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크나큰 성원을 받으며 개성을 뽐낸 에어 포스 1 피겨 배틀의 서막을 연 쿨레인과 함께 몇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쿨레인 스튜디오(Coolrain Studio)에서 아트 토이를 만드는 이찬우다.

 

아트 토이에 빠지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원래는 시골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그렇게 지방에서 공부하던 중, 91년도 “아키라(AKIRA)”라는 애니메이션을 접한 뒤 저런 걸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서울로 올라왔다. 처음에는 애니메이션 제작에 흥미가 있었으나 곧 애니메이션 기반의 피겨 쪽으로 관심이 쏠리더라. 직접 손으로 만드는 방법도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아트 토이 작업을 시작했다.

 

본인이 제작한 에어 포스 1 피겨 키트가 소셜 미디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나이키의 유명 신발 모델 에어 포스를 피겨로 옮긴 과정을 간략히 설명한다면.

이번 프로젝트는 개인 작업이라기보단 플랫폼 토이라는, 다른 사람들이 위에 색칠할 오브제를 만드는 일이었다. 조립하는 이들이 재미있게 즐겼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업했다. 프라모델 키트 만들기는 처음이라 두근거렸지만,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사용자가 쉽게 조립할 수 있게 프라모델의 구조를 연구하고 손쉬운 커스텀 작업을 위해 부품을 나누는 곳에도 신경을 쓰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피겨 키트 디자인 과정에서 실제 에어 포스 신발을 뜯어보기도 했는지.

기본적으로 신발을 피겨로 만들 때 실제 신발의 패턴을 확인하긴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미니어처 신발을 천 켤레 넘게 만들어 왔으니 감이 꽤 있달까. 처음 보는 형태의 신발이라면 실제로 뜯어 볼 수도 있겠지. 그래도 되도록 관련 자료를 찾아 두께를 비롯한 각종 세부사항을 맞춰나간다. 미니어처이기에 실제 신발과 다른 점도 있다. 이번 에어 포스 1 피겨의 경우 신발 앞코의 숨구멍을 좀 더 크게 만들었다.

 

기존의 작업물과 이번 에어 포스 피겨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300 크기의 신발을 기준 삼아 육 분의 일 크기, 약 5cm 정도 크기의 피겨를 제작하는 것이 기존의 작업방식이다. 실제 신발에 사용되는 가죽 등의 소재를 사용하는 편이다. 결정적으로 기존에 작업한 신발 피겨는 캐릭터용이기에 실제 신발과 달리 약간 통통한 아동 신발처럼 디자인한다. 하지만 이번 에어 포스 1 피겨는 다른 방식으로 작업했다. 우선 육 분의 일 크기로 제작하면 일반인이 조립하기 힘들기에 에어 포스 1 피겨는 5cm보다 약간 더 크게 만들었다. 또 직접 부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도색하도록 두면 전문지식이 없는 이에겐 큰 부담이 되니 여러 소품을 별첨해 편리성을 더했고. 전체적인 모양새도 형태를 과장하기보단 실제 신발 모양과 유사하게끔 설계했다.

 

많은 참가자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커스텀 작품과 후기를 공유했다.

이번 기회로 처음 프라모델을 조립한 이가 많을 거다. 처음이 아니더라도 어른이 되어서 프라모델을 만질 일이 거의 없지 않나. 나도 어릴 때 탱크 같은 밀리터리 모델을 만들어본 경험이 전부다. 후기를 확인해보니 누군가 과거를 추억하며 자녀와 함께 만들었다고 글을 남겼더라. 동심으로 돌아갔다는 그 말이 가장 듣기 좋았다.

 

아트 토이 1세대라 분류될 만큼 오랜 시간 피겨를 제작해왔다. 패션을 비롯한 각종 문화적 움직임을 작품에 담아낸 점이 눈에 띈다.

‘아키라’에 빠져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듯 피겨 제작에 몸담은 후에는 좋아하는 문화 일부를 오브제로 만들었다. 스케이트보드나 픽스드 기어 바이크처럼 내가 선호하는 분야와 연관을 지었고, 나이키 신발을 원체 좋아하기에 관련 작품도 몇 만들었지. 딱히 어떤 디자인이나 어떤 예술적인 것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따라서 지금도 내가 좋아하는 문화나 패션과 관련된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에어 포스 1과의 협업을 제안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이번 작업은 개인 작업이 아닌,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소품을 만드는 일이지 않나. 그래서 더 재미있었다. 나는 내 작품으로 누군가 지난날을 추억하거나 힘든 시간을 이겨내길 바란다. 이번 에어 포스 1 피겨 키트를 통해 정말 오랜만에 프라모델을 만져봤다든지, 아이를 다른 곳에 맡기고 커스텀 작업을 했다든지 등의 좋은 반응을 끌어냈으니 만족한다.

 

키트 포장 상자도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실제 프라모델 키트 포장 디자인을 많이 참고했다. 키트 자체의 구성도 프라모델의 문법을 따랐다. 광고 문구도 그렇고. 설명서와 본드 등을 내부에 넣어둔 것도 같은 이유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실제 슈박스를 재현하기 위해 보통 프라모델 키트에선 보기 힘든 종이 재질 부품이 있다는 점이겠지. 최대한 있는 그대로를 구현하려다 보니 슈박스도 만들게 되었다. 신발을 만드는 것보다 박스 접는 게 더 어렵다는 사람도 있더라. 슈박스를 펼쳐본 적이 없으니 당연하다. 그리고 키트를 직접 본 이는 알겠지만 박스엔 제대로 신발 사이즈도 표기되었다. 이같이 각종 소소한 특징이 숨어 있지만, 신경을 쓰지 않으면 잘 안 보인다. 사실 보이는 이만 즐기면 되는 부분이지. 당신이 마니아라면 분명 이런 섬세함에 큰 재미를 찾을 거다. 나만 그런가?

 

실제 신발을 커스텀하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을 법하다.

이견이 있겠지만 큰 것보단 작은 것 만들기가 더 고되다. 작은 크기의 신발 피겨를 만들며 닦은 기술로 큰 신발을 활용한 작업을 해보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난 미니어처를 만드는 것이 좋은 사람이다.

 

실제 존재하는 무언가를 축소하는 것이 피겨의 미학이다. 세세함을 놓치지 않는 본인의 노하우가 있다면.

보통 육 분의 일 크기로 디자인한다고 말했듯, 만약 신장 180cm의 사람을 보면 피겨는 30cm가 되겠거니 하며 혼자 상상하곤 한다. 뭐든지 머릿속으로 축소해보는 습관이지. 하지만 진정 피겨의 질을 높이는 방법은 시간 투자뿐이다. 어쨌든 디테일을 전부 다 나타내야 하니까. 이번 프로젝트도 시간을 들여 밑창 부분에 상징적인 작은 별들과 인솔의 모습을 재현했다.

 

구현하기 까다로운 부분이 있었다면.

기술적인 부분이다. 이전에 작업하던 PVC 같은 소재를 사용하지 않았기에 금형 제작이 조금 까다로웠지. 그 때문에 시간을 오래 투자했다.

 

스니커를 커스텀하거나 스니커를 활용해 독특한 아트를 선보이는 이들이 늘었다. 활성화된 스니커 문화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 

작업하다 보면 캐릭터를 우선시해야 하는데 부수적인 신발에 더욱더 신경을 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나도 신발 참 좋아하니까. 전에 신발을 활용한 아트워크라 한다면 신발을 새로 도색하는 정도의 작업이었는데 요즘은 굉장히 다양해진 거 같다. 조형적인 요소를 일부러 집어넣는 이도 있고. 여러 가지 시도를 통해 국내 스니커 아트워크의 세계가 넓어진 게 아닌가 생각한다.

 

쿨레인의 새로운 목표가 있다면.

내가 디자인한 신발을 나이키에서 생산하는 것. 기존의 신발을 피겨로 만드는 일도 좋지만 만들어진 적 없는 스니커를 주제로 시리즈를 구상 중이다.

 

최근 인상 깊게 본 스니커 아트워크는 무엇인가.

국내 아티스트 루디 인 더 하우스(Rudy in the House)의 스니커 해체. 관객도 그의 작업을 좋아하더라. 내 작업실에 놀러 온 그가 육 분의 일 미니어처 스니커 패턴을 보고 영감을 얻었단다. 타 매체 인터뷰에서 날 언급해줬더라. 고마운 일이다.

 

에어 포스와 얽힌 추억이 있는지.

어릴 적 시골에서 살다 상경했으니 문화 까막눈이나 다름없던 시기가 있었다. 실제 작업을 하며 배운 것이 많았지. 2008년 에어 맥스 25주년 전시회에 작품으로 참여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나이키와 인연을 맺게 된 중요한 순간이기도 했고 에어 맥스뿐만 아니라 에어 포스 1에 관한 여러 이야기도 알게 되었지. 하지만 이미 2007년에 에어 포스 1 25주년 전시회가 열렸다. 더 빨리 시작했어야 한다고 자책한 적 있다. 그러던 에어 포스와 올해 협업하게 되었으니 뜻 깊다.

 

가장 선호하는 에어 포스 모델은?

흰색 에어 포스. 하지만 디자인을 고려하면 지금 신은 아크로님(Acronym)과의 협업 모델이다. 에어 프레스토(Air Presto)와 베이퍼맥스(VaporMax) 모델과도 협업 제품이 발매되었는데, 개인적으로 이 에어 포스 1에 더 애착이 가더라.

 

국내 아트 토이 신의 대표적인 이름이 쿨레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한국의 아트 토이 신은 어떻게 변화 중인가?

아무래도 요즘은 아트 토이를 만드는 국내 아티스트가 늘었다. 그렇지만 결과물을 소비하는 층이 두터워진 건 또 아니다. 아쉬운 일이지만 한국 시장이 전부는 아니니까. 해외 토이 페어 등에 참가하며 영역을 확장할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국내 시장만으론 이제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해외 아트 토이 신도 2000년대는 거의 죽은 것과 다름없었다. 카즈(Kaws)를 제외하곤 활발한 이가 없었는데 요즘엔 다시 각종 아티스트가 조명되며 신이 살아나는 중이다. 중국 시장도 성장해 신진 작가가 어깨를 펼 환경이 조성되었다. 결국 기회는 많아지고, 확장되었다는 말이다.

 

피겨 키트의 구조를 변형한 작품도 보인다.

영화 “베놈(Venom)”에서 영감을 얻어 에어 포스 1으로 표현해봤다. 신발 앞코를 들어 올려 입을 표현하고 나이키 로고를 눈으로 삼았다. 잘 나온 작품 같다. 또 이번 행사의 큰 주제가 ‘배틀 포스’지 않나. 탱크가 바로 떠오르더라고. 그래서 이렇게 탱크를 에어 포스 피겨와 합성해봤다. 여담이지만, 탱크 작품을 완성한 후 우연히 과거 자료를 살펴보니 이미 2008년 에어 맥스 25주년 전시회 때 내가 비슷한 디자인의 아트워크 티셔츠를 내놨지 않은가. 10년이나 지났음에도 비슷한 작품이 나온 것을 보면 당시 나이키와의 첫 작업이 내게 얼마나 큰 의미를 지녔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아예 이런 풍의 작품 시리즈를 내볼까?

 

그렇다면 행사장에서도 그 두 작품을 직접 만나볼 수 있나.

콘테스트에 참여한 30명의 작품 외 활동 중인 작가들이 실제 신발로는 구현하기 힘든 생각을 펼쳐낸 결과물도 전시될 예정이다.

인터뷰 │ 오욱석
사진 │ 고지원
영상 │ 96WAVE
제작 │ VISLA


Nike Korea 공식 웹사이트
COOLRAIN STUDIO 공식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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