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COVID-19)가 발생한 지 1년이 되어가는 지금, 공연 산업이 겪은 피해는 굳이 숫자를 찾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뚜렷한 현상으로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다. 다행히 수많은 뮤지션이 온, 오프라인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 라이브 퍼포먼스의 불씨를 살리고 있지만, 필자 또한 라이브 공연 및 파티의 기억이 점점 흐릿해져 가고 있음을 숨길 수 없다. 당연하게도, 우리가 사랑한 공연 문화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 하지만 많은 이들이 우악스럽게 ‘포스트 코로나’를 외치며 이 문화에 등을 돌릴 때 자신이 사랑하는 문화를 위해 앞뒤 재지 않고 소매를 걷어붙이는 이들이 있다.
그래픽 디자인, 진(Zine) 제작, 패션 브랜드 운영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하드코어 펑크 신(Scene)에 헌신하고 있는 젊은 작가 주수한을 소개한다. 얼굴을 쉬이 드러내지 않는 그의 성격상 그를 개인적으로 아는 이는 드물 수 있으나 하드코어 펑크 음악 및 진 문화에 관심 있는 이라면 주수한의 작업물을 마주쳤을 확률이 상당히 높다. 그가 기록자에 가까운 태도로 펑크 공연장을 들락거리며 촬영한 사진은 다양한 진이 되어 편집숍 책장에 꽂혔고, 거친 유머를 담은 그의 드로잉은 옷 위에 프린팅되어 서울 곳곳을 누빈다. 주수한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본 이라면 작업물을 판단하기에 앞서 그의 거침 없는 행동력과 신을 향한 애정에 놀라게 될 것. 오늘도 동분서주 하드코어 펑크 문화를 알리고 있는 주수한을 만나보자.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패션 브랜드 언레스트(UNREST)를 운영하고 @lifeofunrest’라는 이름으로 그래픽 디자인 및 @rebelsocietykr/@saladdayszine이라는 이름으로 사진 활동을 하는 주수한이라고 한다.
최근 인스타그램과 블로그 등을 보면 바쁜 한 해를 보낸 것 같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코로나가 터지고 공연이 많이 줄어서 밖으로 나가는 일이 줄었고 잠깐 번아웃이 왔다. 최근에는 다시 열심히 작업하고 있다.
코로나19가 펑크 신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
우선 집합 금지로 공연을 못 하게 되어 거의 매달 매주 열리던 공연이 없어졌고, 다른 지인들은 밴드 활동을 쉬게 되어 주말마다 할 일이 없었다고 한다. 다행히 최근에는 코로나 경보 단계가 하향 조정되고 공연장들이 운영을 재개해서 종종 다시 공연을 보러 다니고 있다(편집자 주: 본 인터뷰는 수도권 거리 두기 2단계 격상이 실시된 11월 24일 이전에 진행되었다).
당신의 모든 작업의 근간에 하드코어 펑크 문화가 있다. 펑크에 어떻게 빠지게 되었나?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의 MP3에 있던 얼터네이티브 락, 락, 펑크를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펑크 락, 하드코어 펑크 등 다양한 장르 음악을 디깅하며 찾아 듣게 되었고, 그중 펑크의 직설적인 메시지와 분노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이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에 빠지게 된 것은 나중에 공연을 보러 다니게 되면서부터다. 이제는 펑크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문화에 기반해 창작 활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가 있을까?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거나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시간을 보냈고, 스트리트 아트, 그래피티, 펑크 같은 거리 문화를 좋아해서 관련 아트 워크, 의류, 음악 등의 정보를 미친 듯이 디깅하며 즐겼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가 직접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를 느껴서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Adobe Illustrator)를 독학하며 그래픽을 만들어냈던 게 그 시작이다.
당신의 rebelsocietykr.blogspot.com 블로그에 로컬 하드코어 펑크 신 관련 정보를 담은 SMALL TALK 항목을 재미있게 읽었다. 로컬 밴드 리스트와 펑크 베뉴 리뷰 곳곳 ‘해체’, ‘운영 중단’ 등의 표기를 보면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한국 펑크 신을 바라보는 개인적인 시선과 함께 직접 해내고 싶은 역할이 궁금하다.
그동안 신을 지켜오며 멋진 음악과 문화를 만들어낸 사람들이 그만두거나 좋아하는 공연장이 사라져 전처럼 멋진 공연을 다시 볼 수 없는 것만큼 아쉬운 일이 없는 것 같다. 더욱이 하드코어 펑크 신은 새로운 사람의 유입이 매우 적은 신이니까. 마이너 쓰렛(Minor Threat)이란 밴드의 곡 가사 중 “We’re not the first, I hope we are not the last(우리가 처음은 아니지만 마지막이 아니길)”라는 가사가 있는데, 지금 한국 하드코어 펑크 신이 비슷한 상황에 놓인 듯하다.
분명 어려운 상황이지만, 너무 멋진 사람들과 밴드 그리고 공연이 많기에 관객으로서만이 아니라 같은 신에 있는 사람으로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내가 앨범 아트워크, 밴드 로고나 포스터, 머천다이즈 디자인 등을 제작하거나 인스타그램으로 공연 정보와 사진을 올리며 도와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시작해서 현재 신 안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다양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니 우선 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지금까지 만든 진들의 전체적인 소개를 부탁한다.
먼저 비주기적으로 하드코어 펑크, 펑크, 하드코어 등을 연주하는 한국 밴드의 라이브 사진과 영상을 담아내는 ‘UTOPIA’라는 진이 있고, 내가 본 흥미로운 순간들을 담아낸 스트리트 포토그래피 사진집 ‘Salad Days’, 그리고 서울 거리의 그래피티를 담은 ‘Search & Destroy’ 진이 있다. 그 밖에는 아트진 ‘Destroy to Create’, ‘Fuck U’, 그리고 핸드포크 타투이스트이자 펑크 신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하는 더티 월드(Dirty World)와 함께 만든 ‘Dirty World Art Book Vol.1’이 있다. 현재는 ‘UTOPIA’의 5번째 이슈와 국내 펑크 신에 대한 이야깃거리를 담은 작은 무료 배포용 진을 하나 준비 중이다.
진을 만들면서 참고하는 다른 진 혹은 매체가 있다면?
일단 다른 작가 및 출판사의 진을 자주 사서 보는 편이다. 햄버거 아이즈(Hamburger Eyes)와 니브스 북스(Nieves Books) 출판사가 만드는 멋진 진들 그리고 국내 드라오베탁스(Draobetaks) 진을 가장 좋아하며, 독립 출판 서점이나 아트 페어 혹은 편집숍에 가면 마음에 드는 진을 구매해 제작 퀄리티, 제본, 종이 소재와 사진 스타일 등 많은 것을 참고한다. 직접 손에 넣지 못하는 진은 구글링을 통해 찾아본다.
가장 첫 번째 진은 언제 만들었고, 주변에서 어떤 반응을 얻었는가?
제일 처음 만든 진은 중학교 재학 시절에 조잡하게 만들어 본 ‘Focus’라는 이름의 작은 그래피티 진이다.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은 2018년부터. 주변 사람들과 친구들이 조언도 많이 해줘서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다. 결국 펑크 신 밖의 다른 사람들까지 내 작업을 서포트한 덕에 아트 페어에 초대받거나 독립 서점 및 편집숍에도 입점할 수 있었다. 항상 서포트해 준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다.
본인이 느끼는 진 문화의 매력이라면?
글과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는 시대에 직접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점 그리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작품이 담긴 창작물을 소유한 채로 계속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DIY 정신이 제일 크게 스며든 창작물인 만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재미있게 그리고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을 찍고 진을 만들면서 다양한 상황을 겪었을 것 같다.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 있다면?
너무 많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GBN 라이브 하우스에서 한국 하드코어 펑크 신에 관한 이동우 씨의 다큐 영화 “노후 대책 없다” 상영회 및 공연을 했을 때다. 영화가 끝나고 스크린이 올라가는 순간 서울돌망치가 영화 마지막에 삽입된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사진 찍고 놀며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가사 때문에 갑자기 감정이 벅차올라 눈물이 나더라.
이어서 패션 브랜드 언레스트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진과 마찬가지로 100% 1인 생산 체제로 만들어지는 것인가?
완전한 100% DIY는 아니지만 1인 소규모 생산을 하고 있다. 인쇄는 전문 업체에 맡기고 있다.
공식 웹사이트 설명에 따르면 언레스트의 그래픽은 ‘사회를 향한 분노, 불안, 공포’를 표출한다. 개인적인 분노와 불안의 출처는?
사람들의 편협함, 치졸함, 한국의 정치 문제, 너무나 만연한 차별과 편견으로 인해 발생하는 폭력 등 여러 문제가 사회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아직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두렵고 불안하다. 뉴스만 봐도 드라마나 영화에 나올 법한 끔찍하고 기괴한 일들이 일어나는데 어떻게 불안하고 분노하지 않을 수 있나?
최근 인디펜던트 패션 브랜드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고, 이들 모두 좀 더 주목을 얻기 위해 소셜미디어를 기반으로 공격적인 협업과 마케팅을 쏟아내고 있다. 반면 언레스트는 진과 의류 상품 양쪽에 균등한 노력을 쏟으며 천천히 내실을 다지는 느낌이다. 브랜드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조급함을 느끼지는 않는지?
당연히 조급함을 느낀다. 그러나 겉핢기로 문화를 표방하는 브랜드를 개인적으로 싫어하는데다가 특정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탄탄한 기반과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가진 브랜드가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급하게 진행하려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내가 즐기면서 만들어야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다.
독립적으로 여러 활동을 동시에 펼치고 있다. 벅차다고 느끼는 순간은 없나?
한 번에 많은 활동을 하기에 번아웃이 자주 오긴 한다. 사진 수정도 밀려 있고, 새로운 진을 2개 작업하면서 브랜드까지 운영해야 하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문화 속에서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좋기에 더 열심히 작업하고 있다.
지금 작업하고 있는 여러 분야 중 앞으로 좀 더 힘을 쏟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일단 곧 나올 언레스트 2번째 드랍과 진 제작에 집중하고 싶다. 하지만 결국 하고 있는 모든 작업을 더 힘내서 열심히 해내야겠다는 생각이다.
Unrest 브랜드 공식 웹사이트
Salad Day Zine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Rebel Society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Life of Unrest 인스타그램 계정
에디터│James Kim Junior
사진 제공│주수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