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9일,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음악가 조율의 정규 1집 [Earwitness]가 발매되었다. 2018년 포크 앨범 [보물선]을 거쳐, 한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음악적 행보를 보여온 조율과 파치드 서울에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음악 하는 조율이다. 이번에 정규 앨범 [Earwitness]를 발매했다.
음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이전에 밴드나 팀으로 잠시 활동한 적은 있지만, 내 작업을 시작한 건 2015년부터다. 그때 포크 싱어송라이터로 처음 활동을시작했다.
2018년 EP [보물선] 이후 첫 정규 음반이다. 감회가 어떤지.
정말 오래간만에 음반을 내서 감회가 어떤지 콕 집어 말하기가 어렵다. 조금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조율이라는 음악가의 음악적 흐름 안에서는 적당한 시기라고 본다. 음악가로서 만들어가는 작업의 흐름이 있고, 그 흐름을 중간에 한 번씩 짚어주는 역할을 음반이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Earwitness]도 그 중 한 기점을 짚어내고 있다. 이제 이 다음의 음악을 생각하는 중이다.
[Earwitness]라는 제목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나?
머레이 셰이퍼(Murray Schafer)의 저서 사운드스케이프(The Soundscape)에서 가져온 단어다. 한국어로 ‘귀의 증인’이라고 번역되어 있었고, 보자마자 앨범의 제목으로 적격이라고 느꼈다.
제목의 영향일까? 앨범 전체에서 음악가 조율이 감각하는 소리를 전달받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섬세함이 느껴지는데, 평소에는 주변의 소리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그것이 작업에도 영향을 미치는가?
예민한 편이긴 한데, 그렇다고 의식적으로 평소에 듣는 소리를 적극적으로 작업으로 가져오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재료로서의 소리에 관심이 있는 편이다. 소리 자체의 물성보다는 그 소리의 곡 안에서의 역할과, 가공되어 나온 결과물에 집중한다. 앰비언스를 많이 쓰는 이유는 그것들이 흥미로운 종류의 악기로 기능할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첫 EP인 [보물선]은 포크 앨범인데 비해 이번 정규 1집 [Earwitness]는 실험적인 전자음악의 색이 짙다. 음악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나?
변화라기보다는 흐름이라고 하는 편이 적절할 것 같다. 집에 통기타가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기타와 노래를 재료로 작업하는 것이 당시의 나에게는 익숙한 형태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생각이었다. 지금의 작업 형태는 사실 그 이전부터 생각해왔던 것인데 그때는 DAW(Digital Audio Workstation)를 다룰 줄을 몰랐다. 일단 활동을 빨리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포크 뮤지션으로 공연을 시작했다. 활동하면서 에이블톤 라이브를 배워두었다. 2018년, 그동안의 활동을 갈무리하는 EP를 내고 2019년부터는 공연장에 컴퓨터를 가져가기 시작했다.
내가 활동하며 몸을 담게 되는 장르에 당연히 애정이 있지만, 그게 내 작업의 방향을 잡는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내 음악의 악기나 장르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장르와 악기라면, 요즘에는 어떤 악기에 관심을 두는가?
그때그때 손에 잡히는 악기를 쓴다. 그래봤자 지금은 기타와 건반, 보컬 정도지만… 더 다양한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조건이 된다면 좋겠지만, 지금은 일단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있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연주자를 고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럴수가 없다. 컴퓨터 한 대로 버텨야 한다. 그렇지만 아직도 여기서 탐구할 수 있는 영역이 한참 남아있다고 느낀다. 악기로서의 컴퓨터만이 접근할 수 있는 소리의 영역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중이다. 이 다음에 내가 어떤 음악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동안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을까 싶다.
가사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는가?
멜로디를 만들어야겠다 싶으면 메모를 뒤져본다. 쓸만한 게 있으면 가져와서 불러보고, 아니다 싶으면 버린다. 그 과정의 반복이다. 특별히 어떤 메시지를 담으려고 하지는 않고, 가사 또한 사운드 소스의 개념으로 가져와 쓴다. 그래도 가사가 너무 별로면 안되니까, 성실하게 다듬으려고 노력한다.
[Earwitness]에서는 앰비언트, 노이즈, 슈게이징 등 다양한 장르의 영향이 느껴진다. 장르의 유연함이 조율이라는 음악가의 특징 중 하나인 것 같다.
장르를 구획짓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기도,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장르에 유연하다는 말은 이미 분리된 것 사이를 오간다는 말인데, 그 구획 이전의 영역에 스스로를 놓고 있다고 느낀다. 말했다시피 나는 장르를 기준으로 작업하지 않는데, 사람들이 내 음악에 붙이는 장르 이름을 들어보고는 싶다. 레퍼런스 없이 작업하는 편인데, 누군가 내가 모르는 내 음악의 레퍼런스를 추적해주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앨범으로서 완결성이 느껴지는데, 작업 단계에서부터 고려한 것인지 궁금하다.
미리 전체적으로 콘셉트를 잡는 편은 아니다. 제목도 나중에 짓는다. 일단 곡을 만들어놓고 이런저런 조합을 시도하면서, 말이 되는 사운드적 맥락을 만나는 순간 그 곡의 자리를 잡는다.
[보물선]부터 [Earwitness]까지 공통적으로 희미한 것, 언젠가는 사라지는 것 — ‘above the vanish metropolis’(Prayer’s stone), ‘어제는 보이지 않던 우리가 잠시 머무를 천국’ (보물선), 거리가 있어 닿지 않는 것 — 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느껴진다.
사실 의도한 건 아니고 이렇게 직접 듣고 나니 알았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으려다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드러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그럴까.
앨범 발매 전 음감회를 열었는데, 당시의 감회는 어땠는지.
좋은 음질로 음반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 원래는 한 타임에 한 명씩만 참여하도록 해서 하루에 8타임을 돌리는 음감회를 계획했지만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포맷이라는 걸 깨닫고, 4일 동안 4번의 음감회를 진행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음감회 장소에서 나는 어디에 있어야 하나 오래 고민하다, 결국 안에서 같이 듣는 편을 택했다. 사람들이 듣는 모습을 관찰하고 싶었다. 음감회 첫날 출입문을 닫고 음반을 플레이하는데, 내가 수없이 들어온 이 음악을 저기 앉아있는 열몇 명의 사람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듣고 있고, 그 순간을 내가 목도하고 있다니… 사람이 어떤 음악을 처음 듣는 순간의 무방비하고 사적인 영역이 있는데, 열몇 명의 그 영역 안으로 단숨에 들어가 버리는 느낌이었다. 몸 둘 바를 모르게 부끄러웠는데, 내 음악이어서가 아니라, 무방비한 순간에 준비 없이 노출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랬다. 하지만 관객이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나? 내내 바라보면서도 알 수 없었다는 점에서 내가 적당한 위치에 떠있다고 느꼈다. 공연에서는 연주를 하기 때문에 관객에게 계속 주의를 기울일 수 없지만, 음감회에서는 그 연주라는 중간 다리가 없어지고 사람들의 반응에 전적으로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육체가 있는 유령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사람들이 음악을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무얼 느끼고 있을까 가늠해보려다, 불가능한 추측임을 깨닫고 그냥 같이 들었다. 신선한 감각이었다.
해당 앨범을 들을 청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람들이 귀를 많이 열고 들어줬으면 한다. 앨범이 플레이되는 33분 동안 조율이라는 음악가가 자신의 음악적 연대기에서 어느 순간에 와있는지를 함께 목격할 기회가 될 것이다.
계획 중인 것들을 이야기해줄 수 있나?
연말에 공연을 계획하고 있고 내년 1월에 바이닐을 발매한다. 이외에 이런 저런 작업물이 꾸준히 발표될 예정이다. 지금은 일단 다음 앨범을 준비하고, 좀 더 많은 곳에 나를 알리고, 다양한 분야의 작업자들과 협업할 기회를 많이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새로운 작업에 대한 욕심이 많다. 작업을 하기 위해 자리에 앉아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지금은 그 시간을 너무나도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