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1은 필르머 황지석을 중심으로 보조 필르머 최완, 그리고 4명의 스케이터 밥정일(이현신), 구현준, 준 송(June Song), 이민혁으로 구성된 스케이트보드 집단이자 하나의 프로젝트다. 그간 한국 스케이트보딩에서는 보기 드물었던 파크 스케이트보딩(Park Skateboarding)을 조명한 711은 뚝섬을 비롯한 스케이트보드 파크를 배경으로 촬영이 이루어진다.
왼쪽부터 711의 필르머 최완, 황지석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국내 탑 스케이터 리스트에 손꼽히는 스케이터 이민혁, 홍콩 출신의 스케이터 밥정일, 독일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바다를 건넌 혼혈아 준, 그리고 국내 스케이터 중에서 가장 많은 타투를 몸에 새긴 구현준까지 가지각색의 스케이터 네 명은 자연스레 두 명의 필르머와 함께 711 풀 렝쓰(full-length)영상을 준비하였고 올해 3월, 이태원 믹스쳐(Mixture)에서 “711 (remix)” 상영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그 뒤로 다시 711의 영상을 공개하며 본격적인 두 번째 711 프로젝트에 돌입한 4명의 711 스케이터들과 간단한 대화를 나눠보았다.
711의 새 영상 “Plum”
이민혁
비상식량ㅡ만 20세 스케이터들로 구성된 스케이터 크루. 양동철 스케이터의 제안으로 시작된 비상식량은 2012년에 결성해서 약 1년간 활동했다ㅡ 친구들과는 현재 어떤 교류를 하고 있나?
더는 비상식량의 이름으로 영상을 찍지 않는다. 아직도 친하긴 하지만, 각자 활동하는 영역이 생기다보니 언젠가부터 같이 뭔가를 만들어내기가 힘들어졌다.
711에서 마지막 파트를 담당했다. 스케이트보드 비디오에서 마지막 파트의 의미는ㅡ마지막 파트를 맡는 스케이터는 해당 비디오의 핵심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ㅡ 분명 남다르다. 예상한 일인가?
몰랐다. 솔직히 처음 보고 좀 놀랐다.
어떻게 711을 시작하게 되었나?
지석이 형이 새로 산 카메라를 테스트한다며 뚝섬에서 촬영한 적이 있다. 그 뒤로 형이 주기적으로 뚝섬에 오더니 711 프로젝트 촬영을 같이하자고 했다.
711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도 잘 모르겠다. 형들도 제대로 얘기한 적 없는 것 같은데… 편의점 세븐 일레븐 아닌가?
아직 10대인데 늦은 시간까지 촬영하다 보면 부모님에게 혼나지 않나?
어디서 타는지 연락만 잘 드리면 문제가 없다.
711에서 가장 좋아하는 파트는?
나는 현준이 형 파트가 좋았다. 형의 스타일, 배경음악, 트릭들이 빵빵 터지는 느낌이었다.
왼쪽부터 이민혁, 구현준
저화질 스케이트보드 비디오를 선호하나?
원래 HD 비디오를 안 좋아한다. 부자연스럽고 눈이 아프다. 로우 파이는 뭔가 거친 맛이 있어서 좋다. 다만 필르머가 어떤 카메라로 찍건 간에 나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
필름을 맡은 황지석, 최완이 꼰대 같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나? 나이 차가 많이 나는데.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서로 잘 맞아서 촬영은 끝까지 원활하게 진행됐다. 다만 지석이 형이 운전하면서 피곤하다고 할 때는 형이 나이가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하하.
711을 하면서 스케이트보딩에 대해 새롭게 느낀 점이 있다면?
‘팀(Team)’이란 게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스케이트보딩을 연재물로 계속 풀어낼 수 있어서 기쁘다.
711을 통해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가?
어리지만 어린 티가 나지 않는 스케이트보딩
구현준
언제부터 711에 합류했나?
지석이 형에게 갑자기 연락을 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711 촬영인지 몰랐다. 촬영하다가 지석이 형이 제안해서 합류했다.
파크에서 주로 타는 것 같다.
원래 뚝섬 근처에 살았다. 보드를 접하기 전이었는데, 어느 날 집에 걸어가다가 스케이트보드 파크가 만들어지는 걸 봤다. 그 근처에서 사람들이 보드를 타는 걸 보면서 되게 못탄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스케이트보드가 이렇게 어려운 건지 잘 몰랐다. 그래서 호기심에 나도 한번 타볼까 해서 시작했다. 아마 4년 정도 전이다.
영상도 꽤 많이 만든 것으로 기억한다.
영상을 잘 만들고 못 만들고를 떠나서 재미있는 걸 많이 남기고 싶었다.
711 멤버 중에서 트랜지션(Transition)을 가장 좋아한다고 들었다.
보드라면 뭐라도 좋지만 확실히 나는 트랜지션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다.
트랜지션을 탈 때 보호 장비를 착용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 C.ruzaㅡ양평에 위치한 스케이트보드 파크ㅡ에서 촬영할 때 처음 써봤는데 너무 불편하더라. 뭐 쓰든 말든 별생각 없다. 다만 내가 C.ruza 운영진이었다면 원하는 사람만 착용하게 했을 것 같다. 어차피 C.ruza에 가면 운영진 측은 책임이 없다는 각서를 쓰게 한다.
아직 한국에는 충분한 크기의 보울이 없는 건가?
그렇다. 처음에는 한국에도 당연히 보울이 있을 줄 알았다. 컬트(동대문 훈련원공원)에 보울이 있다고 해서 가봤는데 비디오에서 본 것과는 달리 너무 작았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가?
Black Flags와 Dead Kennedys. 주로 펑크 음악을 듣는다.
711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파트는?
민혁이의 마지막 월 라이드(Wall Ride)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또한, 준의 파트가 음악이랑 잘 맞아서 인상 깊었다.
타투와 피어싱이 예사롭지 않다. 언제 했나?
여행을 좋아해서 돈을 벌면 자주 해외로 나갔다. 그때 타투를 했다. 한국에서도 몇 번 했는데 망쳐서 돈도 꽤 날렸다.
근래 일부 타투를 다시 지웠다고 들었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견디기 힘들었다. 앞으로도 한국에서 살려면 어느 정도는 지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촬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711 촬영은 대부분 겨울에 이루어졌다. 한번은 춘천에 촬영 계획이 잡혀 있었다. 사정이 생겨서 한 주 미뤄지는 사이 영하 10도까지 떨어졌다. 그날 또 아침부터 촬영해서 그런지 엄청 추웠다. 눈까지 오더라.
Jun Song
당신은 누구인가?
독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6개월 전,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에 왔다. 아버지는 독일인이고 어머니는 한국인이다.
영상에서 한국어 교재가 보이던데, 왜 거기까지 들고 갔나?
촬영하던 날에 정말 중요한 기말고사 시험이 잡혀있었다. 711 촬영이 너무 재미있어서 촬영 틈틈이 책을 보며 공부했다. 80점 정도 받았으니 잘 본 것 아닌가?
한국 사람들과 좀 친해졌나?
RVVSM 스케이터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재미있는 사람들을 많이 못 본 것 같다. 내게 711은 스케이트보드를 위한 팀이라기보다는 같이 클럽도 가고 술도 마시는 친구들이다.
711과의 인연이 궁금하다.
한국에 와서 스케이트보드 파크를 찾다가 우연히 구현준을 알게 되었다. 그의 이름이 내 이름과(송 준) 비슷해서 그런지 괜히 정감이 갔다. 그러면서 차차 한국 스케이터들과 친해졌다.
큰 키, 긴 다리에서 독특한 스타일이 나오는 것 같다.
내가 타는 걸 직접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단지 재밌게 타고 싶을 뿐이다.
선 캡을 쓰고 나온 부분이 인상 깊었다.
사실 선 캡이 골프나 테니스를 할 때만 쓰지, 다른 데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모자 아닌가? 뭔가 특이한 것을 쓰고 촬영하고 싶었다. 지하철의 사람들이 내가 그런 모자를 쓰고 있을 때, “씨발, 저거 뭐지”라고 할 때 재미있었다. 하하.
풀 렝쓰 비디오에 참여한 적이 있는가?
그렇다. 독일의 스케이트보드 풀 렝쓰 비디오에 참여한 적이 있다. 제일 친한 친구들이 만든 비디오였다. 사람들끼리 평소에도 모두 알고 잘 지낸다는 점에서 711과 비슷한 면이 많았다.
왼쪽부터 이현신, Jung Song, 이민혁
711 촬영이 끝난 후에도 어울려 논 적이 있나.
같이 술도 자주 마셨다. 다만, 내가 한국어를 잘 못해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는 어려운 것 같다. 밥정일은 영어를 잘해서 서로 대화가 통하지만, 너무 멀리 살아서 만나기 힘들다.
촬영하면서 느낀 문화적 차이점이라면.
한국의 ‘형’ 문화에 적응했다. 다만 나는 꼬부기(이민혁)에게 날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말했다.
독일로는 언제 돌아갈 예정인가?
대략 내년 여름까지는 머물 것 같다. 그런데 사실 별생각은 없다. 교환학생이 아니라 얼마든지 더 있다가 돌아갈 수 있다.
이현신
711의 시작이 궁금하다.
지석이 형이 처음 뚝섬에서 나랑 민혁이 파트를 찍었는데, 그때부터 우리의 색깔, 멤버 구성에 대한 확신이 와서 지금의 형태가 된 거다.
필르머 황지석을 어떻게 알았나?
이태원에서 같이 술을 마신 적이 있다. 그 이후에 RVVSM 형들과 친해지면서 자연스레 같이 어울렸다.
영상 중간에 홍콩이 나온다. 당신은 홍콩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쭉 홍콩에서 자랐다. 홍콩에서 16~17년을 살았고 다시 한국에 온 지는 4년 정도 됐다.
갑자기 홍콩에 간 이유는?
지석이 형이랑 비행기 티켓 가격을 알아보다가 마침 제주 에어 홍콩발 티켓이 싸서 즉흥적으로 구매했다.
가서 많이 아팠다고 들었다.
병원비가 걱정돼서 참다가 결국 앰뷸런스에 실려 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영주권자는 의료 혜택이 있었다. 만오천 원만 내면 해결되는 일이었다.
홍콩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점은?
홍콩은 비즈니스 차원에서, 혹은 여러 가지 이유로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서 살고 있다. 그래서 홍콩은 한국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문화를 접하기 쉽다. 한국에서 걸어 다니면 대부분 한국 사람을 마주치지 않나. 거기는 그렇지 않다. 크기는 서울과 비슷하지만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체감하는 효과가 더욱 크다.
홍콩 신(Scene)에서 함께 어울리던 사람들은 누구인가?
고등학교 친구 놈들이다.
영상 중간에 경비원이 나오는 장면이 있다. 그 스케이트 보울(Bowl)이 원래는 탈 수 없는 곳이라고 들었다.
파크 관리인들이 만들어 놓고서는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막아놓았다. 근데 그냥 탔다.
촬영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지석이 형과 홍콩에 간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 고향인 홍콩에 한국 사람과 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친구들과 지석이 형이 함께 어울리는 걸 보면서 즐거웠다.
평소에도 뚝섬에서 주로 타는 것 같다.
나는 원래부터 스트리트 보다는 램프를 꾸준히 탔다, 홍콩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4년간 뚝섬만 미친 듯이 다녔다.
좀 더 큰 기물을 타보고 싶지 않나?
홍콩에서 보울을 탈 때는 기분이 정말 좋았다. 평생 커피숍에서 일하더라도 주말에 저런 보울을 탈 수만 있다면 만족하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국에서 보드를 타면 탈수록 더욱 큰 기물을 원하게 된다. 뚝섬도 물론 좋은 파크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
이전에 패션모델로 잠깐 활동한 이력이 있다. 지금도 하고 있나?
친구들과 함께하는 촬영이라면 가끔 하겠지만 직업적인 ‘패션’ 모델은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쪽 세상과 내가 너무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행/텍스트 ㅣ 최장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