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범스(Goosebumps)의 이름을 처음 본 건 군산 지역의 음악 신(Scene)을 다룬 기사에서다. 이후 서울의 다양한 파티 포스터에서 디제이로, 사운드클라우드 속 프로듀서로 그의 이름을 종종 접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이제는 구스범스라는 이름을 찾아보는 게 그리 어렵지 않게 되었다. 각종 파티를 비롯해 여러 래퍼의 트랙에서, 심지어 방송에서까지 심심치 않게 구스범스를 만날 수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그의 음악과 경력, 앞으로의 방향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의외로 인터뷰를 찾아보기 힘든 그이기에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았다. 이 인터뷰는 구스범스에 선입견을 가진 이들의 생각을 부술 전환점이며, 팬에게는 더욱 매력적인 포부로 다가올 것이다.
오늘 촬영 장소는 명동이다. 어떤 기분인가?
내가 명동에 올 거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 느낌은…. 좆같다. 사람 많은 거 존나 싫거든.
사람 많은 장소를 싫어할 줄 몰랐다. 클럽에서 디제잉할 때 사람이 꽉 찬 풍경을 자주 보지 않나.
솔직히 말하면 클럽에 정이 떨어지는 중이다. 디제잉도 애정이 좀 식었다. 회의감이 든다. 내 경력에 무슨 회의감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렇다. 클럽도 음악을 틀 때 빼고는 잘 안 가려고 한다.
어디서 회의감이 오는 것 같나?
어느 순간부터 내가 무엇을 위해서 이걸 하는지 모르겠더라. 나는 프로듀서고, 곡 작업을 더 하고 싶은데, 클럽에서는 정작 내가 음악 외적인 일에 몰두하고 있더라. 감정 소비가 심했고, 에너지도 많이 써서 작업하는 게 힘들어졌다. 클럽 안에서 사람들 싸우는 것도 지쳤고, 비즈니스하는 것도 지겨워졌다. 오늘 봤는데, 내일 또 보는 사람들인데, 어떻게든 쥐어짜서 대화하는 일도 에너지 낭비라 느껴졌다.
클럽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더는 얻지 못하는 것 같다.
클럽을 정말 좋아했던 이유, 케이크숍(Cakeshop), 헨즈 클럽(The Henz Club)을 찾아다녔던 이유는 다른 디제이들을 보며 배울 게 많았기 때문이다. 포스터를 보면 ‘와, 씨발 얘가 한국에 와?’, 뭐 이런 느낌을 받았고, 로컬 디제이에게는 ‘이 형 오늘 뭐 틀까?’ 같은 흥미가 생겼다. 근데 솔직히 요즘 클럽 가면 배울 게 뭐 있나. 모두 비슷한 음악을 튼다. 물론 나도 똑같지. 남들도 구스범스 셋 항상 똑같다고 생각할 텐데. 그러니 차라리 디제잉보다는 음악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싶은 거지.
‘왜 음악 안 만들고 클럽만 다니냐?’와 같은 이야기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사람을 안 만나는데 일할 수가 있나? 여자를 안 만나는데 애를 낳을 수 있나? 이런 이야기와 일맥상통한 게 아닐까. 웃긴 소리다. 나는 이런 말을 하고 다니는 부류의 음악가를 안다. 자기네들은 100% 떳떳할 수 있는가? 자기들끼리 몰려다니면서 하는 것도 비즈니스고, 정치다. 이런 말 하는 새끼들도 필요해지면 다 똑같이 한다.
Goosebumps – AFTER PARTY (2018 Live Mix)
[Stage ll]의 음원사이트에서 ‘구스범스는 언제 랩을 하는가?’라는 댓글을 봤다. 이런 코멘트 역시 음악가라는 이미지를 더 구축하고 싶게끔 하는 반응 아닌가.
아직 프로듀서라는 이미지가 이쪽 바닥에만 퍼져있다. 솔직히 나도 프라이머리(Primary) 음반을 처음 들었을 때, ‘프라이머리가 누구지? 왜 이 사람은 노래를 안 하지?’라고 생각했다. 내가 앞으로 풀어나갈 숙제다.
지금 ‘이 바닥’에서 당신의 이미지는 어떤 식으로 만들어진 것 같나?
나와 작업하고픈 래퍼를 보면, 거친(Raw) 음악을 하고 싶어 한다는 걸 느낀다. 반대로 ‘너네는 나와 어울리면 존나 돕(Dope)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어’라는 생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jQNDGVCdR0U
GooseBumps – 엉금엉금 (Feat. Jericho, PNSB) M/V
메인스트림 힙합보다는 클럽 신에서 활동한 이력이 거친 이미지에 한몫하는 것 같다.
클럽 신에서 돕한 디제이들과 어울린 것도 맞지만, 그보다는 내 주변 인물에서 오는 이미지가 아닐까. 내가 병신들과 어울렸다면 또 달랐겠지.
아무래도 파티 크루 딥코인(Dipcoin)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딥코인을 탈퇴한 이유가 궁금했다.
존나 프로가 되고 싶었다. 웃긴 말이지만, 나는 존나 프로페셔널한 인간, 프로페셔널한 음악가가 되고 싶다. 예전에는 감정에 휘둘렸다면,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은 거지. [Stage ll]를 듣고 나서 내 음악이 변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딥코인 나가더니 변질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어떻게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한 가지 스타일에 갇혀 있나? 웃긴 소리다. 나도 사람이기에 취향이 바뀐다. 딥코인을 나온 이유는 내 음악 스타일이 변했기 때문이다. 딥코인과는 지금도 연락하고 지낸다. 다만, 내가 딥코인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힘들었다는 건 사실이다. 사람이 싫은 게 아니라 에너지가 잘 안 맞았다.
‘진짜배기’, ‘Raw’ 같은 개념에 빠져있다 보니, 다음 스텝을 밟기 어려웠다. 애초에 딥코인을 시작할 때부터 나중에 다 흩어질 줄 알았다. “이렇게 하다가 나중에 각자 위치에서 좆되는 인간이 된 다음 다시 뭉치자”와 같은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이 그 시점이다. 탈퇴라는 말도 어이없지.
기존의 구스범스는 아무래도 클럽튠, 파티 보이의 색채가 강했지만 사실, “After Party” 믹스셋이나 “YEO”처럼 칠한 음악도 곧잘 만들었다. 이처럼 한쪽으로 치우친 이미지에 반감이 든 적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이유로 [Stage ll]를 낸 거다. 씨발. 기존의 음악을 듣다가 [Stage ll]를 들으면 놀랄 거다. 나는 원래 칠(Chill)한 놈이다. 빡센 음악도 좋아하지만, 클럽에서 맨날 틀다 보니 평상시에는 전혀 그런 음악을 안 듣는다. 곡을 만들 때도 요즘은 칠한 소스(Source)만 찾는다. 강한 음악을 만드는 건 너무 쉬워서 흥미가 더는 생기지 않는다. 뻔하다. 반면에 칠한 사운드는 아직 많이 안 해봐서 그런지 만들면서 새로운 재미를 얻기도 하고 고민거리를 던져주기도 한다.
[Stage ll] 앨범 커버
[Stage ll]라는 제목이 의미심장했다. 이번 음반은 주변 인물보다는 메인스트림 음악가 위주로 피처링을 구성하기도 했다. 결국, [Stage ll]라는 게 구스범스의 방향성이 아예 바뀌었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메인스트림을 지향했다. 군산에서 문이랑을 알게 되고 비트 뮤직 신을 알게 되면서 환경이 바뀌었지만, 나는 원래 원타임 테디(Teddy) 같은 포지션을 원했다.
주로 트랩(Trap)을 만드는 작업 성향도 메인스트림을 지향했기 때문일까?
처음 음악을 만들 때부터 붐뱁 같은 리듬을 건든 적이 없다. 학교에서 듣던 음악이 솔자 보이(Soulja Boy), 구찌 메인(Gucci Mane)이다 보니, 그게 힙합인 줄 알았다. 하다 보니까 그게 트랩이라는 사실을 안 거지.
Loco – MOVIE SHOOT (Feat. DPR LIVE)
로꼬(Loco)나 식케이(Sik-K)와 같은 래퍼와 함께했다는 점에서 변했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을 법하다.
커뮤니티를 존나 많이 보는 편인데, 이번 음반에 ‘왜 딥코인 멤버가 참여하지 않았냐?’라는 이야기가 있더라. 씨발, 나는 모든 커리어를 통틀어 그들과 작업해왔다. 나도 질린다고. 다른 아티스트와 협업을 해보고 싶었다. 로꼬의 앨범, [BLEACHED] 수록곡 “MOVIE SHOOT”을 내가 만들었는데, 그때의 인연으로 로꼬가 내 음반을 도와준다고 했다. 나도 로꼬를 좋아하니 언젠가 서로에게 잘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식케이는 사이먼 도미닉(Simon Dominic) 작업실에서 처음 만났다. 존나 잘하는 래퍼다. 사실, 그에게 영향을 준 래퍼가 너무 명확하지만, 식케이 역시 자기만의 색이 있다고 생각한다. 멜로디를 굉장히 잘 짜는 스타일을 내가 좋아하고, 그는 그 방식을 정말 잘해낸다. 그래서 함께한 거다.
[Stage ll]는 기존 구스범스의 음악과 비교했을 때, 꽤 정돈되어있다.
존나 프로가 되고 싶었다니까. 예전엔 비트를 만들면 편곡도 안 했다. 사운드에 관한 고민도 없었다. 이번엔 편곡, 사운드, 피처링 하나하나 다 많이 신경 썼다. 지금 나는 팝적인 성향에 많이 끌린다. 내가 좋아하는 프로듀서들도 딱히 스타일에 국한되지 않는다. 트랩도 만들고, 팝도 만드니까. 솔직히 요즘은 경계가 없는 거 같다. 미고스(Migos)도 그냥 팝 아닌가? 그런 구분이 중요한 게 아니다.
트랩의 절정기가 왔다고 생각하나?
존나 충격 받은 게 미국은 11살짜리도 음반을 내더라. 오프화이트(Off-White) 입고 나와서 ‘Bitch’ 거리면서 랩 하더라. 이젠 트랩은 절정기 따위를 이야기할 시기는 지났다. 트랩은 더는 트랩이 아니고, 힙합의 한 요소가 되어서 끝까지 갈 거라고 본다. 제이딜라(J Dilla)를 좋아하고, 영향 받은 프로듀서가 있는 것처럼 지금 태어나서 음악 하는 새끼들에게 제이딜라는 곧 미고스, 마이크윌메이드잇(MikeWillMadeIt), 메트로 부민(Metro Boomin)이다. 어린 애들은 힙합 아티스트라고 하면 미고스밖에 모를걸? 제이지(Jay Z)도 모를 거 같은데. 지금 우리나 윗세대는 이제 트랩이 끝났다고 이야기하겠지만, 어린 애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할 거다. 그 친구들이 크면서 또 새로운 모습의 트랩을 만들겠지.
한국 힙합 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궁금하다.
한국 힙합. 좀 좆같은 말인데, 다 정치판인 거 같다. 물론 미국도 똑같고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다만 한국 래퍼들이 좀 더 솔직했으면 좋겠다. 돈도 없으면서 돈 얘기하고 자빠졌다. 거짓말 아닌가. 너무 연예인 마인드처럼 보인다. 그냥 한국 힙합이라는 말 자체가 좆같은 거 같다. 한국에 힙합이 어딨어 씨발. 음악적으로는 좀 재밌어지려고 한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세대교체 시점이라서 어린 래퍼들이 어떻게 바꿔나갈지 궁금하다. 그래서 나이 많은 한국 힙합 형들은 좀 꺼져줬으면 좋겠다. 끈을 왜 못 놓지? 멋있는 어린 애들이 있으면 형들은 뒤로 가서 서포트를 해줘야 신이 발전하는데, 아직도 잘나가는 새끼들끼리 빨아주고 하면 무슨 발전이 있나? 돈이 아니더라도 재밌는 애들 발굴해서 밀어주고 해야지, 아직도 자기들끼리 다 해 먹으려고 하니까. 존경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이제는 좆같다. 너무 나서기보다는 콘텐츠도 만들고 잘하는 어린 친구들을 도와줄 때다.
서포트라 한다면, 디제이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의 헤드룸 라커즈(Headroom Rockers) 정도가 떠오르는데.
그래서 내가 소울스케이프를 존나 리스펙트한다. 그렇게 해야 한다. 나는 솔직히 소울스케이프의 음악을 잘 모른다. 어려서부터 그런 음악 잘 안 듣고, 솔자 보이 듣고 그랬다니까? 그런데도 소울스케이프를 존나 리스펙트하는 건, 꾸준히 뮤지션 뒤에서 서포트하고 멋있는 콘텐츠를 만들기 때문이다.
비교적 어린 래퍼 중에서 재밌는 캐릭터가 있다면?
쿠기(Coogie)가 좆되는 거 같다. 흡수를 잘한다. 쿠기 말고 재밌는 래퍼는 없다.
소속 회사는 따로 없는지?
그래서 구찌 버거(Gucci Burger) 이름으로 앨범을 냈다. 씨발 나는 회사가 없으니까 안 쓰고 싶었는데, 꼭 이름을 입력해야 하더라고.
딥코인을 포함하여 다양한 팀과 미디어에 몸담았다. 그중에서도 터닝 포인트가 있다면 언제일까?
딥코인이 음악 인생을 열어줬다면, ‘트라이앵글’은 터닝포인트에 가깝다. 기존에 내가 메인스트림를 바라보던 인식을 바꾼 계기였다. 그곳은 프로들의 세계였다. 일주일에 세 곡을 만들어오라고 하면 세 곡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타이트한 스케줄이 연습이 되기도 했다. ‘트라이앵글’ 방송 당시에 욕하는 디제이들이 많았다. 씨발, 너네도 나오고 나서 말하라고. 스케줄을 겪고 나면 그런 말 못 한다.
왜 이태원 팀이었는지도 궁금하다.
원래 홍대 팀으로 제안이 왔다. 그런데 나머지 팀 멤버를 보니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더라고. 내가 스크래치 디제이 사이에서 뭘 하겠나. 이태원 팀에 지인이 많아서 거기로 가겠다고 했다.
한 인터뷰에서 ‘트라이앵글’이 자신의 음악을 알릴 좋은 기회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도움이 됐나?
좆도 안 됐지. 프로그램이 망했다.
비슷한 시기에 구찌 버거(Gucci Burger)라는 파티를 기획했는데.
별 이유 없다. 주니어 쉐프(Junior Chef)와 얘기하다가 한국에 멋진 트랩 파티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프로듀서가 만든 파티도 없었다. 그래서 트랩과 관련된 해외 음악가를 데려오는 파티를 만들어보잔 식이었다. 제일 큰 이유는 사실, 주니어 쉐프에게 디제잉을 시키고 싶었다.
독립 프로듀서로 현재 만족하는가? 회사에 들어갈 마음은 없는지.
찍돌이가 되고 싶지 않아서 혼자 하는 거다. 그래도 혼자 하는 게 힘들긴 하다. 음악만 하고 싶지만, 유통부터 전반적인 아트 디렉팅까지 다 내가 해야 한다. 그래도 뭐 프로듀서 정도면 회사 없이 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스타일리스트가 필요한 것도 아니지 않나.
음악 외적인 부분을 신경 쓰지 않는 프로듀서가 유독 많다.
개인적으로 프로듀서든 뭐든 꾸며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악은 존나 트랩인데, 옷을 거지처럼 입고 다니면 음악도 그렇게 들린다. 누군가는 음악에만 열중하는 애들이 음악 잘 하는 거라고 말한다. 나도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안다. 그래도 병신 같은 말이다.
독립 아티스트를 꿈꾸는 또 다른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술을 존나 먹고 사람들과 친해져라. 그리고 쫄지 않았으면 좋겠다. 겉으로든 속으로든 쫄지 말고 부딪혔으면 한다. 나는 옛날에 만든 비트 지금 들어보면 다 개구린데 사람들한테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