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많고 털 많던 발칸 반도의 70, 80년대를 엿보다

“삶의 불에 그을린 예술은 불길의 위협 앞에서 웃고 노래하고 춤춘다. 더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그을린 예술은 삶을 재창조하려 한다”. – 시인, 사회학자 심보선

음악은 언어가 아니지만, 언어와 같은 일종의 기호체계다. 그렇지만 삶의 고통이 수다(언어)를 수반할 때, 함께 만들어진 음악은 그 고통을 침묵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때로 모호한 문장이 의외의 확장성을 가져오듯, 한 시대와 다른 시대 사이의 부산물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이전 세대의 정경을 흘러간 가곡으로 걸어보듯, 지구 반대편에서 타오른 삶의 불길과 그 주위를 노래하고 춤춘 군상의 희로애락을 하단의 이야기를 통해 엿보자.

92년 보스니아 내전으로 시작된 연속적인 비극, 분열되기 전 구 유고 연방이 자리한 발칸 반도 지역은 여러 종교와 민족이 섞여 상호작용하는, 마치 부대찌개와 같은 상태였다. 그리고 구 유고 연방의 국가원수 요시프 브로즈 티토(Josip Broz Tito)의 독자적인 공산주의 경제성장 계획의 일시적 약진은 70년대 해당 지역 복합적인 음악 신(scene)을 들끓게 했다. 딥 퍼플(Deep Purple),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 등 서구의 유명 음악인들의 콘서트와 다양한 록 페스티벌(Rock Festival)을 연 것. 발칸 반도와 인접국의 신보, 전통음악을 대거 출반한 것. 심지어 동시기 미국 내 히트곡들의 저작권을 가져와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빌 위더스(Bill Withers)의 71년 작 “Ain’t No Sunshine”을 리메이크한 크로아티아 여가수 요시파 리삭(Josipa Lisac)의 “Nema Sunca”

펑크 록, 디스코, 신스팝 등 빠른 박자의 음악이 그 시대를 기점으로 호응받으며 발칸 유럽을 오랜 시간 춤추게 했다. 디스코 음악을 선호하는 디제이들이 한 번쯤 틀어봤을 크로아티아 가수 아리안(Arian)의 “Lutaš Velikim Gradom”, 그리고 디스코 밴드 즈로보(Zdravo)를 이끌던 디제이 겸 가수 보반 페트로비치(Boban Petrović)가 독립하여 출반한 앨범 [Žur] 내 ‘AOR 스러운’ 음향의 “Prepad”를 들어보면 그때 그 시절 자그레브(Zagreb) 도심 속 무도장을 그려볼 수 있다. 그러나 짧은 경제 성장 후 침체와 무기력함이 찾아왔다. 불안이 거리를 아우른 그 시기, 다소 으스스한 분위기의 전자음향이 반도 곳곳에서 나와 ‘노비발(Novi Val)’, 즉 ‘새로운 흐름’으로 분류하는 발칸 반도 고유의 음악 장르도 생겨났다.

미국 뉴욕에서 녹음된 앨범. 더 넓은 시장을 노렸는지 해당 곡의 영어판 “Your Love Makes Me A Winner”도 같이 수록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전자음악까지 시도하던 보반 페트로비치(Boban Petrović)는 8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사업가로 돌변, 한때 스페인 한 지역 축구단의 구단주를 맡은 적 있다. 알아서 독 될 것 없는 흥미로운 정보.

구 유고 연방의 라디오국 벤틸레이터 202(Ventilator 202)가 84년 출시한 믹스테잎  [Ventilator 202 Demo Top 10 Vol. 2] 수록곡이자, ‘노비발’의 단적인 예.

얼마 전, 흘러간 시대의 사진을 주제로 하는 유명 블로그 ‘빈티지에브리데이(Vintage Everyday)’가 ’70, 80년대 발칸 유럽의 웃긴 앨범아트’를 제목으로 40여 장의 바이닐 커버아트를 소개한 적 있다. 다리털 무성한 여인, 위성이나 거포에 걸터앉은 남자 등 다소 생소한 모습은 우리에게는 유쾌한 발견처럼 보인다. 하지만 동구와 서구의 이념 전장 사이에서 고집스레 자리를 지키고자 한 발칸 유럽 국가들의 정치-군사적 분투, 그 사이 피어난 페미니즘과 같은 것들이 짓눌려서 생긴 봉숭아물 앨범 아트를 보고 있자면, 히죽대다 괜스레 헛김이 난다. 오해는 없기를. 당연히 웃긴 건 웃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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