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SSVET의 신작 스케이트 비디오 “BLUE” 리뷰

러시아 고유의 문화를 바탕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디자이너 고샤 루브친스키(Gosha Rubchinsky)는 러시아의 더욱 깊숙한 곳을 드러내고자 친구인 톨리아 티타에브(Tolya Titaev)와 함께 2016년 라스벳(RASSVET)이라는 스케이트 브랜드를 런칭한다. 팩벳으로 읽고 싶어지는 키릴 문자를 전면에 내세운 브랜드는 익숙한 듯 그들만의 순수한 에너지를 가져오며 팬들을 양산해냈다. 스케이트보딩에 대한 헌신도 잊지 않고 꾸준히 비디오를 공개해왔으나, 스케이트 브랜드의 명함과도 같은 장편 필름은 아직 없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라스벳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레미 타베이라(Remy Taveira), 오스틴 질렛(Austyn Gillette)이라는 걸출한 이름의 영입을 알리기 시작했고, 첫 번째 작품 “BLUE”의 기대치를 높였다. 이윽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라스벳의 출사표가 2024년의 시작과 함께 공개됐다.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Sound and Vision”으로 시작하는 필름은 엔딩 크레딧에도 같은 곡을 사용해 영상의 주된 테마가 된다. 곡을 통해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보위가 고정적인 성 관념을 넘나들었던 인물이라는 것과 곡이 포함된 앨범 [Low] 작업 당시 약물 중독 치료를 받으며 자신의 내면 그대로를 들여다보며 만든 앨범이라는 점이다. 공허한 내면을 들여다보며 새로운 비전을 찾는 가사는 라스벳이 스케이트보딩을 바라보는 방식일지도. 추가로 이 트랙은 원곡이 아닌 2013 버전으로 고독에 관한 가사에 더욱 귀 기울이게 한다.

비디오의 포문을 여는 이들은 레미 타베이라와 오스틴 질렛이다. 라스벳은 유럽과 미국의 상징적인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며 본격적인 스케이트 세계로의 진출을 선언한다. 뒤로 흐르는 곡은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폭풍의 질주” 사운드트랙, “Show me heaven”이다. 첫번째 후렴구에서 레미 타베이라는 보드 슬라이드로 폴잼을 하고, 곡의 클라이맥스에서 오스틴 질렛은 폴을 완벽한 킥플립으로 넘어 버린다. 꼿꼿이 서 있는 기둥(Pole)은 마치 한물간 구닥다리 사상을 떠오르게 한다. 다음에 이어지는 킥플립-매뉴얼-월리 다운힐 라인에는 모든 잡념을 날려버리는 시원함이 있다.

라스벳의 노장 조셉 바이아스(Joseph Biais)로 다음 파트가 이어진다. “Me and the devil walkin’ side by side”라는 가사가 계속 흐르고 슬래피와 핸드레일 트릭들을 섞는다. 여기서도 그라인드 투 폴잼을 음악을 통해 강조하고 스위치 크룩과 노즈 블런트로 유려한 마감 처리를 했다. 이후 라스벳 친구들의 몬타지 섹션은 공연의 인터미션 같다. 음악 없이 단순하고 힘이 넘치는 트릭으로 채워지는데, 이러한 편집은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들의 정제되지 않은 모습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스케이트 산업의 본거지 LA로 향한 팀은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의 음악을 통해 미국이 탄생시킨 문화에 대한 고마움을 전한다. LA의 대표적인 스팟보다는 길거리의 갈라진 커브나 구석진 곳의 계단, 렛지 등을 타며 충분히 라스벳의 스타일을 드러낸다. 그리고 역시 노란색 기둥을 이용해 쉬프티한 백사이드 에어, 인디 에어를 통해 남성성을 숨기지 않는다. 또한 간지나는 매뉴얼, 플립 아웃 렛지 트릭들, 크룩같은 건 섬세한 몸동작으로 완성된다. 마지막 쿼터를 타고 다리 위로 올라가는 장면에서 이들의 겸손과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영상은 이제 라스벳의 간판 발 바우어(Val Bauer)의 파트로 접어든다. 파트 중간 잡히는 파운더 톨리야와의 투샷은 마치 스킨헤드를 떠오르게 하지만, 백인이 가진 인종 차별적 이미지는 틀에 박힌 생각일 뿐, 이들은 새로운 세대임을 상기한다. 여하튼 발 바우어는 다양한 프론트 노즈 바리에이션과 길거리 트랜지션 스팟을 타낸다. 루 리드의 “You wear it so well” 곡을 선택한 건 아마도 그에게 가해지는 전통적인 스케이터의 시선을 의식한 것처럼 보인다. 일종의 자기 비하와 존중을 동시에 하는 셈일 수도. 재밌게도 가사가 “You hide it so well”로 변주될 때 발 바우어의 폴잼이 등장하고, 액슬 크루이스버그(Axel Cruysberghs)-조쉬 폴(Josh Pall)-오스틴 질렛의 스케이팅이 이어지며 그를 감춰 버린다. 그의 복잡한 내면을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다시 기둥을 이용한 다양한 콤보 트릭이 이어지고, 폴과 스트릿 갭을 통해 립슬라이드를 성공해낸다.

스케이트 비디오에 있어 마지막 파트는 이야기의 결론, 즉 브랜드가 전달하려는 궁극적인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릴리안 페브(Lilian Fev)라는 스케이터의 개인사까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중성적 외모는 여전히 마초적인 세계에서는 압박받을 지도 모른다. 거기서 오는 화를 어떻게 스케이팅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하는 관점에서 파트를 지켜보았다. 초반 백사이드 플립으로 작은 막대를 넘은 후 한 여성이 등장해 멜로우한 50-50로 허바를 타낸다. 이후 노즈를 누르는 트릭과 보드 슬라이드를 활용한 트릭이 이어지고, 5-0 와 폴잼 그라인드로 이어지는 라인으로 꽃을 피운다. 캠브라이언(Cambryan) 등의 친구들이 그에게 힘을 보태고 아이디어와 스케일을 갖춘 트릭들이 계속된다. 좁은 렛지에 50-50를 위해 노즈를 잘라내는 장면은 브라이언 앤더슨(Brian Anderson)을 떠오르게 하기도. 파트는 길거리에서 불을 갖고 저글링을 하는 사람을 비추며 마무리된다.

라스벳은 이제 울타리를 넘었다. 블루로 상징되는 남성, 우울, 하늘 같은 키워드를 이용해 뻔한 메시지일 수도 있으나 잊고있던 뭔가를 일깨우는 비디오를 만들어냈다. 아마도 이들은 스케이트보드 세계에 새로운 분위기를 끌고 올 수 있어 보이고, 그것은 스케이트보딩에 풍성함을 더할 것이다. 발견되지 않는 지역이 갖는 그들만의 고유성은 언제나 매력적이고 강한 힘을 가졌다.

RASSVET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 | 오문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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