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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90년대 아프리카의 할리우드 영화 포스터

1970년대부터 90년대, 군부 독재 하의 아프리카는 대규모 오프셋(Offset) 인쇄물 수입에 대한 규정이 엄격했다.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것은 물론 영화 포스터였고, 이 시기에 아프리카(특히, 가나)에서는 유능한 화가를 고용해 할리우드 영화 포스터를 손으로 그리도록 했다. 이 그림 포스터를 관통하는 문법은과장이었다. 관능적인 영화는 더욱 섹시하게, 액션 영화는 더욱 박진감 넘치게, 이런 방식으로 영화 내용과는 관계없이 창의적이고 드라마틱한 작품이 탄생했다. 이 모든 것은 물론 관객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다.

그 당시 포스터 화가 중 한 명이었던 프렝크 알마(Frank Armah)는 아틀란틱(The Atlantic) 매거진을 통해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준 바 있다. 그가 극장 주인으로부터 받은 지령은 군더더기 없었다. ‘티켓을 최대한 많이 팔리게 그릴 것‘, 포스터를 그려야 할 영화조차 보지 못한 이 화가는 영화 카세트를 보거나 영화의 줄거리를 전해 듣고 그 위에 자신들의 상상력을 덧칠했다.

혹자는 이 그림이 기술의 쓰나미가 도래하기 전에만 가능했던 것을 보여준다고도 말한다. 밀레니엄과 함께 대형 포스터의 대량 인쇄가 너무도 쉬워졌고, 아쉽게도 더는 이 화가의 공들인 작업물은 보기가 힘들어졌다. 극장에 들어가기 전 이미 영화 줄거리를 대부분 알게 되는 요즘은 확실히 영화를 궁금해하거나 기대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일이 적어졌다.

지금 이 포스터는 조그마한 팝아트의 장르를 이룬다. 과거의 포스터 작가와 그들의 작업물은 영화와 상관없이 독자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미국과 유럽의 수집가, 아트 갤러리는 이 작업물을 수천 달러 선에서 거래하고 있다. ‘록키’와 ’매트릭스’, ‘에일리언과 프레데터 20~30년 전의 클래식한 할리우드 영화는 굳이 보지 않았어도 줄거리를 모르기 힘들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지 못한 채 상상하며 완성했던 포스터가 이제는 우리에게 더 새롭게 다가온다.

The Atlantic 공식 웹사이트 

황인혜
황인혜 / indigok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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