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스트로베리 사운드(Magic Strawberry Sound) 소속 아티스트 서사무엘(Samuel Seo)이 자신의 세 번째 정규앨범 [The Misfit]을 발매했다. 이는 그가 이전 소속사 크래프트앤준을 나와 이적한 뒤 발매하는 첫 앨범이기도 하며, 지난 정규 2집으로부터 3년 만에 나온 앨범인데, 전곡의 작사, 작곡, 코러스, 편곡, 악기 연주를 대부분 도맡았다.
본작은 자신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네오소울 장르를 연구한 서사무엘의 이해도에 기반해 탁월한 프로덕션을 완성했다. 전체적으로 곡은 산뜻한 분위기인데, 백 보컬이나 트랩 스타일의 하이햇 등의 다양한 세션이 디테일하게 추가되었다. 또한 이전에 스스로 랩도 보컬도 아닌 걸 하고 있다고 밝혔듯, 본작에서 그는 음절을 맛깔나게 배치하는 발군의 박자 감각을 선보인다. 현재 그의 포지션은 음가가 확실한 보컬이지만, 랩에서 착안한 듯한 플로우를 매끄럽고 유연하게 잘 섞어내고 있다. 여기에 그만의 개성이 담긴 꾸밈없는 가사로 위트를 줌과 동시에 생각해 볼 만한 메시지를 남기며 본작을 한 단계 높은 급으로 만든다.
첫 곡 “Breathe”부터 중첩된 보컬로 감흥을 일으키더니, 두 번째 “Misfit’s Anthem”에서는 인트로와 벌스까지 송가를 연상케 하는 중창의 백 보컬이 들어와 사운드를 풍성하게 한다. 여기에 부적응자를 뜻하는 ‘Misfits’의 선두가 되겠다며 본작의 메인 테마를 제시한다. “기계 갖다 비벼대는 세상이 싫어”라는 구절은 마치 리얼한 사운드로 채워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는 듯하다. “Notting Hill”은 흥겨운 리듬과 부드러운 기타 사운드, 후반부의 전자 기타가 자연스럽고, 벌스마다 달리 전개되는 플로우의 싱잉 혹은 랩-싱잉이 돋보인다. 훅이 상당히 멜로디컬한데, “기대 안 해본 것들의 역속이야”를 비롯한 가사 전반에서 그가 영화와 곡의 주제를 등치했다기보다는, 영화가 주는 ‘무드’와 ‘이미지’를 차용했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난다. 네 번째 “Olive Session”에서는 짧게 끊는 플로우의 싱잉-랩을 보여주는데, 실로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박자 감각이 번뜩여 문득 그의 시작이 빅딜 스쿼드 소속의 래퍼였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하게 한다. 말 그대로 ‘항상 속해있고 싶은’ 연희동의 친근한 모습을 묘사하는 트랙, “연희동”을 지나 여섯 번째 트랙 “Ice Cube” 속 재지한 브라스와 청아한 피아노 리드 속에서 화자는 얼음 조각을 통해 스스로 하루를 살아내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Coastal Wave”는 귀에 착 감기는 코러스로 일탈을 표현했는데, 중간에 드럼을 제거해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가 다시 돌아오는 구성이 인상적. 전반부는 풍경이나 물건 등의 소재를 묘사적으로 기술해 일상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상을 긍정적으로 노래했다.
그 이후부터는 제목의 소재가 ‘유형’에서 ‘무형의 것’으로 바뀌는데, 어조 또한 사색적으로 변한다. “8 8 3”은 밴드 사운드에 리버브가 있는 편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조금 작게 믹싱되어 작은 음 차이로 멜로디라인을 만드는 서사무엘의 센스가 돋보인다. 다음 트랙 “Something & Nothing”의 인스트루멘털은 드럼 비트 없이 오로지 기타만 존재하는데, 훅에서 자신은 항상 ‘Something’이 되길 원했지만 사실은 ‘Nothing’이었음을 말하며 회의감을 토로한다.
“Really That”에서는 “어차피 다 허전해”라며 청자에게 소유에 관한 사변적인 질문을 던지는데, 중반부에 짧지만 강렬한 디스토션 사운드가 나타나더니 이후에 비트의 박자와 서사무엘의 플로우가 살짝 따로 놀면서 곡에 긴장을 더한다. “Good Morning”에서는 재지한 베이스와 트랩 스타일의 빠른 하이햇 위에서 결국 나 자신을 살겠다고 선언하는데, 역시나 중반부는 흥겨운 비트로 바뀌며 새로운 감흥을 더한다. 특히 두 곡은 모두 훅에 이은 브릿지 뒤에 곡의 비트나 인스트루멘털을 실험적으로 변주해 곡을 환기하면서 묘한 긴장을 부여하한다. 내적이면서도 명확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밝히는 두 트랙에서 마치 심경의 변화를 표현하듯 리스너의 예측을 어긋나며 변화하고 다시 돌아오는 구성을 취하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부분.
앨범의 후반부에서는 마침내 사유의 방향이 자신이 아닌 타자, 자신의 외부로 향하며 청자에게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방향으로 사뭇 달라진다. 제목부터 네오소울을 대표하는 뮤지션, 디안젤로(D’Angelo)의 곡명을 직접적으로 오마주한 듯한 “Playaplayaplaya”에서 가성 처리가 매력적인 훅으로 마냥 돈을 벌고 자랑하고 싶어 하던 과거를 회고하며 20대의 자신을 타자화하며 물음을 던진다. “Ordinary Kids”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현재의 어린아이들에게 투영해 꿈은 학교가 아닌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거리에서 생긴다며 우려와 조언을 건넨다. “YI YU”는 소울풀한 힙합 비트인데, 훅에서 “We all got a reason to live ─ 우리에겐 각자 존재 이유가 있어 ─ “라는 가사로 사회가 정한 절대적 가치보다는 개성과 자기애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서사의 방점을 찍는 마지막 곡 “Misfit”에서 서사무엘은 하이햇이 강조된 비트 위에서 마침내 인간애와 자기 성취를 향한 의지를 보이며 아주 거대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후반부는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대화의 형식이면서도 자신의 성찰에 확신을 드러내는 태도로 메시지를 군더더기 없이 표현했다.
본작은 그저 루프를 돌리기보다는 다양한 세션을 통해 그루브를 극대화하고, 사운드 또한 현대적인 요소를 풍성히 첨가해 들으면 들을수록 느껴지는 감흥이 꽤 복잡다단하다. 앨범의 전반부에서는 제목에서 드러나는 소재의 이미지를 가볍게 ‘차용’하며 분위기를 조성하고, 후반부에서는 추상 명사 기반의 독특한 제목을 통해 리스너로 하여금 주제를 제목만으로 유추 혹은 예상하기 힘들게 구성해서 감상할 때 곡의 메시지를 곱씹을 수 있도록 의도했다. 곡에서 드러나는 각각 메시지나 분위기를 일관적으로 잘 정리한 치밀함이 인상적.
결국 총체적으로 본작은 서사무엘이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듯, 앨범이 4번 엎어지고 외장하드가 3번 날아가는 등 절망 속에서 얻은 ‘깨달음’, 즉 자신이 즐기는 순간, 소유의 부질없음, 인간의 나약함, 음악과 자아를 지켜내는 삶에 관한 깊이 있는 고찰을 적극적으로 전달한다. 네오소울이라는 장르에 적합하게 본작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분명 부드럽지만, 앨범이 진행될수록 곡의 요소가 긴장을 조금씩 유발하며 이에 맞춰 메시지를 꾸준히 전하려 한다는 점에서 보면 그야말로 외유내강의 음반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요소를 100% 알고 즐기지 못한다 해도 서사무엘이 주는 청각적 쾌감을 느끼는 데 결격은 없다. 어떤 감상을 표출하든지 결국 청자가 ‘자기애’를 잃지 않는 것이야말로 서사무엘이 의도한 바일 테니까. 그의 커리어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이며, 올해의 R&B 부문 최고의 앨범으로 감히 꼽기에 손색없다. ‘부적응자’를 향한 애정을 네오소울 장르에 한껏 담아낸 서사무엘의 여정에 동참해 보자.
영상 하단에 서사무엘과 나눈 간단한 인터뷰를 실었다.
Mini Interview
앨범 제목을 [The Misfit]으로 정했다. 본디 ‘부적응자’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인데.
항상 어딘가에 끼고 싶었다. 음악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그런데 살다 보니 생각보다 내가 겉도는 성향의 인간이고 무엇을 하든지 혼자 하는 게 즐겁고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즐길 때 행복하더라. 그런 심리를 반영해서 작업했다. 이전에는 ‘무엇이 좋을까’, ‘무엇을 해야 듣는 이들이 감동할까’라는 문제가 주된 목적이었다면 이번에는 온전히 내가 들었을 때 행복한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 처음으로 내가 나다울 수 있는 앨범이 필요했고 그렇게 탄생한 앨범이다. 제목 또한 늘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던 내 본연의 모습을 직관적으로 쓴 것뿐이다.
전작 [Ego Expand (100%)]와 비교했을 때 더욱더 부드러운 네오소울 및 언플러그드 사운드에 집중했다는 인상이다. 변화를 모색한 지점에 관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변화를 모색했다기보다도 자연스레 발전한 것 같다. 총 3년 정도 걸렸다. 이전에는 주어진 장비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이번에는 주어진 장비의 특성을 조금 더 이해하고 보유한 악기를 활용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고 그사이에 음악을 정말 많이 들으면서 어떻게 해야 그 음악을 따라 하지 않고 온전한 내 것으로 받아들일지 연습하다 보니 음악도 자연스러워진 것 같다.
본작이야말로 서사무엘의 색이 아주 뚜렷하게 드러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앨범을 만들면서 고민한 부분이라면?
두 번째 질문에서 언급했듯, 무언가 따라 하는 것보다도 온전히 나의 문화를 녹이는 데 집중했다. 사실상 비현실적이거나 와닿지 않을 이야기를 그려내며 자극점을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그런 모든 방법은 내가 아니었다. 온전히 내 음악을 하기 위해서 내 생활을 더 깊이 있게 담아낼 필요가 있다고 느꼈으며 그것을 느낀 뒤에는 내 삶과 내가 좋아하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즐기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서 사실상 흑인음악에 기반을 두고 작업을 하는 입장에서 문화의 오용에 관한 문제도 그냥 넘길 수 없는 부분이었다. 반복해서 언급하듯 따라하기는 너무나도 쉽다. 다만 그것을 나로 풀어내는 부분이 주된 해결 과제였던 것 같다. 그리고 온전히 음악이 내 것이 된 후 더 나아가서 한국인이 하는 네오소울을 당당히 세계에 드러내는 것이 목표다.
가사를 먼저 쓰고 그다음 작곡하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알고 있는데, 곡이 탄생하는 흐름을 간단하게 설명해줄 수 있을까?
최대한 살아가는 일에 집중한다. 단순히 반복되는 삶을 살기는 너무 쉽지만 그 반복 안에서 특별함을 찾는 게 그렇게 어렵더라. 그런데 그런 별것 아닌 사소한 행복을 지향하며 사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자연스레 일상을 기록하게 되고, 그러다 행복감을 느끼면 알아서 흥얼거리게 되더라. 그럼 그 흥얼거리는 노랫말과 멜로디를 녹음해두고 코드 워킹을 해둔다. 이렇게 초안이 나온다.
네오소울 이외의 다른 장르에서 본작의 앨범 혹은 트랙 단위로 영감을 얻은 레퍼런스가 있다면?
이전에는 트랙에서 영감을 많이 얻었다면 지금은 그냥 상황에 맞게 틀 수 있는 도구로서 음악을 듣는 편이고 트랙보다 사람에게서 영감을 많이 받는 편이다. 작업하면서 온갖 사람을 만났고 그들이 가진 가치관이나 그들이 자신의 업을 대하는 태도와 구체적인 방법을 음악과 연관 지으니 배울 점이 많았다. 오히려 음악을 벗어난 분야의 장인을 많이 찾아다니길 추천한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사운드 디자인 및 구성이 독특하다고 느꼈다. 예를 들면 “Really That”에서 훅에 들어가기 전에 나오는 디스토션 사운드와 아웃트로의 동양풍 스트링이라든지, 앨범 곳곳에서 트랙의 바이브를 조금 특이하게 만드는 세션이 인상적이었다.
사소한 시도다. “Really That”의 ‘Fill’ 소스는 그 안에 무슨 필을 채울까 고민하다가 안 나와서 그냥 내가 숨을 크게 들이마신 소스에 디스토션을 건 게 극적으로 다가와서 그냥 사용한 케이스고, 아웃트로에 사용한 코토의 경우 우리에게는 생소한 악기다. 그를 비롯한 앨범 곳곳에 재미있는 요소를 많이 넣었는데, 이전에는 존재 이유가 확실히 와닿지 않던 악기는 그냥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불명확한 존재로 느껴지는 악기를 사용해서 이들에게도 존재 이유가 명확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운드와 섞였을 때 돋보일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 싶었다.
다양한 악기 세션을 밴드와 함께 대부분 직접 연주하고 녹음했던데, 워낙 세부적인 세션이 많아 믹싱이나 마스터링을 할 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후반 작업은 본인이 어디까지 진행하는가?
오히려 혼자 95%를 끝내니 수월한 면이 더 많다. 모든 구조를 온전히 파악하고 있어서 디렉팅도 쉬웠고 믹스를 넘기기 전 전체적인 벨런스를 잡아서 원하는 방향을 뚜렷이 그려 놓고 넘길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던 것 같다.
앨범 커버에서 역시 돋보이는 점은 그 금색 가면일 것이다. 보이는 것과 달리 트래비스 스캇의 [Astroworld]와 비슷한 의미는 아닐 것 같은데, 어떤 뜻을 담고 있는가?
실제로 나의 얼굴을 본떠서 만든 실존하는 가면이다. 허영심만 가득 찼던 내 모습을 탈피하고 버린 뒤 온전히 나로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직관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진행 / 글 │ 강재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