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FIKA with [ION]

이온(ION)은 원자 또는 분자가 전자를 잃거나 얻어서 양 전하 혹은 음 전하를 띠는 원자나 분자를 이른다. 이온이 다른 원자와 결합과 분해를 반복할 때 전류가 만들어진다. 이런 점에서 마침내 아티스트로서 독립해 다양한 감정을 거치던 씨피카(CIFIKA)에게 이온은 꽤 매력적인 메타포였을 것. 다른 세계를 받아들이고 결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이온의 원리를 그 또한 따라가 새로운 세계와 결합하고 창조하며, 우리에게 전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데아와도 같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음과 양의 물질이 상호호환하는 세계. 전반적으로 몽환적인 일렉트로닉 사운드, 상승하는 탑 라인, 팝의 반복적인 가사와 훅은 이온의 끊임없는 상호작용과도 닮은 점이 있다. 그만큼 감정에 솔직해지고, 본인 자신도 많은 것이 바뀌었음을 느끼진 않았을까. 두려움을 뒤집고, 슬픔을 승리로 바꿀 줄 알게 된 인생의 기점. 감정의 근본을 연구하는, 과학자의 길을 따르는 아티스트 씨피카와 이에 관해 문답해 보았다.


우선 독립 후에 만든 첫 앨범인 점을 짚지 않을 수 없다. 회사에 소속돼 있을 때와 달리 작업 방식부터 일상에서까지 많은 점이 바뀌었을 거라는 예상이 든다. 동굴에서 혼자 작업을 주도적으로 해보는 기분이 어떤가?

본 앨범 작업에 들어가면서부터 외부 활동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나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드니 집중력과 몰입도가 굉장히 개선되는 것을 느꼈다. 주체적으로 모든 것을 계획하여 실행에 옮겨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의 효율을 위하여 시간 , 정신, 육체의 관리 또한 계획 안에서 움직이는 시스템을 도입해 보았다. 단순히 내가 몰랐던 새로운 방식으로 작업하고 활동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는데, 그런 욕구가 충족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말을 이렇게 안 하고 서울 한복판에서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느낌이 너무나도 좋았다. 창문만 열어도 낮에는 수백 명의 인파가 거리를 지나다니는 소리, 와인을 즐기는 소리, 낯선 이와 충돌하여 싸우는 소리가 내 귀에 들어온다. 하지만 창문을 닫으면 해야 할 일은 내 작업뿐이고 들어야 할 소리는 내 작업뿐인 시간이 행복했다. 물론 정 사람이 그리울 때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전화로 고독하다고 칭얼대기도 한다. 하하.

소속사가 있을 때 몰랐던 것 중 지금 가장 크게 와닿는 점이 있나?

유통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최근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음반을 정식으로 발매하려면 유통사 외에도 음원 등록, 크레딧 등을 명확하게 정리하여 저작권협회에 등록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음악가는 당연히 알고 있는 과정이지만 나는 이 모든 것들을 모른 채로 여태껏 음악 활동을 해왔다는 사실이 창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좋은 전략을 세워야 음반을 타겟에 닿게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부분은 온전히 마케팅/PR 부분의 일이지만, 한국은 이 홍보에 관련해 전문적으로 운영 중인 단체나 회사가 없다. 그래서 이러한 쪽을 가장 많이 배운 것 같다.

이전과는 달리 다양한 매체와의 인터뷰와 화보 촬영을 진행하고 있는데, 마음이 열리게 된 계기가 있다면?

나는 절대 혼자 만들고 혼자 발매해서 혼자 듣는 음악을 만들고 싶지 않다. 내가 만든 창작물을 많은 사람이 듣고 여러 분야의 예술가 또는 대중에게 영향을 주고 싶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나만의 방식으로 음악을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음악을 더 퍼뜨릴 기회가 만들어진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 마음이 열렸다기보다는 반 년 넘게 동굴에서 깎고 다듬고 붓질해 왔던 내 완성품을 더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는 일은 음악가의 아주 자연스러운 다음 플랜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괄목할 활동은 역시 ‘SXSW’일 것 같은데, 다녀온 소감을 들려줄 수 있을까?

앨범 발매를 앞둔 상황에 무리하게 다녀온 상황이라 사실 맘껏 즐기지 못했다. 공연 외 시간을 계속 호텔에 남아서 발매 관련 작업을 했고 공연은 잘 마쳤다. 음향 세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제대로 모니터링이 안 되다 보니까 살짝 패닉이 왔지만 좋은 크라우드 덕분에 잘 마쳤다. 발매 후 처음으로 선보인 신곡 라이브이기에 설렜고. 그리고 본인의 오토튠 장비를 흔쾌히 빌려준 머드 더 스튜던트(Mudd the Student)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스케줄을 소화하며 변화한 일상의 루틴도 있나?

딱히 없다. 물질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이 확보되면 아이폰 방해금지 모드로 최대한 혼자 고요히 나 자신으로 그 시간에 존재하려고 노력하는 것뿐.

앨범 이야기로 넘어가자. 제목 [ION]은 어떤 의미인지 설명을 부탁한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내 삶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때로는 – 의 성질을 띠고, 어떤 경우에는 +의 의미를 갖는다. 자신을 이온화된 물질이라고 생각하여 그렇게 지었다. 그리고 철자의 모양이 예쁘기 때문에 쉽게 결정했던 것 같다.

‘이온’으로 대표되는 천체와 물리 법칙, 양자 중첩 현상 등의 이론을 찾아보게 된 계기와 본인의 힘든 시기를 극복하는 과정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하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이벤트를 세상에 존재하는 물리 법칙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마음가짐에서 출발했다. 과학적 현상이 일어나는 데는 여러 가지 환경적이고 물리적인 요소가 얽혀서 일어나지만, 그 현상 자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과학자들의 태도는 아주 덤덤하고 어떤 면에서는 신성하게 느껴졌다. 나도 그런 태도로 내게 일어나는 일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그 사건을 토대로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크게 보면 인생에서는 좋고 나쁜 것은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각각의 이벤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그 사건을 안에서 소화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ION]을 만드는 데 영감을 받은 매체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다양한 매체가 있겠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게임 개발자 멜트미러(Meltmirror)가 여는 보드게임 모임에서 받은 경험도 있고, 가까운 친구와 지나간 시간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떠오르기도 했고, 몇 년간 이어진 법적인 소송 문제에서 큰 도움을 준 변호사의 목소리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그 어느 때보다 내게 연결된 인간들과 소통하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얻는 에너지를 영감으로 삼았다. 늦은 밤에 가끔 핸드폰을 울리는 친구의 문자에는 아름다운 시가 첨부된 경우도 많아서 그것도 내 가사에 유용하게 쓰였다.

친구와 뮤지션 동료들의 의견 또한 경청한다고 들었다. 과학적인 개념을 다루는 것만큼 연구물의 동료 평가를 받는 듯한 인상도 받는데, 어떤 친구들에게 어떤 영향을 받는지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내가 동료들에게 데모를 들려주면,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경우가 드문 편이다. 각자의 취향이 있고 거기에서 비롯된 의견을 나에게 전달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음악을 들었을 때의 인상 그리고 보강하면 좋을 점에 대한 의견을 주의 깊게 듣는 편이다. 친구들의 모든 의견을 다음 수정 때 적용하지는 않는다. 이번 앨범은 대중적인 방향성이 강했기 때문에 음악을 업으로 삼지 않는 가족, 친구들의 즉각적인 반응을 좀 더 염두에 두며 작업했다.

본 앨범에서 다루는 주제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동기 연설가처럼 들리겠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에 대한 에너지를 잘 담아내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다. 겪어보지 못한 고난은 반드시 인생에서 오기 마련이지만, 그 일에 철저히 준비해서 대응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지 않나. 닥친 고난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겨내 더 나은 존재로 태어날 힘, 에너지, 운동성을 표현하고 싶었다.

엔트로피의 변동이라는 규칙에 따라 역동적으로 흘러가는 구성임이 중요한 듯한데 앨범 내 곡의 순서 배치는 어떻게 생각한 것인지.

재밌는 질문이다. 엔트로피를 생각하며 트랙 리스트를 짠 것은 아니지만, 본작을 바다로 치면 가장 얇은 수면에서부터 아주 빠른 속도로 해저까지 파고 들어가는 초고속 잠수정이라 생각하고 짜봤다. 처음에는 빛의 반사를 받아 반짝거리는 조개나 생선이 생각나고, 트랙이 지나갈수록 어둠의 비율이 높아지고, 공기의 비율은 줄어드는 듯한 구성으로 말이다. 뒤로 갈수록 댄서블하거나, 강한 장르색이 떠오를 만한 곡들을 배치했다. 앞부터 그런 곡들이 나오면 좀 부담스러우니까.

다양한 감정에 따라 장르와 템포가 전부 판이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도 일렉트로닉 ‘팝’으로 스스로를 정의하게 된 계기가 있나?

이번 앨범은 인트로와 아웃트로를 제외하면 전부 구성, 멜로디, 리듬 측면에서 팝에 가까운 형태를 취하고 있다. 팝 가수가 아니고, 일렉트로닉 사운드 기반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메이저 팝과는 다르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아주 간단하고 반복 재생할 수 있는 곡의 비율이 높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Your Eyes”와 “Dark Quasar”, “Melody” 등 곡들의 스펙트럼을 봤을 때 작법부터 많이 달랐을 거라는 예상이 든다. 각 트랙의 물꼬를 튼 계기에 관해 기억나는 대로 알려 달라.

“Your Eyes”의 경우 가장 먼저 짧고 임팩트 있는 에프엑스와 베이스 샘플들을 프로젝트 곳곳에 배치했다. 그 후 빈 곳을 채우고, 코드를 올리고, 보컬을 녹음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Dark Quasar”의 경우는 드럼 비트에 취약한 나 자신을 인지하여 드럼과 인스트루멘털을 만든 후 브릴리언트(BRLLNT)에게 드럼 중점으로 편곡을 요청했고, 멜로디만 5번 정도 바꾸었다. 브릴리언트가 아주 무게감 있게 편곡을 해주어 마음에 드는 곡이다. 마지막 시도로 멜로디를 바꾸어서 친구 소피에게 들려주었는데 처음 버전으로 돌아가라는 요청이 있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여러 번 시도한 것들을 모두 날리고 처음 버전으로 돌아갔다. 하하.

마지막으로 “Melody”의 경우, TJ와 처음 만든 음악을 공유하다가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라와 있는 예전 곡들을 쭉 들어봤다. 너무 순수하고 틀린지도 조악한지도 모를 정도로 막 만든 그 음악들이 너무나도 예쁘고 그때의 시간이 그리웠다, 그래서 그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가 음악을 만들자 하고 에이블턴을 켜서, 건반을 치며 작곡했다. 그래서 기교나 복잡한 테크닉, 어려운 코드라던가 가공된 드럼을 의도하여 넣지 않았다.

본작의 모티브 대부분은 이온의 반응이 만들어내는 천체들로 이뤄져 있다. 본인에게 천체는 어떤 의미인가?

언젠간 소멸을 피할 수 없는 폭발하는 거대한 별 덩어리. 인간 개개인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본 앨범의 제목으로 쓰인 소재 중에서 가장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소재는?

가장 마음에 드는 제목은 “Reading your lips in the crowd”인데, 이 제목은 음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음악을 믹스 전 단계까지 완성하고 나서 몇 번을 반복하며 듣다가 이 ‘고요한 승리’의 감정을 어떤 제목으로 설명해야 할까 하다가, 수천 명이 모여있는 군중 안에서 멀리 보이는 한 사람의 입 모양을 읽으며 그 사람의 말을 알아차리는 장면이 떠올랐다. “Reading Lips(독순술)”라는 것은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 상대방의 입 모양을 보는 것만으로 뜻을 알아차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음악을 쓰게 된 이유는 우울감 속에서 각오하고 있던 실패가 기적적인 승리로 뒤바뀌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음악으로 풀었기 때문에 마땅한 제목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일 것 같은 상황을 만들어 이름을 붙여봤다.

본작의 모든 걸 통틀어서 아무래도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역시 “Hush”의 스타일리쉬한 의상이겠다. 곡에 맞는 코스튬은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 이야기해줄 수 있나?

소피라는 오래된 친구와의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나는 꽤 모던하고 아방가르드한 패션을 평소에 좋아하는데, 소피는 의상을 공부하는 친구이다 보니 창의적인 패턴이나 소재 등에 더 감명받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우리 둘의 교차점, ‘기하학적이고 실험적인 실루엣’을 만들어 내는 것에 관해 대화를 나누곤 했다. 소피는 여러 호스 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의상에 ‘독사마귀’라는 이름을 붙였고 시안을 공유하거나, 뮤비 프로덕션 팀과 소통할 때도 “독사마귀룩”으로 불렸다. 소피는 사마귀에서 모성애를 보았고 엄마의 사랑을 표현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던 게 기억이 난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씨피카와 조유선은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

요새는 정말 모르겠다. 씨피카와 조유선이 점점 끈끈하게 가깝게 결합하여 씨피카나 조유선이 아닌 양면의 내가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좋은 영화를 봐도 조유선으로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아 너무 아름답다. 내가 방금 느낀 이 감정과 감탄을 어떻게 다음 곡에 녹아 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모든 게 나의 다음 작품에 쓰일 연료/재료로 다가온다. 좋은 것이겠지만, 가끔은 인간으로서의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진지하게 나 자신에게 대답하고 싶다.

환경이 바뀌면서 본작을 통해 씨피카의 페르소나도 바뀐 것 같은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하게 되었다. 밖에서 나를 관찰한다면 이기적이고 폐쇄적으로 바뀌었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항상 모자라는 건 어쩔 수 없다.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는 한 앞으로도 이렇게 이기적으로 생활할 것 같다.

음악과 별개 질문으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요즘은 휴식할 때 어떻게 재충전을 하는가?

휴대전화를 멀리 두고 친구들에게 추천받은 영화를 보거나, 모자를 눌러쓰고 3시간짜리 긴 산책을 한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산책이 너무 좋다.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고, 지루하다 싶으면 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중간에 목이 말라서 물을 들이킬 때의 기분도 너무 좋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집을 떠난 휴양 같은 여가를 즐기기엔 모든 것이 촉박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가장 시간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효율적인 독서와 영화 감상을 하는 편이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음악을 듣는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렇게 음악으로 또 만나는군요. 이번 앨범은 여러 번 반복할 수 있도록, 부담스럽지 않은 곡들로 많이 채웠습니다. 다음 앨범은 몸을 뒤로 젖힌 채로 눈을 감고 들을 때 좋은 앨범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저를 지배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CIFIKA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강재욱
Photographer│강동우
Stylist│윤소피
Hair│가베
Make up│최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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