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bela)를 처음 본 순간을 기억한다. 지금은 사라진 이태원의 클럽 트리피(Trippy)에서 해체주의적인 음악, 다소 난해한 선곡을 바탕으로 플로어를 쥐락펴락하던 모습. 그런 벨라를 다시 접한 것은 트리피 후로 불과 4개월이 지난 2019년 12월, 그의 앨범 [why are you so lost sweetie]이 발매될 때다. 트리피에서의 선곡에 반하는, 유순하며 차분한 음악을 제작한 것에 크게 놀랐다. 더 놀라운 것은 앨범 [why are you so lost sweetie]이 군 복무 시절, ‘onlinesequencer.net‘이라는 간단한 미디 시퀀서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제작했다는 점.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중에도 음악을 놓지 못한 성실한 벨라. 그런 벨라의 행보를 주목한 ‘헬리콥터 레코즈(Helicopter Records)’의 유일한 직원은 2019년 크리스마스, 벨라에게 그간 작업한 음악을 선물로 받았다고. 예측컨데 그 역시 벨라의 잔잔한 내면을 확인했으리라. 직원은 벨라가 지닌 또 다른 이면에 작게나마 놀랐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20년, 이윽고 헬리콥터 레코즈는 벨라가 혼란의 2020년 동안 제작한 두 장의 EP [to resonate in a universe], [Relict Knowledge, Was It You, The Crook?]을 묶어 [2020]이란 이름의 테이프로 발매하기에 이른다.
명쾌한 질감의 아르페지오가 얼기설기 얽혀 때묻지 않은 순수를 거룩하게 담은 일지 두 장 [2020]. 헬리콥터 레코즈는 벨라의 음악이 어떤 장르에 속하는지, 어떤 악기를 사용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곡을 만드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또한 벨라는 2020년 작업물에 실마리를 다음과 같이 주고 있다. “별 의도가 없다고 해도 좋아요. 일지며, 기록 같은 것들이니까요. 제 생각과 감정을 처리하는 방식이 소리 안에 자연스럽게 넘쳐흘러 있지 않을까요?”.
[2020]은 2020년 12월 31일, 150장 한정 테이프 포맷으로 최초 공개됐다. 한편 테이프를 소장했지만, 확인이 어려울 이들을 위해 2021년 1월 29일엔 모레코즈(MOrecords)를 통해 온라인 디지털 음원으로 유통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