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운동가 그리고 아이콘을 넘어, Vivienne Westwood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 BTS 정국의 주제가 “Dreamers”, “헤어질 결심”의 칸 국제 영화제 수상, 엘리자베스 여왕의 서거, 아베 총리 피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그리고 강남 침수 피해와 이태원 핼러윈 참사까지. 활짝 웃기도, 조용히 눈물을 훔치기도 하던 2022년의 막바지, 또 한 번 가슴 아픈 소식이 전해졌다.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가 2022년 12월 29일, 그의 나이 81세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다.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에 이어 현대 패션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또 하나의 별이 진 것이다.

영국의 기성세대에 저항하는 반항아에서 패션 디자이너, 환경 운동가를 넘어 작위 훈장까지 수여받으며 명실상부 영국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된 비비안 웨스트우드. 결코 짧지 않았던 그의 일대기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차근차근 따라가 보자.

비비안 웨스트우드, 펑크의 시작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본래 이름은 비비안 스와이어(Vivienne Swire)이다. 하지만 첫 남편과의 이혼 후에도 그의 성을 버리지 않고 사용하여 그 유명한 지금의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되었다. 이후 로큰롤에 심취한 말콤 맥라렌(Malcom McLaren)을 만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그와 함께 본격적으로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패션 하우스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

비비안과 맥라렌은 1970년까지 킹스로드 430번지에 위치한 ‘미스터 프리덤(Mr. Freedom)’의 한 켠에서 옷을 만들고 판매했다. 이듬해, 미스터 프리덤을 전부 인수받은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말콤 맥라렌은 그들만의 패션 하우스를 설립한다. 대부분의 패션 하우스는 디자이너의 이름으로 부티크와 브랜드 이름까지 통일하기 마련. 그러나 비비안은 남들과 달랐다. ‘LET IT ROCK’, ‘too fast to live, too young too die’, ‘SEX’, ‘Seditionaries’ 등 마치 컬렉션의 이름을 짓듯 새로운 옷을 발표할 때마다 가게의 이름을 바꿨으며, 그와 동시에 매장의 내, 외부 인테리어까지 전부 새로 다듬으며 한계를 허물고 스스로를 표현했던 것이다.

하지만 런던은 이를 호락호락하게 인정하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고무 옷을 입자”는 슬로건과 실제 라텍스를 소재 삼은 패션이 당시의 사회적 관념으로는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른 그들에게 당대 청년들은 열렬한 지지와 환호성을 보냈다. 특히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고슴도치 머리가 유행을 선도했으며, 각종 신문에서 비비안과 말콤의 행동을 보도했다. 비비안은 한 다큐멘터리에서 “이것을 마케팅의 기회로 삼았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패션에 대한 열정과 반항 정신, 말콤 맥라렌의 음악과 예술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인맥을 통해 그들은 밴드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의 스타일링까지 담당하게 되었고, 이로써 두 사람은 본격적인 펑크 패션의 문법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성적 페티시를 암시하는 본디지, 나치 문양, 죄수나 정신 병동의 구속복 등 반항적인 요소들을 옷에 적극적으로 차용했다.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펑크의 저항 정신을 시각적으로 보여준 것. 더불어 영국의 전통 의상에서 영감을 받은 체크 패턴은 브랜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물론, 펑크 패션의 상징으로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서브컬쳐에서 메인 스트림으로

1980년대, 파리에서 정식으로 쇼를 시작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패션과 문화, 어느 분야 하나 가릴 것 없이 역사적인 순간들을 여럿 만들어냈다. 1981년, 첫 컬렉션 ‘Pirate’에서는 해적을 모티프로 모자, 부츠, 부푼 소매 상의 등에 채도 높은 컬러와 화려한 패턴을 더해 뉴 로맨티시즘을 이끌었는데, 이는 당시 청교도의 금욕적 시대정신이 만연해 있던 영국에는 더할 나위 없이 충격적인 시도라 할 수 있다.

1986년 봄/여름 컬렉션 ‘Mini-Crini’에서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유행했던 크리놀린을 짧은 스커트와 결합하여 선보였다. 당시의 미니스커트는 그전까지 금기시되던 여성의 노출을 허용한다는 맥락에서 ‘여성 해방’이라는 사회적 함의를 가지고 있었는데, 크리놀린 또한 다리를 휘감으며 움직임을 방해하던 기존의 드레스에서 여성들을 탈피시키며 그들의 거동에 자유를 주었다는 점에서 두 의복을 결합한 것은 꽤나 상징적인 움직임이었다. 뒤이어 발표한 가을/겨울 컬렉션 ‘Harris Tweed’에서는 이러한 실루엣의 스커트에 영국 왕실의 왕관과 케이프 등의 요소를 매치하며 도발적인 붉은색의 트위드재킷, 부스러기 천으로 만든 여왕의 관, 가짜 모피 소재의 케이프를 통해 ‘영국적인 것’에 대한 애정을 가볍고 위트 있게 드러냈다.

1990년 가을/겨울 컬렉션 ’Portrait’에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18세기 프랑수아 부셰(Francois Boucher)의 회화 ‘다프니스와 클로에(Daphnis and Chloe)’를 프린팅한 코르셋을 통해 기존의 키치하고 발랄한 감성보다는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무드를 표현해낸 것. 지난 2021년에는 비비안 스스로가 복각했을 정도로 해당 피스는 현재까지도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스타일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로코코 스타일의 회화와 함께 모델이 착용한 굵은 진주알의 멀티 레이어 목걸이 역시 우아함과 장식적인 아름다움을 더하며 펑크족들의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아이템이 되었다.

해당 컬렉션 이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안드레아스 크론탈러(Andreas Kronthaler)와 함께 영국의 테일러링과 프랑스의 과장된 장식을 혼합한 새로운 패션을 선보인다. 이를 대표하는 컬렉션 바로 1993 가을/겨울 컬렉션 ‘Anglomania’. 보랏빛 체크 패턴의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피날레를 장식한 케이트 모스(Kate Moss)는 이후 비비안과 함께 수많은 컬렉션을 함께하며 당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 컬렉션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과장되게 높은 플랫폼 힐을 신고 워킹하던 나오미 캠벨(Naomi Campbell)이 캣워크에서 넘어진 사건. 나오미 캠벨은 그 자리에서 웃어버렸고, 현재까지도 그의 ‘베스트 모멘트’로 두고두고 회자되는 중이다. 여담이지만, 이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한 인터뷰에서 캠벨이 넘어지는 모습이 가젤같이 아름다웠다며 만족감을 내비쳤다.

변하지 않은 저항 정신, 환경 운동가 비비안 웨스트우드

2000년대에 들어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본인의 사회적, 정치적 사상을 패션에 녹여냈는데 그 대표적 사례가 2005년 가을/겨울 컬렉션 ‘Propaganda’다. 해당 컬렉션에서는 ‘Propaganda’라고 볼드하게 레터링 된 슬로건을 온몸에 두르고 ‘Branded’라고 쓰인 밴드를 머리에 두르기도 했다. 이 컬렉션을 기점으로 비비안에게 패션은 단순히 치장을 위한 도구도, 외부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용도도 아니었다. 패션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표현하는 미디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2012년, 비비안은 직접 ‘기후 혁명(Climate Revolution)’을 선언하고 과소비와 기후 변화에 대항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2013년에는 그린피스 대사로 임명되기도 했으며, 2015년에는 환경 오염을 가속하는 난개발에 반대하며 런던의 총리 관저에 탱크를 타고 돌진하는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2021년에는 직접 ‘The Vivienne Foundation’을 설립해 환경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다. 2000년대에 들어 비비안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더 이상 무정부주의를 외치며 고슴도치 헤어스타일을 하고, 나치 문양의 티를 입은 모습이 아니었다.

패션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움직임, 그것이 이 시기의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대표하는 스타일이었다. ‘Don’t Get Killed’라는 타이틀을 내건 2018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는 일종의 선전포고를 하기도 했는데, 파괴를 상대로 한 평화주의적 전쟁에 동참하라는 것이었다. 전쟁을 키워드로 한 컬렉션답게 카모플라주 패턴과 군복의 요소를 차용한 디자인이 속속 등장했다. 특히 깃발처럼 나풀거리는 플레잉 카드 한 장, 한 장에도 직접 손으로 쓰고 그린 정치, 경제, 빈부격차, 과소비, 환경에 관한 메시지를 담으며 눈길을 끌었다.

2019 가을/겨울 레디 투 웨어 컬렉션 역시 그의 변하지 않는 목소리를 들려주는 자리였다. 그린피스의 회장 존 사우벤(John Sauven)과 할리우드 미투 운동을 이끈 로즈 맥고완(Rose McGowan)이 캣워크에 올랐기 때문. 모델이 입은 티셔츠의 앞면에는 “우리는 소비를 위해 영혼을 팔았다”, “너는 네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생각하지” 등의 도발적인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심지어 캣워크를 걷는 이들 중 몇몇은 직접 마이크를 들고 소비 지상주의와 환경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쇼를 통해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과거 ‘펑크’로 대표되던 그것이 아닐지언정 그의 영혼은 여전히 기존의 체제를 부수는 ‘펑크’임을 증명해냈다. 개인의 신념과 가치관, 개성을 드러내는 패션의 새로운 역할을 몸소 보여준 셈이다.

펑크와 뉴 로맨티시즘의 문법을 정립하며 두 사조의 부흥을 이끌고, 평생에 걸쳐 소비되기 위한 패션이 아닌 미디어로서의 패션을 지향했던 비비안 웨스트우드. 그를 단순히 디자이너, 환경운동가 등 그저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까.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한 그를 뭐라 지칭해야 할까?

1981년 첫 컬렉션을 발표하며 매장 이름을 ‘World’s End’로 변경한 이래,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이를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매장의 이름처럼, 우리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다 그가 이 세상의 끝에 마침내 당도했다고 믿는 편이 좋을까. 그렇지만 늘 새롭고 혁신적이었으며 세상을 떠나는 그 마지막까지 변화를 거듭했던 그이기에, 급변하는 세상일지라도 너무 이른 죽음을 맞이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too fast to live, too young to die). 온몸으로 펑크를 살아낸 비비안 웨스트우드. 그는 비비안 웨스트우드 그 자체로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Vivienne Westwood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이미치 출처 | Vivienne Westwood, VOGUE RUNWAY, VOGUE BRITISH, The Guardian, 비비안 웨스트우드-펑크, 아이콘, 액티비스트

김소라
Visual.... something...☆〜(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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