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기(少年期). 어린아이의 단계는 지났으나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시기를 일컬으며, 일반적으로는 12세부터 20세까지를 아우른다. 사춘기와도 일맥상통하는 이 시기를 되돌아보면 어쩐지 부끄럽다. 들끓는 에너지에 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격은 탐탁지 않아 방황하기도 하고, 미숙한 감정으로 혼란스러운 시간이 많다. 그때의 사진이나 일기는 한동안 들춰보지 못하다, 겨우 한 사람 역할 하는 성인이 되어서야 귀엽게 바라볼 수 있으려나. 당시는 몰랐지만 더 많은 사진을 남기지 못한 걸 아쉬워하기도 한다.
도쿄 기반의 포토그래퍼, 후지바야시 아야나(Fujibayashi Ayana)는 남동생의 사진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동생의 소년기를 4년이 넘는 시간동안 사진으로 차곡히 남기며, 이를 담은 사진집 ‘Brother Nostalgia’를 출간했다. 다른 설명 없이 오로지 남동생 사진으로만 96페이지를 채운 이 사진집은 돌아오지 않는 시기가 지닌 순수함, 그리움, 그리고 피사체를 향한 가족애를 담고 있다. 작가에게 사진집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 그리고 포토그래퍼이자 한 명의 누나로서 가족을 기록하면서 든 생각을 물었다. 소년기뿐만 아니라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아쉬운 이들에겐 큰 힌트가 될 것.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도쿄 에비스에 위치한 코마(Koma) 갤러리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는 후지바야시 아야나라고 한다. 2021년에 처음 진(Zine)을 제작하면서, 이후 진 제작에 중독됐다. 지금까지 제작한 진은 9개 정도. 최근엔 ‘브라더 노스탤지어’를 포함해 그동안 만든 진을 들고 갤러리 멤버들과 함께 서울에서 열린 UE15에 참가하기도 했다.
최근 제작한 ‘브라더 노스탤지어’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브라더 노스탤지어’는 남동생의 중, 고등학교 시절을 담은 사진집이다. 본편 ‘브라더 노스탤지어’와 부록 ‘Lovely Things’, ‘From iPhone’ 그리고 1개의 책갈피로 구성된다. 참고로 책갈피 속 아기는 1~2살 때의 동생이다. ‘Lovely Things’는 그가 유치원 시절에 만든 작품을, ‘From iPhone’은 아이폰으로 찍은 (비교적 최근의)동생 사진 모음집이다.
언제부터 남동생을 찍기 시작한 건가.
가족이니까 오래전부터 자연스레 남동생을 찍고는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찍은 시기를 말하자면 사진 전문학교에 입학하고부터라고 할 수 있다. 처음 필름 카메라를 접하면서 35mm 필름 단렌즈 반사식 카메라와 콤팩트 카메라로 가족 구성원을 찍기 시작했다. 그 당시의 동생은 중학생이었고, 나는 ‘사진’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었다기보단 단순히 주변을 찍는 행위 자체에 매료되어 있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된 동생과 여전히 중학생에 머물러있는 사진 속의 그를 겹쳐 보게 되었을 때 느꼈다. ‘조금 어른이 되었구나’하고. 이 프로젝트를 생각했을 때 이미 동생은 소년기를 어느 정도 지나있었지만, 그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건 지금뿐이니까. 마치 아이의 성장을 기록으로 남기는 부모의 마음과 같달까. 이후 4년 정도 남동생의 그림자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카메라를 나의 두 번째 눈 삼아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탐욕스럽게 담았다.
잔소리를 듣는 모습이나 씻고 나온 직후, 잠을 자는 등 사적인 순간도 꽤 담겨 있다. 이런 부분까지 찍힌 것에 대한 남동생의 반응은 어땠나.
그가 중학생일 땐 종종 카메라를 향해 장난도 치면서 나름 찍힌다는 사실을 즐긴 듯하다. 다만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선 조금 귀찮은 듯이 보였다. 그래도 동생은 항상 나의 어리광을 받아줬다. 사진을 찍지 말라는 얘기도 거의 하지 않았다.
예상보다 과정이 훈훈했던 것 같다. 남동생을 아끼는 누나로서 애정하는 사진을 꼽는다면?
사진집의 뒤쪽 커버 사진. 이 사진과 함께 기억에 남는 사진이 있다. 중학교 저지를 입은 채 뒤로 고개를 빼꼼 돌려 나를 바라보는 동생의 사진인데, 이후 고등학생이 된 그는 절대 뒤를 바라보지 않았다. 난 예전처럼 뒤로 돌아봐 주기를 기대했는데. 그 당시엔 이 변화가 조금 쓸쓸하게 느껴졌지만, 그가 점차 어른으로 변해간다는 사실에 안도했던 기억이 있다.
수년간 찍은 동생 사진을 사진집 한 권으로 편집하는 과정에선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사진들을 모아 진을 만들게 됐을 때, 수년 동안 찍어온 시간을 마주하게 됐다. 덕분에 지금의 나는 볼 수 없는, 당시의 어린 남동생을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사진이 지닌 다큐멘터리적 성향을 체감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사진집에 포함된 부록이 방금 얘기한 다큐멘터리적 성향을 더욱 부각해 주는 듯하다. 부록은 어떤 관점으로 제작했나?
그가 유치원에서 만든 작품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 나는 그것들이 남동생의 중요한 일부처럼 느껴졌다. 그가 어릴 땐, 나도 어렸기에 사진을 찍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어린 동생의 작품을 모은 ‘Lovely Things’는 그 시절의 남동생을 마주하는 기분을 준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휴대폰으로 가족과 친구를 찍듯 우린 지금도 사진을 남기고 있다. 물론 카메라를 들고 그를 따라다니던 시절에 비하면 많지 않지만. 그렇게 최근에 찍은 사진을 모은 게 ‘From iPhone’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이 사진들까지 보여 주게 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브라더 노스탤지어’ 전후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그리고 여전히 이어지는 동생을 향한 마음을 전하고자 제작했다.
남동생이 성인이 되고 자연스레 프로젝트가 종료됐다고 들었다. 그 사실이 아쉽지는 않았나.
아쉽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의 역할을 다했다고 느껴서 후련했지. 내가 사춘기를 보낼 땐 이렇게 많은 장면을 남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동생이 어른이 되기까지의 섬세한 시기를 기록해냈다는 것 자체가 가족이자, 누나로서 역할을 다했다고 느낀다.
그의 이름도 모르지만 어쩐지 친해진 기분이 드는데, 동생은 잘 지내는가?
동생은 올해 2월 23살이 되었고, 현재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 여전히 사진에 나온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마치고, 포토그래퍼로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자신에게 솔직하고, 그 순간에 찍고 싶은 것을 찍는 게 사진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 ‘브라더 노스탤지어’에는 전형적인 가족사진에선 없는 찰나가 담겨있다. 한 사람의 성장 변화, 남동생의 감정뿐만 아니라 나의 감정, 그와 나의 관계도 엿볼 수 있다. 사진을 찍을 땐 이렇게 편집을 많이 해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지금 되돌아보면 그 자체가 더 좋은 결과로 이끌어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사진집을 마주할 이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어디에나 흔히 볼 수 있다고 생각되는 ‘평범한 가족’들도 그 안에 저마다의 독특한 이야기가 있다. 이 사진집을 통해 가족과 친구들을 떠올릴 수 있길 바란다.
이미지 출처 | Fujibayashi Ayana, Koma gall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