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의 진 도서관 #7 ··· 31/28

바벨의 진 도서관은 총 7회의 시리즈를 통해 31인에게 어떤 진을 좋아하는지 묻고 자신이 만든 진이나 좋아하는 진을 기부받았다. 그렇게 모인 진들은 제각각 형태와 내용은 다르지만 제작자의 자아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다. 참여자들은 직접 자신의 욕망을 직·간접적으로 투영하는 진을 만들기도 하고, 동시에 그러한 태도를 가진 진들에 매력을 느꼈다.

예견된 결과였을지도 모르겠지만 해당 기획을 통해 진을 ‘네트워킹’이나 ‘실천’과 같은 범주로 좁혀, 그와 비슷한 것을 발견하길 내심 바랬던 기획자의 얄팍한 기대는 ‘맥락’이라던가 하는 큰 개념으로 확장되기보다는 도서관에서 우연히 재미있는 책을 발견한 정도의 반가움으로 종결된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도서관에 기대했던 바가 아니었을까. 그런 반가움을 만난 이가 기획자뿐만이 아니었길 바라 본다.

*보르헤스의 ‘픽션들’에 수록된 ‘바벨의 도서관’과 작가가 29인의 글을 시리즈로 엮은 동명의 단편선에서 제목과 형식을 차용해 총 29인에게 답변을 받으려 했지만 뒤늦게 답변이 취합되거나, 보다 다양한 관심사의 참여자를 포용하고자 31인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긴 여정을 함께해 준 참여자 31인과 읽어주신 독자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장지원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장지원, 저서 소풍 시리즈 기획/촬영/작문/제작을 하였으며 현재 ‘Re-wind’라는 카세트테이프 형식의 OST가 포함된 책을 기획/촬영/제작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사진 촬영 / 비즐라 매거진 프리랜서 에디터로 인터뷰/촬영/기획 기사를 작성하는 활동도 합니다.

진 제작자 / 수집가인가?

둘 다입니다.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아끼는 진, 또는 주변과 주고받은 진이 어떤 것인지 소개해달라. 

가장 아끼는 진은 2017년 권용만이 그리고 신도시에서 발행한 노고산 A입니다. 예전 신촌 노고산동에서 있었을 법한 사연을 만화로 그렸는데 3CF를 만들고 만화를 그렸던 권용만의 날카로운 블랙코미디가 상당히 재밌습니다. 이제 밤섬해적단을 포함한 밴드도, 만화도 그리지 않고 은퇴한 그의 작품이기에 더 애장 합니다.

소개한 진이 제작된 배경을 알고 있나?

약 2005-6년경 신촌에 펑크들이 살던 집이 있었고, 당시 펑크들은 아나키즘, 행동주의, 비건 등을 받아들이며 진지하게 사회변화를 꿈꿨습니다. 그 당시에는 거의 아무도 그런 것들을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무언가를 차별하지 않으면 차별받았던 시대에 이들은 차별하지 않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 시기 그곳에서 일어났던 웃긴 에피소드들이 참 많았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리고 한 발자국 멀리서 보면 꽤 신선한 충격과 웃음, 그리고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일들인데 이런 에피소드들을 저자가 신명 나게 그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진의 작가도, 저도 진의 내용에 나온 공간과 사건 옆에 있던 가장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조금 각색한 것이 보이지만 10년이 넘게 지나 잊어가는 이야기를 이런 만화로 보는 것은 글쎄요… 꽤 여러 가지 감정이 들게 하더군요. 물론 겁나 재밌고요.

본인이 제작한 진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저는 진이라고 불리는 매체 그리고 기성 도서 모두를 아울러 종이 매체, 동시에 공예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공예로 기능하고자 하는 실험을 해왔습니다. 옛 추억 속 신기한 물건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소풍 시리즈 역시 이 맥락인데요. 소풍 1호는 혼다의 특이한 미니 바이크 몽키 바하에 관해, 소풍 2호는 게임기 네오지오에 대해, 소풍 3호는 타미야 미니카에 관해 제작하였답니다.

주변과 진을 나눠 본 경험이 있는가?

네. 주로 제가 받는 쪽입니다.

당신이 아는 진 제작자 또는 진 애호가를 한 명 이상 소개해달라. 

북소사이어티 임경용 대표님, 서울컬트

진과 진이 아닌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이제는 사실 구분이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몇십 부 손으로 만든 진과 대형출판사에서 수만 부 찍어내는 책은 다르긴 하지요. 하지만 결국 저는 큰 맥락에서 종이로 만든 공예품이자 놀이, 아날로그 출판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진 문화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써달라. 

너무도 많은 진의 내용물이 진에 관한 것입니다. 특히 진의 역사와 같은 진에 대한 담론은 제 입장에선 퍽 지겨워요. 그저 더 재밌고 좋은 출판물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진정성은 유지하되, 조금 더 고민하며 진이라는 이름에 갇히지 않았으면 합니다. 독립영화나 인디음악 같은 이름의 프레임에 갇히게 되어 더 힘을 발휘하지 못할 때도 있는 것처럼요. 물론 대안이 별로 없어 보인다고 너무 상업적으로 돌아서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저 우리 어렸을 적 교환일기를 쓰고 낙서를 하며 재밌었던 것처럼 가지고 놀듯이 편하게 즐기면 좋겠습니다.

심경식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기프트샵 가스스테이션 부운영자 심경식입니다.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아끼는 진, 또는 주변과 주고받은 진이 어떤 것인지 소개해달라. 

아끼는 진은 아니고 좋아하는 아티스트인 레이먼 패티본의 작품이 담긴 진을 좋아합니다.

소개한 진이 제작된 배경을 알고 있나?

1982년부터 2011년까지 여러 작품 중 몇 개 셀렉한 진입니다.

소개한 진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

실물사이즈는 아니지만 인터넷으로만 보던 작품을 작은 진으로 소장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요.

당신이 아는 진 제작자 또는 진 애호가를 한 명 이상 소개해달라. 

서울컬트 형님이요. 멋진 분이에요.

진과 진이 아닌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내가 만든 진과 내 친구가 만든 진이 다른 것처럼 구분되기보단 다른 것 같아요…

여태 진의 매력이라고 알려져 온 것들은 배제하고 다시 새롭게 생각해 볼 때, 당신이 생각하는 진의 매력은 무엇인가?

소장하기 편한 작품인 것 같아요.

진 문화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써달라. 

다들 열심히 준비해서 하는 것이니 한번 보고 지나치지 말고 마음에 든다면! 구매해 주신다면! 더 좋은 진이 나올 것으로 생각됩니다.

깃발옆차기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깃발옆차기, 이태원 참사 이후 진을 만들고 있는 콜렉티브

진 제작자 / 수집가인가?

진 제작자입니다.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아끼는 진, 또는 주변과 주고받은 진이 어떤 것인지 소개해달라. 

멤버 중 한 명은 일정으로 인해 제대로 진에 대해 공유하지 못했고, 한 명은 진을 모은 것이 없다고 합니다. 수집한 진은 모두 멤버 중 한 명의 것입니다. 물어보니 딱히 아끼는 진은 없다고 하네요.

소개한 진이 제작된 배경을 알고 있나?

‘kebab after drink’ vol 1,2입니다. 이태원 참사 이후 다른 방식의 애도에 대해 우회하며 이야기하는 진입니다. 오대리의 바이오런스는 가사집으로 제작되어 산 것. 나머지는 잘 모름. 지인이 팔아서 구매하거나 한 것.

주변과 진을 나눠 본 경험이 있는가?

만든 진 제외하고 직접 나눈 적은 없습니다. 지인이 만든 진을 구매하거나 받은 적은 있습니다. 대부분 지인의 것인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당신이 아는 진 제작자 또는 진 애호가를 한 명 이상 소개해달라. 

@smalltunepress. 아는 분을 통해 전해 들었는데, 홍콩의 진 메이커라고 들었습니다. 진을 팔거나 무료배포하지 않고, 물물교환으로 교환한다고 하더라고요. 진의 형식도 흥미로웠습니다(공테이프를 표지로 만든다거나 하는 하나의 작은 예술품 같은 수제 작업). 홍콩의 현재 정치적 상황과 연결된 정치적인 성격의 진들을 만드시는 것 같습니다.

진과 진이 아닌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애매모호하다고 생각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가벼운 물성, 쉬운 제작과 유통경로, ISBN 없음, 독립출판물에 가깝지만 형태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음.

여태 진의 매력이라고 알려져 온 것들은 배제하고 다시 새롭게 생각해 볼 때, 당신이 생각하는 진의 매력은 무엇인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유통 가능한 점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진 문화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써달라.

콜렉티브 작업을 하면서 일종의 예술 매체로써 진을 대하게 되었지만, 진의 얇은 물성과 넓은 포용성, 형식을 덜 구애받는 점에 점점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양한 진들이 한국 내에서 좀 더 자유롭게 교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서재덕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이것저것 하는 서재덕이라고 한다. 사실 나는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잘 몰라 소개하는 게 어색하다.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아끼는 진, 또는 주변과 주고받은 진이 어떤 것인지 소개해달라.

박두현-Question / 사람들은 보통 생채기가 나면 밴드를 붙이거나 연고를 바르곤 한다. 하지만 세트 디자이너인 박두현은 식빵을 얹는다. 이렇듯 상업 사진계에서 통용되던 세트와 오브제의 어법에서 벗어난 그녀를 꽤 오래 멀리서 지켜봤다(물론 거만하게 팔짱 끼고 본건 아니고, 팬의 입장에서 말이다). 그런 그녀가 조형과 구성에 대한 습작 또는 연구를 담은 진을 발표했다고 한다. 이번 진 역시 예기치 못한 상상력으로 우리 마음속 생채기를 보호해 준다고 한다.

조희진-煙 / 아주 오래전 East Smoke라는 이름 아래 발표된 도예 작품들을 처음 봤었을 때가 생각이 난다. 인류가 처음 불을 발견했을 때의 감정이라 하면 과장이겠지. 하지만 필자에게는 그에 준하던 충격이었고, 언제나 영감의 원천이 궁금했다. ‘Smoke’ 또는 ‘연기’라는 주제로 그녀가 수집해 온 이미지를 아카이빙 한 구성의 진이다. 어떠한 부가적인 요소 없이 아카이빙에 충실해 보이는 그녀의 진. 하지만 이면에는 표현법부터 심미적-미학적 지향점까지 그녀의 작품 세계가 아주 면밀히 담겨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주변과 진을 나눠 본 경험이 있나?

4년 전 친구들의 모습을 발로 그려 진으로 만들어 나눠준 추억이 있다. 지금보다도 훨씬 처절했던 시절, 세상을 향한 나의 차디찬 냉소를 표출하고 싶었다. 동시에 주변 친구들에게 감사함을 베풀고 싶은 온정도 표출하고 싶었다. 이것들이 뒤섞여 나온 결과물로, 예상과 달리 제법 친구들이 좋아해 줘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소개한 진이 제작된 배경을 알고 있나?

박두현-Question / 일종의 습작이자 연구 과정이라고 한다. 오래전부터 그녀가 이어온 주제 의식의 연장이며, 구체적으로 일상적인 소재를 낯설게 설정해 새로운 관계를 발견함에 있다고. 이와 같은 거창한 담론도 좋지만, 그녀가 그간 보여온 유쾌함이 직관적으로 느껴진다. 뭐랄까? 찌그러져 가는 스테인리스 쟁반에 수준급의 제육과 어묵볶음, 미역 줄기와 열무김치를 내어주는 어느 노포가 연상된다. 식사 후 믹스 커피는 필수.

소개한 진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

조희진-煙 / 진 속 픽셀이 깨져 거친 질감을 자아내는 저화질의 이미지를 좋아한다. 진정 이것이야 말로 ‘Cool’이라 생각한다. 과하거나 억지스러운 바 없이 자연스레 ‘세련과 촌스러움’이란 기준을 초월하는 것만 같은 인상을 받는다. ‘Cool함’을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규명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Cool’하다. 누군가 ‘Cool’에 대해 묻거든, 고개를 들어 이 진을 보게 하라. 이렇게 수집된 이미지들이 집산하니 나름의 내러티브와 논리를 상상하게 되고, 그에 따라 그녀의 작업과 작품들이 더욱 격렬하게 다가왔다. 누군가 이 진을 본 후 그녀의 작품을 볼 기회가 있다면 청심환을 챙길 것을 추천한다. 인류가 불을 발견했을 때만큼 놀란 가슴을 부여잡을 수도 있다.

주변과 진을 나눠 본 경험이 있나?

진만큼 좋은 선물은 없는 것 같다. 직접 만든 진이라면 유일무이한 선물이라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부담 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것 같다. 그게 아니더라도 선물을 받는 사람, 선물을 주는 사람의 취향을 극명하게 반영할 수 있어 애매함 없는 솔직한 선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로 필자 또한 진을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로 애용하고 있다.

진과 진이 아닌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진과 진이 아닌 것에 대한 구분은 제작자와 독자에 의해 구분될 수 있을 것 같다. 원효대사 해골 물 같은 것일까? 결국 우리 마음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여태 진의 매력이라고 알려져 온 것들은 배제하고 다시 새롭게 생각해 볼 때, 당신이 생각하는 진의 매력은 무엇인가?

라면을 끓여 놓고 집 안 청소를 하다가 깜빡 잊어버려 라면죽이 되어버린 경험이 있다. 오히려 잘 됐다. 진부하다 못해 지겹디 지겨운 국물과 면이 죽도 면도 아닌 제3의 결과물로 변모하여 허기진 몸과 마음을 채워준 경험이 있다. 나에게는 진이 그런 존재다. 쉽고 간편하되 언제나 예측 불허한 유쾌함으로 허기진 영혼을 달래주는 존재를 우연하게 만날 수 있다.

진 문화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써달라.

나는 진을 새벽 6시 반의 모기라고 생각한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필자는 게을러질 대로 게으른 생활을 이어가던 중 우연히 새벽 6시 반에 모기가 귓속을 맴돌아 잠에서 깬 기억이 있다. 이 시간보다 일찍 모기가 찾아오지 않음을 감사하며 졸지에 하루를 일찍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이를 계기로 아침을 일찍 시작하기 시작했다(필자는 모기는 백해무익, 진은 무해백익하다 생각한다. 오해말길). 인쇄 매체만큼 총체적으로 동시대의 것들을 담을 수 있는 매체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쉽게도 디지털 매체가 인쇄 매체를 대체함에 따라 양산되는 찰나의 사유로 인해 우리는 스스로 한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진을 통해 무한히 자유롭게 표현하고 사유함으로써 지금 현재의 우리를 들어내어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침의 모기 소리처럼 우리를 우연히 깜짝 놀라게 해 우리를 무한한 가능성으로 각성시킬 포문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존 던버(Jon Dunbar)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제 이름은 존 던버(Jon Dunbar)이고 필명은 존 트위치(Jon Twitch)입니다. 저는 2003년 12월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이주했고, 2005년 봄에 한국에서 펑크 잡지 브로크(Broke)를 공동 설립했습니다. 1900년 설립되어 총 97개의 잡지를 발행한 124년 전통의 로얄 아시아 협회 코리아 트랜잭션의 총편집장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진 제작자 / 수집가인가?

저는 40여 권의 진을 출판했습니다. 2020년 진 제작 15주년을 맞아 저는 브로크 퍼블리싱(Broke Publishg)을 설립하고 책을 출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출판 작업은 한국에서 작가/에디터/저널리스트로서 제 커리어를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진을 만들고, 진을 모으고, 다른 이가 제작한 진의 컨트리뷰터로도 임하고 있습니다. 지난 20년간 한국의 펑크 씬에서의 진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진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진의 공급량이 너무 많아진 최근까지도 진을 구매하곤 합니다.

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언젠가?

저는 항상 인쇄된 자료를 존중해 왔습니다. 아이를 갖는 것보다 출판물에 더 오랜 관심을 가져왔어요. 2000년대 초반, 저는 펑크 진 제작을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이전에 진을 많이 보지 못했지만, 제작한 경험이 있었고 자기 출판을 위한 기본적인 기술을 모두 알고 있었어요. 그냥 하기로 결정했고 한국에 정착하고 나서야 시작했습니다.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아끼는 진, 또는 주변과 주고받은 진이 어떤 것인지 소개해달라.

몇 년 전에 저는 우편으로 외국의 도시 탐험 진 몇 부를 받았습니다. 전설적이지만 비밀스러운 호주의 터널, 빗물 배수구 및 기타 지하 공간을 탐험하는 ‘Cave Clan’에 의해 제작되었어요. 1980~90년대부터 그들은 ‘Il Draino’이라는 진을 100여 권 이상 발행했는데, 호주 로컬 씬에서 도시 탐험 커뮤니티 전체를 연결하는 일종의 뉴스레터 역할을 했습니다. ‘Il Draino’는 저라면 절대 방문하지 않을 만한 호주의 장소에 대한 많은 정보(그리고 농담)를 다수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좀 떨어지긴 합니다.

최근 2022년 겨울, 그들은 똥을 주제로 한 이슈를 발표했는데, 그들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이야기와 사진을 요청했어요. 저는 글을 기고했기에 ‘Cave Clan’과 연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이슈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공유하기 때문에 특히 흥미롭습니다.

주변과 진을 나눠 본 경험이 있나?

네. 처음 브로크를 창간했을 때부터 돈 받고 팔진 않을 것이라고 결심했어요. 펑크 공연에 가서 나눠주는 거예요. 돈을 청구하면 아무도 안 읽겠죠. 펑크씬 지원을 위한 기부라고 생각해요.

당신이 아는 진 제작자 또는 진 애호가를 한 명 이상 소개해달라. 

컬렉션 중 가장 매력적인 진 중 하나는 ‘Ryan Berkebile’의 불도저 퓨처예요. 텍스트가 거의 없는 진이고, 저는 세 권의 사본만이 만들어진 걸로 알고 있어요. 그는 한국의 도시 탐험가이고, 그 사진들은 모두 필름에 찍혀 있습니다. 브로크 28호에 그에 대해 더 많이 썼고,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Photon Wave Function(광자파동 기능)’도 매력적이에요. 캐나다 제작자는 1990년대부터 진을 만들어 왔고, 최근 호까지 약 12호를 완성했습니다. 불도저 퓨처와 비슷한 형식으로, 그것은 한국의 시골과 버려진 장소들에 대한 사진 진입니다. 제작자는 계룡에 살고 있고, 그의 집에 암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진은 흥미롭고 미묘한 질감의 한지에 인쇄되어 있습니다. 제가 그를 인터뷰했을 때, 그는 한지에 인쇄된 진의 형태로 손글씨 답변을 보냈습니다. 여러분은 브로크 29호 또는 여기에서 그에 대해 읽을 수 있습니다.

외국인들의 진뿐만 아니라 제가 해왔던 것과 정반대로, 세계로 나가서 외국의 펑크 씬을 탐험하는 한국인의 진, ‘Mutant Rebellion(돌연변이)’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는 여기에 그에 대한 기사를 썼습니다.

진과 진이 아닌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저는 진이 형식이나 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단지 여러분 자신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예술가, 사진작가, 또는 작가인 경우와 콜라주 아트, 손글씨, 또는 인디자인을 사용하는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어요. 4페이지짜리 예술 작품이나 5만 원짜리 예술가의 포트폴리오나 260페이지 분량의 진 거의 모든 것이 진이 될 수 있습니다. 진은 예술가, 음악가, 팬, 학생, 활동가, 혹은 평범한 주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많은 가능성이 열려있지만 누구나 모든 진을 좋아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만약 제가 진과 진이 아닌 것 사이를 구별해야 한다면, 저는 진은 수익 창출이 아니라 기술/주제/지역사회/문화에 대한 사랑으로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같은 이유로, 저는 제 진에 유료 광고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진 광고를 운영하고 있긴 해요. 일부 진이 비용을 상쇄하거나 다른 진을 지원하기 위해 광고를 게재하는 것을 이해하지만, 10mag.com수준으로 간다면 파국일 거에요.

한편, 삼성이 직원들을 위해 기업용 진을 만들거나, KOCIS가 K-pop 팬들에게 전 세계 진을 만들도록 비밀리에 자금을 지원하거나, 성모 마리아가 신도들에게 진 워크숍을 제공할 수 있는 여지는 있어야 합니다. 전 그런 진은 읽지 않을 것이고, 그 가치를 지지하거나 진지하게 취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요.

여태 진의 매력이라고 알려져 온 것들은 배제하고 다시 새롭게 생각해 볼 때, 당신이 생각하는 진의 매력은 무엇인가?

진은 다른 종류의 콘텐츠에 비해 정제되어 있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느끼고 작성된 개별적 생각의 원천이며, (일반적으로 대중 시장이 아닌) 매우 특정한 청중을 대상으로 하거나 심지어 청중을 염두에 두고 있지도 않습니다. 저는 문화부 기관과 신문사에서 일하면서도 진을 계속 발행해야 할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저는 진과 신문사에서 같은 주제를 다룰 때마다 다른 접근 방식을 사용하고 다른 청중과 이야기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거의 20년 동안 해온 일인 만큼, 진은 타임캡슐입니다. 처음 받을 때는 중요하고, 다 읽고 나면 덜 중요하고, 나중에 서랍 밑바닥에서 발견하면 더 가치 있는 것들입니다.

가장 최근에 진과 관련된 활동을 했거나 목격한 것이 있다면 소개 부탁한다.

한국에 오기 전에 코리아 버그(Korea Bug)라고 불리는 외국인이 진을 만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1990년대에 다른 진이 있었을 것이지만 저는 그 진들을 하나도 모릅니다. 제가 한국에 있던 시절에는 붉은깃발, 로사 타임즈(Rosa Times), 리벨소사이어티Kr(RebelSocietyKr)와 같은 다른 펑크 진을 몇 개 봤어요.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의 펑크 진은 더 많이 눈에 띄는 것 같긴 하지만 최근에 발간된 ‘Mutant Rebellion’과 같이 두꺼운 사진 위주의 앨범 형태로 발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20년에 크레이지 멀티플이 주최하는 서울의 진 마켓 행사에 대해 들었고, ‘Kenktid’를 시작으로 진을 취급하는 숍에 대해 알아가게 되었어요. 한국에 그런 종류의 커뮤니티가 얼마나 오래 존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되지 않은 문화 같습니다. 그곳에서 찾은 진들은 대부분 아트 포트폴리오 같아요. 굉장히 빨리 읽히고, 많은 진들이 제가 익숙한 것보다 덜 문화적인 것 같아요. 물론, 그것도 진의 한 형태라고 생각하지만 너무 비싼 경우가 많아서 마음에 들지 않아요. 진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지만 높은 가격이 DIY 출판 정신인 것 같지는 않아요. 만 원 이상이면 사지 않아도 죄책감이 들지 않아요.

불도저 퓨처, 코리아 버그, 광자파동뿐만 아니라 저와 같은 한국의 외국인 진 출판인들이 한국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지만, 한국의 진 제작자들 중 상당수는 해외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심지어 제가 본 많은 음악 잡지들도 현지 홍보보다는 현지 관객들에게 외국 밴드를 소개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외국인이지만, 한국에 대한 글을 쓰고 싶고, 읽지 않았다면 다른 나라에 살았을 거예요.

진 문화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써달라.

스마트폰 이전에 저는 인터넷이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언젠가 우리가 인터넷의 끝에 도달하고 더 아날로그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의 부상으로 인해 이것은 훨씬 가능성이 낮아지지만 아직은 확신할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우리는 인공지능이 생성한 영역을 너무 많이 보지 않기를 바랍니다. 브로크 32호에서 Chat GPT로 실험한 후, 저는 인공지능이 우리의 창의적인 작업을 대신해서는 안 되며, 번역을 포함한 다른 작업에 사용할 때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하형권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하형권(빅터) 천안 룩비욘드 샵 운영, 하드코어 밴드 ‘Things We Say’의 싱어.

진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2000년 초 펑크 음악을 좋아하게 되면서 국내 펑크, 하드코어 뮤진씬을 통해 팬진을 접하게 되었고, 2001~2004년 캐나다 토론토에 있으면서 펑크, 하드코어 팬진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아끼는 진, 또는 주변과 주고받은 진이 어떤 것인지 소개해달라.

가장 아끼는 진이자, 나도 진을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진이 2002~2005 캐나다 토론토 팬진, ‘Town of Hardcore Fanzine’입니다. 운이 좋게도 2001~2004년 캐나다 유학시절이 캐나다 토론토 하드코어 펑크 뮤직씬의 번영기였습니다. 그때 토론토 언더그라운드 뮤직씬의 라이브 공연, 진, 레코드 문화 등, 다양한 서브컬처 활동들을 목격하고 자극을 받았습니다. 전형적인 ‘cut&paste’ 형식의 진이었으며, ‘Our War’라는 밴드 싱어로도 활동했던 팻 스티브(Fat Steve) 가 만들었던 진인데 3년 동안 11개의 이슈를 제작하고, 부록 형식의 7인치 바이닐 레코드도 제작할 정도로 의욕적이고, 체계적인 진이었습니다. 당시 북미 하드코어 뮤직씬에서 활동하던 밴드들과 공연, 앨범 등의 상당히 중요한 자료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인이 제작한 진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2004년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 하드코어 뮤직씬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시작한 밴드가 ‘Things We Say’이며, 하드코어 음악 팬진으로 2004년부터 ‘Break The Shell’ 팬진을 3개의 이슈로 발간하였고, 그 후로 2011년에 천안 로컬 음악 진으로 ‘In Walnut We Trust’라는 진 1개의 이슈를 발간하였습니다.

가장 최근에 진과 관련된 활동을 목격하거나, 실천했다면 소개 부탁한다.

최근 천안에서 룩비욘드 스케이트보드 샵을 운영하며, 로컬 뮤지션과 스케이터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중 스케이터이며, 라이브 DJ 로 활동 중인 이병호가 시리즈로 발간 중인 80’s Funk! 진입니다. 포켓 사이즈의 미니진으로 현재 이슈 2까지 나와있고, 3이 최근에 나와 배포를 시작했습니다. 특이한 것은 진을 발간하며, 진에 소개되는 곡들을 믹스 셋으로도 공개를 한다는 것입니다. 진 속 QR 코드를 통해 믹스 셋을 들을 수 있습니다.

펑크 씬 내의 진 문화의 역사를 알고 있나? 해외의 진 문화와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나?

제가 접했던 것은 한국 언더그라운드 펑크, 하드코어 뮤직씬의 진 문화입니다. 다른 장르의 진 문화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봤던 진은 2000년 전후로 구속구석팬진이라는 DIY 펑크 팬진이었습니다. 드로잉 아트, 앨범 리뷰, 사회 비판 등의 거침없는 글과 그림, 사진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카세트테입, 스티커, 패치 등이 진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 후 2000년대 중후반에 다양한 펑크, 하드코어 팬진들이 국내에서도 쏟아져 나왔습니다. 대부분 복사해서 중철을 하거나 제본을 하는 형태의 진들이었습니다. 외국의 진 문화는 캐나다에 있었을 때 봤던 진들이 대부분이며, 펑크, 하드코어 팬진들의 형태는 대부분 외국의 진들에 영향을 받아 국내에서도 제작되었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소개한 진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

2004년에 처음 발간한 ‘Break The Shell Fanzine #1’ 은 캐나다와 한국을 잇는 느낌의 진이었습니다. 북미 밴드의 인터뷰도 실고 한국 밴드의 인터뷰도 실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한국에 하드코어 팬진 문화가 시작되던 시기라 제가 만든 진이 다른 친구들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줬을 거라 생각합니다. ‘Break The Shell’ 팬진은 3개의 이슈까지 발간을 했습니다. 언더그라운드 뮤직씬은 문화를 소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도 누구든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 말 그대로 DIY 문화의 매력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아는 진 제작자 또는 진 애호가를 한 명 이상 소개해달라. 

다른 장르의 진 메이커들은 많으니, 하드코어 펑크 뮤직씬에서 최근까지 진을 만들었던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펑크, 하드코어 공연장의 라이브 공연 사진을 아카이빙 방식으로 엮어서 발간한 팬진으로, 주수한의 ‘UTOPIA’, 이주영의 ‘THE MORE I SEE’, 김영준의 ‘UNEXPECTED MOMENTS’ 등이 있습니다.

여태 진의 매력이라고 알려져 온 것들은 배제하고 다시 새롭게 생각해 볼 때, 당신이 생각하는 진의 매력은 무엇인가?

제가 생각하는 진의 매력은 시간의 기록인 거 같습니다. 지금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화 활동을 나의 시선과 글, 사진, 그림으로 기록하는 것이니까요. 그게 사람들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도 있지만, 일단 기록했다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사건인거 같습니다. 그리고 한번 기록된 것은 그게 사실이 왜곡되었던 것이라도 다시 바꿔놓기 힘든 기록의 결과이기 때문에 바로 그런 것이 매력이라 생각이 됩니다.

진 문화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써달라.

정말 누구나 할 수 있다. 만들어 보고 싶다는 자극을 받았다면 너무 오래 생각하지 말고 당장 만들어 보자. 그리고 꾸준히 기록할 수 있는 내공을 기르자.

이하빈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포토그래퍼 이하빈입니다!

본인이 제작한 진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summer train’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만든 진입니다. 스케이터 최호진, 연경호 그리고 필르머 김동희와 함께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뜨거운 남자 넷이서 스케이트 비디오를 제작하며 시작된 프로젝트인데요, 이 프로젝트에서 두 스케이트 비디오의 시사회를 시작으로 사진 전시와 이벤트, 그리고 진 제작까지 이어졌습니다. 추후에는 ‘Bolero One Night’이라는 진도 제작했습니다. 이태원 클럽 볼레로를 촬영하며 밤문화를 담은 진입니다.

당신이 아는 진 제작자 또는 진 애호가를 한 명 이상 소개해달라.

이주상, 스케이터이자 사진을 찍는 친구인데 이 친구가 먼저 진을 몇 번 제작하는 모습을 보고 엄청 흥미로웠던 기억이 나요.

여태 진의 매력이라고 알려져 온 것들은 배제하고 다시 새롭게 생각해 볼 때, 당신이 생각하는 진의 매력은 무엇인가?

책 보다 제작비용이 적게 들고, 조금 더 러프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는 점? 또 원래 선물이랑은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 진을 가지고 다니며 하나둘씩 챙겨주니까 좋아하는 지인 모습을 보면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어요.


Editor | Jieun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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