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의 진 도서관 #1 ··· 4/28

진(Zine)이 한 시대의 총체적이고, 실질적인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해석은 이미 여러 번 논의된 바 있다. 따라서 사회 전반을 폭넓게 이해하기 위해 진(넓게는 주관적인 기록) 또한 도서관에 아카이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른다. 그러나 보통의 진이 대량 생산과 유통을 위해 제작되지 않다 보니 제작자를 비롯해 제작 시기, 배경 등이 모호한 경우가 많아, 진 문화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이어져온 해외에서조차 진을 아카이브하고 있는 도서관의 수는 많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 와중에 출판문화가 서양에 비해 보수적인 한국에서 진을 도서관에 아카이브 한다는 건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진을 아카이빙하는 일이 ‘아카이빙 외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 기획의 진짜 목적은 진을 문화의 총체적 보고로써 아카이브 하기 전에, 먼저 진이라는 매체를 활용하는 집단과 개인의 성격이 다양해진 상황을 재맥락화하는 데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최근 들어는 국내에서도 과거에 책으로 인지되던 것들이 이야기하는/보여주는 방법에 따라 이제는 ‘잘 만든 진’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눈에 띄게 많아진 것 같다. 또는 지엽적이고 비상업적인 영역에서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 (책처럼) 소비되고 있거나 어떤 문화를 사랑하는 개인, 또는 집단의 책장에 잠든 수집품쯤으로 여겨지는 듯도 보인다. 하위문화에서 파생된 기록의 역사를 지나 이제 진 그 자체가 출판의 하위문화로 여겨지는 걸까? 애초에 멀티미디어 시대가 자동화 시대로 향하고 있는 시점, 진을 소규모의 ‘미디어’로서 네트워킹적인 면으로만 한정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 기획은 책장에 잠들어 있는 진을 꺼내서 비슷한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끼리 나누어 보자고 권하는, 소규모 미디어로서의 전통적인 진의 의미를 되살려보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여전히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진을 통한 네트워킹을 실천하고 있음을 발견하길 기대하는 마음도 내심 있었다. 그럼 살펴보자. 그래서 진은 무엇일까? 어디까지가 진이고 어떤 건 진이 아닐까? 또 그걸 굳이 구별할 필요는 있는 걸까? 다음 28팀(29인)이 기부하고, 저마다가 진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응답한 답변은 파편화된 진에 대한 정의를 모아, 하나의 공통된 주제에 대해 각기 다른 의견을 주고받는 대화의 장이다. 때때로 서로 상충되는 의견이 하나의 기사로 만나기도, 또는 비슷한 가치를 공유하기도 한다. 시리즈는 앞으로 7회에 걸쳐 이어질 예정이다. — 계속 —

*답변은 23년 10~12월 사이에 취합되었습니다. 답변자의 답변은 원문 그대로 표기했습니다.


최장민(@janstersf)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최장민

진 제작자 / 수집가인가? 

비즐라/비전에서 일합니다!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아끼는 진, 또는 주변과 주고받은 진이 어떤 것인지 소개해달라 (본인이 제작한 것 제외).

양성준 형이 만드신 ‘Street Sex Oral Skating’. 성준형의 이런저런 생각과 주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 재밌었습니다.

소개한 진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한 진에 담는다는 게 재밌었습니다.

본인이 제작한 진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사유라는 공간에서 후쿠오카의 브랜드 노 커피브랜드와 함께 굿즈 제작 및 팝업 기회를 주어 VISLA에서 기획하여 만든 ‘Coffe Break’라는 진입니다.

주변과 진을 나눠 본 경험이 있나?

“나누자!”라고 해서 동시에 나눈 적은 없지만 각자의 것을 주고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당신이 아는 진 제작자 또는 진 애호가를 한 명 이상 소개해달라.

가장 최근에 나눈 건 홍콩의 Lousy. 지나가다 우연히 만났는데 가방에서 바로 본인이 제작한 진과 스티커가 나오더라는.

진과 진이 아닌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독자(independent)적으로 진행할수록 진에 가깝다?

여태 진의 매력이라고 알려져 온 것들은 배제하고 다시 새롭게 생각해 볼 때, 당신이 생각하는 진의 매력은 무엇인가?

정보의 홍수 속에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만큼은 그것을 만든 이에게 더 집중할 수 있다?

진 문화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써달라.

진짜 쿨한 것은 인터넷에 없다.

허효건(@hyogun_)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허효건. 언라벨과 엑스트라스몰 스튜디오에서 그래픽 일을 하고 있다.

진 제작자 / 수집가인가? 

수집보다는 마음에 들어 산 것들이 몇 권 있다.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아끼는 진, 또는 주변과 주고받은 진이 어떤 것인지 소개해달라 (본인이 제작한 것 제외).

베르크(WERK) 26호. 양쪽이 제본되어 읽을 수 없는 황당한 형태로 제작이 되었다. 때문에 책의 본문 사진을 첨부할 수 없었다. 해당 호 발간 기념으로 동일한 그래픽이 들어간 티셔츠를 셀비지스(The Salvages)와 협업해서 발매했었는데, 베르크 이야기를 해줄 수 있기도 하고 그래픽도 마음에 들어 자주 입는 티셔츠가 되었다.

소개한 진이 제작된 배경을 알고 있나?

베르크(WERK)는 싱가포르에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테세우스 챈이 출판하는 정기 간행물이다. 주제 또는 작가를 선정하고 인쇄와 제본, 마감에 이르는 제작 전 과정에 걸쳐 선정된 주제에 맞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만지면 손에 묻을 정도의 염료처리가 된 것, 종이에 일일이 구멍을 낸 것, 페이지를 서로 다르게 구겨 접은 것 등 베르크는 모든 호마다 형태와 방식이 다르다. 더해서 26호는 읽어볼 수 없긴 하지만 어느하나 똑같이 인쇄된 페이지가 없다고 했던 것 같다.

소개한 진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

일단 베르크 매거진을 처음 알게 된 건 포스트포에틱스에서다. 계산대 옆이기도 하고 왠지 비싸 보이기도 해서 심리적으로 손을 대기 어려운 책들이 있었는데, 친분이 생긴 후 물어봤더니 그 책들이 베르크였고 관련 이야기를 직접 해주셨던 기억이 있다. 제작자의 이야기와 책을 만드는 과정 등 모든 내용이 흥미로웠고 충격적이었기에 일부 호는 구매하고 소장하고 있다. 사실 책의 내용에 직접적인 매력을 느낀다기보다 형태 자체에 대한 매력이 전부인 것 같기도 하다.

주변과 진을 나눠 본 경험이 있나?

제작자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나눠준 경험은 없고 SNS계정이나 판매하는 곳의 링크 등을 전달해 주곤 한다.

당신이 아는 진 제작자 또는 진 애호가를 한 명 이상 소개해달라.

최근 만난 제작자는 이동원(shdw를 운영하고 있다), 애호가는 잘 모르겠다.

진과 진이 아닌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느낌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여태 진의 매력이라고 알려져 온 것들은 배제하고 다시 새롭게 생각해 볼 때, 당신이 생각하는 진의 매력은 무엇인가?

디자인이든 내용이든, 아무래도 진의 특별한 점들이 창작자와 독자 간의 근접성을 촉진시킨다는 부분이 매력적인 것 같다.

남선미(@pipicocucumong)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플랫폼 회사에서 근무하며 경험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바탕으로 ‘기술-퀴어-텍스트’ 주변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현재 1인 출판사 ‘White River’를 운영하고 있다.

진 제작자 / 수집가인가? 

진 제작자이자 수집가.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아끼는 진, 또는 주변과 주고받은 진이 어떤 것인지 소개해달라 (본인이 제작한 것 제외).

각자의 만들기 속에서 가치와 인정과 행동의 체계를 정립하는 과정을 ‘아마추어리즘’이라 부르며 예술을 비롯한 모든 만들기에 주목하고 있는 비평가이자 창작가 이여로가 운영하고 있는 소규모 출판사 ‘기획:1’에서 나온 ‘자매 – 더블린 사람들’을 소개하고 싶다. ‘자매 – 더블린 사람들’은 이여로가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을 번역한 진이다. 소설을 번역한 것을 진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난 이 소설을 번역하고 출판한 이여로가 진을 만들었다고 본다. 자신의 블로그에서 밝힌 바와 같이 “기성 번역본들이 마음에 안 차 직접 번역했습니다”란 말에서 자신의 의도와 의지를 가지고 새로운 전략으로서의 번역-출판을 수행했다고 보았다. 기획:1에서 만든 첫 책으로, 기획:1의 시작을 알린 이 을 가장 아끼고 있다. 

소개한 진이 제작된 배경을 알고 있나?

기획:1을 운영하는 비평가, 창작자 이여로가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기성 번역이 “마음에 안 차” 직접 번역해 출판한 진.

소개한 진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

번역-출판을 통해 진을 만든 이여로가 자신만의 만들기 속에서 자신의 가치와 인정과 행동의 체계를 정립하는 과정으로 보였다.

당신이 아는 진 제작자 또는 진 애호가를 한 명 이상 소개해달라.

이여로.

진과 진이 아닌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없다.

여태 진의 매력이라고 알려져 온 것들은 배제하고 다시 새롭게 생각해 볼 때, 당신이 생각하는 진의 매력은 무엇인가?

소규모 출판에서 올 수밖에 없는 1인 다역의 허술함, 1인 다역의 저글링을 엿볼 수 있다는 점.

진 문화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써달라.

진은 1인 다역의 저글링이다!

주수한(@lifeofunrest)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Rebelsocietykr, ‘Life Of Unrest’로 활동 중인 주수한이다.

진 제작자 / 수집가인가? 

진 제작은 중단하였고 현재는 수집만 하고 있다.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아끼는 진, 또는 주변과 주고받은 진이 어떤 것인지 소개해달라 (본인이 제작한 것 제외).

가장 아끼는 진은 없는 거 같다, 전부 각자 하나같이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진은 누군가와 혹은 주변과 주고받은 진은 아니다. 몇 년 전 ‘GBN LIVEHOUSE’라는 하드코어 펑크 공연장에 다녔을 때 어느 날 누군가가 공짜로 가져가라고 놓고 간 ‘DISPOSABLE 5’라는 펑크 진을 가져왔다. 미국 펑크 밴드들의 공연 사진들을 콜라주 형태로 붙여 스캔한 듯한 사진들과, 이 진을 만든 사람이 만든 것 같은 콜라쥬 아트웍들이 담긴 진이었다.

처음으로 펑크/하드코어 공연들을 다니다가 말로만 듣던 팬 진(Fan Zine)을 보고는 여기 찍힌 밴드들의 음악을 찾아 들어보고 국내에서 어렵게 음반들을 찾으러 다닌 기억이 아직도 오래 남아 있다. 

소개한 진이 제작된 배경을 알고 있나?

아마 미국 어딘가에 공연을 보러 다니는 펑크친구가 만들어낸 진 같다. 아래에 Disposablefanzine.tumblr.com과 인스타인지 아님 다른 SNS 인지 모를 @Evilspells 가 적혀있지만 텀블러 주소는 없어진 지 오래고, 인스타는 동명의 계정은 있으나 이 진을 만든 본인은 아닌 것 같다. 아쉽게도 아직도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른다.

소개한 진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

직접 사진과 글자들을 오려 붙인 것들을 스캔하여 A4종이에 그냥 프린트하고 스테이플러를 박아 만든 것 형식적이지 않고 날 것의 DIY스러움이 보이는 진이었다. 이 진을 보고 중철제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펑크 공연 사진을 담은 진을 만들어볼까 하는 계기가 됐다.

본인이 제작한 진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UTOPIA’라는 서울 하드코어 펑크씬의 공연사진들을 담은 진, ‘SALAD DAYS’라는 나의 일상들을 사진으로 찍어낸 진, 서울의 그래피티를 담은 진 ‘SEARCH & DESTROY’와 나의 그래픽아트웍들을 담아낸 ‘FUCK U’ 그리고 ‘DESTROY TO CREATE’가 있다.

주변과 진을 나눠 본 경험이 있나?

그래피티와 하드코어를 좋아하고 사진을 찍는 @niko.tampio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서울에 잠시 여행 와서 사진을 찍어 만든  ‘Seoul Journal’이라는 책을 내게 선물했다. 서울 곳곳을 다니며 본 그래피티 스팟들이 다르게 변화한 모습들과 현재는 버프(덮여버린) 스팟들도 다시 보니 재밌었던 진이었다.

당신이 아는 진 제작자 또는 진 애호가를 한 명 이상 소개해달라.

아쉽게도 진스터나 애호가 정도의 사람들은 내 주변엔 없는 듯하다. 하하;;

진과 진이 아닌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진은 우리가 서점에서 흔히 볼법한 형식적이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소비자들 혹은 독자들이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잘 정리된 글을 담거나, 보기 좋은 형식적인 위치에 사진이나 그림이 배치된 책들은 독립출판사에서 내던, 개인이 만들던, 혹은 어떠한 제본을 써서 내던 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진은 그냥 해보고 싶어서 만든 거 같이 날 것의 느낌이 강하고,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가 직설적으로 드러나고, 작가 자신만을 위해 만들어내서 보기 불편할 수도 있는 DIY스러운 책들이 진짜 진이라고 생각한다.

진 문화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써달라. 

언젠가 국내에도 Zine을 만드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져 서로 많은 멋진 진들을 나눠볼 수 있으면 좋겠다.


Editor | Jieun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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