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이터는 어디까지 쿨해 보일 수 있을까? 산에서 사슴벌레를 채집하고, 개천에서 물고기를 잡고, 릴스에 웃긴 영상을 올려도 쿨해 보일까? 스케이터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제일 쿨한 순간은 꾸밈없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때일 테다. 매일같이 “왓썹! 루즈랙!”을 외치는 두 스케이터 최호진과 연경호가 그렇다. 유쾌하고, 즉흥적으로만 보이는 이들의 이면에는 스케이트보드를 향한 진지하고도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각자 여러 브랜드, 스케이트 숍의 팀 라이더로 활동하며, 십 대의 대부분을 스케이트보드로 가득 채운 둘은 이제 그들이 탄생시킨 ‘루즈랙(Loose Lack)’이라는 브랜드 속에서 하나 되어 새로운 장을 펼쳐나가고 있다. 스케이터의 자연스러운 라이프스타일을 재미있게 보여주고 싶다는 둘을 만났다.
각자 소개 부탁한다.
연경호: 청주에서 태어나 지금은 서울에서 살고 있는 a.k.a 살몬, 연경호라고 한다.
최호진: 팀버샵(Timber Shop)과 라브로스(Labros) 소속의 스케이터 최호진이다.
루즈랙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
연경호: 별 대단한 건 없다. 라브로스에 들어가게 되면서 호진이 형과 스케이트보드 타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그렇게 어울리며, 자연스레 함께 뭔가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브랜드 이름은 무슨 뜻인가.
연경호: 정신없이 스케이트보드를 타다 보면, 다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그게 재밌어 직관적으로 ‘루즈 레그(Loose Leg)라는 단어를 떠올린 게 그 시작이다. 이걸 호진이 형에게 말했더니 레그를 랙(Lack)으로 바꾸는 게 더 쿨하지 않겠냐고 해서 루즈랙이 되었지.
최호진: 내 기억하고 다른데? 우리가 한창 브랜드를 만들자고 얘기할 무렵에 일본의 스케이트보드 브랜드 타이트부스(TIGHTBOOTH)의 새 비디오가 나왔다. 우리가 그 필름을 꽤 인상 깊게 봐서 타이트부스와 반대되는 단어를 떠올리며, 브랜드 이름을 지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헐거운’이라는 뜻의 ‘Loose’와 ‘부족, 결핍하다’는 뜻의 ‘Lack’을 조합해 ‘Loose Lack’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부정적인 단어의 연속으로 이루어졌지만, 부정의 부정이니 결론적으로는 긍정을 의미해 마음에 든다.
연경호: 듣고 보니, 이 말이 맞는 것 같다. 하하.
둘의 첫 만남을 기억하고 있나.
연경호: 이건 정확하게 기억한다. 청주 청소년 광장 스팟에서 처음 만났다.
최호진: 서로 안면은 튼 사이였지만 지금처럼 친하지는 않았다. 경호가 서울로 올라오고 나서 자주 어울렸고, 그때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성격도 잘 맞고, 함께 있을 때 시너지가 좋다.
서로 어떤 부분이 잘 맞았는지.
연경호: 생각하는 게 똑같다. 하하. 특정 상황에서 어떤 말을 내뱉었을 때,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경우가 잦았다. 패션 취향도 비슷해 짠 것도 아닌데, 커플룩처럼 입고 마주친 경우도 많았고.
최호진: 우리 둘 다 활동적인 체질이다. 특히, 자연에서 채집하는 걸 좋아한다. 산에서 사슴벌레를 잡거나, 개천에서 물고기를 잡는, 요상한 취미를 공유하는 것도 신기하다.
연경호: 언젠가 각자 스케이트보드로 이루고 싶은 목표를 이야기했는데, 그것 또한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 목표란?
연경호: 한국의 스케이트보드 신(Scene)을 키우는 것.
최호진: 그리고 스케이트보드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 나이가 들어도 계속해 스케이트보드를 탈 수 있는 환경을 꾸리고 싶다.
브랜드 홍보를 위해 인스타그램 릴스를 적극 활용 중이다. ‘쿨’과 ‘낫 쿨’을 오가는 콘텐츠가 재미있는데.
최호진: 요즘 대부분의 사람이 인스타그램 릴스와 유튜브 쇼츠를 가장 많이 접하고 있지 않나. 주변 친구들만 봐도 하루 종일 그것만 보고 있더라. 루즈랙의 홍보 창구로 인스타그램 릴스를 택한 건 너무나도 당연한 결정이었다. 콘텐츠 역시 그냥 대충 찍어 올리면 재미없으니 우리만의 B급 감성을 표방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영상을 만들어 봤다.
연경호: 사람들은 멋진 스케이트보드 트릭 영상보다 웃긴 영상을 더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스케이트보드 요소를 조금 가미한 콩트를 몇 개 짜봤다.
최호진: 그게 실제 대중에게 어필된다는 걸 몸소 경험했다. 대부분 루즈랙의 영상이 즉흥적인 촬영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할 텐데, 사실 그 안에는 치밀한 연출이 숨어있다. 긴 시간 이어지는 아이디어 회의와 각본, 촬영할 때는 시선 처리와 동선까지 체크한다.
이러한 영상이 실제 제품 판매에 영향을 끼치고 있나.
최호진: 물론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사람보다 스케이트보드를 타지 않고, 우리를 아예 모르는 이들이 루즈랙의 옷을 더 많이 구매한다는 거다. 비율로 따지자면 7:3 정도?
연경호: 스케이터가 아닌 이들이 루즈랙을 찾아주는 게 신기하지. 고무적인 결과다. 하하.
릴스로 루즈랙 디자인 아이디어 공모를 받기도 했다.
최호진: 맞다. 근데, 우리의 의도가 잘못 전달된 것 같다. 바지통이 넓었으면 좋겠다, 주머니가 추가되었으면 좋겠다는 둥 많은 댓글이 달렸는데, 우리가 원했던 건 루즈랙 팬츠에 삽입될 로고 디자인이었다. 하하. 이 인터뷰를 본다면, 다이렉트 메시지로 루즈랙 로고 디자인 아이디어를 보내달라.
브랜드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특별한 메시지가 있다면.
연경호: 글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재미있게 사는 삶, 그런 걸 보여주고 싶다. 개인적으로 루즈랙에 스케이트보드의 색을 강하게 입히려 하지 않는다.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스케이트보드를 접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이 알아줬으면 하지. 물론, 우리의 근본은 스케이트보드에 있고, 이 신이 더 커지길 바라지만, 내부가 아닌 외부로부터 확장하길 원한다. 스케이터가 아닌 이가 루즈랙을 사서 입는 것도 스케이트 신에 대한 똑같은 서포트니까.
최호진: 그냥 재미지. 누군가는 우리의 장난스러운 모습을 아니꼽게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루즈랙으로 스케이터의 자연스러운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줄 뿐이다. 보드 좀 탄다고 해서 남과 다르고, 특별할 건 없잖아.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둘 다 라브로스 소속 스케이터로 활동 중이다, 루즈랙 운영에도 도움을 받고 있나.
연경호: 무엇이든 시작이 어렵지 않나. 제품 생산이 우리의 가장 큰 고민이었는데, 라브로스가 옷을 제작하는 공장을 공유하기도 하고, 제품, 디자인 검수 등 많은 도움을 받았다.
최호진: 라브로스 대표 폴 형이 옆에서 많이 도와줬다. 폴 형이 아니었다면 아직 갈피조차 못 잡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난 6월에는 라브로스와 함께 일본 팝업을 열기도 했다.
연경호: 비행기 탈 때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했다. 티셔츠 스무 장을 가져갔는데, 그거 다 팔 생각으로 갔지. 근데, 막상 팝업을 여니 의사소통도 안 되고, 쉽지 않더라. 온몸으로 바디랭귀지까지 쓰면서 구매 유도를 했는데, 아직 일본은 우리한테 큰 관심이 없더라고, 두 장 팔고 귀국했다.
최호진: 우리 루즈랙 공금으로 다녀온 건데, 결국 마이너스만 됐다. 덕분에 한동안 생계가 힘들었다.
루즈랙 제품 디자인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나.
최호진: 둘 다 그림을 못 그려 그냥 손 가는 대로 디자인한다. 각자 그림 스타일도 달라 항상 두 가지 디자인이 나오지. 하하. 오늘도 각자 그린 디자인 티셔츠를 입고 왔다.
스케이트보드를 제외한 다른 관심사가 있다면 무엇인가.
연경호: 춤과 음악, 최근에는 뮤직비디오도 한 편 공개했다.
최호진: 나는 딱히 없다. 스케이트보드도 취미는 아닌 것 같고. 오래 타다 보니 흥미가 조금씩 떨어지는 시기라 다른 취미를 찾는 중이긴 하다. 예전에는 복싱을 잠깐 했는데, 왼쪽 어깨 근육이 찢어져 이제는 하고 싶어도 못 한다. 금방 완치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회복이 더디더라고. 필르밍을 해야 하나…
연경호: 나랑 음악 하는 건 어때?
최호진: 그것까지 같이하고 싶지는 않아…
스케이트보드 브랜드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연경호: 브랜드의 오너, 디렉터가 스케이트보드를 정말 사랑해야 한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스케이트보드 신 안에서 실력이든, 스타일이든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갖추면 더 멋있겠지.
최호진: 다른 건 몰라도 브랜드 오너가 스케이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10대와 20대를 스케이터로 보냈는데, 청소년기의 스케이트보딩과 성인이 되고 난 후 스케이트보딩의 변화라면?
연경호: 성인이 되고 나니 스케이트보드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늦은 밤까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실컷 스케이트보드를 탈 수 있으니까. 다만, 이제 생계를 걱정해야 하지. 돌이켜 보면 청소년기에 더 마음 편히 스케이트보드를 탔던 것 같다. 그땐 딱히 걱정할 게 없었거든.
최호진: 어린 시절부터 프로로 활동해 지금과 큰 차이는 없다. 현장학습체험 신청서 쓰고 학교도 많이 빠졌지. 하하. 그때는 스케이트보드에 대한 열정으로 끓어오르던 시기였다. 몇 시간을 타도 지치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두 시간만 타도 힘들더라. 그렇지 않나?
연경호: 난 아닌데, 하루 종일도 탈 수 있다.
최호진: 지난번 수내 스팟에서 조금 깔짝대다가 5분도 안 돼서 쉬는 모습을 두 눈으로 봤다.
연경호: 전날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랬다. 내가 숙취에 약하잖아…
가장 좋아하는 스케이터는 누구인가?
연경호: 에비센 스케이트보드(Evisen Skateboards)의 코토라 미타니(Kotora Mitani). 파트부터 코토라라는 인간 그 자체까지, 그를 정말 좋아한다. 코토라를 찍어주는 필르머가 있는데, 그 특유의 느낌을 정말 잘 살리는 것 같다.
최호진: 요즘 좋아하는 스케이터는 따로 없지만, 영감을 받는 스케이터가 두 명 있다. 한 명은 최유진, 그리고 한 명은 연경호. 이 둘이 내가 스케이트보드를 계속 타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고백하자면, 최근 스케이트보드에 대한 흥미가 많이 떨어져 예전만큼 재미도 없고, 스팟에 가는 것도 귀찮을 때가 많은데, 이 둘은 그 열정이 식지 않더라.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순간 자체를 즐기는 사람 같다. 최유진은 같은 스팟에 가도 창의적으로 라인을 짜 매번 나를 놀라게 한다. 연경호는 나를 스케이트보드를 처음 탔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게 한다.
연경호: 잠깐, 위의 답변을 정정하고 싶다. 사실, 최호진을 보며, 정말 열심히 보드를 타고, 열심히 산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와 비교하면, 언제나 내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에게서 내 이름이 나와 바꾼 게 아니다. 진심이다.
최호진: 웃기지 마라.
언제나 스케이트보드에 푹 빠져 지내는 것 같다. 당장 내일부터 스케이트보드를 탈 수 없게 된다면, 무엇을 할 건가?
연경호: 음악에 매진할 것 같다.
최호진: 글쎄, 지금이라도 공부를 시작하지 않을까. 아, 스케이트보드 못 타면 경호랑 같이 듀오로 활동해야겠다. 지금은 스케이트보드를 탈 수 있으니까 안 할 테지만.
둘 모두 스케이트보드를 타면서 꾸준히 브랜드 스폰을 받아왔다, 이런 케이스가 모든 스케이터에게 해당하는 일은 아닐 텐데.
최호진: 항상 감사한 마음이 크다. 특히나 팀버샵은 비즈니스 관계를 떠나 정말 가족 같은 곳이다. 양수 형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지만, 언젠가 내 몸에 팀버샵 타투를 받을 생각이다. 하하.
연경호: 나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은 라브로스에 무한 충성 중이니 열심히 활동해야지.
5년 뒤의 최호진과 연경호, 그리고 루즈랙은 어떤 모습일 것 같은지?
연경호: 5년 뒤에도 당연히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겠지?
최호진: 그리고 루즈랙은 무신사에 입점해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