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iko & Kaito

쉴 틈 없이 계속되는 무더위가 저물고, 완연한 가을이 다가왔다. 축제의 계절을 상징하는 가을,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sian Culture Center, ACC)’에서 특별한 이벤트 ‘ACT 페스티벌’이 개최됐다. ‘ACT 페스티벌’은 오디오-비주얼 콘서트로 이케다 료지(Ryoji Ikeda), 네오 지오데시아(Neo Geodesia) 등 매력적인 아시아의 아티스트가 광주를 방문, 관객과 함께 저마다의 이야기를 쌓았다.

그리고 이번 이벤트의 핵심에는 오프닝 액트를 담당한, 나카야마 아키코(Akiko Nakayama, 이하 A)와 와타나베 히로시(Hiroshi Watanabe, a.k.a Kaito, 이하 K)가 있었다. 그들의 헌신에서 비롯된 압도적 비주얼과 이에 겹친 사운드. 필자는 이를 관람하며 머리 속에 수많은 질문을 떠올렸고 공연이 끝난 다음 날 두 주역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이하의 대화문은 두 아티스트가 이번 공연에 어떻게 임했는지, 또한 아티스트의 개인사와 동인 음악 신(Scene)의 성장기까지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광주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각자 이 글을 읽게 될 한국 독자들에게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A: Hi, everyone! 한국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 이름은 비주얼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나카야마 아키코, 주로 ‘Alive Painting’이라 불리는 기술에 기반한 그림을 선보이고 있다. 여기서 언급되는 ‘Alive Painting’은, 물감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카메라를 통해 녹화되어 즉흥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번 ‘ACT 페스티벌’을 통해 존경하는 카이토 씨와 협업하게 되었는데, 나에게 있어 큰 영광이었다!

K: 내 이름은 와타나베 히로시, 일본의 전자 음악 신에서 활동하고 있는 뮤지션이다. 전자 음악에 관련된 음악을 주로 선보이고 있으며, 익스페리멘탈의 결을 지향하는 앰비언트와 테크노, 그리고 모든 종류의 댄스 음악을 추구하고 있다.

혹시 한국 방문은 처음인가? 그렇지 않다면 과거의 한국과 지금 방문의 달라진 점에 대해 알려달라.

A: 지난 한국 방문은 2018년,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Temi Artist Residency)’를 통해서였다.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는 현세대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레지던시로, 6개월간 대전에 머물며 다양한 문화 체험에 참여했고, 많은 것을 배웠다. 대전 일이 지나고 1년 후.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비주얼 아티스트 고재욱에게 초대를 받아 그의 이벤트에 방문했다. 음악과 소규모 전시를 동반한 작은 이벤트였다. 그리고 또 특기할 만한 점은, 올해 1월에 있던 ‘위사(WeSA)’ 페스티벌. 위사에서의 추억은 나에게 있어 매우 생생했다.

K: 양국의 문화 간 소통에 있어 많은 차이가 있었다. 5년 전, 코로나 팬데믹 이후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는 자유를 얻었다. 한국의 문화 역시 훌륭하고, 일본 또한 그렇다. 우리는 그 시간 동안 문화 간 차이에 대해 상호 간 공유했다. 지난 5년의 세월 중에서, 한국의 대통령이 바뀌지 않았나? 정권이 바뀌고 나서, 우리 간의 소통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공연 문화의 관점에서, 지난 대통령보다 소통의 방식이 더욱 자유로워졌다. 지난 정권은 팬데믹 시기 많은 것을 통제하려 했다. 나는 그 정책이 싫었다. 결국 사람은 사람이며, 달라진 것은 없다. 지난 정권을 이야기하는 것이 민감한 문제임은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서, 지금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우리는 항상 우리가 가진 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더 많은 자유가 필요하며 서로 소통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지난 한국 방문과 현재 방문 사이에 달라진 점이다.

이번 공연을 진행하면서 염두에 둔 사전 콘셉트가 있다면?

A: 3년 전, 우리는 일본에서 공연을 진행했다. 우리가 이전에 합을 맞춘 공간은 지하의 작은 베뉴였지만, 이번 공연은 규모가 큰 대극장이었고, 그것이 지난 공연과 이번 공연 간의 차이였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관객에게 우리의 공연이 실제로 다가오게끔 이번 공연의 모습을 설계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나는 자연스럽게 카이토 씨가 선보이는 강력한 음악의 파장에 힘입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발견했다.

K: 이번 공연은 우리가 이미 전에 합을 맞추던 공연 사이 화합 안에서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정말로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 공연의 콘셉트에 대한 모든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공연 안의 모든 일은 전부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개개인이 되는 동시에 서로 화합했다. 그 점이 정말 강력하게 다가왔다.

공연에 쓰인 다양한 장비가 인상적이었다. 각자 무슨 장비를 지참했나?

A: 나는 이번 공연 동안, 새로운 장비를 많이 시도했다. 물감, 염료, 그리고 일반적으로 그림에 쓰이지 않을 법한 것 또한 선보였다. 이를테면 샴푸나, 젤리 형태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베이비 오일, 그리고 내가 ‘물체’라고 부르는 모든 것들이다. 또 비디오 촬영 장비 또한 지참했다.

최근 출산해서 아이를 낳았기에 생후 2개월 된 아이와 현재같이 생활하고 있다. 지참한 장비 중 베이비 오일의 의도는 아이와 함께 일상생활을 실험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K: 알다시피, 나는 아티스트가 공연에 필요하다고 생각한 장비들을 선택적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이번 라이브 세트 동안 가지고 온 장비들은 톱니바퀴처럼 잘 맞았다. 특히 이번 공연에 내 랩톱은 매우 중요했다. 내가 선보인 음악은 모두 내 랩톱 안에서 이루어졌다.

또한 신디사이저와 샘플러, 그리고 몇몇 하드웨어 시퀀서, 그리고 기타 이펙터도 가져왔다. 그중에서도 기타 이펙터가 아주 중요했다. 신디사이징을 통해 내가 선보인 곡들은 단지 하나의 톤으로써 간략하게 선보였지만, 4~5개 정도의 이펙터가 앞서 선보인 신디사이징에 깊이를 더해 주었기 때문. 그 순간은 황홀했고, 깊이 있으며, 또 다른 차원을 여행하는 것만 같았다.

이번 오프닝 공연은 ‘레이어’를 쌓는 듯한 움직임이 핵심이었다. ‘레이어’란 신디사이저로 만들어낸 앰비언스와 멜로디 그리고 드럼 시퀀스가 쌓이며 심화되는 것. 동시에 염료와 종이를 쌓아가며 그림이 완성되었다. 각자 어떠한 방법으로 공연의 층위를 설계했나.

A: 매우 좋은 질문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카이토가 쌓아 올린 음악에 힘입어 용지에 스트로크와 잉크를 떨어뜨렸고, 그것들은 하나의 멋진 그림으로 이어졌다. 관객이자 에디터인 당신의 질문이기에 더욱 감사하고 값진 질문이다. 공연의 층위를 쌓아 올린 우리와 당신의 경험이 관통하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K: 층위의 첫 단추는 공연 시작 첫 트랙을 긴 톤으로 가져간 것. 내가 연주를 처음 시작할 때, 그녀는 그림을 그렸고 그 후에 물감이 올라갔다. 그 모습에 힘입어 나 또한 사운드를 차츰 쌓았지. 이 상호작용이 바로 ‘레이어링’이었다. 그것들은 서로 다른 종류의 것이었고 매우 드라마틱하게 쌓였지만, 우리는 어떻게 쌓여갈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가 의도했던 방향이 아니었다. 음악과 미술이 만나 탄생한 그것들은 마치 그 순간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낸 하나의 작품이었다.

A: 덧붙여 나는 관객들이 즐겁게 이 공연을 받아들였다고 느꼈다. 보이지 않는 투명한 레이어를 쌓아서 보이게 만들거나, 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었다. 사운드든, 비주얼이든.

아키코는 꾸준히 음악과 화소가 융합된 라이브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경험을 쌓아 왔다. 화가로서 본인에게 음악이란 어떤 영감을 불러일으키는지 궁금하다.

A: 음악은 영구히 남는다. 물리학 관점에서 음악의 파형은 우리의 몸을 자극한다. 그것들은 보이지는 않지만, 어떠한 형태, 구조, 그리고 놀라운 색상을 만든다. 또한 비주얼과 만났을 때 음악은 관객의 뇌 안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남는다. 이것이 영구적인 음악-시각 예술을 만드는 데에 있어 가장 흥미로운 점이다.

또한 강력한 힘을 가진 음악의 경우, 각자의 모양과 구조를 가진다. 하지만 비주얼은 감각을 만들 수 있고, 또한 그것들 안에서 각각의 요소가 섞일 때 관객의 뇌에 물리적인 마법을 선사하게 된다. 물리학과 비주얼이 섞이는 것. 이것은 영구적인 경험이지만 반대로 영구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을 비로소 볼 수 있게 된다. 괴짜 같은 말이지만, 굉장히 매력적인 이야기다. 이것이 오디오-비주얼 아트가 만드는 마법 같은 일이다.

당신의 라이브 퍼포먼스는 잉크와 알코올을 결합해 마치 세포가 분열하는 듯한 생명 공학 모듈을 설계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라이브 퍼포먼스에 대해 자세한 설명 부탁한다.

A: ‘Alive Painting’에는 강력한 과학적 근거가 있다. 이것은 내가 선택한 재료와 함께 무대 위에서 내가 만드는 그림을 설명한다. 하지만 이는 단지 모험의 첫걸음에 불과하다. 과학은 내가 무대를 만드는 첫 번째 단계. 다음으로 기술이 두 번째 단계이다. 기술을 통해 내가 만드는 형태는 물리적 등급이 된다. 그래서, ‘Alive Painting’은 물리학과 과학, 그리고 화가 사이의 협업이다. 관객은 내 과정을 그저 느끼기만 하면 된다.

종합적으로, 다양한 성격의 사물이 결합하고, 그것들은 염료가 된다. 그 후 나는 각각의 물체와 재료가 외치는 목소리들을 들으며 그들에게 잉크들을 끼얹는다. 비로소 그들은 각자의 것들에 반갑게 인사하며, 잉크와 재료들이 극장 안에서 서로 같은 것으로 인식되게 하는 방법을 찾는다. 이제, 그들은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나는 그것들의 경험을 만드는 역할이다.

물리적 현상에 의해 생성되는 모듈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다만, 라이브 공연에 한해서는 많은 외부 요인에 따라 그 접근이 달라질 수 있다. 그렇게 예술과 물리학이 서로 협업하며 복잡한 시각적 요소를 만드는 것. 이것이 내가 만드는 ‘Alive Painting’이다.

문득 작품 철학을 들으니 ‘판화’가 연상됐다. 당신의 성장 배경에 판화 기술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A: 나의 작품 배경은 일본의 회화 역사에 기반을 두고 있다. 1000년 전, “스미나가시(Suminagashi, 墨 流 し)”로 불리는 ‘Paint marbling’ 개념이 일본에서 처음 도래한다. ‘Paint marbling’이란 물의 표면장력에 ‘Sumi-ink’라고 불리는 고유한 잉크를 떨어뜨리고, 잉크 마블링으로 이루어진 용지에 ‘판을 찍는(print)’ 자연 현상이다. 그것들은 Waka Poetry. 즉 ‘하이쿠(俳句)’로 불리는 짧은 시가가 마블링으로 이루어진 패턴에 써지며 곧 책자 형태로 확장된다. 일본에서 이 기술은 특별한 것은 아니다. 많은 국가가 그들만의 고유한 판화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 관점에서, 터키의 ’ebru’ 나, 이탈리아 피렌체의 마블링 기술 또한 수많은 국가가 자랑하는 판화 기술로서의 양상 중 하나다. 가끔 나는 사람들이 판화에 열정을 느낄 때 희망을 찾는다.

여기서 쉬어가는 질문 하나. 당신이 좋아하는 한국 음식과 문화가 궁금해졌다. 특별하게 생각하는 한국에 대한 기억이 있나.

A: 한국 음식에 관해서는 3시간 넘게 얘기할 수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레지던시 분들과 함께 먹은 버섯탕. 그리고 그날 아침 시장에서 먹은 국수 또한 맛있었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삼계탕을 요리해 먹었는데, 이게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자면, 친구들과 함께 먹었기에 더 맛있었던 것 같다. 이런 기회들이 점점 내가 한국을 좋아하게 만든다.

그리고 문화에 대해서, 특히 ‘한지’에 흥미가 있다. 한지는 아름답고 강하다. 내가 지난번, 서울을 방문해 즉흥 페인팅을 봤을 때, 작품 속 흰 공간이 가진 힘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시간은 잉크에 관한 배경을 이해한다면 정말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것들이 내가 추후 그리게 될 작품들에 큰 영향을 주었기에 매우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카이토는 5년 전, ‘베톤 부르(Beton Brut)’에서 진행한 DJ 세트 이후 오랜만에 한국을 찾아 첫 라이브 세트를 선보였다. 당신이 생각하는 DJ 세트와 라이브 세트의 차이점이 궁금하다.

K: DJ 세트는 음악을 디깅하고, 고른다. 그 음악들은 보통 DJ 본연의 취향이 드러난다. 관객은 DJ 세트에 그루브를 타거나, DJ는 원하는 대로 그 세트를 플레이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것에 지루함을 느낀다면 어떨까. 그때, DJ들은 항상 다른 종류의 창작을 고심해야만 할 것이다. 라이브 세트와 비교한다면, 라이브 세트는 트랙의 전체적인 길이를 더욱 강조하는 형태다. 종합적으로 이 부분이 DJ 세트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다.

라이브 세트를 진행하는 아티스트는 더욱 본인의 몸에 집중해야 한다. 현장의 공기, 다른 사람의 텐션, 그리고 다양한 베뉴의 온도 차, 그리고 사운드 시스템까지. 만약 당신이 사운드 시스템에 불편함을 느낀다면, 불쾌한 경험일 것이다. 종합적으로, 마음을 잃게 되고 공연을 진행하는 아티스트에게 집중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J 세트와 비교해서 라이브 퍼포먼스는 나에게 매우 특별하게 다가온다. DJ 세트가 좀 더 재밌지만, 라이브 퍼포먼스는 그에 비해 조금 어렵다. 내가 음악의 한 부분을 맡아 공연을 진행할 때, 그 음악은 나에게 준비의 시간을 주지 않는다. 만약 모든 부분의 음악을 맡아 공연을 선보이게 된다면, 그것은 훌륭하게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는 뜻이기에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오게 된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라이브 세트와 DJ 세트에서 드러나는 매력이 같이 움직이는 것. 그것이 바로 특별하고 세련된 공연을 만들게 되는 방법일 것이다.

이력이 매우 특이하다. ‘코나미(KONAMI)’ 사의 리듬 게임, “Beatmania”에 참여했고 또한 이를 위시한 동인 음악 신에도 활동하는 반면, 독일의 레이블 ‘콤팩트(Kompakt)’ 등 해외의 시장 또한 공략하며 적지 않은 앨범을 발매했다. 이렇듯 다양한 이력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나?

K: 사실 나에게는 그 많은 종류의 작업들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Beatmania”로 예를 들면, 대략 96년, 혹은 97년쯤에 “Beatmania”라는 게임을 통해 큰 카타르시스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을 만났고 코나미에서 DJ의 타입의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전해 들었다. 게임 자체는 훌륭했지만, 첫 번째는 큰 히트작이 아니었지. 그래서 두 번째 시리즈에서 코나미는 더 재미있고 편안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다양한 장르의 DJ를 모아서 작업하며 “Beatmania”의 음악이 실제 DJ의 음악처럼 들리게 했다. 마침 내가 속한 에이전시가 코나미와 연결되어 있어서 그들이 나에게도 “Beatmania” 트랙의 리믹스를 부탁했다. 내가 리믹스를 했더니 정말 좋아했고 결과도 괜찮았다. 이후에 “Beatmania IIDX”의 작업도 맡게 되었고 코나미는 나에게 다양한 장르의 게임 음악을 제작해 달라고 요청했다.

“Beatmania IIDX” 당시에 나는 뉴욕에 있었는데, 내 관점에서는 게임 음악과 언더그라운드 댄스 음악의 간극은 없었다. 다만 게임 음악은 보통 1분, 길어야 1분 40초 정도로 짧았지만, 내가 주로 작업하는 음악은 8분에서 10분 정도였으니까 그게 좀 어려운 부분이었지, 결국 음악을 제작하는 과정 자체는 똑같았다. 그래서 “Beatmania” 작업은 나에게 하나의 헤프닝일 뿐이고.

이어서 ‘콤팩트’ 레이블을 통해 발매된 음악은 내가 뉴욕에서 일본으로 돌아왔을 때 뉴욕 언더그라운드 댄스 음악에 푹 빠져서 일본에서도 새로운 스타일의 댄스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뉴욕 하드 하우스 같은 건 아니고 그냥 신선한 걸 만들고 싶었지. 그러던 중 친구가 내가 만든 음악을 듣더니 “이 음악 정말 좋은데? 독일의 ‘콤팩트’가 좋아할 것 같아”라고 했다. 그래서 내 음악을 CDR에 담아 보냈고 곧장 이메일로 “Hey Hiroshi.”라고 승낙하는 답장을 받았다. 모든 일이 2분 안에 일어났다.

당신의 프로젝트 Kaito는 ‘콤팩트’에서의 음반 활동과 동시에 시작된 걸로 알고 있는데.

K: 맞다. 콤팩트는 내가 일본 캐릭터 같은 새로운 프로젝트 이름을 제시하길 바랬거든. 그러나 사실 자랑스러운 건 아니다. 그들의 요청에 일본어로 된 프로젝트 이름을 여럿 떠올리게 되었지만, 일본어는 일본어 자체로 존재하지 않나? 해외에서 일본어 단어를 사용하는 게 멋지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런 내 의견도 어필했지만, 여전히 일본어 프로젝트 이름을 원했기에 당시 태어난 지 거의 1년 된 아들의 이름인 ‘Kaito’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다시 말하지만, 난 이걸 자랑스럽게 여기진 않는다.

시간이 지나 내 아들은 더욱 성장했다. 더 이상 내가 소년이나 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때부터 ‘Kaito’라는 프로젝트에 완전히 다른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2001년부터 내 아들 이름을 프로젝트 이름으로 사용하면서 모두가 나를 Kaito라고 불렀다. 가끔은 내가 Kaito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프로젝트 이름의 의미를 분리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지. 처음에는 내 아들 사진을 앨범 커버로 사용하여 모든 사람들이 ‘Kaito’ 프로젝트가 내 아들과 관련된 걸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내 아들은 성장하여 독립적인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Kaito 프로젝트를 좀 더 개인적으로, 나만의 방식으로 음악을 창작하는 프로젝트로 이끌고 싶었다. 그래서 2016년부터 개념을 바꾸려고 공부했고 데릭 메이(Derrock May)의 ‘트랜스맷 레코드(Transmat Records)’에서 앨범을 발매할 때는 이전 Kaito 음악과는 다른 나만의 음악을 들려주려 했다.

2015년 다이버스 시스템과 아키하바라 중공업의 합작 컴필레이션 앨범 [AD:TECHNO 2]의 첫 번째 트랙 “The Constellations”을 선보였다. 두 레이블과 당신 사이 인연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K: 사실 그 모든 일들이 내가 “Beatmania” 음악을 만들면서 일어난 일이다. “Beatmania”에 음악을 제공한 건 단순한 헤프닝이었지만, 어쨌든 그게 다이버스 시스템과의 소통이 시작된 계기였거든. 그들은 “Beatmania”를 정말 좋아했다. 특히 “Beatmania IIDX”가 나오고 그들은 [Dear, Mr. Hiroshi Watanabe]라는 불법 패키지 앨범을 제작할 정도였으니까. 그들은 내가 만든 “Beatmania” 음악을 리믹스했고 이를 코나미도 필요로 해서 결국 패키지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아키하바라 중공업이 개최한 나고야 이벤트에 초대되어 다이버스 시스템의 ‘Ysk439’와 타카유키 카미야(Kamiya Takayuki)와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당시 새로운 미디어를 만들고 있다고 말하며 자신들이 왜 [Dear, Mr. Hiroshi Watanabe]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그들은 “Beatmania”를 얼마나 사랑하고 깊이 빠져 있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나 또한 왜 [Dear, Mr. Hiroshi Watanabe]이 제작되었는지를 완벽하게 이해했고.

그렇게 동인 음악과 Ysk439와 카미야를 알게 된 건가?

K: 그렇지. 비록 그때의 나는 동인 음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지만, 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테크노와 댄스 음악에 얼마나 심취해 있는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스스로 신을 세우려 하는지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은 즉시 레이블을 세웠고, 굉장히 훌륭한 앨범 패키지를 선보였다. 항상 나에게 존중을 보였고, 지금까지 만들어 왔던 이야기를 들으며 매우 기뻤다.

“Live the Life” 트랙을 알고 있나? 아키하바라 중공업은 바로 작년, “Live the Life”의 엄청난 리믹스 패키지를 선보였다. 그건 우리가 함께 이뤄내야 할 목표 중 하나였다. 그것들은 댄스 뮤직이지만, 댄스플로어를 달구지 않는다. 이 비화는 아직도 나에게 각별하게 남아 있다. 나는 이 일련의 프로젝트에 매우 큰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이 긴 대화가 바로 그들과 나 사이의 관계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당신에게 영감을 준 뮤지션 혹은 DJ가 있다면?

K: 이 질문에 관한 답변은 항상 어렵다. 왜냐하면 많은 종류의 음악을 듣고, 여러 다양한 것들을 보면서 영감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정한 사람이나 무언가가 나에게 큰 영감을 줬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모든 것, 모든 환경, 공기, 분위기 이런 것들이 나에게 영향을 주어 새로운 무언가를 창작하게 만든다. 어쩌면 내 삶에서 만난 친구, 스승님, 또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큰 영감을 줬을 수도 있고. 특정 인물을 지목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나에게 영향을 주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다양한 바운더리에서 꾸준히 활동했다. 두 사람에게 있어 예술 활동에 대해 또 다른 목표가 있다면.

A: 예술가로서, ‘현재 순간’에 집중해 내 작품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아트북을 만들고 싶은 소망이 있다.

K: 항상 음악과 함께 살아왔고 음악은 내 삶을 계속해서 형성하고 있다. 한편으로 부모로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도 나의 역할이지. 그래서 단순히 음악가이기 이전에 ‘와타나베 히로시’라는 한 인간으로서 먼저 존재하려고 한다. 또 삶에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이 균형이 맞춰지지 않으면 창작이 불가능하니까. 다시 말해 삶과 음악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음악을 위해서는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지난 공연과 지금까지의 대화를 요약하니 문득 ‘우연’이라는 단어가 궁금해졌다. 각자 생각하는 우연에 대해, 자유롭게 알려달라.

A: 우리의 인생은, 결국 같이 흘러간다. 또, 인생에서 우리는 많은 일을 겪게 된다. 그리고 저마다 성장하면서 열광하고 미치는 포인트가 하나는 있다. 하하, 내 말은 그냥 인생을 즐기라고 권하고 싶다. 지금에 다시 집중하고 살아가자!

K: 이 질문은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 우연한 일들이 결국 모든 것을 만들어 내는 재료가 되거든. 우연은 시작점이 되어 더 넓은 세계로 확장된다. 우리는 이를 실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멋진 사건일 뿐. 우연은 즉흥성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렇지만 우연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일어난 일 자체에만 집중해야 한다.

Akiko Nakayama 인스타그램 계정
Hiroshi Watanabe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 | 김성우
Photographer | 강지훈
Image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1] : 2007년 4월 29일 발매된 초판. 현재 Diverse System의 웹 사이트에 등록되어 있는 음반은 초판을 재판한 리믹스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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