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재단, DJ Soulscape와 함께한 프로젝트 앨범 [예언] 발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재단(Asian Culture Center Foundation 이하 ACCF) 전개하고 있는 프로젝트 ‘아시아 사운드 아카이브(Asia Sound Archive)’가 올해 첫 선을 보인다. 서울의 DJ, 프로듀서인 DJ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와 함께 라이브러리 뮤직의 관점에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적인 사운드를 고찰하며 프로젝트 앨범 [예언]을 발매, 프로젝트 앨범 발매를 필두로 발란사(balansa)와 협업한 굿즈도 제작한다.

앨범 [예언]은 5월 16일 바이닐과 디지털 음원으로 발매되며, 이를 시작으로 22일에는 ‘ACC 특별열람실’에서 DJ 소울스케이프와 함께 프로젝트 앨범 청음회를 진행, 광주를 찾지 못해 아쉬울 이들을 위하여 해방촌에 자리한 레코드숍 ‘웰컴레코드(Welcome Records)’에서 25일, 26일 양일간 팝업 또한 전개한다.

바이닐과 의류 머천다이즈 등 다양한 제품군을 만나볼 수 있는 성대한 프로젝트. 그 취지를 더욱 면밀히 살펴보고자 DJ 소울스케이프, 그리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재단 문화사업개발팀 박민우와 대화를 나눴고 하단에서 공개한다. 앨범 중 먼저 공개된 “새타령”과 함께 대화를 살피자.


먼저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DJ 소울스케이프(이하 S): 이번 아시아 사운드 아카이브 음반 프로젝트를 맡아서 진행하고 있는 박민준이다. DJ 소울스케이프라는 이름으로 DJ로도 활동하고 있고 아시아 사운드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어드바이저, 프로듀서로 참여 중이다.

박민우(이하 P): ACCF에서 아시아 사운드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비롯해 상품 개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박민우라고 한다.

아시아 사운드 아카이브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S: 우선 ACC에서 ‘아시아 사운드 아카이브’라는 대주제로 전시와 공연 등의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해 왔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접근으로 좀 더 액티브하게 프로덕트를 만들고, 음악도 제작하는 방향으로 논의했다. 그러다가 내가 스튜디오 360 경음악단이라는 라이브러리 음악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으니까 아시아 로컬 사운드와 라이브러리 음악 등의 소리에 관해 근원적으로 접근하자는 컨셉으로 자연스럽게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P: 국립아시아문화전당(National Asian Culture Center 이하 ACC)에서는 지난 2014년 부터 아시아의 ‘대중음악’, ‘실험음악’, ‘소리문화’등에 관한 연구와 자원 수집을 통한 아카이브 컬렉션을 구축해 왔는데, 이의 연장선이자, 새로운 관점에서 아시아 음악과 사운드를 조명할 수 있는 구체적인 상품 개발 프로젝트로 아시아 사운드 아카이브의 방향을 설정하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프로젝트 리서치 과정에서 리슨투더시티(Listen to the City)의 ‘땅, 호흡, 소리의 교란자: 포스트콜리니얼 미학’이라는 도서에 DJ 소울스케이프의 인터뷰 내용을 우연한 기회로 접하게 되었는데, 인터뷰 내용 중 아시아 음악과 로컬 정체성에 대해 언급한 부분에 크게 공감하였다. 사실 오래전부터 DJ 소울스케이프는 음악을 들려주고, 기록하는 아키비스트이자, 왕성하게 활동하는 DJ, 프로듀서로서 [THE SOUND OF SEOUL]이나 [MORE SOUND OF SEOUL], [대합실을 위한 경음악]과 같은 결과물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이러한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이번 아시아 사운드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가장 잘 이끌어 주실 분이라 생각되어 프로젝트 어드바이저이자, 앨범의 프로듀서로 요청하게 되었다.

이번 프로젝트의 타이틀 [예언]은 어디서 기인했는지?

S: [예언]이라고 하니까 너무 거창하고 진지하고 무거운 표현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렇기 보다는 60, 70년대 음반을 보면 한국적인 사운드에 록이나 소울, 재즈 등을 결합하여 어떤 방향으로 풀었는지에 관해 좋은 단서가 많았고, 그러한 음반들이 어떻게 보면 당시에는 음악적인 가치를 잘 모르고 지나갔을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지금의 음악가 입장에서는 아시아적인 소리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마치 예언과도 같은 음악들이 많았다고 생각해서 붙은 이름이다. 또 예전에 이판근 선생님을 뵌 적이 있었는데, 그때 우리 민요나 가곡이 재즈, 오케스트레이션으로 풀어지는 게 미래에는 한국적인 소리로 재평가 받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이 이야기에서도 어느 정도 힌트를 얻기도 했다.

피지컬 매체로 바이닐이 제작된다. 왜 바이닐인가? 또 바이닐 외 발매 매체가 있다면?

S: 꼭 바이닐로만 발매해야겠다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아카이브’라는 취지가 있었고 음악을 만드는데 영감을 받은 것들이 바이닐로 음악이 발매되던 시대의 음악이라 여러 가지 의미에서 바이닐 매체가 가장 적격했다. 당연히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한 발매도 이루어진다.

이번 앨범의 세션을 꾸릴 때 특히나 고려한 점이 있나?

S: 리듬 섹션은 까데호, 윤석철의 건반, 마더 바이브의 비브라폰, 색소폰에 김오키, 그리고 이번 앨범에는 참여하지 않았는데 퍼커션은 콴돌이 함께한다. 매번 이 멤버를 위주로 진행되기 때문에 스튜디오 밴드의 형태가 갖춰지고 있다. 고정적으로 매번 함께하니까 더 능률적이고 재밌는 아웃풋이 많이 나온다.

비브라폰의 참여가 특별하게 느껴진다. 다른 악기로 멜로디를 채울 수 있었을 텐데, 굳이 비브라폰을 스튜디오 밴드의 구성으로 꾸리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S: 비브라폰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악기 중에 하나다. 상업적인 의도로 만들어진 악기지만, 영화나 빅밴드에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전자악기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활발하게 사용되었다. 한국에서는 경음악과 신민요 영화음악에도 필수적으로 사용된 악기이기도 하거든. 그래서 편곡법이나 비브라폰만이 낼 수 있는 멜로우한 무드가 있다. 그러한 무드와 시대 배경까지 살리고 싶었기 때문에 필수적이었다. 어찌 보면 밴드의 중심이다. 단순히 무드만 만들어내기 위한 악기가 아니라 우리 밴드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

말마따나 스튜디오 360에서 빌리프, 대합실 경음악 등 꾸준히 세션과 협업하여 음악을 발매하고 있다. 컴퓨터와 DAW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스튜디오 밴드를 운영하며 음악을 제작하는 이유는?

S: 70, 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어떤 스튜디오의 전속 악단이라는 개념이 존재했다. 어떤 스튜디오가 있으면 그 스튜디오나 어떤 레이블에서 자체적으로 음악을 연주하고 녹음하는 상주 레지던스라고 해야 될까나. 지금은 컴퓨터 베이스의 음악 제작이 더 많아지다 보니까 스튜디오 밴드가 많이 사라지고 세션맨들이 반대로 여러 프로젝트들에 모여 연주하는 형태로 변했지. 앞서 말했지만, 스튜디오를 기반으로 해서 전속 악단이 있다면 그 스튜디오만의 사운드가 계속 다듬어지면서 만들어진다. 스튜디오나 다른 장소에서 녹음되는 것과는 다른 방식의 새로운 사운드, 그리고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편곡과 프로덕션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일부러 스튜디오 밴드라는 제약을 두고 음악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또 그 안에서 소리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는 게 프로듀서 입장에서 굉장히 재밌기 때문에 이를 고집하기도 한다.

서울 음악 신에서 쟁쟁한 연주자들이다. 이들이 스튜디오 360에서는 어떠한 시너지를 내는지가 궁금한데.

S: 우선 까데호의 리듬 섹션은 내가 편곡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요소다. 기타, 베이스, 드럼이 중추적인 백비트를 만들고 첫 번째 편곡이 까데호를 위해 진행된다. 그 다음에 윤석철이 건반을 연주하는데 윤석철은 사운드 하나하나에 감정이 실어서 편곡 때 사운드가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순간이 나온다. 이런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의 사운드에서 핵심적인 영향을 끼치는 연주자라고 볼 수 있고, 마더바이브의 비브라폰은 클래시컬한 연주로 보통의 재즈 플레이어들보다 터치가 많지 않은 스타일이라 우리의 프로젝트와 오히려 잘 맞다. 김오키는 뭐 특별히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김오키의 연주 스타일은 매우 영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그런 뉘앙스를 음악에 매번 불어넣어 주는 특별한 연주자다. 이번 세션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콴돌 역시 글로벌 음악에 관한 이해를 바탕으로 매번 새로운 라인을 제시하기 때문에 새로운 의외성을 찾을 수 있어 매번 함께하고 있다.

세션이 모여서 함께 녹음하는 것이 아닌 각자 파트를 녹음하여 더빙하는 형태의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S: 이번 프로젝트는 특히 그랬다. 리허설 때는 모여서 합주하기도 하지만, 각자 작업이 많은 연주자이기 때문에. 그리고 어느 정도 노하우가 쌓이고 서로 커뮤니케이션 전달도 빠르게 할 수 있게 되며 이러한 작업 방식이 시간을 많이 단축한다. 라이브러리 뮤직이나 영화 사운드트랙 작업에서 특히 효율적이다. 물론 연주자 개인의 앨범 녹음에서는 현장의 시너지와 에너지에서 역동적인 결과를 가져올 때가 많다. 그러나 합주로 라이브러리 음악을 녹음하는 경우에 프로듀서, 편곡자, 컨덕터의 의도와 지시를 연주자가 잘 따라야 하기에 오히려 나눠서 녹음하는 게 통제가 수월할 수 있다.

앞서 라이브러리 뮤직의 근원을 쫓는다고 이야기했다. 때문에 한국의 라이브러리 음악은 어떻게 성장했는지도 궁금한데?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의 유럽과 북미 지역은 영화 산업 발전과 동시에 라이브러리 음악도 성장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한국은 또 다른 양상이었을 것 같다.

S: 한국에서 라이브러리 뮤직은 활성화되지 못했던 장르다. 그나마 있는 것들 대부분이 방송국, 방송사 악단이 연주했거나 혹은 오아시스레코드 등의 큰 음반사 위주의 스튜디오 밴드가 녹음했던 것인데 70년대부터는 아예 해외 라이브러리 음악을 수입해서 더 많이 사용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우리나라는 라이브러리 뮤직의 형태라기보다 경음악 형태로 만들어져서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음악을 시도한 경우가 많다. 빈티지 레코드숍에서 가끔 보이는 카페 경음악이나 캬바레 경음악 등이 그런 음악이지. 프랑스의 몽파르나스 시리즈나 이탈리아의 경음악 등은 실제 영화나 드라마에서 바로 사용이 되거나 광고에 삽입되기도 하고 현대 무용 등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이는 그 당시 유럽 음악 시장이 얼마나 크고 성숙했는지를 반증한다.

범위를 조금 더 넓혀 아시아의 라이브러리 뮤직은 어떠했나?

S: 일본이 유럽과 비슷한 형태로 활발했다. 사실 아시아의 라이브러리 뮤직 신(scene)은 크지 않았다. 경음악단 형태라던가 소위 말하는 이지리스닝이라고 하는 장르 스타일이 라이브러리 뮤직과 조금 겹치지만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재즈 퓨전도 비슷한 양상으로 발전된 신일까? 라이브러리 뮤직이나 경음악과 결아 아주 비슷하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

S: 일본은 퓨전 시대 이전부터 라이브러리 형태의 음악은 항상 존재했던 것 같다. 우리가 알고 있는 퓨전 재즈나 AOR, 그리고 앰비언트 계열도 굉장히 활발했지. 이들은 라이브러리 뮤직의 형태를 띄기도 하지만, 특정 브랜드와 함께 작업하여 발매된 음반이 많았다.

EP [예언]은 1~4번까지 민요를, 5~7번 트랙까지 오리지널 트랙으로 구성했다. 특히 민요에 밀양아리랑,새타령, 자진모리, 한오백년 등 한국인에게 익숙한 토속 민요가 재구성되었는데, 다른 민요를 제쳐 두고 상기된 곡들로 재구성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S: 60~70년대 경음악에서 자주 등장하는 민요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가요들 중에서 민요에 가까운 음악들이 경음악의 소재가 되었는데, 그들 중에서도 구전 민요를 택하고 싶었고, 구전 민요 중에서도 누구나 들으면 알 수 있는 멜로디의 곡을 선정했다.

민요를 재즈적으로 트위스트 할 때 어려움은 없었나?

S: 오히려 민요를 재즈로 다루기에 자유로운 부분이 많이 있다. 이판근 선생님을 만났을 때 민요를 재즈로 편곡해 놓은 악보를 많이 보여주셨는데, 그 악보에서 이번 프로젝트의 힌트를 많이 얻었다. 그때 선생님께서 한국 민요의 스케일이 아프리카나 아랍 등 소위 얘기하는 ‘제3세계’ 혹은 ‘글로벌 뮤직’이라 일컬어지는 다른 나라 음악들과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우리 재즈를 계속 변형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렇게 녹음한 음반은 단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거든. 그 아쉬움을 좀 많이 이야기하셨었는데, 여기에 힌트를 얻어 내 작업을 재즈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재즈를 기반으로 한 글로벌 뮤직의 방향으로 풀었기 때문에 그 과정이 어려웠다기보다는 오히려 자유도가 매우 높았다.

곧 프로젝트가 공개되는데, 공개 이후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S: 스튜디오 밴드이기 때문에 외부적인 공연 활동은 없지만, 그들과 함께하는 음악 작업을 매년 이어나가 내년에는 아시아의 음악 소스를 발굴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고 싶다. 과거 홍콩, 필리핀, 싱가포르 등의 지역에서 한국 뮤지션이 많이 활동하기도 했었고 그 지역 뮤지션들과 한국 프로듀서들 혹은 반대로 동남아시아와 타아시아권의 프로듀서들이 한국 연주자와 함께 음반을 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 역시 그런 방향의 음악들이나 아시아의 소리로 주제를 확장하여 많은 작업을 이어가고 싶다.

P: 일단 오는 5월 22일 수요일, 오후 6시 30분에 ACC 특별열람실에서 DJ 소울스케이프와 함께 프로젝트 앨범 청음회를 진행한다. 이번 프로젝트 앨범인 [예언]의 작업기를 비롯해 라이브러리 뮤직 관점에서의 한국적인 사운드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이러한 한국적인 사운드에 대해 힌트를 얻었던 다섯 장의 70년대 앨범을 소개하는 자리를 갖는다. 당일 프로그램 종료 후, ACC 인근 레코드바에서 좀 더 편안한 분위기로 2부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인데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면 좋겠다. 이와 더불어 5월 24일과 25일, 양일간 해방촌에 있는 웰컴레코즈에서 이번 프로젝트 앨범과 연계 상품을 소개하는 팝업스토어를 운영할 예정이다. ACC가 광주에 있어 방문하기 힘든 분들을 위한 자리이니 이 역시 많은 분들이 찾아주면 좋겠다.

프로젝트 앨범과 함께 발란사와의 협업 MD가 출시된다고 들었는데, 소개해 달라

P: 아무래도 상품을 개발하는 부서에 있다 보니 프로젝트 앨범을 좀 더 알리고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매개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마음속으로 발란사(Balansa)와 협업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DJ 소울스케이프가 상품 개발 파트너로 발란사를 추천해 주었다. 그때부터 바로 협업을 위한 제안서를 준비했고, 발란사 김지훈 디렉터 또한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어서 이번 협업 컬렉션이 탄생할 수 있었다. 상품 개발 과정에서 발란사의 남진수, 곽동훈 디자이너는 이번 협업 아이덴티티를 비롯해 티셔츠, 캡, 반다나, 키링, 그리고 세라믹 플레이트 등을 멋지게 디자인해 주었고, 특히 임창우 디자이너는 ACC 문화상품점 공간을 배경으로 ‘DLAC 들락’의 캐릭터와 협업 티셔츠, 모자가 등장하는 귀엽고 재치 있는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제작해 주었다. 이 자리를 빌어 김지훈 디렉터, 남진수, 임창우, 곽동훈 디자이너, 그리고 전홍비MD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DLAC 들락’은 어떤 의미이며, 브랜드로서 어떤 점을 지향하고 있나?

P: ‘DLAC 들락’은 ACC가 자체적으로 만든 문화상품 브랜드인데, ‘Dots and Lines to Asian Culture’의 앞 문자가 조합된 단어이고 ‘독자적이면서 연결된 아시아 문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아시아 문화를 떠올리면 대개 전통적인 방식 혹은 내용이 떠오르기 쉬운데, 우리가 생각한 아시아 문화라는 것은 ‘여러 개성있는 주체(국가, 도시, 브랜드, 창작자, …)들이 서로를 거울삼아, 혹은 자극이 되어 진화해 나가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었다. 그래서 여러 개성있는 주체가 ‘점(Dot)’이라면, 우리가 ‘선(Line)’이 되어 연결 짓고자 하는 의지나 태도, 자세 등을 브랜드에 담았다. 어떻게 보면 이번 아시아 사운드 아카이브 프로젝트도 ‘DLAC 들락’이 지향하는 관점 속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아시아 사운드의 개성과 미감을 담고 싶었고, 방식적인 측면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가 참여하여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향후 아시아 사운드 아카이브 프로젝트, 혹은 ‘DLAC 들락’의 계획을 말해 달라

P: DJ 소울스케이프가 앞서 언급한 내용의 연장선에서 차년도에는 아시아의 음악 소스를 재창조한 레코드를 제작해 보거나, 태국의 덴 수비니어(Den Souvenir)와 같이 아시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브랜드와 협업하는 것을 희망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DLAC 들락’을 통해 엘리트 예술가, 창작자와의 협업뿐만 아니라 다양한 층위에서 활동하는 창작자들을 조명하고 협업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 예를 들면, ACC 건축의 주요한 특징이 ‘광장’과 ‘공원’인데, ACC가 광주에 건립된 후 광장 공간에 수많은 스케이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ACC가 건립되기 전부터 이 주변을 배회하며 청년시절을 보냈었는데, 그 전에는 목격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래서 언젠가 이들을 위한 프로젝트나 상품을 반스와 함께 개발하는 날을 상상해보곤 한다.

DJ Soulscape 인스타그램 계정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상품점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 | 황선웅
Photographer | 강지훈

RECOMMENDED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