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 An

학부 시절 기술과 예술의 차이에 관한 질문을 받은 기억이 있다. 당시 필자는 전자의 경우 최종 결과물에 확실성을 바탕으로 한 창조 행위, 후자의 경우 최종 결과물의 불확실성을 바탕으로 과정 속에서 행하는 창조 행위라 답했더라. 물론 예술과 기술이 독일어 ‘Kunst’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지금도 유효한 답변으로 들린다.

어언 5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답안지에 지움표 하나 길게 긋는다. 그러고는 진실된 희생으로 이룩한 예술과 기술 사이에 차이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려본다. 우리는 어느 뮤지션을 만나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희생을 향해 있는 그의 횃불 그리고 그 실천. 진정한 자족. 그와의 대담이 그 잠정적 결론에 대한 논증이 될 것이라 믿는다.


간단한 자기소개 한번 부탁한다.

LA를 기반으로 음악을 만들고 그래픽 디자인과 사운드 디자인을 하는 선 안(Sun An)이라고 한다. 2012년부터 독립적으로 음악을 발표해 왔고, 최근 암스테르담 기반의 레이블 뮤직 프롬 메모리(Music From Memory)를 통해 팀 코(Tim Koh)와의 협업 앨범 [Salt and Sugar Look the Same]을 발표했다.

최근 첫 내한 공연을 코끼리에서 가졌는데 어떤 계기로 공연이 성사 됐으며 공연 후 느낀 바가 궁금하다.

정말 멋진 경험이었다. 관객들과 주변 뮤지션들이 따뜻하게 반겨준 덕에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연주할 수 있었다. 보통 클럽이라 하면 사람들이 춤을 추고 시끌벅적한 사교의 공간이지 않나? 하지만 그날 밤만큼은 정말 특별했다. 관객들은 집중해 줬고, 아티스트들은 본능적으로 연주했다. 코끼리의 훌륭한 사운드 시스템 덕분에 압도적이고 성스러운 경험이 극대화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번 공연에는 다른 도시에서 진행했던 공연들과 달리 예술 산업에 속한 이들이 많이 자리해 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음악을 더 잘 이해해 줬다는 인상을 받아 위로를 받는 기분까지 들었다. 공연의 경우, 포스트 포에틱스(Post Poetics)의 조완 덕분에 공연은 성사될 수 있었다. 앨범 발매 이후 특별한 이벤트가 진행되지 않았던 터라, 그의 기획과 도움 아래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고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번 공연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게스트 라인업과 베뉴의 장소성도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오비덕트(Oviduct)와 모과(Mogwaa)의 앰비언트 라이브 셋, 코끼리라는 베뉴의 상징성. 이들과의 합이 궁금하다.

공연 전에 오비딕트와 모과를 만나 서로 충분히 알아가고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서 그런지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흘러갔다. 그들은 하나의 장르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음악을 가로지르며 앰비언트 음악을 만들더라. 무엇보다 라이라 신시사이저(Lyra Synthesizer)로만 연주한 오비덕트와 복잡한 셋업으로 연주한 모과를 보여 라이브 셋 구성과 관객을 향한 그들의 의도를 배울 수 있어 좋았다. 코끼리 또한 베뉴가 갖고 있는 상징성과 장소성을 음악적으로도 확장해 통념적인 클럽으로부터 탈피하려는 시도가 인상적이었다. 이를 통해 오랫동안 신(Scene)을 지켜오며 본인 만의 세계를 구축한 아티스트들과 베뉴의 뚝심을 엿볼 수 있었다.

최근에 뮤직 프롬 메모리를 통해 발표한 앨범 [Salt and Sugar Look the Same]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Ariel Pink’s Haunted Graffiti”의 맴버로도 알려진 팀 코(Tim Koh)와의 협업이었다. 어떤 인연과 과정으로 앨범을 작업했는지 궁금하다. 앨범 소개 글을 통해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오랫동안 작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트센터(ArtCenter College of Design) 재학생 시절, 내가 음악을 한다는 걸 안 친구들로부터 ‘칼아츠(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 다니는 팀 코’를 아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는 음악 활동을 하는 동양인들이 많이 않았기도 했고, 그는 진작 LA 음악 신의 뿌리 깊은 존재로서 매우 창의적인 아티스트로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나 또한 당시 그가 운영 중인 레이블의 행보를 쫓고 있던 차라 그가 발표한 실험적인 행보에 매료돼 있었다.

그 또한 내 음악에 흥미를 보였는데, 팬데믹 이후 그로부터 [Yamaha at McCabe’s]를 매일 듣고 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 일을 계기로, 팀으로부터 협업 제안을 받게 되었다. 당시 그는 베를린에 있었고, 나는 캘리포니아에 있던 터라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천천히 하지만 자연스럽게 작업을 이어갔다. 작업은 핸드폰으로 녹음한 음성 메모와 피드백을 주고받는 식으로 이뤄졌다. 대게는 창밖 소리 등 베를린의 일상을 담은 필드 레코딩이었는데, 그의 개인적이고 자전적인 일기를 들여다보는 것만 같았다. 사실 음악 커리어를 시작했을 무렵, 팀이 이끌던 레이블에 협업을 제안했었다. 당시에는 모종의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그가 먼저 협업을 제안해 함께 작업을 했다는 점에서 무척 뜻깊다.

두 아티스트는 밴드 활동을 한 이력을 비롯해 시각 매체를 다루는 직업을 겸직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동양인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많아 보인다. 그런 점에서 앨범의 제목 또한 의미심장한데, 앨범의 주제나 컨셉이 궁금하다.

동의한다. 그런 공통점으로 팀과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 같다. 그리고 이를 앨범 컨셉과 주제에 녹여냈다고 생각한다. 앨범 타이틀인 “Salt and Sugar Look the Same”같은 경우도 중의적으로 사용했다. 전자는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자전적 의미로, 흔히 아시아인들은 모두 똑같이 생겼다는 차별적인 편견을 비튼 일종의 유머로 접근했다. 후자는 ‘무엇을 믿을지 조심하라’는 뜻의 관용적 표현을 현 세태에 적용하려 했다. 팬데믹 이후 아시아인 혐오가 심어진 정세 속에서 서로 연대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말하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자취를 지닌 이들과 연을 맺긴 점점 어려워지곤 하는데, 팀은 나와 비슷한 감정과 경험을 공유한 인물이다. 때문에 나는 줄곧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 팀의 초상화이자 우리 둘에 대한 초상화를 그리고자 했다. 이처럼 팀과 나 사이의 공통점이 앨범의 중요한 근간이 되었다.

트랙 리스트를 관통하는 후각적인 심상들과 제목들이 시각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앨범명과 대조를 이루며 더욱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다양한 감각들을 차용한 이유가 궁금하다.

팀은 농담처럼 곡들을 두고 ‘명상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명상 음악’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곡 길이가 들쭉날쭉한 탓이겠지. 그런 이유에서 향이 타는 시간처럼 다가왔다. 어떤 향은 15분간 연소하기도 하지만 금방 타버리는 향도 있는 법이다. 더불어 평상시 인센스를 애용하는 편이라 이런 아이디어들을 반영하려 했다.

예를 들어 “Incense Holder”는 향과 시간에 대한 곡이다. 인센스 홀더라는 존재는 영원히 남아 있는 반면, 향은 일시적인 존재로, 일시적인 존재가 영원한 존재에 담겨 있는 대비가 마음에 들었다. 이번 앨범의 곡들은 그릇과 같다고 생각한다. 인센스 홀더가 시간을 담고 있는 것처럼, 곡들은 그런 순간을 담아내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연쇄적으로 생각하다 보며 모든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느껴진다.

드럼 라인의 적극적인 차용이라든지, 직접적인 로 파이(Lo-Fi) 질감 구현, 정박의 리듬과 템포, 찹앤스크루 작법 등 기존에 선보인 작품들과는 다른 방향성을 지녔다. 이를 두고 변화의 이유가 있다면 이야기해 줄 수 있는가?

언급했듯 이번 앨범이 팀의 초상화를 그려보자는 취지였기에 최대한 팀의 음악들을 나름대로 재해석하려는 시도를 담으려 했다. 예를 들어, 팀이 믹싱 보드에 바로 연결하는 방식을 통해 구현한 드럼과 기타의 질감을 비롯해, 과거 2000년대 초반 팀이 존 위스(John Wiese)와 발표했던 노이즈 앨범에서 착안한 노이즈들을 재해석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와 같이 팀의 음악 스타일과 기존 내가 구사하던 작업 방식의 자연스러운 결합을 통해 추상화를 완전하게 그릴 수 있었다고 본다.

[L.A. Sandwich], [My Dad The Painter-No Not That Kind Of Painter]와 같은 앨범에서 동양인으로서, 나아가 이민자로서 느끼는 감정과 혼란을 덤덤하고 일상적인 톤으로 풀어가는 평을 받고 있다. 이처럼 개인적인 네러티브를 풀어낸 특별한 이유라도 있을까?

확실히 자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언급된 앨범들은 모두 독립적으로 발표됐기에 원하는 바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다. 작업할 당시 일상적이고 규칙적인 루틴을 따르며 살고 있었고, 그런 내 삶을 음악에 담았을 뿐이다. 일례로 필드 레코딩을 넣은 곡이 있다면, 실제로 내가 그 장소에 있었기 때문에 담은 것이다.

제목은 단순히 음악으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일상에서 겪은 바를 응축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내 일상을 담은 음악을 묘사하려면 필연적으로 일상적인 소제와 일화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혹자는 앨범명을 두고 사회-문화적인 관점에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내게는 그저 자전적인 이야기들일 뿐이다.

전작 [TWO ON A RAFT]도 마찬가지이다. 팬데믹 이후 나는 트위치(Twitch)나 유튜브(YouTube)와 같은 플랫폼을 많이 보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내 일상과 경험을 담아보려 했다. 과거 지니(JinnyTTY)라는 스트리머가 전업 스트리머로서 사는 것에 대한 고충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에 크게 공감한 바 있다. 디자이너로서, 뮤지션으로서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작업하다 보면 비슷한 감정을 느낄 때가 많아, 그녀의 방송에서 가져온 보컬 샘플들을 다시 정립함으로써 그 감정과 생각을 담아보려 했다.

과거 덥 랩(Dub Lab)에서의 믹스나 전작 [Pace Accoustic Vol.1]를 보면 80년대와 90년대를 관통하는 기타 음악과 인디락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현재 작업과 창작에 어떤식으로 발현되고 영향을 끼치고 있는 궁금하다. 이번 앨범이 과거의 작품들과 달리 이러한 영향이 직접적으로 반영되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카마시 워싱턴(Kamasi Wahington)과 함께 활동하는 마일스 모슬리(Miles Mosley)와는 오래된 동네 친구로, 그와 밴드를 결성해 악기를 연습하고 음악을 공유하며 우린 함께 성장했다. 나 또한 대부분 기타리스트들이 그러하듯 어쿠스틱 기타로 시작해 자연스럽게 일렉트로닉 기타로 넘어갔다. 내 음악이 꽤 추상적이고 낯설게 들릴 수 있지만, 소리를 가공하고 변형한 결과일 뿐 근간은 어쿠스틱 기타에 있다. 자전거를 타는 법을 평생 잊지 않는 것처럼 기타를 배운 뒤에 잊어버리지 않더라. 나는 이걸 원시주의의 발현으로 봤고, 가공과 변형 없는 날 것 그대로의 기타를 담고 싶은 마음에 [Pace Accoustic Vol.1] 같은 실험을 해본 것이다. 덥랩에서 선보인 믹스는 이러한 나의 유년시절 취향과 추억을 담아낸 믹스테이프와도 같은 개인적인 셋이었다.

장르적으로 펑크나 슈게이즈, 포크, 아트팝과 같은 장르가 주를 이루는 바를 보아 이러한 장르 음악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유추된다. 최근 성행하는 앰비언트 음악들이 테크노나 드럼앤베이스와 같은 댄스 음악을 모티프로 두고 있는 점에서 확연히 다른 구성과 질감 등 여러 차이가 있는 듯한데.

앞서 말했듯 기타로 음악을 시작한 탓에 언제나 내 관심사는 기타 음악에 있다. 비록 지금 사람들의 귀에는 촌스럽고 진부하다 느낄 수 있지만, 1980년대 마이클 헤지스(Michael Hedges)가 보여준 핑거스타일 기타나 윈덤 힐(Windham Hill)과 같은 레이블에서 발표된 뉴에이지 앨범을 보라. 지금 앰비언트라 불리는 음악과 맞닿는 지점들이 있지 않은가?

동시에 드럼앤베이스나 IDM이 확장되고, 인디락과 에이팩스 트윈(Aphex Twin)이 메인스트림 시장에서 소비되던 90년대를 학창시설로 보낸 덕에 전자음악과 기타가 융합되는 걸 직접 목격했다. 내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기타와 닌텐도 게임기, 너바나(Nirvana)가 방에 있었다면, 지금 친구들의 방에는 게이밍 PC와 MIDI 컨트롤러, 에이블톤(Ableton), 데드마우스(Deadmau5)가 자리하듯, 더 이상 락 음악과 기타가 각광받지 못하는 시대인지라 젊은 뮤지션들이 기타 음악을 무관심한 점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 시대와 환경에 따라 음악 선호도가 변화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만큼 이를 음악에 투영하는 것 또한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처럼 본인이 유년 시절에 향유하고 영향받은 것, 특히 90년대에 대한 짙은 향수와 애정이 있는 것 같다.

다른 청소년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또래로부터 많은 것들을 흡수하고 체득하는 10대를 90년대 걸쳐 보냈다. 그 시기만큼은 장래나 현실에 대한 이해타산 없이 애정하는 것들을 순전히 즐기고 사랑했다. 동시에 90년대는 인터넷과 소프트웨어가 막 보급되던 시기로,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의 과도기였던 시기인 만큼 음악과 디자인, 영상 등 예술 전반에 걸쳐 폭발적으로 진보하고 융합되던 것들을 흡수했다. 애시드(Acid)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조악하지만 드럼앤베이스나 IDM 트랙들을 전전긍긍하며 만들어 보기도 하고, 웹사이트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시기라 각종 애호가들이 만든 웹사이트를 통해 다양한 정보들을 접했다. 이처럼 90년대는 나의 근간을 마련해준 만큼 이에 대한 향수가 꽤 짙은 편이다.

본인이 유년 시절 영향을 받고 심취했던 음악들에 대해 말하고 공유하는 것에 대해 꺼림이 없는 것 같다. 이러한 태도는 창작을 대한 태도로까지 이어지는 인상을 받는다. 많은 아티스트들의 이상향이 ‘비참조적(non-referential)’에 있다는 것과 대조되어 보이는데.

아티스트들이 어떠한 이유에서 ‘비참조성’을 추구하고 완전히 독창적인 존재로 비치길 원하는지 이해는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어디선가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시작하지 않은가? LA라는 문화 예술 산업이 고도로 발달된 도시에서 나고 자라 다양한 네트워크와 협력을 경험하면서 컸다. 이러한 이유로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내 존재를 구성하고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진공 상태에서 성장한 게 아닌 만큼 영향받은 것들에 대해 말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생각한다. 굳이 이를 숨기고 싶지 않다. 오히려 이 같은 솔직함은 본인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이들을 기리고 축복하는 방식 아닐까.

본인에게 디깅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 같다. 탄탄한 라이브러리와 아카이브를 구축함에 있어 상당한 양의 디깅이 수반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본인에게 디깅이라는 행위의 의미와 디깅의 덕목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음악을 듣고 좋은 감정을 느끼게 되면, 그 감정을 계속 쫓고 싶다는 기분이 든다. 단지 나는 그 길을 좇으며 따라갈 뿐이다. 어쩌면 이게 디깅의 핵심이 될 수 있는데, 그 길에는 관계성이라는 속성이 내포 되어있다. 음악을 알려준 친구와 레코드샵 직원부터 레이블, 연주자, 커버 디자인 등 여러 신에 속해 있는 인물들 간의 관계와 연결성을 찾고 이어가는 과정. 이게 디깅의 핵심인 것 같다.

세상에는 여전히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가 있다. 그걸 전부 알 수도 없는 법이며, 미쳐 보이지 않을 수 있는 법이다. 그럼에도 디깅이란 미지의 무엇이 이끄는 길을 끝까지 애정과 호기심으로 쫓는 여정이라 생각한다. 결국 그 과정 끝에서 나를 구성하는 정체성과 소속감을 발견하게 되더라.

사담에서 동시대에 향유되고 유행하는 것들만이 온전히 자기 것이 될 수 있다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이에 대한 자세한 부연 설명해 줄 수 있는가?

페네즈(Fennesz)의 [Endless Summer] 앨범을 두고 그가 진행했던 과거 인터뷰와 관련한 이야기로 기억한다. 페네즈는 위 앨범을 두고 70년대 음악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만큼 70년대 프렌치 팝적인 요소를 가미하려 노력했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접한 적 있다. 이를 두고 나는 ‘70년대를 살지 않았으니, 설령 그 시기의 음악을 좋아하더라도 자연스러운 향수는 없겠다’ 싶었다. 70년대를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에 그 시기와 관련한 내재된 경험, 추억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반면 90년대는 당시 유행과 양식을 직접 경험하며 열광했던 시기로, 그 시절을 살았던 나에겐 90년대의 것들은 진실한 요소로 다가온다. 예를 들어, 비치 보이즈(Beach Boys)보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이 내게 더 자연스러운 이유도 그것은 진실히 내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을 걸친 동아시아의 실험 음악 전반에 대한 역사와 신에 대해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경로를 통해 접하게 되었는지, 더불어 어떤 점에서 매료되었는지 궁금하다.

미국 전체 인구 중 아시아계, 특히 한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터무니없이 낮다. 그러다 보니 정체성 혼란이 고조되는 10대 시절, 관심사 비슷하거나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아시아계 인물들을 찾고자 하는 열망은 더욱 샘솟는 법이다. 당시 아시아계 예술인과 아시아 창작계를 조명하던 매체인 자이언트 로봇 매거진(Giant Robot Magazine)을 통해 어느 정도 그 갈증을 해소했다. 특히 보어돔스(Boredoms) 같은 밴드나 온쿄케이(Onkyokei)와 같은 움직임은 물론 서울을 기반한 진상태, 류한길 같은 아티스트와 ‘Balloon & Needle’ 같은 레이블들을 알게 되면서, 아시아에도 변혁적 신이 견고히 구축되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현재에도 커티스(DJ 6ts)와 박다함, 모듈라 서울(Modular Seoul) 등 서울의 여러 아티스트와 레이블들의 행보를 눈여겨 보고 있다.

지금도 계속 새로운 소리와 연주법, 나아가 새로운 소프트웨어에 대한 학습과 탐구가 끊이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본인의 창작 세계 확장을 위해 꾸준함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궁금하다.

종종 유튜브를 통해 어린 프로듀서들이 하루에 열 곡의 비트를 만드는 모습을 접하게 된다. 그들은 5분 만에 비트를 만들고 그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데, 장르는 달라도 그들은 나에게 큰 영감을 준다. 닉 미라(Nick Mira) 같은 프로듀서를 예로 보자. 그는 FL 스튜디오(FL Studio)를 통해 샘플을 뒤틀고 뒤집어 늘리는 과정을 단 20초 만에 끝낸다. 수십 년 사용되어 온 기술을 빠르고 정확하게 사용해 다수의 곡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모습은 제법 창의적이다. 첨언으로 어느 러시아 중학생이 만든 타입 비트들 또한 흥미롭다. 조악하고 어설픈 면도 분명 있지만, 전례 없는 소리만큼은 고무적이다. 이처럼 젊은 뮤지션들의 창작 방식과 그 열정은 내 세계를 확장하는 데 큰 자극이 된다. 정체되지 않고 꾸준히 탐구하는 동기와 실천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편, 어느 음악이 자연스레 흐르듯 들리는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뮤지션의 고난과 역경이 수반된다. 즉, 음 하나를 완벽하게 다듬고, 본인만의 소리는 찾는 노력과 끝없는 연습, 청중에게 다가가는 법을 배우는 세공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청중은 이 시간을 직접 보지는 못해도 음률 속에서 그 뮤지션의 진정성과 시간을 느낄 수 있는 법이다. 우리 뮤지션은 이 교감을 위해, 그리고 이들을 움직이기 위해 살아간다. 이러한 헌신과 봉사만이 창작을 지속 가능하게 만든다.

장르 특성상 청중이 추상적이고 복잡하다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글리치나 드론, 노이즈 같은 장르가 대중과 괴리가 있는 순수 예술의 영역로 치부되는 경향은 이를 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듯하다. 그만큼 현실적인 괴리가 발생하는 신일 텐데, 신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필요하거나 선행되어야 할 것들이 무엇일까?

언급한 음악들, 즉 실험적이거나 언더그라운적인 성향의 음악이 취향일 청중은 언제나 항상 존재할 거로 생각한다. 레코드 샵과 서점, 여러 문화 기관과 컬렉티브들의 헌신과 공헌으로 신은 유지되고 확산할 수 있다. 장르 음악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레코샵이 늘고 애호가들을 주축으로 온오프라인에서 모이고 움직이는 행보는 보면 더뎌 보여도 전반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방증이겠다. 이런 점에서는 창작가, 배급자, 청취자가 서로 연결되어 순환하는 네트워크 속에서, 진심 어린 애정과 호기심만 있다면 누구나 이 네트워크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 우선 자기 자신부터 솔직히 드러내면, 비슷한 사람들이 찾아와 연결되고, 이는 새로운 실험의 발판이 되기 마련이다. 말미암아 그렇게 신은 형성되고 커뮤니티가 구축된다.

본인이 생각할 때 당신의 음악 속 디테일은 무엇이며, 이러한 디테일을 청중에게 들어낼 필요가 있을까?

나에게 있어 디테일은 ‘진실됨’이다. 진실된 마음이야 말로 음악이나 디자인과 같은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데 있어 가장 큰 동기이자 영감이 된다고 생각한다. 내용이든, 태도든 진실된 자기 자신을 담고 들어내며 스스로에게 진실된 것이 중요하다. 그런 만큼 청중에게 그런 디테일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의도하고 담은 것과 무관하게 그들의 음악을 듣고 나름대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며 나눈 소통이면 충분하다. 그 과정 또한 진실됨으로 연결되는 과정일 터이니 말이다.

향후 계획이 있다면 공유해달라.

다음 앨범을 준비 중이다. 개인적으로 보컬이 들어간 음악을 시도해고 싶은 욕심이 있어 보컬을 활용한 여러 실험을 해보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계속해서 새로운 친구, 오랜 친구 상관없이 이들과 어울리며 삶을 나누고 싶다. 그게 나의 큰 즐거움이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선 안의 음악이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는가?

진실됨(Truthful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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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서재덕
Photographer | 박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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