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케이트 신의 세찬 물줄기, CLOSEDOOR

어떤 문화든 누리는 이들이 있어야 굴러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게 있다면 고여있지 않도록 큰 물줄기는 대는 일이다. 그렇게 새로운 흐름을 유인해야 고이지 않을 테니. 말이야 쉽지만, 가느다란 물꼬 하나를 트는 것조차 큰 노력과 긴 시간이 필요하다.

클로즈도어(CLOSEDOOR)는 6년 가까이 한국 스케이트보드 신(Scene)에 작은 파동을 일으키려 끊임없이 움직였다. 1분 미만의 짧은 비디오 클립이 유행을 넘어 대세가 되어버린 이 시대에도 굳이 풀랭스 비디오를 고집하며 문화의 본질을 쫓는다. 클로즈도어의 황현우, 심우빈, 이경호를 만나 지난 클로즈도어의 지난 5년과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물었다.


각자 CD에서 어떤 일을 맡고 있나.

황현우: 우리는 서울을 기반으로 전개하는 스케이트보드 브랜드 CD라고 한다. 나는 브랜드의 전반적인 디렉팅과 영상 촬영 및 편집, 그래픽 디자인을 맡고 있다.

심우빈: 사진을 비롯해 비주얼 전반을 담당한다.

이경호: 의류, 상품 제작 등 프로덕트 파트를 도맡고 있다.

클로즈도어,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이름처럼 느껴진다.

황현우: 처음에는 분명 뜻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걸 까먹었다. ‘클로즈도어’라는 타이틀을 걸고 시작한 지 벌써 6년이 지났다. 이제는 단어에 어떤 거창한 의미를 갖다 붙이는 것보다는 우리가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말한 대로 어느덧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금에 와 CD의 시작을 돌이켜 본다면.

황현우: 2019년부터 2020년까지 1년 정도 일본에서 유학했다. 그곳의 로컬 스케이터와 친해지고, 그들이 노는 모습을 보니 퍽 재밌어 보이더라. 그냥 친구끼리 모여서 스케이트 필름 찍고, 작게라도 브랜드를 전개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나도 한국에 돌아가면 저런 움직임을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CD를 시작했다. 사실 작년까지는 본격적인 브랜드의 느낌보다는 영상 프로덕션의 성격이 강했다. 상영회를 중심으로 자잘한 굿즈를 내는 게 전부였지. 올해부터는 의류 생산을 담당하는 경호가 합류해 제품에 많은 공을 들였다. 올해가 CD의 전환점이라고 볼 수 있지.

홀로 진행하는 하나의 프로젝트에 가까운 모습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셋이 함께하고 있다. 모두 어떻게 만났나.

황현우: 스케이트보드 숍에서 일하며 우빈이 형을 알게 됐다. 전부터 서로 안면은 있었는데, 자주 마주치고, 같이 보드도 타면서 더욱 가까워졌지. 그렇게 2021년쯤 우빈이 형이 CD에 합류했다. 이후 작년 12월 반스(Vans)와 진행한 “SIKWENS” 상영을 마치고 나서 이제는 CD를 제대로 된 브랜드로 운영해 보자고 결심했다. 그때 떠오른 게 경호였다. 나 혼자서 영상 촬영과 편집, 디자인, 의류 생산까지 모든 부분을 감당하는 게 힘들었거든. 당시 경호가 패션업에 종사하고 있었기에 함께한다면, 큰 힘이 될 것 같았다. 

이경호: 현우가 스케이트 숍에서 일할 때, 난 그 숍에 방문하는 손님 중 한 명이었다. 코로나 대유행이 한창일 무렵, 뭔가 활동적인 걸 해보고 싶어 스케이트보드를 타기 시작했는데, 혼자 타려니 지루하고, 어렵더라고. 마침, 집 주변에 현우가 일하던 스케이트 숍이 있어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살 게 없으면 티툴이라도 하나 사면서. 하하. 그렇게 서로 얼굴도 익히고 친해지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어느 날인가 현우가 티셔츠를 한 장 만든다고 해서 조금 도와줬지. 그러면서 현우가 함께 CD를 해보자고 제안했고, 곧장 합류했다.

이번 시즌 컬레션만 봐도 이전에 비해 구성이 꽤나 갖춰진 모습이다. 언제, 어디서 패션 경험을 쌓았는지.

이경호: 산산기어(SANSAN GEAR)에서 3년 동안 일했다. 어쩌면, 수학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대학교에서는 옷과 전혀 관련 없는 역사를 전공했다. 하하. 산산기어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데려가서 의류 디자인부터 생산에 이르는 과정을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가르쳐 줬다. 운이 정말 좋았지. 내게는 학교와도 같은 곳이다.

2021년 “si:di:”를 시작으로 “Lockpick”, 반스와 협업한 “SIKWENS” 등 끊임없이 스케이트 비디오를 내고 있다. CD에게 스케이트 비디오란 어떤 의미인가.

황현우: 스케이트보드를 열심히 탔던 입장에서 스케이트 필름은 스케이터로서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는 가장 확실한 수단 중 하나다. 최근에는 스케이트 비디오에 집중하는 것보다는 인스타그램에 짧은 클립을 올리는 이들이 많아졌다.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럴 때 마스터피스가 나와줘야지. 그래서 스케이트 비디오를 계속, 더 멋지게 찍으려 하고, 한 편의 긴 영상으로 남기려 하는 거다.

다치지 않았더라면, 나도 지금까지 열심히 스케이트보드를 탔겠지만, 그 욕심을 필르밍으로 풀고 있다. 무엇보다 스케이트보드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스케이트보드를 취미 이상으로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들이 어떻게든 조명받아야 하지 않겠나. CD에게 스케이트 비디오란 이런 의미다. 언젠가 지금 함께 촬영하고 있는 스케이터 친구들에게 금전적으로, 혹은 그 이상의 도움이 되고 싶다.

그렇다면, 브랜드 CD로서의 방향성은 무엇인가, 이루고 싶은 목표는?

황현우: 영국의 야드세일(Yardsale), 호주의 패스포트(PASS~PORT), 일본의 에비센 스케이트보드(Evisen Skateboards) 같은 브랜드. 나라, 도시마다 스케이트보드 신이 있고, 여기에서 지지를 얻는 온전한 도메스틱 브랜드가 있지 않나. 로컬에서 시작한 브랜드가 성장해 해외에서도 이름을 알리는 경우가 있는데, CD 역시 그렇게 되고 싶다. 국적 불문하고, 스케이트보드 안에서 보드 타는 친구끼리는 아는, 그런 브랜드가 되는 게 목표다.

심우빈: 단기적으로 봤을 때는 여기 셋 모두 같은 마음일 텐데, 당장은 운영에 집중하고 싶다. 어느 정도 돈이 벌려야 브랜드를 계속 유지할 수 있으니까.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CD에서 멋진 영상이 나오는 것만큼 나 역시 좋은 사진을 계속 찍고 싶다. 지금까지는 시사회의 형태로 대중과 만났지만, 앞으로는 전시, 혹은 또 다른 형태로 브랜드를 보여주고, 이를 아카이빙한다면, 우리 셋 모두에게 좋은 경험과 포트폴리오가 남지 않을까.

옷 하나가 나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고 있나. 셋 모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기에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을 것 같다.

황현우: 의류 전반은 경호에 의해서 진행된다. 어떤 제품을 만들 것이며,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지 등등, 대략적인 콘셉트와 구성을 준비해 오면 내부에서 회의를 거치고, 각 멤버의 의견을 수렴하지. 주변 보드 타는 친구들을 대상으로 조사도 하고. 그렇게 샘플을 만들면 그걸 입고 우리가 직접 보드를 타거나 보드 타는 친구들에게 입혀 본다. 우리는 결국 보드 브랜드니까. 스케이트보드 타기에 불편함이 없어야 하거든.

이경호: 사실 10개의 아이디어를 준비해 가면 그중 8~9개는 탈락한다. 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근성으로 계속 밀어붙이지. 하하. 내 눈에는 정말 괜찮은데, 둘 반응이 시원찮으면, 나 한번 믿어보라고 계속 설득한다. 옷이라는 게 실제로 봐야 그 느낌을 알 수 있어서 샘플까지는 만들어보는 편이다. 

심우빈: 이번 시즌 비하인드 스토리를 하나 풀자면, 원래는 검은색 후드 집업 위에 그래픽을 프린팅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경호가 죽어도 이건 자수로 해야 한다고 고집을 피우더라. 그래서 결국 자수로 진행했다.

이경호: 무작정 믿어주는 것도 쉽지 않거든. 샘플 하나에 돈이 한두 푼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이럴 때마다 믿어주는 둘에게 고맙지. 하하.

CD 웹사이트에는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의 노래 가사가, 최근 발매한 팬츠 뒷면에는 테디 팬더그라스(Teddy Pendergrass)의 노래 “Close The Door”의 가사가 적혀있다. 음악에서도 많은 영감을 받는 편인지.

황현우: 오히려 그쪽에서 너무 깊이 생각한 거 같은데. 하하. 진짜 단순하게 ‘Close Door’라는 키워드를 통해 찾은 노래다. 그중에서도 들어보고 좋았던 노래의 가사를 인용했다. 

“SIKWENS”는 영화관에서 4D로 상영회를 하기도 했다. 필르머로서는 굉장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황현우: 롯데타워라는 타이틀이 세기는 세다. 하하. 너무 좋은 경험이었다. 반대로 처음부터 영화관 상영을 고려한 비디오라서 작은 화면에서 볼 때 영상이 너무 처지더라.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첫 회만 고려해야 할 것이 아니라 추후 어떤 포맷을 통해 릴리즈될지 생각해야 했다. 현장에 오지 못한 이들이나 해외의 시청자를 고려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지금 제작 중인 스케이트 비디오가 있다면 그에 관한 힌트를 줄 수 있는지.

황현우: 진짜 스케이트 비디오. 

심우빈은 본업 또한 패션 브랜드의 포토그래퍼다. CD가 개인적인 욕구를 해소하는 창구가 되기도 하나.

심우빈: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사진의 A부터 Z까지, 정말 많은 걸 배웠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감도라든가, 스타일을 회사에서 활용할 사진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회사가 전개하는 브랜드만의 느낌이 있으니까. 회사에서는 그 요구를 충실히 반영해 원하는 결과물을 내고, 내가 촬영하고 싶은 사진은 CD를 통해 선보이고 있다.

Photo. 심우빈

예전에는 스케이트보드 브랜드의 클리셰 같은 게 있었다. 러프하거나 폭력적인 그래픽 같은 것. 이에 비해 CD는 비디오, 의류 전반에서 패션 브랜드의 냄새를 풍기는데, 이 또한 의도한 바인가.

황현우: 영상을 편집할 때도 폭력적인 장면은 최대한 들어내려고 한다. 때리고, 부수고, 피 흘리고, 남과 싸우고, 경찰 오고, 멱살 잡고, 그런 게 너무 많다. 어느 순간 그런 게 스케이트보드의 클리셰가 되어 버린 거지. 물론, 그런 것도 하나의 문화라고 볼 수 있지만, 난 스케이트보드 그 자체의 모습에 접근하고 싶었다. 그러니 결과물이 담백할 수밖에 없는 거고.

모델 섭외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하다. CD만의 특별한 기준이 있는지.

황현우: 언제나 스케이터가 모델이 되었으면 한다. CD는 스케이트보드 브랜드고, 스케이터를 위한 브랜드다. 우리가 이 문화에 도움받은 만큼, 도움을 주고 싶은 것도 있고. 꼭 스케이터가 아니더라도 보드 문화를 정말 좋아하거나 이 문화와 결속된 친구라면, 언제나 함께하고 싶다.

심우빈: CD와 잘 어울리는 친구에게 주로 연락한다. 멋을 떠나 바이브가 잘 맞는 친구들.

각자의 10대, 20대는 어떤 모습이었나, 무엇에 몰두하고 있었는지 이야기해 줄 수 있나.

황현우: 항상 영상과 함께했던 것 같다. 스케이트보드 비디오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뮤직비디오 등등. 카테고리,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영상을 엄청나게 봤다.

이경호: 학창 시절 때부터 만화 보는 걸 되게 좋아했다. 스스로 오타쿠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오타쿠만큼 쿨한 사람들이 없다. 무언가에 그렇게 빠지고, 미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멋진가. 한번은 서울 코믹월드라는 행사에 갔는데, 추운 겨울이었는데도 각자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코스프레한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그게 아직까지도 인상 깊은데, 아마도 그런 게 지금 내 자양분이 되지 않았을까.

심우빈: 음악을 정말 많이 들었다. 주로 밴드 음악을 들었는데, 내가 한창 스케이트보드를 탔던 20대 초반에는 ‘es’나 ‘이메리카(Emerica)’의 스케이트보드 비디오를 많이 봤다. 그 영상의 배경음악이 대부분 록 음악이었고, 덕분에 밴드 음악에 더욱 빠져들게 됐지.

수많은 브랜드 사이, 클로즈도어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색깔이 있다면.

황현우: 각 브랜드가 지닌 고유한 색이 있다. 이건 그 브랜드의 움직임에 따라 자연스레 입혀지는 거다. 맞지 않는 색을 억지로 칠해서 보이는 게 아니다. 보는 이에게 색을 인식하게 하는 게 자연스럽지. CD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꾸준히 하다 보면, CD라는 브랜드의 연속성이 느껴지고, 그게 CD의 색으로 자리 잡게 될 거다. 뭔가를 보여주자는 목적으로 전개하면, 우리 셋 모두 금방 지칠 것 같다.

심우빈: 우리 모두 뭔가를 빡세게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브랜드를 전개하는 편은 아닌 것 같다. 그냥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이 우연히 한자리에 모인 거지. 경호는 옷을, 나는 사진은, 현우는 영상을, 그렇게 각자의 세계가 맞물리며, 우리의 색이 자연스레 나타나는 그림이지.

이경호: 남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이길 바란다면, 그건 본인의 삶이 아니다. 취향이란 게 시간이 지나며 계속해 바뀌는 거니까. 그저 매 순간 우리가 느끼기에 좋고 멋있는 것을 차근차근히 해나가면 되지 않을까.

각 나라 로컬 브랜드의 해외 진출이 예전보다 수월해지지 않았나. CD도 해외 진출 계획이 있는지.

황현우: 안 그래도, 곧 도쿄의 스케이트보드 숍에 입점한다. 사실 한국은 스케이트보드 인구수가 너무 적다. 애초에 수요가 적은 거지. 그렇다면 수요가 많은 곳에서 가는 게 또 다른 방편이 될 수 있겠지. 해외 스토어 입점도 그 일환이었는데, 경호가 합류하면서 세워놓은 목표 중 하나를 이제 이뤘다. 이제 다음 목표를 정해서 다시 한번 열심히 가봐야지.

앞으로 5년 후 클로즈도어의 창립 10주년을 맞이할 텐데, 어떤 모습일 것 같나.

황현우: 그때쯤 오프라인 스토어 준비를 하지 않을까? 당장 오픈하는 것보다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는 단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심우빈: 여전히 재밌고 멋있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 집단이었으면 한다. 그땐 구성원이 몇 명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경호: 잘 빠진 스카이라인 GT-R을 타고 출근하는 내 모습을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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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오욱석, 윤태현
Photographer │이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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