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도메스틱 브랜드로 시작해 엄청난 성공을 거둔 라이풀(Liful)은 최근 치밀하게 계획한 10주년 행사로 다시 한 번 그 위용을 떨쳤다. 지금의 라이풀은 완벽한 스트리트 브랜드로 출범했던 첫 시작과는 꽤 다른 빛깔을 띠고 있으나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국내 패션 시장에서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버텨온 것과 그간 상당한 성과를 이루었다는 점은 누가 봐도 대단한 일이다. 물론 해외 일러스트 디자이너의 작품에 관련한 카피 논란으로 난항을 겪은 적도 있었지만, 전반적인 브랜드 프로모션, 운영 시스템과 같은 굵직한 프로세스는 신생 도메스틱 브랜드에게 훌륭한 본보기가 되기에 충분하다.
라이풀은 올곤(All Gone), 캉골(kangol), 미스치프(Mischief) 등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브랜드의 이름을 제고했다. 그저 타 브랜드의 이미지를 적당히 빌려오는 것이 아닌 서로의 이미지를 잘 섞어낸 결과물은 각자 브랜드에 대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충실히 협업에 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2016년, 새로운 해의 막을 열며 라이풀은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금의 인기라고 한다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지만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미국의 스트리트 브랜드 더 헌드레즈(The Hundreds)와 협업한 캡슐 컬렉션을 공개한 것.
그 이름에 단순히 ‘눈깔 달린 폭탄’을 생각했다면 그대의 상상력을 반성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라이풀은 저 머나먼 미국 서부 브랜드와 함께 지극히 한국적인 디자인의 의류를 만들어냈다. 경복궁을 토대로 그 내부의 단청이 갖가지 방법으로 새겨진 옷은 지금껏 고루하다고 생각하던 ‘한국적인 디자인’을 멋들어지게 표현했다. 그간 여러 도메스틱 브랜드가 강박적으로 ‘한국다움’을 나타내고 강압적으로 보여주려 했다면, 이번 라이풀의 협업은 조금 더 편안하게 다가온다. 국내 브랜드와 해외 브랜드의 협업, 라이풀이 현재 국내 패션 시장에서 초석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 것인지. 앞으로의 행보에 주목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