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CKER CULTURE

sticker culture

스티커(Sticker)의 기원에는 여러 설이 있다. 하나는 고대 이집트인이 상설시장을 홍보하기 위해 처음 사용했다는 설이다. 상품을 소개하는 그림이 그려진 고대 도시 벽이 고고학자에 의해 발견되면서 이러한 주장이 처음 제기되었다. 몇몇은 1839년, Rowland Hill이 최초로 접착 가능한 종이를 발명하면서 이것이 현대의 스티커로 이어졌다고 이야기한다. 또 어떤 이들은 1880년대 유럽의 홍보 전문가 집단이 소비자를 돕기 위해 다양한 색상의 종이 라벨을 제품에 붙이면서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어떤 것이 직접 스티커의 탄생으로 이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 모든 가설의 공통점은 스티커는 무언가를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스티커는 이제 상품 홍보의 수단을 넘어서 하나의 작품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들은 스티커로 자신의 작업물을 홍보하기도 하고, 스티커 자체를 예술의 한 형식, 시각예술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사용한다. 수많은 아티스트가 자신의 작품을 스티커에 옮겨내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오랜 시간 터줏대감 같은 역할을 해온 것들이 있다. 이 녀석들은 다른 아티스트, 각종 브랜드, 디자이너에게 영향을 미쳐서 원작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스티커를 탄생시켰다.

 

 

1. Hello, My name is

 

 

‘Hello My name is’로 알려진 이 간단한 자기소개 스티커는 아마 모두에게 익숙할 것이다. 이름을 표기하는 본래 용도로도 많이 쓰이지만, 이 스티커를 가장 잘 활용하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그라피티 아티스트다. 길거리를 유심히 보라. 아마도 그라피티 아티스트가 태깅한 ‘Hello My name is’ 스티커를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스티커를 사용하면 빠르고 간편하게 태깅(Tagging)을 할 수 있다. 그 덕에 ‘Hello, My name is’ 스티커는 그들의 또 다른 자기표현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스티커를 쓰면 빠르고 간편하게 태깅을 할 수 있다. 스티커는 만들기 쉽고, 휴대가 간편하며, 어디에나 쉽게 부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일분일초 바삐 움직여야 하는 그라피티 아티스트는 벽에 급하게 작업하는 것보다 더 공을 들여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고, 그 작품을 어디에나 쉽게 붙일 수 있어서 스티커를 선호한다.

‘Hello, My name is’ 태깅 영상

 

 

2. LOVE

1 original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의 ‘LOVE’는 처음부터 스티커로 만들어진 작품은 아니다. 1960년대 로버트 인디애나는 뉴욕의 팝 아트 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아티스트였다. 그를 대표하는 작품인 ‘LOVE’는 1958년에 조각 작품으로 첫선을 보인다. 이후 현대미술관의 요청으로 크리스마스 카드로도 제작되었고, 카드가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자 로버트 인디애나는 페인팅, 드로잉, 조각으로 표현한 ‘LOVE’ 쇼를 전시하기에 이른다.

간결한 메시지, 원색의 이미지는 단숨에 대중을 사로잡았다. ‘LOVE’의 파급력을 알아챈 몇몇 이들은 재빨리 이를 이용한 다양한 상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초기 디자인을 망치고 싶지 않은 나머지, 작품에 저작권 표시나 따로 서명을 해두지 않았던 인디애나는 모방자들로부터 자신의 작품을 보호할 법적 권한이 없었다. 그는 다른 팝 아티스트보다도 작품에 개인적인 의미를 많이 담는 사람이었다. 또한, 명성에 큰 관심이 없던 그의 성격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개인적인 의미가 담긴 ‘LOVE’가 여러 사람에 의해 의미가 퇴색되는 걸 견디기 힘들어하지는 않았을까. ‘LOVE’는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무수히 재생산된 이미지는 미술계에서 그의 이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 Original
상단 이미지는 로버트 인디애나의 스타일에 영향받은 패러디 작품들이다. 그가 반길지는 잘 모르겠다.

 

 

3. Andre the giant has a posse

 

 

셰퍼드 페어리(Shepherd Fairey)는 스티커가 자신의 삶을 바꾸어놓았다고 말한다. 1984년, 스케이트보드와 펑크 록에 눈을 뜨며, 스티커에 관심이 생긴 그는 스티커가 그가 속한 문화의 상징이 되길 바랐다. 셰퍼드 페어리는 모든 장소에서 스티커를 발견했고, 스티커가 단순히 밴드, 브랜드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표현방식이자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대학 시절, 그는 프로비던스에 있는 스케이트보드 숍 ‘The Watershed’에서 일했다. 스텐실을 만드는 방법을 친구에게 알려주던 도중 프로레슬러 안드레 더 자이언트의 재미있는 사진을 발견하는데, 장난기가 발동한 셰퍼드 페어리는 그 사진을 흉내 낸 그림을 그리고 나서 ’Andre the giant has a posse’라는 글귀를 한쪽 면에 쓰고, 그의 키와 몸무게인 ‘7’4”, 520 lbs’를 반대쪽 면에 썼다. 그렇게 첫 번째 자이언트 스티커가 탄생한 것이다. 셰퍼드 페어리는 장난삼아 만든 자이언트 스티커를 온 사방에 붙이고 다니면서 스티커에 흠뻑 빠져든다. 그는 묘한 익명성에 짜릿함을 느꼈다. 본인 역시 길거리에 있는 무수한 스티커를 보고 호기심이 생겼듯, 이제는 직접 대중을 자극할 스티커를 세상에 선보이며 그들과 소통할 때가 됐다고 느낀 것이다.

‘Andre the Giant’ 스티커가 프로비던스를 들썩이게 하는 데는 여름 한 계절이면 충분했다. 가을에는 한 로컬 인디 숍에서 이 스티커의 의미와 소스를 알려주는 사람에게 보상하겠다고 말했다. 이로써 셰퍼드 페어리의 스티커 캠페인은 지역 주민들이 자신의 스티커에 의문을 갖게 하겠다는 목적을 단시간에 이뤘다. 이는 셰퍼드 페어리가 훗날,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그는 자신의 대표적인 스타일로 현재 미국 전 지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도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

 

 

4. Barbara Kruger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단순한 이미지와 ‘Futura Bold Oblique’ 폰트로 대표되는 그녀의 작품은 의미심장한 메시지와 함께 많은 사람의 뇌리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 무적의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Supreme) 역시 바바라 크루거에게서 영향받은 심플한 로고로 전 세계를 휘어잡지 않았는가? 그녀가 만들어낸 이미지는 길거리를 넘어서 마케팅 캠페인, 미디어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정작 본인은 스티커를 제작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작품에 영감을 받은 많은 아티스트와 의류 브랜드가 그녀의 스타일을 따왔다. 앞서 언급한 브랜드 슈프림 로고에서부터 아티스트 Curtis Kulig의 ‘Love me’까지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을 연상케 하는 스티커를 만들었다.

하나의 강렬한 이미지와 눈에 띄는 폰트로 완성되는 그녀의 작품 전개 방식은 앞서 언급한 셰퍼드 페어리와도 떼어놓을 수 없다. 1994년 레슬링 엔터테인먼트사 Titan Sports가 셰퍼드 페어리에게 André the Giant Has a Posse 슬로건을 계속 사용한다면 고소할 것이라고 경고성 메시지를 전했다. 더는 자이언트를 사용할 수 없게 된 그는 존 카펜터의 영화 “They Live”에 영감을 받아 더 간결한 디자인의 Obey를 만들어냈다. 빨간색, 검은색, 흰색의 3가지 색상과 함께 공산주의적 이미지를 사용하는 시기가 맞아떨어지면서 이전 스티커에서 느낄 수 없던 강렬한 이미지가 완성된 것. 셰퍼드 페어리는 바바라 크루거의 영향을 받아 얼굴 이미지를 확대해서 자르고, Obey 글자를 넣어서 보다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시작한다. 그가 이러한 방식을 채택한 이유는 그녀의 작업이야말로 현대적이고, 정치적인 의미가 담긴 메시지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바바라 크루거는 그녀의 이미지로 하여금 인식의 변화를 꾀했다.

stickerculutre_barbara

Barbara Kruger의 작품들

셰퍼드 페어리는 Obey 스티커 캠페인이 현상학에 대한 실험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현상학의 첫 번째 목표는 인간과 세계의 본질적인 구조, 인간과 주변 환경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데 있다. Obey 스티커는 스티커 그 자체로서 호기심을 자극하고, 스티커와 주변 환경의 관계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 그는 Obey 자체는 실질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기에, 스티커를 본 대중이 다양한 반응과 해석을 내놓기를 기대했다.

 

 

#Stickerculture

스티커 팩을 직접 구매해본 사람들은 스티커 뒷면을 떼어낸 뒤, 예쁜 모양으로 남겨진 스티커를 어디에 붙일지 고민한다. 이게 뭐라고 아까워서 어디에도 사용하지 못하다가 고심 끝에 소중한 그 무언가에 붙인다는 얘기다. 이는 스티커가 단순히 필요에 의한 수단이 아닌 특별한 가치를 지닌 물건, 또는 작품으로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증거다.

스티커 문화는 수십 년의 세월을 거쳐 발전했다. 스티커는 널리 퍼진다. 행인의 눈에 발견되기도 쉽다. 스티커가 가진 영향력은 여러 단체의 처지를 대변하고, 상품을 홍보해줄 뿐만 아니라 특성상 정치적인 이유로도 많이 활용되었다. 에술가들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스티커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작품을 이보다 더 쉽고, 값싸게, 널리 알릴 수 있는 매개체가 있던가. 셰퍼드 페어리는 스티커가 전달하는 메시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것이 우리를 둘러싼 환경 속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주변 환경을 환기시키고, 사유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면 이 작은 종이 쪼가리는 분명 제 몫을 다했을 터. 언제 뜯길지 모르는 스티커지만, 뜯긴 자리에는 끈적한 잔재가 남듯이 스티커가 가진 의미 역시 우리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을 것이다.

 

정혜인
VISLA Art Feature Editor.

RECOMMENDED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