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3일, 화려한 용(Dragon) 자수 재킷을 시작으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스트릿웨어 공룡 슈프림(Supreme)의 2018 F/W 컬렉션. 8월 16일부터 뉴욕(New York), 로스엔젤레스(Los Angeles), 런던(London) 그리고 파리(Paris) 매장에서 총 120점을 웃도는 아이템이 매주 순차적으로 발매되고 있다.
언제나처럼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슈프림의 F/W 컬렉션은 ‘문화’의 중요성을 부르짖는 슈프림의 장기가 무엇인지 재차 각인시켜준다. 두꺼운 아우터(Outer), 스웨트셔츠(Sweatshirts), 니트(Knit), 티셔츠(T-shirts) 등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중무장한 의류 군은 오우삼(John Woo) 감독의 홍콩 누아르 “첩혈쌍웅(The Killer)”의 명장면, 뉴욕 컬트(Cult) 신의 유명인사 스티븐 태시지안(Stephen Tashjian)의 인물화, 마돈나(Madonna)의 사진과 친필사인 그리고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우는 여인(Weeping Woman)” 등 다채로운 그래픽 모티브를 통해 서브컬처의 유산에 깊은 존경을 표한다. 특히, 액세서리로 공개된 튜브형 PVC 의자의 경우 1960년대에 최초로 대량생산된 튜브 의자를 원형으로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1967년도 생산 모델의 의자가 온라인 마켓 사이트 퍼스트딥스(1stDibs)에서 낙찰가 190만 원까지 치솟는 웃지 못할 현상을 낳기도 했다.
물론, 컬렉션은 그래피티 아티스트 산치토(Sancheeto)의 강아지 그래픽처럼 젊은 동시대 아티스트 작업 또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현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이들을 샤라웃(Shout Out)하는 일도 역시 슈프림의 몫. 이외에도 주목해야 할 프린트에는 오랜만에 재킷에 활용된 모션 로고(Motion Logo), 클래식 스크립트(Classic Script) 로고,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Discovery] 앨범 커버를 연상시키는 리퀴드 로고(Liquid Logo) 티셔츠 등이 있다. 언제나 다양한 로고 플레이를 즐기는 슈프림이지만, ‘슈프림 커뮤니티(Supreme Community)’에서 공개한 1차 발매 온라인 품절시간 통계에서 볼 수 있듯이 기존의 박스 로고를 탈피한 색다른 로고 티셔츠의 높은 인기를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다.
아우터에 적극적으로 활용된 고어텍스(GORE-TEX) 원단 또한 눈에 띈다. 이전에는 몇몇 콜라보레이션 제품에만 사용되었던 고어텍스가 시즌 컬렉션에서는 처음으로 사용되었는데, 뛰어난 기능성과 활동성을 보장하는 원단인 만큼 슈프림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스케이터들의 호응이 예상된다.
일 년에 두 번 발표하는 슈프림의 정규 컬렉션은 스트리트 패션 신의 중심에서 하이엔드로 확장하려는 슈프림의 방향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지표로 읽을 수 있다. 인터넷상의 반응은 호평이 지배적이지만, 럭셔리 패션하우스 루이비통(Louis Vuitton)과의 콜라보레이션, 투자회사 칼라일 그룹(Carlyle Group)에 지분을 매각하는 등 굵직한 이슈로 스트리트 컬처를 기반으로 성장한 슈프림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이들의 시선은 마냥 곱지만은 않다. 선공개되었던 용 자수 재킷과 카지노 테이블 프린트 재킷 외에는 2017 F/W 컬렉션의 “스카페이스(Scarface)” 레더 재킷처럼 마니아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아이템이 부족하다는 점 그리고 F/W 컬렉션의 얼굴인 헤비 아우터 군의 디테일 및 패턴 활용이 어딘지 모르게 이전 컬렉션보다 심플한 느낌을 준다는 점을 들어 슈프림이 브랜드 대중화를 염두에 두며 조금씩 ‘얌전’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시선을 던지는 이들도 적지 않다. 올해 슈프림에서 발매되었던 스컬파일(Skull Pile) 프린트 재킷, ‘슈프림 x 언더커버(Undercover) x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 콜라보레이션, ‘슈프림 x 헬레이저(Hellraiser)’ 콜라보레이션 등 화려함에 익숙해진 이들에게는 다소 공감되는 부분이리라.
이는 슈프림 컬렉션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액세서리 구성도 마찬가지. 자전거, 테디베어, 태그호이어(Tag Heuer) 스톱워치, 사다리, 디지털 저울, 멜로디카 등 실용성 있는 아이템 위주로 구성된 이번 액세서리 라인은 많은 이들의 환호 속에 초고속 품절을 예상케 했지만 외려 ‘너무 쓸모 있다’는 지적도 존재했다. 심술궂게 느껴지지만, 과거 출시되었던 손도끼와 벽돌의 예외성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임팩트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터. 하나의 컬렉션을 바라보는 수백 가지 시선이 존재하지만, 중요한 변화의 국면을 지나는 단계의 슈프림인지라 비판 하나하나의 무게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올 것.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스트리트 패션의 맹주로 활약한 슈프림의 내공은 쉬이 사라질 종류의 것이 아니지만, 그 어떤 브랜드도 가보지 못한 길을 걷고 있는 슈프림의 미래 또한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스트리트 패션 신의 파이를 키우며 보다 넓은 시장을 개척할 것인가, 아니면 수많은 스트릿 패션 브랜드가 그랬듯 신선함을 잃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인가. 공식 사이트에서 이번 컬렉션을 직접 확인하며 슈프림의 미래를 점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