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몰려온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2023년 8월 슈프림(Supreme)의 첫 한국 매장이 도산공원 인근에 오픈했다. ‘뒷골목 샤넬’이라고도 불리는 슈프림의 한국 진출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소문이 있었고 이미 2013년에 처음 상표 등록을 추진했었다고 한다. 이후 반려와 이의 신청 등 우여곡절 끝에 상표 등록을 마치고 매장을 열었다. 슈프림은 기존에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까지 6개국에 15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한국이 7번째 나라, 16번째 매장 진출국이 되었다.

이보다 앞선 6월에는 스케이트보드 기반 브랜드인 퍼킹어썸(Fucking Awesome)이 한남동에 플래그십 매장을 오픈했다. 이쪽은 미국 외 최초의 오프라인 매장으로 스케이트보드 친화적으로 설계되었고 바(Bar)가 붙어 있어서 술도 판다. 럭셔리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인 피어 오브 갓(Fear of God)도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 아시아 첫 단독 매장을 열었다.

노아(Noah)도 있다. 스트리트 컬쳐, 스케이트보드, 서핑 등의 반항적이고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기반으로 활동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며 어른을 위한 스트리트 패션이라고도 불리는 노아는 미국과 일본에 이어 3번째 진출국으로 한국을 선택하고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 매장을 오픈했다. 미국과 일본에 이은 5번째 매장으로 노아 시티하우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카페와 전용 굿즈도 내놓았는데 국내 소비 패턴을 고려한 듯하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소문이 있다. 스트리트 패션 기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인 키스(Kith)도 내년 상반기 성수동에 매장 오픈을 예고했다. 노아의 경우 편집숍 엠프티(EMPTY)를 운영하고 있는 무신사 트레이딩과 파트너십으로 들어왔는데 어웨이크 NY(Awake NY)이 엠프티에서 팝업을 열고 설립자 안젤로 바크(Angelo Baque)가 찾아오면서 매장 오픈에 대한 소문이 들려온다. 슈프림, 스투시(Stüssy), 노아와 함께 소위 4대 스트리트 브랜드로 불리는 팔라스 스케이트보드(Palace Skateboards)는 본사 직원들이 매장을 물색하고 상권을 분석하고 갔다는 소문이 거의 1년 전부터 있었고 최근에는 꽤 구체적인 이야기도 들려오고 있다.

이렇게 세계적인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들이 줄지어 국내에 들어오고 있지만 사실 스트리트 패션은 스케이트보드, 서핑, BMX, 그래피티 같은 하위문화를 기반으로 한다.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었고 그에 맞는 새로운 포지션을 가져간다고 해도 이러한 서브컬처와의 연계 활동은 브랜드의 세계관을 만드는 중요 요소이자 존재의 이유로 유지되기 마련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주변 문화를 즐기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특히 중심이라 할 스케이트보드 같은 문화가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질 정도로 덩치가 커져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직은 티셔츠 위의 로고나 프린트, 룩북 속의 이미지로만 주로 존재한다. 결국 지금의 스트리트 패션은 다른 이유로 들어오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몰려오고 있는 걸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잘 팔리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시절이 국내 스트리트 패션 시장의 전환점이라 할 만하다. 비대면 활동이 늘어나면서 정장이나 단정한 차림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었고 이전부터 활동하던 국내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도 성장하고 새로운 브랜드도 많이 등장했다. 세계적으로도 슈프림과 루이뷔통(Louis Vuitton)의 협업이나 오프 화이트(Off-White)와 나이키(Nike)의 협업 등 화제가 되고 가시성도 높고 스트리트 브랜드의 위상이 올라가는 일이 많았다.

이런 흐름은 격식이나 어떤 문화 장르가 생겨난 원인과 줄기 등에 크게 개의치 않으면서 실용적이고 편한 옷을 선호하고 거기에 로고 파워와 가시적 위상처럼 알 만한 사람은 알아 볼 남과 다름을 추구하는 우리의 패션 성향에도 잘 맞아떨어졌다. 한정판과 드롭, 드로우 등으로 이뤄지는 스트리트 패션 특유의 문화 속에서 패션 커뮤니티나 소셜 미디어를 통한 정보 탐색과 교류가 크게 늘어났고, 직구나 리셀로 국내에 들어오지 않는 브랜드를 찾는 이들도 많아졌다.

특히 예전에는 관심이 아주 많은 사람들이나 매장을 찾아 줄을 섰지만 팬데믹으로 인터넷으로 클릭만 하면 되는 드로우가 늘어나면서 진입의 문턱도 낮아졌다. 비싼 가격도 마다하지 않는 브랜드 팬덤, 마니아, 컬렉터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수요도 늘어났다. 무슨 스니커즈가 얼마에 거래된다더라 하는 소문이 퍼지면서 이게 돈도 된다는 인식도 생겨나고, 재테크의 일종으로 바라보는 신문 기사도 나오고, 여기에 따른 유입도 늘어나는 식으로 주고받으며 시장은 커지고 가격도 계속해서 올라갔다.

하지만, 이렇게 시장이 활발해지고 구매력이 늘어났다고 해도 중국, 일본에 비해 시장의 규모는 작다. 일본이야 오래전부터 앞서 언급한 브랜드 매장들이 이미 들어서 있는 안정된 시장이라 하겠지만, 글로벌 패션 시장에서의 위상이 달라지면서 매출을 높이며 몸집을 키우고 있는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들의 목표는 아마도 중국일 거다.

슈프림의 경우를 보면 한국 진출을 시도하고 있던 2022년 도버 스트리트 마켓 베이징에서 팝업 매장을 열어 한정판 티셔츠와 2022년 FW 시즌 제품을 선보였었다. 아시아 시장에서 정식으로 제품을 선보인 건 일본에 이어 두 번째였다. 2020년 노스페이스(The North Face)와 반스(Vans), 디키즈(Dickies)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 VF 코퍼레이션이 슈프림을 인수하면서 중국 중심의 글로벌 진출에 대해 이야기했었는데, 한국은 그런 흐름의 중간 기착지이자 실험의 장과 함께 매출도 만들어 낼 자리가 될 수 있다.

거기에 현재 우리 문화 상품들, 소위 K컬처가 잘 나가고 있다. “살인의 추억”이나 “올드보이” 같은 영화로 시작된 한국 문화의 세계적 중흥은 강남스타일과 BTS의 K팝이 대히트를 치며 이어받았고, 이후 “오징어 게임” 같은 OTT 드라마가 나오면서 완전히 대폭발하고 있다. 단순히 강세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다. K팝 뮤지션의 앨범이나 등장하는 배우의 작품은 물론이고 그들이 등장하는 화보, 광고 등 일거수일투족이 소셜 미디어와 연예 채널 등을 통해 관심의 대상이 된다.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고 화제성과 파급력이 보장되기 때문에 여기에서 뭘 하든 눈에 띌 가능성도 크니 스타 마케팅하기에도 유리하다. 북미와 유럽 같은 기존 시장뿐만 아니라 중국, 동남아시아 등 신흥 시장에서도 큰 영향력이 있다. 팝과 드라마 등 젊은 문화이기 때문에 이미지의 환기에도 좋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을 찾는 건 비단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뿐 아니라 하이엔드 하우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루이뷔통은 올해 4월 말 잠수교에서 2023 프리 폴 컬렉션 패션쇼를 열었다. 구찌(Gucci)도 5월 경복궁에서 2024 크루즈 컬렉션을 선보이는 대형 패션쇼를 열었다. 이외에도 크고 작은 행사가 끊임없이 열리고 있다. 바로 얼마 전인 12월에는 니고(NIGO)의 겐조(Kenzo)와 베르디(Verdy) 협업 런칭 행사를 위해 한국을 방문해 10 꼬르소 꼬모에서 파티를 열었다. 국내 아이돌 스타들은 많은 고급 브랜드의 글로벌 앰배서더로 활약하고 있고 세계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패션 행사에 초대받고 있다.

이렇게 해서 주고받는 고리가 완성된다. 메인스트림이 된 스트리트 패션은 그들만의 패션에서 세계적인 패션으로의 규모 확대를 노리고 루이뷔통과 구찌 같은 럭셔리 브랜드가 패션쇼를 여는 한국을 찾아온다. 이전보다 어리고 젊은 전 세계의 새로운 소비자를 상대하게 된 루이뷔통과 구찌는 슈프림과 노아가 들어서고 역동적이고 트렌드에 민감한 소비자와 패션 시장이 있는 한국을 찾아온다. 어느 쪽이든 이벤트 장소에는 케이팝 아이돌과 오징어 게임의 배우들이 있고 그들을 기록하는 팬덤을 따라 세계로 퍼져나간다.

생각해 보면 이 모두는 결국 장사를 위해 들어오는 거다. 패션이 산업과 문화 예술 사이에 교묘하게 위치해 있다고는 하지만 물건 팔러 온다는 데 단지 선택받았다는 이유로 좋아하거나 뿌듯해할 이유는 딱히 없어 보인다. 그렇게 본다면 남 좋은 일만 하는 거 아니냐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 또한 기존의 콘셉트에 충실하다는 접객 방식이 충돌을 일으키기도 하고, 공식 매장임에도 불구하고 협업 제품이나 한정판을 출시하지 않아 이럴 거면 왜 들어와 있냐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브랜드의 진출이 늘고 대형 매장을 열면서 고용 창출이나 세금 납부 같은 이익도 있다. 또한 주요 브랜드가 한국에서 개최하는 행사와 화보 촬영 등의 이벤트가 늘어나면 한국을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가 찾는 멋진 나라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K문화의 이미지를 향상시키는 선순환 효과도 있다.

그리고 패션이란 게 어차피 쟤네 물건이 팔리면 내 건 팔리지 않는 완전한 제로섬 게임이 아니지 않나. 티셔츠 위에 조그마한 로고만 달라도 전혀 다른 재화로 인식되며, 서로 다른 아이템이 소비자의 손에서 믹스되면서 새롭고 신선한 즐거움을 향해 달려간다. 세계 최고 레벨 스트리트 브랜드의 패션은 물론이고 마케팅, 이벤트, 매장의 형태와 인테리어 등 디테일의 경험은 국내 패션의 생산자와 소비자를 한 단계 끌어올릴 자극이 될 수 있을 거다. 특히, 국내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역시 세계적인 인지도를 구축해가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니 말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 들어 하이패션 브랜드들이 직진출로 바뀌는 경우가 늘어나고 이에 대비해 아미(Ami), 메종 키츠네(Maison Kitsuné) 등의 수입 브랜드 제품의 히트가 매년 이어지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브랜드를 찾아내고 가져오는 일은 점점 더 중요해진다. 지금의 글로벌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의 국내 런칭을 무신사나 한섬, 웍스아웃 등의 온오프라인 플랫폼, 셀렉트 숍 회사가 주도하고 있는 것도 앞으로의 재편성 측면에서 흥미롭게 지켜볼 만한 부분이다. 아무튼 장사는 같이 경쟁하면서 하는 게 제일 좋다. 일단 모여 있어야 사람들도 많이 찾을뿐더러, 고객들이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는 기회도 늘기 마련이니 말이다. 이러한 경험과 시야의 확장이 더욱 새롭고 즐거운 무언가를 등장시키길 기대해 본다.


Writer │ 박세진
Illustration | Fuckthatnerd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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