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work in Supreme Store

VF코퍼레이션(VF Corporation)의 슈프림(Supreme) 인수를 시작으로 일본과 미국 외 타 국가의 오프라인 스토어 오픈이 줄을 잇고 있다. 슈프림 서울이라니, 슈프림 상하이라니. 이제는 슈프림의 본토 미국이나 가까운 일본에 갔을 때, 왠지 의례적으로 들르던 무의미한 순례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나조차도 괜히 가봐야 할 것 같은 알 수 없는 압박감에 목적 없는 방문을 여러 차례 해온바.

그럼에도 슈프림 스토어에 가볼 이유라면, 도시 곳곳 고유의 독창성을 지닌 공간의 매력일 테다. 물건이 아니더라도, 숍의 인테리어, 곳곳에 새겨진 아트워크를 둘러보는 것만으로 충분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쓱 쳐다만 봐도 슈프림의 정신이 담긴 개성 강한 작품이 가득하지만, 그래도 뭘 좀 알고 보면 더욱 좋지 않겠는가. 과연 세계 각국 슈프림 스토어에 어떤 아티스트의 아트워크가 담겨있는지 찬찬히 확인해보자.

Mark Gonzales

슈프림 뉴욕과 일본, 그리고 유럽 스토어 곳곳 매장 한가운데서 위용을 뽐내는 마크 곤잘레스(Mark Gonzales)의 조각상은 슈프림 매장에 들어섰다는 실감을 느끼게 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다. 스핑크스와 천사, 성직자, 포뮬러 1 레이스 자동차 등 다양한 버전의 조각상이 존재하며, 백지상태로 매장에 배달된 후 붓과 페인트를 가지고 그 위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완성되기에 같은 형상의 조각이라도 그 디테일이 다르다. 덕분에 각 스토어는 고유의 아트워크를 소유할 수 있게 된다. 이외에도 스토어 벽에 즉석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작은 낙서를 남김으로 슈프림 측근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이외에도 슈프림은 마크 곤잘레스의 아트워크를 활용한 아이템을 주기적으로 발매 중인데, 그 수가 워낙 많아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슈프림과 함께한 아티스트가 무수하지만, 가장 큰 예술적 영감을 전달하는 이는 아마도 마크 곤잘레스가 아닐까.

Nate Lowman

다음으로는 슈프림 스토어에 총알을 박아 넣은 팝아티스트 네이트 로우만(Nate Lowman)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뉴욕 대학교에서 수학한 후 2000년대 초반 아티스트로서의 첫발을 내디딘 그는 2005년 자신의 개인전 ‘The End’로 주목받았다. 알키드 도료를 사용, 점묘법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소재를 변형해 일종의 기호를 만드는 게 그의 특기로, 지금 소개하는 총알 자국(원작 이름은 ‘Green Escalade’) 또한 이러한 작품 중 하나다. 2007년 스케이트보드 데크를 제작하며, 처음 파트너십을 맺은 슈프림과 네이트 로우만은 이후로도 지속적인 협력을 이어갔다.

슈프림이 네이트 로우만의 작품에 단단히 꽂혔는지, 시부야 스토어 곳곳에 네이트 로우만의 카툰터치 총알구멍을 새겼고, 시부야 스토어 오픈을 기념하는 박스 로고 티셔츠에도 두 발의 흔적을 남겼다. 이것으로도 부족했던 걸까 2022년 SS 시즌에는 퀄팅 베스트와 스웨터, 후디, 팬츠 등으로 이루어진 네이트 로우만 캡슐 컬렉션을 냈고, 같은 아트워크를 적용한 반스(Vans) 협업 스니커까지 발매했다.

Ari Marcopoulos

앞서 언급한 두 인물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슈프림과 깊은 인연을 지닌 아티스트 아리 마르코플로스(Ari Marcopoulos). 아마 슈프림 하라주쿠 스토어를 자주 찾았던 이라면, 매장 한쪽 가득 채워진 스케이터의 초상을 본 적이 있을 것. 슈프림의 초창기 시절인 1994년부터 사진 파트너로서 지속적인 협업을 해온 아리는 오랜 시간 뉴욕의 하위문화를 필름에 차곡차곡 담아왔다. 슈프림의 90년대 포토 아카이브에서 그의 크레딧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외 슈프림의 공식 시즌 룩북과 더불어 센스(SENS)나 뎀(Them)과 같은 패션 매거진 에디토리얼에도 다수 참여했다.

여느 아티스트가 그렇듯 아리 마르코플로스 역시 슈프림과의 협업 컬렉션을 출시했는데, 슈프림 스토어의 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디자인이 그 특징으로 함께 발매된 반스 스케이트 하이(Sk8-Hi) 모델의 경우에는 역대 가장 멋진 슈프림 x 반스 협업 스니커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Simparch / Steven Badgett

그렇다면, 슈프림 스토어의 스케이트 보울은 어떤 이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걸까? 날고 기는 스지 중에서도 슈프림과 정말 가까운 이들만 입장할 수 있는 슈프림 스토어 스케이트 보울은 뉴멕시코의 아트 컬렉티브 심파치(Simparch)의 멤버 중 하나인 스티븐 바제트(Steven Badgett)가 제작하고 있다. 2003년 슈프림 로스앤젤레스 스토어를 시작으로 샌프란시스코와 브루클린, 그리고 올해 문을 연 상하이 스토어의 스케이트 보울을 설치했다.

평균 80평 정도 규모의 스케이트 보울은 시카고에서 모듈 형태로 제작 후 스토어 내부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건축된다고 하며, 그 디자인은 이미 전 세계 스케이터에게 익숙한 1930년 알바 알토(Alvar Aalto)의 수영장 형태를 따른다고. 우리가 직접 슈프림 스케이트 보울을 타볼 일은 없겠지만, 위 마크 곤잘레스의 스케이팅 영상으로 그 기분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는 있겠다.

Futura

뉴욕의 전설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 푸추라(Futura) 역시 슈프림의 단골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이미 슈프림의 초창기 때부터 그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다양한 그래픽을 제공했으며, 2006년 준 타카하시의 언더커버(UNDER COVER), 홍콩 브랜드 실리 띵(Silly Thing)과의 협업 컬렉션을 통해 처음 등장했다. 이듬해 2007년 본인의 스타일로 ‘Supreme’을 새긴 티셔츠를 발매했고, 그 뒤로도 꾸준히 슈프림 컬렉션을 선보이는 중이다.

푸추라의 작품은 슈프림 뉴욕 스토어의 한쪽 벽을 시원하게 장식하고 있다. 여타 아티스와는 다르게 오로지 뉴욕 스토어에서만 푸추라의 벽화를 감상할 수 있으니 혹시라도 방문하게 된다면, 쉽게 볼 수 없는 푸추라의 대형 작품을 가슴 깊이 느껴보길 바란다.

Weirdo Dave

위어도 데이브(Weirdo Dave) 또한, 슈프림의 오랜 조력자로 함께해왔다. 자칫, 앞서 소개한 아리 마르코플로스의 작품과 혼동할 수 있지만, 위어도 데이브는 사진과 함께 본인이 수집한 다양한 이미지를 콜라주 형태로 붙여 넣는다. 얼핏 보기에 폭력적이거나 강렬한 이미지의 나열처럼 느껴지지만, 이런 작업을 위해 데이브는 매일 같이 신문이나 잡지, 책을 읽고, 뒤적거리며 책상 서랍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의 스크랩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이런 콜라주 작업은 그의 진(Zine) ‘FUCK THIS LIFE’와도 이어지는데, 이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X같은지, 우리 스스로, 그리고 사회에게 던지는 메시지처럼 느껴진다. 슈프림 브루클린 스토어와 파리, 밀란, 베를린 스토어에서 위어도 데이브의 그래픽 월이 설치되어 있으며, 서울에서도 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앞의 여러 아티스트처럼 의류 컬렉션까지 발매되었고, 그중에서도 2008년 뉴욕의 그래피티 아티스트 JA(XTC)와 3자 협업으로 제작한 티셔츠가 일품이다.

Rita Ackermann

아마 슈프림 서울 스토어 속 가장 큰 존재감을 드러내는 아트워크는 리타 아커만의 벽화가 아닐까. 새하얀 벽, 검은색과 빨간색으로만 그려진,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그림이지만, 시원스레 뻗은 선의 조화는 매장 문을 열고 들어갈 때부터 매장을 나가는 그 순간까지 방문객을 압도한다. 스토어 벽에 그려진 아트워크는 리타 아커만 초기작의 화풍을 반영하는데, 도발적인 포즈의 여성 위를 지나는 붉은 라인은 인간에게 내재한 충동과 폭력성을 의미한다.

슈프림과는 2019년 FW 시즌 한 차례 협업 컬렉션을 발매한 바 있고, 레이온 셔츠에서 슈프림 스토어의 아트월과 유사한 ‘Heroin 2’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리타 아커만은 슈프림 외에도 뉴욕의 패션과 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작업을 이어 왔는데, 패션 브랜드 아담 키멜(Adam Kimmel)의 모델이 되거나, 메이시스(Macy’s) 백화점의 아트워크를 디자인, 슈프림과도 깊은 관계를 지닌 영화 감독 하모니 코린(Harmony Korine)과도 책을 발간하는 등의 전방위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OJAS / Devon Turnbull

지금껏 설명한 여러 아티스트의 이름이 익숙했다면, 데본 턴불(Devon Turnbull)은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 있겠다. 데본 턴불은 커스텀 오디오 브랜드 오자스(Ojas)의 오너로 세계 각지 슈프림 스토어의 음악은 그가 제작, 설치한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대학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한 그는 스피커 또한 하나의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걸 느꼈고, 이후 하이파이 오디오를 연구, 자신만의 독특한 미적 감각과 음악적 철학을 결합한 오디오 브랜드 오자스를 설립하게 된다.

음악에 열성적이었던 그의 부모 덕분에 데본 턴불은 다른 또래보다 일찍 다채로운 음악 장르를 접할 수 있었고, 중학생 때 이미 버려진 부품을 가지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사운드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혹자는 대부분 JBL 부품으로 이루어진 오자스의 스피커가 그 값에 걸맞지 않은 거품이라고도 말하기도 하지만, 데본 턴불은 알텍(Altec)이나 웨스턴 일렉트릭(Western Electric), RCA 등 오디오 전성기를 수 놓은 브랜드가 선보인 ‘멀티 드라이버 라우드 스피커’를 찾아 복원하고, 조립한 뒤 완전한 사운드를 낼 수 있는 스피커를 새롭게 창조해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오자스는 스피커를 제작하면서 시각적인 아름다움도 놓치지 않으려 하는데, 제품 자체의 외관을 존중, 본래의 구성 요소를 최대한 노출시키려 한다. 스피커의 외부는 고품질 목재로 이루어지고, 그 디자인 또한 전통적인 복고풍 스타일을 따른다.

슈프림과 함께하기까지의 과정 또한 흥미롭다. 제임스 제비아(James Jebbia)가 먼저 데본에게 매장의 사운드 시스템 구축을 요청했는데, 그 요구 사항과 수준이 꽤나 엄격하고 높았다고. 이에 데본은 또 한 명의 협력자를 요구했고, 제임스 제비아는 제이슨 오제다(Jason Ojeda)라는 오디오 전문가를 소개해 슈프림의 요구에 걸맞은 훌륭한 사운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고 한다.

슈프림 천장 위 매달려 있는 거대한 스피커를 보게 된다면, 과연 어떤 음악이 어떻게 흘러나오고 있는지 한번 귀 기울여 보도록 하자.


이렇게 세계 각국 포진한 슈프림 스토어, 그리고 그 공간을 미술관으로 꾸민 아티스트를 알아보았다. 브랜드의 첫 시작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진하게 풍겨온 슈프림만의 향취는 비단 그들의 뿌리인 스케이트보드뿐만 아닌, 그 저변의 여러 아티스트와 예술 작품의 힘으로써 완성되었을 것. 지금껏 쇼핑에 밀려 무심코 지나쳤던 슈프림 스토어 속 아트워크가 여러분을 또 다른 예술 경험의 장으로 인도하길 바라본다.


이미지 출처 | Supreme, Pinterest, Printed Matter, Simparch, Dezeen, Designb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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