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5일, 프로디지(The Prodigy)의 프런트 맨 키스 플린트(Keith Flint)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영향으로 침울할 거로 예측한 빅 비트 신(Scene)이었으나, 키스 플린트의 정신을 이어받은 그의 팬들은 되려 레이브 파티로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에 이른다. 빅 비트의 대부 케미컬 브라더스(The Chemical Brothers) 또한 그 위대한 정신을 이어받은 이들 중 하나. 이들은 더 나아가 4월 12일 새로운 앨범 [No Geography]를 예정대로 발표하며 빅 비트의 건재함을 알렸다.
키스 플린트의 부고 소식을 접하고 난 후라 더욱 반가운 이름 케미컬 브라더스. [No Geography]는 이들의 아홉 번째 정규 앨범으로, 커버 아트부터 그 느낌이 매우 독특하다. 한국뿐 아니라 영국에서도 역시 보기 드문 청명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분홍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있고, 도로의 끝이 보이지 않는, 흡사 아우토반을 닮은 광활한 도로 덕분에 밝은 주제를 다룰 것만 같은 앨범의 첫인상이다. 허나 눈을 비비고 자세히 보면, 분홍 구름은 기괴한 사람의 얼굴을 형상화했고, 두 남자는 탱크를 타고 있으며, 탱크의 행선지가 될 소실점 너머는 새빨갛게 불타오르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현재의 자유에서 미래의 종말까지 암시하는 커버 아트인 것.
이러한 양면성을 띤 커버아트가 배경이 된 앨범 [No Geography]는 전쟁의 경각심을 고취하기 위한 트랙 “Eve of Destruction”에서 흡사 경고음을 연상시키는 보이스 샘플로 앨범을 열어, 마지막 트랙 “Catch Me I’m Falling”까지 총 10개의 트랙을 47분간 반복적으로 쉴 틈 없이 몰아붙인다. 덕분에 전쟁 경각심은 물론이고, 아우토반을 자유로이 달려 나가는 한 마리의 야생마 또한 자연스레 떠올리며, 어느샌가 발을 구르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겠다.
한편 케미컬 브라더스는 올여름, 바로 옆 나라 일본의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한국을 방문할지는 아직 미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