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걱이는 수레 한 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누군지 모를 노인이 동네를 이리저리 누비며 쌓아 두었을 종이 더미는 낡은 수레를 위태롭게 짓누른다. 왼쪽에는 쓰레기 봉지로 추정되는 둥그스름한 물체가, 오른쪽에는 급히 주차한 듯 바퀴가 엇나간 트럭이 가만히 멈추어 있다. 수레, 봉투, 트럭 모두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요소지만 어딘가 낯선 모양새다. 젊은 화가가 골목을 거닌다. 어린 시절부터 이곳에 거주해 온 그는 날마다 반복되는 풍경이 저도 모르는 새 어색하게 바뀌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한다.
김기륜은 재개발이 진행 중인 장위동의 풍경 조각을 그린다. 그는 삶의 일부가 된 지역이 외부에 의해 변화되어가는 현실에 분노하고, 동네가 파괴되는 과정과 일상적인 풍경을 드로잉으로 남긴다. 목탄을 쥔 손가락에 힘주어 선을 세게 그어보기도, 긴장을 풀고 숯덩이를 연하게 비벼보기도, 시커먼 배경 위 지우개를 들어 하얀 점을 마구 찍어보기도 한다. 젊은 화가는 그렇게, 사랑하는 동네에서 벌어지는 생경한 현상에 대한 복잡미묘한 감정을 꾹꾹 눌러 써나간다.
MINI INTERVIEW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그림 그리는 김기륜이라고 한다.
장위동 풍경의 투박한 묘사가 인상적인데, 동네를 그리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처음 장위동을 그리기 시작한 건 2016년, 21살 때다. 당시 ‘뭘 그려야 하지?’라고 한창 고민하고 있었다. 일기장, 자화상, 자아 탐구 등 이전까지의 작업에 지친 상태였다. 마침 거주하던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재개발 ‘된’ 풍경을 봤다. 재개발을 계획했다는 소식을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눈으로 먼저 접하게 된 거다. 누군가 목소리를 내기도 전에 동네의 한 구역이 아예 사라져 버렸다. 큰 충격을 받았고, 얼른 이걸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반년 뒤 입대할 예정이라 최대한 빠른 속도로 많이 그리기로 했다.
계단을 그린 2018년 연작은 사이즈가 커지고, 묘사도 훨씬 섬세하고 부드러워졌다. 이 작업을 간단히 설명해 줄 수 있나.
앞선 작업은 2016년 4월에 마쳤다. 곧바로 입대하게 되어 1년 넘게 작업을 쉴 수밖에 없었다. 군 생활 도중 이사를 했는데, 그렇게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거주하게 되니 자연스레 동네에 관한 고민을 덜 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장위동 재개발에 대한 아쉬움, 안타까움, 슬픔, 분노 등을 느낀 데 비해 2017년 후반에는 감정도 차분해지고 같은 소재를 묵묵하게 그렸다. 재개발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도 했고.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2016년에는 어쩔 수 없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친구와 이웃을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이 그저 싫었다. 그러나 재개발에 관한 정보를 접하고 공부하다 보니 인식이 조금 바뀌었다. 장위동의 기존 건물들은 연식이 오래돼서 결국 개발해야만 했다.
2016년에서 2018년까지 흑백으로만 작업한 이유가 있나.
2016년 이전에는 캔버스에 유화로 그렸다. 그러다 그림에서 서정적인 측면을 드러내고 싶다는 생각에 드로잉을 선택했다. ‘색’에는 무한한 종류가 있기에, 채색하다 보면 ‘여기에 이 색상이 적절한가?’는 질문을 반복하기 마련이다. 이에 비해 드로잉 작업에서는 색을 고르는 스트레스 없이 편하게 쭉 작업할 수 있었다.
주택 2층에 걸린 이불을 노랗게 채색한 드로잉도 있다. 이때 색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작품은 입대하기 전 마지막으로 그린 것이다. 흑백 작업만 하다가 ‘하나쯤은 색을 넣어봐도 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었다. 4개월 동안 진행한 드로잉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그림이다.
전작에서 목탄과 같은 건식 재료를 주로 사용했다면, 최근 작업에는 대부분 물감을 사용한다. 방향을 전환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유화를 쓰던 이전 작업에 미련이 남았다. 흑백 작업은 ‘색을 쓰는 과정에 대한 포기’와 같다. 앞으로 화가로서 작업을 쭉 한다고 봤을 때 흑백 드로잉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따라올 테니. 색을 쓸 때 놓쳤던 부분이 흑백 작업을 하면서 채워졌다는 생각도 했다. 보통 ‘말렸다’라고 하는데, 작업 중 어떤 색을 써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침범해버리면 그리는 흐름이 완전히 끊긴다. 작업이 유기적으로 흐르길 바라지만, 중간중간 색에 관한 고민으로 인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결과가 나와도 즐겁지 않았다.
그렇다면 미리 채색 단계를 미리 구상하고 작업하는지.
그렇다. 포토샵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었다면, 지금은 작업하기 전에 채색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아직은 혼란스러운 단계지만 그래도 개별 작품끼리, 시리즈끼리 조금씩 연결 지점이 생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작년 5월 테이크 원의 ‘녹색이념’ 무대에서 작품이 깜짝 등장했는데, 당시 상황을 이야기해 줄 수 있나.
오랜 친구인 뮤지션 한오월(han5world)이 첫 믹스테잎을 낼 때 아트워크를 담당했다. 둘 다 테이크원을 매우 좋아했는데, 마침 한오월의 두 번째 믹스테잎에 그가 피처링하기로 했다. 보답으로 한오월이 내 그림을 구매해서 테이크원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해서 테이크원을 위한 그림을 새로 그렸다. 세 명을 관통하는 이미지가 무엇일까 고민한 끝에 한오월의 방을 촬영한 모습을 그렸다. 한오월이 녹색이념 게스트로 등장했을 때, 뮤지션과 함께 그림이 소개되었다.
세 명을 관통하는 요소로 ‘방’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한오월의 방은 장비가 가득하다. 작업실로 쓰이기도 하기에 이러한 작업가 이미지를 담아내고 싶었다. 마침 녹색이념의 무대 구성과 그림의 구조가 여러모로 비슷해 무대 위 이젤에 그림을 놓았다고 들었다.
작업 속도를 보면 그림을 정말 꾸준히, 많이 그리는 화가라는 생각이 든다. 성실함의 원동력이 궁금하다.
집에 거의 안 가고 작업실이 붙어있는 학교에 살다시피 한다. 내가 할 일은 그림을 그리는 것인데, 그걸 안 하고 있으면 많이 불안하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두 개를 그려야 한다’고 다짐했다면 그 할당량을 꼭 채워야 한다. 완수하지 못하면 초조하다. 일종의 강박 같기도 하고.
본인 작업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기록. 작년에 ‘무언가를 열중해서 기록하는 행위’를 다룬 전시 ‘눌러쓰기trascription (2019. 5. 25 – 6. 4)’에 참여했다. 당시 기획안을 받아 보고 내 작업 맥락과 딱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아 놀랐던 기억이 있다.
장위뉴타운을 비롯한 오늘날 서울의 도시 개발을 바라보는 개인적인 생각이 궁금하다.
서울은 도시의 어두운 이면을 완강히 감추려 하는 듯하다. 세계 어디를 가나 할렘이라는 이미지가 존재한다. 그러나 서울은 못 사는 동네를 어떻게든 엎어서 낙후된 모습을 숨기려고 한다. 노후한 시설을 바꾸겠다는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설득 과정이나 보상 체계 등 시 차원의 섬세한 작업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자꾸 재개발 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감추려고 한다. 세운상가의 경우 오랜 시간 차근차근 재개발을 준비한 사실을 사람들이 모르는 상태에서 빠르게 공사를 진행한 케이스다. 정말 용의주도하다. 이전에는 재개발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 시민이 반대 의사를 표할 수 있었다면 현재는 그것조차 불가능해졌다. 이렇게 제대로 된 발언도 못 하는 상황에서 공사가 하나둘 마무리되고, 힘없는 사람들은 무기력해진다.
본인의 작품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시사점을 지니길 바라는지.
사회적인 역할에 대한 생각은 없다. 사람들이 내 그림을 완전히 재개발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만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재개발을 통해 동네를 보게 되었고, 동네가 사라지는 상황에 대한 아쉬운 감정을 그린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쭉 장위동을 그릴 예정인가?
그렇다. 장위동을 기록하는 이 과정을 어떠한 형태로 바꾸어 갈지를 고민 중이다. 이제는 미술가로서 매체를 탐구해보고 싶다. 다른 작가와 함께하는 콜렉티브 작업에도 관심이 있다.
향후 작업과 전시계획을 알려준다면?
학부 졸업전시 그리고 홍제동과 홍은동을 소재로 한 단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더불어 이전까지의 서정적인 작업을 뒤엎고 ‘오늘날 회화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중심으로 그려나갈 예정이다. 회화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시각예술이지만, 시대에 따라 지니는 의미와 역할이 계속해서 바뀌어 왔다. 사진기술이 등장하기 전인 1800년대까지는 실제와 똑같이 재현해내는 화가가 칭송받았다.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시각적인 즐거움이자 충격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VR과 같이 더욱 강력하고 충격적인 기술이 등장했고, 자극의 강도와 기술의 발전 속도도 빨라졌다. 이러한 현실에서 회화가 예전과 같은 시각적 즐거움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캔버스에도 그려보고, 종이에도 그려보고, 디지털 페인팅도 시도해보고 있다. 학교에 입학한 후 ‘물질 재료를 쓸 줄 알아야만 한다’는 분위기 아래 그림을 그렸다. 지금은 이것을 굳이 고집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근 기존에 진행하던 작업을 엎고 새 작업에 대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매번 느끼지만 손전등 하나 쥐고 홀로 캄캄한 숲속을 걷는 기분이다. 이런 불안감에도 꾸준히 나아가는 작업자를 보며 많은 용기를 얻는다. 분야를 막론하고 묵묵히 전진해 나가는 분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다.
진행 / 글 │ 신예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