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와 환상을 그리는 아티스트, Sibylle Ruppert

우둘투둘 괴팍한 피부와 튀어나온 핏줄, 과장된 근육, 축 늘어진 먹이를 향해 입 벌리고 있는 초월적 존재. 악마가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이 목탄 그림은 6-80년대에 활동했던 초현실주의 아티스트 쥐빌레 루퍼트(Sibylle Ruppert)의 작품이다.

분노, 죽음, 공포, 트라우마, 욕망, 악몽과 같은 주제를 다루는 그녀의 작품을 보다 보면 외설적이고 병적인 글을 썼던 작가들-사디즘의 창시자인 사드 후작(Marquis de Sade)과 ‘에로티즘’의 저자 조르주 바타유(George Bataille)가 연상된다. 혹여 쥐빌레의 작품에 시각적으로 기시감이 들었다면, 이는 그녀가 에일리언의 아버지로 잘 알려져 있는 초현실주의 아티스트 H.R. 기거(H.R. Giger)와도 친밀하게 교류했던 사이였기에 작화 기법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일 것.

쥐빌레가 그리는 신체는 마치 살아 움직이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특징이다. 몸부림치고, 조여지고, 비틀리고, 응축되고, 작열하는 것처럼 보인다. 남녀의 성기가 모두 달리거나 혹은 모두 없는 그저 ‘근육 덩어리’를 묘사한 듯한 섬세한 인체 표현은 관객으로 하여금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준다. 작품을 볼수록 작가가 평상시 어떤 취향을 가졌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해지나 개인적 삶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진 바가 없다. 대중적으로 사랑받지 못하는 매니악한 그림을 그렸고, 사망하기 몇 해 전에는 마약 센터와 병원에 가서 미술 교육을 했다는 사실뿐.

쥐빌레 루퍼트에 매료되어 두 눈으로 이 섬세한 작업들을 보고 싶다면, 그녀의 작품을 소장 중인 스위스 그뤼에르에 있는 H.R. 기거 뮤지엄에 직접 찾아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 커다란 자품들이 주는 숭고미에 압도되는 기분이 들 것.


이미지출처 │Artsy, Blue Velvet Proj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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