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표 편집숍 빔즈(BEAMS)에는 30가지의 빔즈 라벨과 함께 수백 개의 브랜드를 판매하고 있다. 그들이 취급하는 많은 브랜드 중에는 빔즈에서 자체적으로 전개하는 PB 브랜드 역시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비밀병기처럼 숨겨진 빔즈의 독자브랜드 SSZ가 지난 1월 25일 2020 S/S 컬렉션을 발매했다.
SSZ는 타다유키 카토(Kato Tadayuki)가 전개하는 브랜드로 ‘Surf & Skate Zine’을 뜻한다. 이 브랜드를 설립한 과정이 꽤 드라마틱한데, 22살의 나이에 빔즈에 입사한 타다유키 카토는 서퍼와 스케이터를 위한 숍을 열고 싶었다. 이러한 바람으로 빔즈에 서핑 & 스케이트 숍 기획서를 제출했으나 거절당하기 일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로 상사와 함께 서핑을 나갔을 때 이전 기획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상사는 카토에게 빔즈 내 서프 & 스케이트 라인의 어시스턴트 바이어의 자리를 제안했다. 그렇게 빔즈 하라주쿠에 처음 서프 & 스케이트 라인을 구축한 그는 몇 해 후 해당 라인의 담당 바이어로 승진한다. 이후 빔즈는 회사 내 각 라인 담당자가 5분에서 10분 정도 자신이 관리하는 제품을 설명하는 발표회를 진행한 바 있는데 ‘스케이트의 아이템은, 품질 및 소재보다 그 배경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픽에 담긴 스토리라든지, 어디서, 누가 어떤 경위로 시작했는지와 같은 이야기를 5분 만에 발표할 수 없다’라고 생각한 그는 취급하는 제품에 대한 설명을 콜라주 형태의 진으로 제작하여 발표회에서 배포했다. 이 진은 빔즈 내부뿐 아니라 외부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어냈고 2012년부터 SSZ(Surf & Sk8 Zine)를 꾸준히 제작했다. 그리고 2016년 SSZ는 빔즈 내 독자적인 브랜드로 전개되어 현재 많은 팬을 확보한 상태다.
SSZ의 가장 큰 특징은 제품마다 그 제품의 모티브나 디자인 디테일의 의미를 상세히 적어 둔 핸드라이트 노트에 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노란색의 ‘리갈 패드(Legal Pad)’에 빼곡히 적어 둔 손글씨는 제품에 관한 이야기를 투박하면서도 진솔하게 전한다. 2016년 첫 컬렉션에서 선보인 후디를 보면 스케이팅 간 촬영할 수 있는 주머니를 설계했고, 어깨 부분에는 절개를 두어 스케이팅 시 격한 움직임에 편안함을 주는 등 스케이트 문화를 이해하는 데서 오는 디자인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리갈 패드에 적은 손글씨를 아이콘화해 제품의 택과 디자인으로 활용하는 점도 브랜드의 정체성임을 보여준다.
이번 2020 SS는 가마쿠라 컬렉션으로, 타다유키 카토가 현재 거주 중인 도쿄 근처의 바다마을 가마쿠라 지방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컬렉션이다. 17가지 스타일의 제품과 함께 이번에도 발매한 진에는 각 제품의 설명을 수록했다. 콜라주로 제작한 진에는 가마쿠라 해변을 배경으로 제품의 모티브나 핏, 디테일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니트의 경우 가마쿠라에 유명한 대불상의 헤어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았고, 코치 재킷은 등산 시 비가 오는 경우 가방 위를 덮을 수 있도록 후면에 넉넉한 공간을 남겼다.
또한 컬렉션 발매 후 1월 27일 그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번 컬렉션과 SSZ 브랜드에 관한 생각을 긴 글로 남겼다. ‘SSZ는 빔즈 내에서 작은 규모로 진행되어 작은 이익을 낼 수밖에 없지만, 그 이상의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SSZ는 하나하나에 다양한 아이디어가 담겨있고, 그 배경과 이야기와 스타일, 문화가 존재하는 매우 귀찮은 브랜드입니다’라고 글을 남기며 무엇이 서브컬처 브랜드인지 강렬히 시사한다. 아쉽게도 SSZ 컬렉션은 빔즈 오프라인 숍에서만 발매(일부 협업 제품은 빔즈 온라인에서 발매)하며 그것도 한정된 숍에서만 만날 수 있다. 이 또한 온라인 구매가 활성화된 현시대에서 오프라인 숍 방문 행위의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브랜드 전략일지도. 앞으로 빔즈를 방문할 일이 있다면 갖가지 아이디어로 가득찬 브랜드 SSZ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