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위예(Danièle Huillet)와 장 마리 스트로브(Jean-Marie Straub)는 1963년부터 2006년까지 20편이 넘는 영상 작품을 제작한 아방가르드 영화감독 듀오로, 프랑스 태생임에도 불구하고 주로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며 특유의 정적이며 정치적인 세계관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스트로브-위예 듀오의 “안나 마그달레나 바흐의 연대기(Chronik der Anna Magdalena Bach)”와 “모세와 아론(Moses And Aaron)”과 같은 대표작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유명한 문학 및 희극 텍스트의 직접적인 인용과 정적인 움직임, 단조로운 미장센(mise-en-scène) 등 절대 타협하지 않는 미니멀한 미학이다.
스트로브-위예 듀오는 유럽 영화의 대표적인 여느 감독에 비해 지명도는 낮은 편이지만 페드로 코스타(Pedro Costa) 감독이나 정성일 평론가 등 국내외를 막론하고 시네필들이 사랑하는 감독으로 손꼽힌다. 이번에 벨기에 기반의 영화 저널 사브지안(Sabzian)에서 발표한 스트로브-위예 컬렉션은 그러한 팬덤을 만족시키기에 분명하다. 컬렉션은 해당 듀오의 제작물에 관한 12개의 텍스트와 55개의 영화 조각 소개 글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구성물은 제목 동명의 이탈리아 작가 프랑코 포르티니(Franco Fortini)가 평화로운 자연 지형을 배경으로 모국에서의 파시즘(fascism)의 부상을 다룬 자신의 책을 소리 내서 읽는 영화 “포르티니/개(Fortini/Casi)”에 대한 텍스트가 아닐까 싶다.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으로 인해 서구 백인 문화권에서 배척당하지만, 반아랍 정서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주류 유대인 사회에 포함되지 못하는 포르티니가 점한 사각지대는 오늘날 특히나 시의적절하게 느껴질 것이라 예상한다. 또한, 그들과 자주 협업한 프랑스의 감독 장-샤를 피투시(Jean-Charles Fitoussi)의 인터뷰(At Work with Danièle Huillet and Jean-Marie Straub–A Conversation with Jean-Charles Fitoussi)를 통해 정형화된 일반적인 영화 제작 과정에 반대하여 스트로브-위예 듀오가 고집한 작업 방식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숏(shot)과 장면마다 필요한 카메라 렌즈와 앵글부터 시작하여 현장 음향 조절까지, 영화 촬영의 모든 요소가 사전에 계획된 그대로 완벽하게 진행되었다는 점은 흔히 비정형성으로 특징되는 예술 영화 애청자에게 놀랍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해당 컬렉션 준비를 위해 사브지안은 특별히 스트로브-위예 듀오를 주제로 다룬 덴마크 영화 비평 잡지 발타자(Balthazar)의 9번째 단행물을 공식적으로 참고한 것으로 확인되며, 단행물의 전체 PDF 파일은 공식 웹사이트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한편, 사브지안은 2014년에 창립된 이래로 영화에 대한 독립적인 비평과 사색을 추구하며 동시대 시네필 담론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해 나가는 온라인 및 오프라인 영화 저널이다. 개별 작품에 대한 비평문뿐만 아니라 위 컬렉션과 같이 특별히 큐레이션된 도시에(dossier)와 필진이 직접 취합하고 정리한 독립 및 예술 영화 인덱스도 선보이고 있다는 면에서 비할 데 없는 리소스를 자랑하고 있기도 하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온라인 영화 잡지와 인스타그램 계정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면 사브지안을 확인해 보기를 제안한다. 한국의 홍상수 감독 큐레이션도 있으니 정독해 봐도 좋을 것.
이미지 출처 | The New Yorker, Arte.tv, MUB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