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을 동력삼아 미국을 가로지르는 여정, “Riding Han”

2023년 중반에 들어서야 코로나19가 종식되며 전 세계 시민들이 한숨을 돌릴 수 있었으나, 북미와 유럽, 중남미 등 서구권에 거주하는 아시아인은 팬데믹의 여파로 더 심화된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 범죄와 인종차별에 시달리게 되었다. 특히 팬데믹으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큰 인명 피해를 겪은 미국에서는 아시아인이 다량 거주하는 지역에서 여러 강력 범죄 사건이 발생했으며, 2021년에는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Stop Asian Hate’ 운동이 진행되기도 했다. “Riding Han”은 반-아시아 정서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혼돈 속에서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세 명의 여정을 담은 일종의 숏 다큐멘터리이다. 

제목에서도 나타나듯이 본 다큐멘터리의 주제가 되는 것은 한국인의 정서를 가리키는 단어로도 사용되는 ‘한(恨)’으로, 다큐멘터리의 연출과 제작을 맡은 유진 박(Eugene Pak)은 한을 한국인의 내재적인 성질로 설명하고 있다. 하나의 민족적 공감대이자 심리적인 현상인 한은 영상 속에서 예로부터 거듭된 침략과 약탈, 전쟁과 식민주의 등 피정복민으로서 겪은 역사에서 비롯된 ‘세대 간 트라우마(intergenerational trauma)’로 정의되기도 한다. 

유진과 함께 출연하는 유진의 동생과 영 마지노(Young Mazino)는 한국 혈통과 미국인이라는 국가적 정체성 사이에서 내면적으로 갈등하며 어느 한 집단에 완전히 소속되지 못하는 2세대 이민자의 고뇌를 한의 일부로 해석하는 듯하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주를 넘나드는 인터스테이트 여행과 이동이 아직은 힘들었던 2021년, 이들은 세계적으로 상징적인 산악 코스 그레이트 디바이드(Great Divide)에 도전하기로 한다. 그레이트 디바이드는 미국과 맞닿아 있는 캐나다 앨버타주에서 시작하여 미국 뉴멕시코주의 남쪽 멕시코 경계까지 이어지는 비포장 자전거 도로로, 높은 지구력과 깊은 인내를 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다큐멘터리는 세 친구가 광활한 미국 땅을 가로지르며 한이라는 개념의 다층성을 탐색하는 이야기를 담은 셈이다.

이들은 여행 중 예상치 못한 한국의 흔적을 발견한다. 거의 여정의 끝에 다다랐을 때, 뉴멕시코의 한가운데에서 우연히 방문한 모텔의 주인이 어느 한국계 미국인 노부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들은 노년의 한국인 주인이 준비한 된장찌개와 각종 한식 반찬을 먹으며 경기도 동두천시의 미군 육군 기지에서 근무했던 1세대 이민자를 만난 값진 경험에 대해 감탄한다. 또, 콜로라도 서남부에 위치한 델 노르테(Del Norte) 지역에서는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삼팔선에서 그대로 가로줄을 긋는다고 가정했을 때, 이 지점에 삼팔선이 있을 것이라는 팻말을 발견한다. 이는 이들에게 한국 전쟁의 역사와 여파를 상기하며 전쟁 후 놀라운 성장의 기반으로 작용하기도 한 한의 가치를 고민하는 계기가 된다. 

한국 본토의 문화와 사회적 구조 속에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한국계 미국인의 내적 고뇌와 모순성 또한 한이 내포하는 정서로 이해한다면, 한이야말로 우리 모두를 연결해 줄 수 있는 포용적인 가치가 될 수도 있겠다. 최근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나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영 마지노가 직접 등장하는 “성난 사람들(Beef)”과 같이 한국인 이민자의 자아실현과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만큼, “Riding Han”을 통해 한인 디아스포라의 또 다른 측면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 보도록 하자. 

Eugene Pak 인스타그램 계정


이미지 출처 | BIKEPACKING,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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