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일, 선선한 초여름 밤 이태원 허슬(Hustle)의 옥상을 찾았다. 12일부터 14일까지 열리는 ‘#saytheirnames’ 자선 추모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이 행사는 미국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흑인 희생자를 추모하고, 자선기금을 마련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자선기금은 유가족을 돕고,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 운동에서 체포된 시위자의 보석금을 마련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알전구의 주황빛이 따스하게 감싸고 있는 옥상은 편안하고 애정 어린 분위기였다. 입장객은 들어가기 전, 커뮤니티 협정서를 읽고 동의하는 과정을 거친다. 커뮤니티 협정서는 BUFU(By Us For Us)의 Cloud 9 커뮤니티 협정서에 기반, 수정된 것으로 추모 공간에서 명심해야 할 조약 열여섯 가지를 담고 있었다. 추모 공간이 누구를 위해 마련된 것인지 기억하기 위한 조약 여섯 가지(1. 흑인을 중심으로 할 것, 2. 반 흑인 주의 금지, 3. 본인의 특권을 인지할 것, 4. 소수자를 중심으로 할 것, 5. 추모 공간에서의 사진 촬영 금지), 주의사항 아홉 가지(6. 분위기를 읽을 것, 7. 모든 동의는 분명하게 이룰 것, 8. 사람들의 정체성을 존중할 것, 9. 경청할 것, 10. 새로운 생각을 시도해볼 것, 11. 적극적으로 나서고 또, 다른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물러설 것, 12. 사생활을 보호할 것, 13. 불편함을 경험할 것, 14. 인종적 문제에 대한 즉각적 종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일 것), 안전에 관한 조약 두 가지(15. 운영진이 퇴장을 요청할 수 있다는 것, 16. 생존자를 최우선으로 할 것)가 그것이다. 입장할 때 커뮤니티 협정서를 읽음으로써 이 행사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다. 추모 공간을 찾은 사람들을 존중하겠다는 마음가짐도 새삼 다잡게 되었다.
자선 모금은 추모 제단에 바칠 초와 향, 꽃, 간단한 다과의 판매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야기를 나눈 운영진은 모두 친절했다. 마냥 슬픔에 잠겨있기보다는 현재 할 수 있는 것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힘이 느껴졌다. 향과 꽃을 사 제단에 올리고, 희생자들의 이름을 작게 불러 보았다.
브리오나 테일러(Breonna Taylor). 응급 구조대원이었다. 경찰은 범인을 이미 체포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밤중 그의 집을 찾았다. 브리오나의 꿈은 간호사가 되는 것이었다.
샌드라 블랜드(Sandra Bland). 교통 위반 딱지를 떼였다. 대학교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적법한 절차 없이 그를 체포한 경찰관은 감옥에 가지 않았다. 친구들은 그를 샌디라고 불렀다.
니나 팝(Nina Pop). 28세의 트렌스젠더 여성이다.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했으며 그 지역에서 사랑받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토니 맥데이드(Tony McDade). 트렌스젠더 남성이다. 다수의 남자로부터 공격을 당했다. 맞서 싸우기 시작하자 경찰은 그를 쏘았다. 토니를 죽인 경찰관은 정직 후 복직했다.
아이아나 스탠리-존스(Aiyana Stanley-Jones). 고작 7살에 생을 마감했다. 살해당할 당시 자신의 방에서 자고 있었다. 그를 죽인 경찰관은 여전히 같은 부서에서 근무한다. 아이아나가 살아있었다면 올해 17살이었을 것이다.
트레이본 마틴(Trayvon Martin). 세븐일레븐에서 아이스티와 스키틀즈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를 살해한 경찰관은 무죄를 선고 받았다. 살해당할 당시 17살이었다.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 그는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를 살해한 경찰관은 3등급 살인 사건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유죄를 선고 받는다 해도 최대 형량은 40년이다. 그는 두 딸을 남기고 세상을 떴다. 막내딸은 고작 여섯 살이다.
에릭 가너(Eric Garner). 숨을 쉴 수 없다고 그는 11번이나 말했다. 그를 살해한 경찰관은 기소되지 않았다. 누군가의 할아버지였던 에릭 가너.
타미르 라이스(Tamir Rice). 고작 12살에 생을 마감했다. 그는 ‘경찰과 도둑’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를 살해한 경찰관은 아직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살아있었다면 올해 17살이 되었을 것이다.
백인 경찰이 흑인을 과잉 진압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들은 바가 있었지만, 자신의 집에서까지 살해당한 사건을 보니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희생자 중에는 어린아이도 있었으며, 새로운 삶을 막 시작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공권력이 공명정대하지 못한 것은 분노할 일일 뿐만이 아니라, 두렵기까지 하다. 힘을 가진 사람이 법이나 정의가 아닌 개인의 편견에 기반한 판단을 내릴 때, 무고한 시민의 삶은 위험에 빠진다.
그 누구의 삶도 인종 혹은 성별에 의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모두 존엄한 존재이며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편견의 희생양이 된 사람들이, 새로운 기회를 다시는 얻을 수 없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제단에 놓여 있었다. 인종 차별, 트랜스젠더 차별이 아니었다면 여태껏 살아 수많은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경찰이 빼앗아 간 것은 그들의 삶 뿐만 아니라 그들이 살아감으로써 생겨날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차별이 곧 위협이 될 때, 소수자는 자신을 숨기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희생자들은 흑인이라는 정체성,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에 대한 편견으로 목숨을 잃었다.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은 위협을 무릅쓰는 일이기에, 소수자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살게 된다. 스스로 진실하고, 당당할 수 있는 환경이 특권층에게만 주어지고 있다면, 그것은 부당하다. BLM 운동을 촉발한 것은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이지만, 수많은 사람이 운동에 참여하게 된 것은 다양한 형태의 물질적・정신적 억압에 대한 경험과 그 경험을 통해 인식한 부당함 때문일 것이다.
인종 차별을 거슬러 올라가면 전통적 노예 제도에 다다르게 된다. 전통적 노예 제도는 제국주의의 산물로, 식민지국의 시민을 존엄한 인간이 아닌 열등한 대상, 나아가 일종의 사유물로 보는 시각에서 비롯한다. 노예 제도는 철폐되었지만 이러한 시각은 세계 곳곳으로 퍼져 아직도 수많은 미디어에서 드물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서구 미디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의 미디어 또한 예외는 아니다. 이따금 불거지는 블랙 페이스(Black Face) 논란, 흑인을 희화화해 유머로 소비하는 행태, 아프리카를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나라로만 묘사하는 관습 등이 그 예시가 될 수 있겠다. 흰 피부를 선호하는 경향 또한 봉건 계급(과거 동북아시아에서는 흰 피부가 노동을 하지 않는 귀족의 상징으로 여겨졌다)과 백인 선망의 영향이다. 공공장소에서 흑인을 피하는 것, 흑인에 대한 막연함 두려움을 갖는 것은 미디어와 편견이 개인의 행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한국은 다인종 사회가 아니기에 인종적 문제에 둔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점점 다문화사회로 변화하고 있으며, 동시에 세계화되고 있다. 인종적 문제에 대한 자각과 노력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사회의 모습을 결정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허슬에서 열린 ‘#saytheirname’은 한국에서의 인종 담론과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중요한 한 걸음이다. 끝으로, 행사장에 걸려 있던 기도문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케어의 부활(Resurrection of Care)”을 수정한 것으로, 다음과 같다.
연대의 위대한 힘. 우리는 그 힘으로 백인 우월주의에, 자본주의 체제 하의 착취와 탐욕에, 제국주의에 대항할 것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이를 사랑하기 위해 나아갈 것입니다. 모든 형태의 흑인 억압에 종지부를 찍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급진적 의식으로 해방을 이룩할 것입니다.
Great forces of care – with your help we will overthrow corrupt white capitalist systems of greed, exploitation and imperialism in favor of life and love for the benefit of all beings. We will end all forms of anti-blackness. Love is the radical ritual that will lead us to liber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