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와 팬데믹, 디트로이트 테크노

“우린 음악을 만든다. 우리가 누구고 어디에서 왔는지에 관한 음악을.”

제프 밀스(Jeff Mills)

테크노 음악은 전 세계적인 음악(Global Music)이다. 지구 위 크고 작은 모든 도시가 각자의 테크노 신(Scene)을 갖고 있고, 도시 밖 교외에서 활동하는 테크노 크루 또한 적지 않다. 최근, 서울의 활발한 테크노 문화가 온라인 스트리밍 이벤트 VFV 클럽(VFV Club)을 통해 화면 속에 등장했다. 서울의 핵심적인 언더그라운드 테크노 클럽 벌트(Vurt.), 파우스트(Faust), 볼노스트(Volnost)와 합을 맞추던 디제이 22명이 출연한 VFV 클럽은 코로나 19(COVID-19) 사태를 이겨내기 위해 전자음악을 사람들에게 제공했고, 기부금은 재정난에 허덕이는 아티스트에게 단비가 되었다.

테크노는 1980년대 초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안팎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커뮤니티에서 처음 태동했다. 비록 오늘날의 테크노는 전 세계적인 음악이지만, 테크노가 처음 탄생할 당시 디트로이트는 흑인 인구가 대부분인 탈공업 도시로, 고임금 자동차 생산직 일자리가 1950년대 이후 백인 거주 단지와 해외로 이주해버린 후유증을 지금까지 겪고 있는 곳이다. 인구 문제와 대규모 실업은 인종 및 직업 차별이 더해져 흑인 커뮤니티에 치명적인 수준의 기근과 실업률이라는 불평등을 안겼다. 경제적 불평등과 공교육, 보건 및 사회 복지 기관의 만성적 자금 부족은 디트로이트시 전체를 코로나 19 팬데믹에 취약하게 만들었다.

photo by “Son of Isaac Photo”

이같은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디트로이트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커뮤니티는 근 40년 내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음악 장르 중 하나를 만들어냈다. 최근 유튜브에서 바이럴된 영상 중 하나는 풍물의 박자, 춤, 가락의 힘으로 전진하는 한국의 민주주의 시위처럼 테크노 비트를 따라 거리를 전진하는 디트로이트의 ‘블랙 라이브즈 매터(Black Lives Matter)’ 시위대를 보여준다. 그들이 손수 만든 팻말을 자세히 보면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있다: ‘테크노는 검다! 경찰은 역겹다! 레이버(Raver)들은 인종 평등을 위해 모이자!’. 블랙 테크노 매터(Black Techno Matters)는 ‘디트로이트의 흑인 아티스트들이 테크노의 뿌리를 심었다’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지역 사회 집단이다(blacktechnomatters.com). 그렇다면, 테크노의 시작을 함께 한 흑인 아티스트들은 대체 누구인가?

역사

오늘날, 최초의 디트로이트 테크노 곡은 두 곡 중 하나로 추정된다. 1981년에 발매된 어 넘버 오브 네임스(A Number of Names)의 “Sharevari”와 사이보트론(Cybotron)의 “Alleys of Your Mind”가 바로 그 둘이다. 모타운(Motown)과 달리 디트로이트에서 탄생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팝 소울 음악 집단은 1972년에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며 도시에 문화적 공백을 남겼고, 위의 두 곡은 그 공백을 틈타 소울 음악을 대체할 새로운 전자 음악 스타일을 제시했다. 이 새로운 스타일은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와 개리 뉴먼(Gary Numan) 같은 휴머노이드 콘셉트의 아티스트, 신시사이저가 풍성한 조르지오 모로더(Giorgio Moroder)의 유로디스코, 그리고 인기 현지 아티스트였던 팔리먼트-펑카델릭(Parliament-Funkadelic)의 미래적 훵크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1981년을 기점으로 딥 스페이스 사운드워크(Deep Space Soundworks)라는 DJ 집단이 디트로이트 안팎의 파티에서 다양한 댄스 레코드를 섞은 믹스를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이 집단의 멤버였던 후안 앳킨스(Juan Atkins), 데릭 메이(Derrick May), 케빈 선더슨(Kevin Saunderson)은 종종 디트로이트 테크노의 창시자로 추앙받고 있으며, 그들이 자주 만난 디트로이트 교외 고등학교의 이름을 따 ‘벨빌 쓰리(Belleville Three)’라고 불린다. 하지만 아트 페인(Art Payne), 키스 마틴(Keith Martin)과 함께 딥 스페이스 사운드워크의 멤버 중 하나였던 에디 폴크스(Eddie Fowlkes)의 공로를 빼놓고는 디트로이트 테크노의 시작을 이야기할 수 없다.

후안 앳킨스는 딥 스페이스 네트워크 이전에도 이미 베트남전 참전 용사인 리차드 “릭” 데이비스(Richard “Rik” Davis)와 함께 사이보트론의 멤버로 활약하며 전자음악을 만들고 있었다. 솔로 전향을 결심한 후, 앳킨스는 모델 500(Model 500)이라는 새 예명으로 첫 번째 솔로 히트곡인 “No UFO’s”(1983)을 발매했다. 이 트랙은 새 댄스 음악 장르인 애시드 하우스(Acid House)가 갓 태동하던 디트로이트와 시카고의 댄스 플로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앳킨스, 메이, 선더슨 그리고 폴크스가 만든 전자 음악은 시카고에서 주목을 얻은 후 대서양을 넘어 영국과 유럽의 댄스 플로어로 향했다. 폴크스의 신나는 “Goodbye Kiss”(1986), 기쁨으로 가득 찬 메이의 싱글 “Strings of Life”(1987), 그리고 선더슨의 소울 히트 “Big Fun”과 “Good Life”(1988)는 1980년대 후반 대서양 인근의 유럽 국가에서 떠오르던 새 레이브 문화의 주제가가 되었다.

모터 시티(the Motor City)에서 나온 음악들의 엄청난 인기에 영향을 받은 영국의 한 10장짜리 레코드 컴필레이션은 본래 ‘디트로이트의 새 하우스 사운드(The New House Sound of Detroit)’라는 제목을 붙이려 했으나, 주안 앳킨스의 참여곡 “Techno Music”이 전달되자 급하게 이름을 “테크노! 디트로이트의 새 댄스 사운드(Techno! The New Dance Sound of Detroit)”(1988)로 바꾸는 사건도 벌어졌다. 음악 평론가들에게 이 새로운 댄스 사운드는 디트로이트 테크노를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과 썬 라(Sun Ra)의 프리 재즈,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스페이스 록 그리고 흑인 공상과학 작가 사무엘 델라니(Samuel Delany)와 옥타비아 버틀러(Octavia Butler)의 저작에 연결한 과거 아프로퓨처리즘(Afrofuturism) 전통의 일부였다.

언더그라운드 레지스탕스(Underground Resistance)

테크노 계의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라고 불리곤 하는 언더그라운드 레지스탕스는 1980년대 후반 제프 밀스(Jeff Mills), 마이크 뱅크스(Mike Banks), 그리고 로버트 후드(Robert Hood)가 시작한 레코드 레이블 겸 뮤지션 집단이다. 언더그라운드 레지스탕스는 뮤지션이 완전한 예술적 독립을 누리며 레코드 회사의 착취에서 자유롭길 바랐고, “Revolution for Change”(1992)의 둔탁한 디스토피아적 루프부터 우주가 연상되는 “Galaxy 2 Galaxy”(1992)의 재지한 유토피아적 사운드까지 폭넓은 작품을 발표했다.

전 세계의 테크노 DJ, 프로듀서, 팬은 언더그라운드 레지스탕스의 저항성과 정통성에 큰 영향을 받았다. 비장미 넘치는 언더그라운드 레지스탕스의 UR 심볼은 테크노 팬들에게 체 게바라(Che Guevara) 같은 상징성을 지닌다. 언더그라운드 레지스탕스의 저항성은 블랙 팬더스(Black Panthers)로 이어졌고, 제프 밀스는 2006년 인터뷰에서 그 유사성을 인정한 바 있다.

“당신이 오늘날 미국에서 만나는 모든 흑인은 그 행동들의 직접적인 결과다: 우리가 가진 모든 자유, 그리고 제약은 70년대의 정부와 블랙 팬더스로부터 기인한다… 고로 우리는 음악을 만든다. 우리가 누구고 어디에서 왔는지에 관한 음악을”.

(출처: 데일리 요미우리)

언더그라운드 레지스탕스가 발매한 [Riot EP (UR1991)]의 제목은 인종차별주의와 경제적 차별의 역사가 흑인 커뮤니티와 경찰의 5일간의 사투로 이어진 1967년 디트로이트 폭동(12번가의 폭동)을 암시한다. 블랙 라이브즈 매터 시위가 미국 전역에서 지속되는 지금, [Riot EP]는 다시금 턴테이블 위에서 바삐 돌아가고 있다.

마이크 뱅크스와 언더그라운드 레지스탕스 소속 아티스트 DJ 스팅레이(DJ Stingray)는 종종 마스크를 쓴 채 대중 앞에 나타났는데, 그들의 모습은 멕시코의 사파티스타(Zapatist) 민족 해방군 부사령관 숩코만단테 마르코스(Subcomandante Marcos)를 연상시킨다. 마스크는 자아와 나르시시즘을 내세우는 오늘날의 세태에 반기를 드는 댄스 뮤직 문화의 상징이다. 블랙풋 인디언 혈통의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를 둔 그의 태생은 기나긴 인족 차별과 저항의 역사를 가족사에 새겨놓았고, 이 개인사는 19세기 후반 아메리칸 원주민의 저항 운동을 의미하는 제목의 곡 “Ghostdancer”(1995)에서 들어 볼 수 있다. 언더그라운드 레지스탕스는 반-인종차별주의적이고 반-제국주의적인 음악이 댄스 플로어를 뜨겁게 달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DJ Stringray @ Contra (CC. John Eperjesi)

시위와 팬데믹

2020년 4월 24일, 디트로이트의 테크노 커뮤니티는 가장 존경받는 DJ, 프로듀서, 그리고 교육자인 마이크 허커비(Mike Huckaby)를 떠나보냈다. 코로나 19와 뇌졸중으로 목숨을 잃은 그의 향년 54세였다. 미국 전체 인구의 13%를 차지하는 흑인이 자국 코로나 19 사망자의 24%를 차지하고 있으니, 코로나 19 팬데믹이 그야말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커뮤니티를 강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covidtracking.com/race).

아프리카계 미국인 커뮤니티가 이 강력한 바이러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동안, 굉장히 오래된 질병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경찰에 의한 비사법적 흑인 살인’이라는 이름의 질병이다. 이 질병은 미니애폴리스 경찰관 데렉 쇼빈(Derek Chauvin)이 8분 46초간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의 목을 고의적으로 조르며 카메라를 응시하는 영상을 통해 세상에 등장했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야외에서 흑인을 죽이고도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는 식의 당당한 태도는 블랙 라이브즈 매터 단체로부터 발발해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시위로 이어졌다.

역사적인 블랙 라이브즈 매터 시위가 미국 전역에서 일어나고 전염병이 흑인 커뮤니티를 강타한 이때, 테크노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집에 있든 클럽에 있든, 비평가던 댄서건, 프로듀서건 DJ이건, 이 움직임과 역사를 이해하고 도움의 손길을 건네야 한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로컬 음악 신 역시 중요하다. 포크부터 테크노 그리고 재즈부터 하우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언더그라운드, 독립, 비상업적 음악은 모든 지역 사회의 심장 박동이다. 코로나 19 사태로 클럽들이 문을 닫으며 자신의 인생을 음악에 바친 수많은 개인사업자, 예술가, 그리고 노동자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다. 탁월한 공감 능력과 리더십으로 이 힘든 시기를 돌파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가 이 심장 박동 소리를 지켜내기 위한 지원 방안을 찾아내길 진심으로 바란다.


더 읽을거리

Dan Sicko, Techno Rebels: the renegades of electronic funk (2010)

Kodwo Eshun, More Brilliant than the Sun: Adventures in Sonic Fiction (1999)

Thomas Surgrue, The Origins of the Urban Crisis: Race and Inequality in Postwar Detroit (2005)

1967 Detroit Uprising: https://detroithistorical.org/learn/encyclopedia-of-detroit/uprising-1967


기고 │ John Eperjesi
커버 사진 출처 │ David Fischer

John Eperjesi는 경희대학교 영미대중문학 부교수다. 2006년에 그의 첫 책 “제국주의적 상상: 아시아의 비전과 미국 문화에서의 태평양 (The Imperialist Imaginary: Visions of Asia and the Pacific in American Culture)”이 출간되었으며, 곧 두번째 책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현재 음악생태학과 디트로이트의 일렉트로-테크노 아티스트 드렉시아(Drexciya)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번역 │ 김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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