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패션 하우스의 스펙터클에 관한 고찰

최근 명품 패션 하우스들의 바이럴 행보가 심상치 않다. 디올(Dior)은 지난주 중국 진링성의 프린스 호텔에서 얼음으로 만들어진 스키 팝업스토어를 선보였다. 스토어의 골조는 물론, 얼음으로 만든 드레스 등 내부 인테리어까지 경이로운 수준의 얼음 공예로 장식하면서 화려한 면모를 과시했다. 중국 북부의 일부 지역에서는 설 기간 전 세계의 작은 랜드마크를 얼음으로 만들고 화려한 조명으로 장식하는 행사를 갖는데, 이 관습을 모방하여 디올 에비뉴 몽테뉴스토어를 본뜬 특별한 팝업스토어를 만든 것.

반면 버버리(Burberry)는 지난 19일, 카나리아 제도와 남아프리카 웨스턴케이프의 대지에 형형색색의 꽃과 식물, 천연 페인트를 사용해 버버리 체크무늬를 수놓았다. 버버리 랜드스케이프(Burberry Landscape)라는 이름의 이 작품은 창립자 토머스 버버리(Thomas Burberry)의 며느리인 엘시 버버리(Elsie Burberry)의 모험담을 바탕으로, 자연경관 속에 브랜드의 친환경적 시그니처를 새겨넣어 자연과 상생하는 지속 가능한 버버리의 패션 철학을 표명한 것이다.

패션 하우스가 지역 문화와의 상생과 환경권에 대한 이슈를 브랜드의 새로운 가치로 내건다는 것은 반길 만 한 일이다. 그러나 조금 삐딱한 시선으론, 전통문화를 글로벌 자본의 유행에 복속시키고, 소비문화를 촉진해 환경 파괴에 일조하는 두 거대 패션 기업이 이러한 이슈를 내세우는 것이 조금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찌 됐건 해당 이벤트들은 화려한 스펙터클의 이미지로 다양한 바이럴을 유도하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오늘날 SNS 등 다양한 채널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바이럴의 영향력이 증가함에 따라, 여러 패션 하우스는 영향력을 강화하고 브랜드의 가치를 재고하기 위해 점차 더 과감하고, 더 화려한 바이럴 경쟁에 뛰어드는 추세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건 해당 볼거리가 얼마나 시각 친화적인지,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한지, 혹은 숏폼의 영상에 잘 담길 수 있는지, 즉, 얼마나 스펙터클한지다.

이러한 패션 스펙터클의 전통적 선두 주자는 단연 샤넬(Chanel)이다. 샤넬의 패션쇼는 오색 찬연한 명품 패션 하우스들의 쇼 중에서도 감상자들의 시선을 강탈하는 화려함으로 정평이 나 있다. 샤넬은 의도된 연출을 위해서라면 다소 무리한 시도일지언정 불사하지 않는데, 가령 10 FW 쇼에선 스웨덴의 빙하 265톤을 직접 공수해 런웨이를 꾸몄고, 17 FW 쇼에서는 35미터 높이에 달하는 로켓을 중앙에 세웠다. 그뿐만 아니라 18 SS 쇼에선 거대한 인공폭포를, 19 SS 쇼에선 파도가 치는 인공해변을 설치하며 쇼의 볼륨을 과시했다. 그러나 쇼가 선사하는 블록버스터급 공세에 압도되는 것도 잠시, 과연 일회적 퍼포먼스를 위해 해빙기의 빙하를 잘라내고 전시하는 행위가 궁극적으로 바람직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남는다.

근래 대형 패션 하우스가 내놓는 온갖 형형색색의 행보를 보고 있노라면 이와 같은 스펙터클 경쟁은 점차 과열되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이론가 기 드보르(Guy Ernest Debord)의 경우, 바로 이 스펙터클을 자본주의가 촉진하는 소비문화의 특징적 현상으로 정의했다. 자본 친화적 사회는 문화, 매스미디어를 지배함으로써 점점 더 화려한 이미지를 통해 소비자들을 수동적으로 소비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때 상품의 이미지에 현혹된 소비자들은 비판적 사고를 그치고 점차 물신화된 사고에 사로잡히며, 미디어에 재현되는 과도한 환상과 통속적인 일상 사이의 격차로부터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스펙터클 경쟁이 유발하는 과잉 소비와 환경문제는 물론이다.

사실 패션 브랜드가 상품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결부된 환상을 판매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금 끝없이 소비의 욕망을 추동시킨다는 것은 구태여 짚을 필요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명품 시장의 경우 이 경향은 더욱더 심화된다. 소비 욕망과 결부된 사치재로서의 숙명은 명품 패션 시장과 결코 분리될 수 없기에 어쩌면 스펙터클 경쟁 현상은 불가피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유념할 것은 명품의 기원이 남들과 다른 멋과 기호화를 추구하는 것과 동시에, 오래도록 지속 가능한 가치에 바탕을 둔다는 것이다. 오래도록 멋을 잃지 않는 디자인과 품질은 명품의 본바탕이 되며, 더불어 사회적 가치와 공명하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와 행보는 여기에 품위를 더한다. 오늘날 명품이라고 일컬어지는 패션 하우스들의 헤리티지는 모두 이 균형추를 유지하려는 각고의 노력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심화되는 패션계의 스팩터클 경쟁에서 유난히 도드라지는 것은 눈앞을 아찔하게 수놓는 화려함과 그것의 폭발적 파급효과인 듯하다. 하루가 멀다고 쏟아져나오는 기상천외한 캠페인과 쇼의 아름다움에 경탄하기 이전에 그것이 의미할 수 있는 좀 더 심층적인 가치를 한 번쯤 돌아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앞서 말한 디올과 버버리의 바이럴 경우, 냉랭한 시각을 누그러뜨리고 바라보자면 새로운 시대 정신과 브랜드 경영이 발맞춰가기 위한 시도의 일환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삐딱하게나마 무비판적인 수용보다는 생산과 소비 사이의 긴장 관계를 형성하는 게 더 나은 것 아니냐고 조심스레 외쳐보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물신화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 소비를 멈출 수는 없다. 또한 과잉 생산과 자연 파괴를 꼬집으면서도 신상 재킷을 구매할 때 얻어지는 달콤한 과실 역시 놓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모순에 봉착한 현대인일지언정 나름의 개인적 잣대를 마련하고, 본인만의 심미안에 따라 해당 상품의 가치를 가름할 때, 내 소비는 좀 더 떳떳한 것으로 긍정될 수 있다. 어차피 100% 완벽한 소비는 없다. 그러나 조금 더 올바른 소비는 존재한다. 혹시 아나, 이 조그만 발버둥이 모여 모여 당대의 상궤를 움직이는 변화의 핵심이 될지. 글로벌 패션 시장의 성장에 힘입어 점차 몸집을 불려 가고 호화스러워지는 패션계의 바이럴이 과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또 그 안에서 진정 의미 있는 행보는 무엇일지. 이는 우리가 주시해볼 이슈다.


이미지 출처 | Burberry, Chanel, D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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