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코의 볼펜을 뒤적거리며 쓸데없는 상상을

최근 짧은 휴가로 후쿠오카에 다녀왔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선물을 살 요량으로 선물 가게를 검색하다가 로컬 문구 회사 하이타이드(Hightide)를 알게 됐다. 이쪽 장르에 문외한 나는 전혀 몰랐지만, 하이타이드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편집숍 하이타이드 스토어는 국내 여행객에도 제법 알려진 가게라고(실제 방문 당시 이곳은 한국인 여성 손님으로 가득했다). 하이타이드에서는 자사 문구 브랜드 펜코(Penco)를 비롯한 아기자기한 문구 및 잡화류를 판매한다. 그중에서도 펜코는 근 몇 년 전부터 한국인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며 한국말에 능통한 점원이 귀띔해 주었다.

볼펜, 가위, 필통, 수납함 등 막상 없어도 생활에 큰 지장이 없거나, 이미 하나쯤은 구비한 물건이지만 왠지 펜코의 디자인을 거치며 소비자의 지갑을 무장해제한다. 그들의 디자인은 소비자로 하여금 ‘가위 이미 있는 데 또 사?’에서 ‘어차피 가위쯤 하나 더 있어도 되니까, 놔두면 쓸 일 있겠지’로 생각을 전환하게 한다. 딱 그 정도의 유용성. 포인트는 디자인이다. 사실상 이들의 쓸모는 ‘예쁨’에 있다. ‘예쁜 쓰레기’라는 작금의 트렌드는 소셜 미디어, 이미지에 친숙한 20대에게 주효하다. 저 멀리 미드 센추리 가구를 구매하는 30~40대가 있다면 가깝게는 펜코도 있다. 소비의 기저 심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주머니가 가벼워도, 몇 만원으로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이쪽이 좀 더 친숙할 뿐. 굳이 기능적인 측면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곳에서 판매하는 모든 물건은 집의 인테리어부터 식기, 장식까지 하나하나 예쁘게 꾸미는 걸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문을 열고 반길 만한 디자인 소품이다. 펜코의 제품을 구매한 모두가 입을 모아 그 예쁨을 말한다. 실제로 가위가 잘 잘리는지는 부차적인 가치가 된다. 사람들은 이미지에 지갑을 열고, 펜코는 그들이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하이타이드를 대표하는 브랜드 펜코는 현재 국내에도 몇 군데 온/오프라인 편집숍에 입점해있다. 그저 하이타이드에 방문한 한 번의 경험으로 잘 모르고 하는 말일 수도 있으나 사실, 펜코는 ‘하이타이드 스토어’에 놓여있을 때 더욱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의류, 잡화, 주방용품, 식품 등 장르 불문 일본 편집숍의 힘은 공간을 구성하는 편집력, 공간이 주는 무드, 소비자가 얻어갈 경험까지 모두 일맥상통한 맥락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 하이타이드 스토어라는 공간에 놓인 제품 구성을 비롯한 일련의 맥락이 펜코를 마땅히 구매할 가치가 있는 디자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입구에 무심하게 놓인 벤치들, 스토어에서 소소하게 운영하는 카페 또한 그저 어련히 이런 가게에 하나쯤 딸려있을 카페 구성이라고 보기 어렵다. 역사적으로 깊숙이 내재한 일본인의 잘 계산된 배려. 이것은 텐진-하카타를 위시한 메인거리에서 조금은 외진 지역에 자리한 하이타이드 스토어로 찾아올 고객을 향한 소소한 배려이자, 서로 잘 어울리는 카페와 문구점이 하나의 맥락 안에서 편안한 인상을 자아내는 것이다(하이타이드 스토어에 가본 이들이라면 입구 앞 벤치들이 사라지고 음료를 판매하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라. 훨씬 더 건조한 무드로 다가올 것이다).

일본의 편집력은 오랜 역사의 백화점부터 갖가지 쇼핑몰, 편집숍, 잡지와 같은 데서 빛을 발해왔다. 관광객의 발길을 잡아끄는 블랙홀 돈키호테는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증식하지만 그것을 벤치마킹한 ‘삐에로쑈핑’은 빠른 시일 내에 비운의 고배를 마셔야 했던 것처럼, 예민한 기획과 편집력이 부재한 오프라인 공간은 이제 상품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더는 크게 어필하지 못한다.

가게에서 펜코를 뒤적거리며 느낀 묘한 위화감은 브랜드가 지향하는 디자인이 미국적이라는 점이다. 펜코의 전반적인 디자인 그 배경에는 미국이 자리한다. 오랜 역사에 걸쳐 일본인이 욕망한 미국이 이 펜코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알다시피 일본은 과거 개화 시기를 거치며 전자제품, 자동차, 요식업, 음악, 복식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서구 문화를 동경한 나머지 그것을 일본식으로 내재화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거기에는 미국을 뛰어넘고야 말겠다는 어떤 패전국의 심리까지 작용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 노력의 전리품으로 일본은 세계에서도 통할 만한 자기들의 고유한 문화(또는 브랜드)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정신은 이어진다.

미국을 향한 열망과 일본인 특유의 온고지신적인 접근 그리고 작은 것 하나에도 제작자의 사상과 철학을 담는(그들은 그래야만 한다고 대대로 학습해온 것 같기도 하다) 일본인의 어떤 정신. 전 세계가 열광한 일본의 현대 문화 상품은 대개 이러한 섬세한 편집과 세공을 거치고, 그 결과 우리에게도 익숙한 아메카지나 시티팝, 아니메 등의 형태로 팔려나갔다. 펜코 또한 그러한 맥락의 작은 한 줄기로 나타난 브랜드로, 물건의 전체적인 틀은 미국에 있지만 결과물은 지극히 일본의 것이다(앞서 펜코가 미국적이라는 말에 모순되지만). 미국적인 틀에 일본인의 테이스트를 가미해 독자적으로 완성된 무언가. 그들은 그렇게 만들어낸 문구류를 다시 미국 곳곳에서 판매하고 있다.

문화적 레퍼런스, 좀 더 근본적으로는 근대화의 개화 모델을 미국에 두고 나서부터 일본은 표면적인 것부터 시작해 핵심 엔진까지 온전히 자신들의 것으로 소화했다. 오랜 시간 학습하는 과정을 거쳐 층층이 구축된 일본의 문화 유산은 무척 견고해 보인다. 이른바 ‘업계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주변인이 입을 모아 일본을 향한 부러움을 내비친다. 실제 국내에는 일본에 큰 영향을 받은 브랜드와 창작자가 즐비하며, 나 또한 일본 만화에 빠져 산 유년기가 있다. 미국에 영향 받은 일본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디지털 시대. 지금 지구는 소셜 미디어가 등장한 이래로 그 어느때보다 시계바늘이 빠르게 움직이는 듯하다. 한국 또한 케이팝을 필두로, 새 시대에 올라탄 창작자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하나둘씩 세계의 문화 지형을 묘하게 뒤틀고 있다. 새로운 흐름을 맞닥뜨리며 일본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시금 변화를 요구받는다. 이렇게 많은 것들이 변할 때 오랜 시간 쌓아 올린 문화의 힘은 과연 어떤 방향으로 작용하게 될지, 문화를 향한 대비되는 접근법을 지닌 한국과 일본이 또 어떤 변화를 이뤄낼지. 펜코라는 브랜드를 우연히 접한 나는 이렇게 쓸데없는 상상을 길게 늘어뜨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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